동그라미 기피증
맹 영숙
다섯 남매 중 세 째였다. 나의 어린 시절은 미운 오리처럼 하는 짓이 늘 엉뚱하였다. 방 창문 밑에는 화단이 있었다, 어머니가 이웃집에서 접시 꽃모종을 얻어와 언니방 밑 화단에만 심고 물을 주며 정성껏 가꾸었다. 접시꽃은 창문에 얼굴을 비춰 보고 싶었는지, 아니면 언니 방안을 들여다보고 싶었는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다.
줄기에는 동지 팥죽 새알 비비듯 동글동글 도드라진 꽃봉오리가 매달리기 시작한다. 잠에 취한 꽃망울은 바람에 흔들리며 햇볕을 향해 설래발 친다. 하나, 둘, 그 해납작한 얼굴과 다래술에 취한 진홍빛 얼굴은 시계방향의 원을 그리며 환하게 피어난다. 어느새 여름을 치장하듯 꽃은 아름다운 색조로 바람결에 나부낀다.
“아! 저 접시꽃 좀 보래 방실 한 게 둘째딸 얼굴 영판이재.” 우리 집에 자주 오는 수다쟁이 엄마 친구 분들은 한 목소리로 접시꽃을 한번보고 나를 보며 큰소리로 웃는다. 그녀들은 모이면 아무 말이나 툭툭, 내뱉고 큰소리로 웃으며 즐거워한다. 좋다는 뜻이라지만 언니와 나를 비교하는 의뭉스런 뜻이 숨어 있다는 것을 눈짐작으로 알 수 있다. 나는 그런 찬사가 싫었다. 차라리 조그맣게 망울진
‘나를 잊지 마세요.’의 소박한 물망초였으면 좋겠다.
모두를 잠들게 하는 밤하늘은 먹물을 끼얹은 듯이 깜깜하고 고즈넉하다. 사춘기 소녀는 잠이 오지 않았다. 일을 저 질고 싶어진다. 화가 날 만큼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많고 많은 꽃 중에서 하필이면 접시꽃이라니 뜨거운 응어리는 고개를 쳐들고 꿈틀대기 시작하였다. 잠옷 차림으로 일어나 모두 잠든 사이 수면 보행 증 환자같이 움직였다. 접시꽃은 언니 방 창문을 지키는 커텐의 대역이었고 속옷을 가려입어도 밖에서 보이지 않게 막아서 지키는 수호신이다. 새어나오는 불빛 속에 접시꽃은 더 화려하고 도도해 보였다. 그꽃은 내가 싫어하는 것을 아는가보다. 얼굴을 돌리고 창에 새어나오는 언니 방 불빛만 응시하고 있었다.
야들한 접시꽃, 젖 먹은 힘까지 용쓰며 턱이 떨릴 정도로 꽃대를 잡아 당겼다. 손에 잎이 뜯겨 떨어졌다. 어스름 달빛아래 꽃은 푸성귀 냄새를 풍기고 옆으로 꼬꾸라졌다. 허물어진 꽃은 누운 채 망연히 정적이 흐르는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나를 보는 사람마다 ‘달덩이’라는데 그런 말이 싫었다. 어느덧 나는 동그라미 기피증에 걸려 있었다. 거울에 비춰진 얼굴은 컴퍼스로 원을 그린 듯 보름달같이 둥글다. 왜 언니처럼 계란형이 되지 못할까. 후줄근히 거울 앞에서 두 손으로 귀 밑 뺨을 가려본다. 그러고 보니 나도 계란형이면 꽤 예쁠 것 같다. 호떡이 싫었다. 도너츠가 싫었다. 어머니가 만들어준 원피스의 올망졸망 달린 동글납작한 단추가 싫었다. 목을 끼고 옷을 입을 때는 늘 인상을 찡그렸다.
집에서는 나를 보는 시선이 따갑다. 어제 내가 저질렀던 일로 민 유리창으로 언니방의 풍경이 환히 밖으로 들어났다. 투명한 유리창에는 햇볕만 한줌 몰려간다. 언니는 징징대며 어머니께 커텐을 해달라고 보챈다.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웃음이 입가에 새워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사랑받을 곳이 없었다. 그저께는 메주를 만들어 마루에 널어 놨는데 밤에 화장실 가며 밟아 어그러뜨렸다. 메주를 직사각형으로 만들었던 어머니가 이번에는 둥글납작하게 만들어 마루에 대발을 깔고 널어놨다. 나는 잠결에 모르고 한 짓이라고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 둥근 메주를 보자 속에서 부아가 치밀기 시작했다. 꼭 나를 놀리려고 만들어 논 것 같아서 어머니가 섭섭했다. 요즘은 어머니가 나만 보면 자주 핀잔을 준다. 고고한 언니는 예쁜 접시꽃을 없애 버렸다고 장미 얼굴에 성난 가시를 돋우며 째려본다. 마음 부칠 곳이 없었다.
푸른 파도위로 하얀 갈매기가 비상을 한다. 자유로운 갈매기가 되고 싶다. 항만에 쌓아올린 방파제 위로 썰물이 밀려와 흰 거품이 모여든다. 먼 바다 끝자락에 통통배가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신작로 건너 오래 묵은 느티나무가 하늘을 반 가린 채 자유자재로 손을 벌리고 서있다. 이곳은 모든 사람들의 휴식 공간이었다. 간혹 마음이 슬퍼지는 때나, 화롯불의 부아가 스멀스멀 몰려 올 때는 늘 이곳에 와서 마음을 식히는 나의 쉼터였다. 행실이 나쁜 아이들은 날이 선 칼이나 못으로 낙서의 상처를 낸다. 낙서로 상처가난 나무둥지는 눈높이에 와 닿는 내 마음의 친구 같았다.
나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과연 나는 우리 집에 필요한 인물인가? 얼굴은 못난이지만 그래도 양념 딸이 아닐까? 바다에 나가 바지락조개를 캐서 냉이를 넣고 된장국을 끓여 상에 올렸더니 아버지가 환하게 웃으며 맛있게 드시며 칭찬 하신 모습이 생각난다.
점심도 거르고 우두커니 앉아 있으니 배도 슬슬 고파지고 신세가 천애고아 같이 슬퍼다. 슬며시 눈물이 날려고 하는데 오빠가 나를 이리 저리 찾으려 다녔나 보다. 어머니가 아주 맛있는 호박범벅을 끓여 놓고 식구들 모두 나를 기다린다고 하였다. 헝클린 마음의 응어리가 서서히 풀린다. 갑자기 호박범벅이 구미에 당기며 배가 더 고파진다. 집에 빨리 가고 싶어졌다.
“어! 동그라미 기피증은 어디로 살아졌지 ?”
오빠는 나를 보고 “호박도 동그라미잖아?” 하며 깔깔 웃는다.
다섯 남매 중에 못난이라 할 만큼 미운오리였었던 나를 남편은 무작정 좋아하니 염려스럽기도 하고 거북스럽기도 하였다. 그러다보니 남편을 위해 누구보다 헌신적인 아내로 변신하여 살아왔다. 얼마 전 결혼 오십 주년을 맞았다. 남편이 내손을 슬며시 잡으며
“당신의 둥근 얼굴이 넉넉하고 후덕 있어 좋았소.” 하며 하얀 백장미 꽃다발을 내 가슴에 안겨 준다. 그러고 보니 결혼의 긴 터널을 순탄하게 잘 뚫고 나왔다. 내가 오십년 결혼생활 동안 가정을 잘 가꾸려고 무단히 노력하며 산 것에 비해 남편 또한 성실한 한가정의 주춧돌로 가정을 잘 지키며 살아오지 않았는가. 남편이 빙긋이 웃으며
“다음 생애 태어나도 당신을 아내로 맞이하겠소.” 하며 다정스런 눈빛으로 지긋이 나를 바라보며 손을 잡아준다. 눈물이 고이며 콧등이 시큰 해진다.
세월은 떫은 맛, 신맛을 곰삭히며 이만큼 살아왔는데, 소슬바람이 불어와 지치면 졸면 되고, 발밑 흙에서 봄의 냄새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면 꽃이 벙그는 소리를 들으면 된다. 예전 달동네로 전전하던 우리의 보금자리도 이젠 평탄한 꽃길로만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