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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인 타임>의 줄거리:
In Time! 요즈음 상영중인 영화 제목입니다. 발상이 참 신선합니다. 시간이 화폐를 대신하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는 완전히 다릅니다. Out Of Time 입니다. 시간의 흐름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서의 시간이 다 끝나기 전에 육체가 아닌 인격으로서의 나 자신이 시간 밖으로 빠져 나가야 합니다.
인 타임
(막12:35-37)
35.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36.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37.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인 타임>이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인 타임’ 영어의 in, 그리고 시간이라는 time.
‘인 타임’이라고 하는 이 말은 요즘 상영하고 있는 영화제목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직접 보지 못해서 자세하게 말씀을 드리기는 곤란합니다만…
영화의 내용을 담고 있는 그릇이 되는 전제가 참 특이합니다.
그 소재가 무엇인가 하면 시간이 화폐를 대체한 그런 세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읽은 이야기를 조금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자면 이렇습니다.
유전자조작이 극도로 발달하면서 사람이 25세가 되면 노화가 멈춰지게 됩니다.
그리고 25세의 상태에서 죽을 때까지 사는데, 25세가 되면 세상사람 모두가 다 ‘카운트 바디 시계’라고 하는 것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팔목의 살 속에 새겨지는 시계를 받게 돼요.
열세 자리로 이루어진 시계인데, 이 시계를 받게 되면 이 시계에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일 년치에 해당되는 시간이 주어집니다.
그러면 이 일 년 치에 해당되는 시간을 가지고 무얼 하며 사는 거냐?
바로 이 시간을 돈처럼 지불하면서, 또 일을 해서 시간을 벌면서 사는 거예요.
그래서 만약에 시간이 다 떨어지고 열세 자리 숫자로 된 시계에 제로가 딱 떠오르면 그 순간에 심장마비로 죽는 겁니다.
그렇다면 시간을 어떻게 화폐 대신으로 쓰느냐?
그 영화의 포스터에 보니 한 옆에 ‘커피 한 잔에 4분’이라고 쓰여 있더군요.
그러니까 자기 팔목의 카운트 바디 시계에 지금 적혀 있는 시간 중에서 4분을 지불해야 커피 한 잔을 먹습니다, 티 한 잔은 2분 30초, 그런 식으로 해서 버스요금이 2시간을 지불해야 버스를 탈 수가 있고, 예를 들어 스포츠카는 59년을 지불해야 됩니다.
25세가 되어서 1년의 시간을 받는 그 상태로는 스포츠카는 꿈도 못 꾸지요.
이제 1년 받아서 살면서 당장 먹을 것을 시간을 지불하면서 사는 동안에 1년이라는 시간이 다 지나기 전에 시간을 많이 벌어야 됩니다.
그래서 100만 시간, 수백만 시간을 갖고 있는 재벌들이 생겨납니다.
그 재벌들이 예를 들어 커피점을 열어서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4분씩을 받으면서 커피를 판다면, 4분 중에서 종업원에게 30초 나눠주고 자기가 3분을 갖고…
이런 식으로 해서 수백만 시간을 벌면 그 수백만 시간 동안 사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제 살려면 시간을 벌든지 아니면 시간을 훔치든지 해서라도 어떻게든 팔목에 있는 카운트 바디 시계의 시간의 숫자가 늘어나지 않으면 죽는 거예요.
그래서 남녀 주인공이 이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에 저항해서 싸우는 아마 그런 얘기인가 봅니다.
참 재미있는 얘기 아닙니까?
이 얘기를 빌어서 오늘 말씀을 우리가 이해해 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무얼 말하는 것이냐?
인 타임, ‘시간 안에서 산다’라고 하는 이 영화의 기본 전제와는 반대로 시간 밖으로 나가는 겁니다, 시간 밖으로.
시간이라고 하는 문제가 20세기에 들어서서 철학적으로도 참 중요한 문제가 되었어요.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하이데커라는 분이 ‘존재와 시간’이라는 책을 씁니다.
그 동안 존재, ‘있다’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을 이야기할 때 고대 철학자들은 어떻게 이해했는가 하면, 분자가 있고 원자가 있고… 이렇게 물질적인 의미에서 연구를 했습니다.
그것이 17,8세기에 들어서면서 ‘나는 존재한다, 왜냐하면 나는 생각하니까…’, 이렇게 생각이 존재의 근거가 됩니다.
그런데 하이데커가 이야기한 것은, ‘인간의 현존재라는 것은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존재라는 것은 시간과 얽혀있다’ 이렇게 존재를 시간의 차원에서 이해해 들어갑니다.
마치 하이데커의 ‘존재와 시간’이라고 하는 그런 철학책을 ‘인 타임’이라고 하는 영화가 나름대로 쉽게 옮겨본 것이 아닌가? 제게는 그렇게 느껴집니다.
영화를 정식으로 보지 못해서 뭐라고 정확하게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 시간이 정해져 있는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어떡하든지 ‘나’라는 인격이 시간을 벗어나서 시간 밖에 있는 세상으로 가야된다는 얘깁니다.
이것은 마치 뭐와 같은가 하면, 나이아가라 폭포로 흘러 들어와서 물이 낙하되는 그 지점까지 물들이 흘러 들어오는데, 그 강에 사람이 하나 빠졌습니다.
이 사람은 헬리콥터가 와서 줄을 내려서 이 사람이 낙하지점에서 떨어지기 전에 나이아가라 폭포로 흘러 들어가는 물로부터 빠져나와야 됩니다.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메시아로 이 땅에 오셨다는 얘기는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우리가 죽음이라고 하는 낙하지점에 도달하기 전에 과거로부터 현재, 미래로 흘러가는 이 시간의 흐름에서 빠져나가서 시간이라는 게 없는 세계로 빨리 도달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메시아 그리스도로 구세주로 오셔서 하는 일은 뭐냐 하면, 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무언가 우리의 전성시대를 이루어주시려고 오신 게 아니라, 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시간의 흐름이 끝나기 직전까지 빨리 우리를 시간의 흐름 바깥에 있는 세상, 시간이 전혀 상관이 없는 세상, 시간이 제로인 세상, 그 세상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시려고 이 땅에 그리스도로 메시아로 오셨다는 얘깁니다.
여러분, 오늘 이 본문은 예수님께서 먼저 말씀을 하셨어요.
‘어찌하여 성경을 가르치고 율법을 가르치는 선생들인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참으로 철학적이십니다.
철학이란 게 뭡니까?
우리는 그냥 평소에 모르고 살고 있는 것들을 문제로 제기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시간 얘기가 나왔으니까 시간이란 게 뭡니까?
물어보면 뻥 해요.
우리는 ‘몇 시에 누구를 만나야지, 몇 시까지 근무를 해야지!’ 이렇게 시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간이 뭐냐고 물어보면 말할 사람이 별로 없어요.
다윗의 자손이라는 얘기는 유대사회에서 누구도 그 ‘다윗의 자손’이 뭐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살고 있고, 다윗의 자손을 말하고 살고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은 이 땅에 오실 메시아를 가리키는 별칭입니다.
다 그런 줄 알고 있지요.
그런데 다윗의 자손, 너무나 상식적으로 많이 듣고 많이 말하고 있는 그 다윗의 자손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십니다.
‘왜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문제제기를 하시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다윗의 시편 110편에 보면 다윗이 노래한 내용이 있는데, 그 내용이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여기서 ‘주께서’라는 말은 ‘여호와하나님께서’입니다.
그 다음의 ‘내 주께’는 바로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리스도의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아래 둘 때까지 여호와하나님인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그러니까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하였는데 어떻게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
왜 즐겁게 듣습니까? 기가 막히잖아요? 생전에 그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우린 자꾸 다윗의 자손이다, 다윗의 자손이다 그렇게 부르고 있는데 정작 다윗 자신은 그리스도를 향하여 주님이라고 불렀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주님이라고 부른 그분이 900년 뒤, 24대째에 태어나게 될 그 후손이 될 수 있느냐 이겁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900년 전 사람이 다윗이었으니까.
여러분, 왜 지금 예수님께서 약간 짓궂게 이 질문을 하십니까?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는 별칭으로 메시아를 불렀다고 하는 그것 자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시는 게 아닙니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을 문제로 이끌어내신 이유는 바로 시간의 문제를 지적하시려고 한 것이에요.
그러면 시간의 문제가 어떻다는 얘깁니까?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는 그 의중에 무엇이 들어있습니까?
다윗이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예수님이 오시기까지도 그런 적이 없었을 만큼 전성시대를 이루어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다윗의 자손이라고 별명이 붙여진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면 이 땅 위에서 다윗이 이룬 전성시대와 같은 세상을 다시 열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시간 속에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는 며칠 뒤에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고 세상을 떠나가실 것입니다.
그 십자가사건 이전에 예수님께서 명확하게 해두시려고 하시는 것이었다는 거예요.
다윗이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시기 900년 전에 예수님을 봤다는 얘깁니다.
예수라는 몸에 태어날 그리스도를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봤다는 얘기에요.
그러니까 다윗이 죽은 뒤 900년이라는 세월 뒤에 예수라는 사람의 몸에 그리스도가 태어나지만, 그 900년 동안에도 그분은 계속 계셨습니다.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는 세계가 있다는 것이에요.
그걸 왜 지금 가르쳐주고 계십니까?
‘너희는 그리스도, 그리스도! 하면서 자꾸 생각하기를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게 되면 이 세상에서의 나의 삶이 바뀔 거라고 기대하는데, 그 기대는 우선적인 것도 아니고 정확한 것도 아니고 맞는 것도 아니다, 내가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온 이유는 너희들을 이 시간의 흐름에서부터 빠져나오게 하여 시간의 흐름 바깥에 있는 세상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 겁니다.
그리스도가 왜 오셨습니까?
시간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다윗이 900년 전에 900년 뒤에 태어날 예수를 그리스도로 확인합니다.
바로 그런 세계가 있다는 겁니다.
그 세계가, 그리스도가 예수님이라는 사람의 몸을 입고 태어나기 전에 거하던 그 나라가 있고 그 공간이 있는데, 바로 “내가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온 이유는 이 땅 위에서 너희들의 삶을 다윗의 전성시대처럼 잘 먹고 잘사는 태평성대로 만들어주려는 게 아니라, 그 시간으로 끌어들이려고 ‘in time’ 타임 안에서 죽기 전에 잘사는 게 아니라, ‘out of time’ 시간 밖에 있는 세상으로 너희를 끌어들이려고 내가 온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십자가에 계신 예수님과 함께 연합해서 죽는다는 얘깁니다.
무엇에 대해 죽습니까?
나의 과거에 대해 죽는다는 얘기이고, 나의 과거로부터 주어지고 있는 지금에 대해 죽는다는 얘기고, 지금부터 이어지는 미래에 대해 죽는다는 얘깁니다.
내 미래에 대해 죽기 때문에 이 지구 위에서 시간의 흐름상에서 내년의 일, 내후년의 일, 10년 뒤의 일에 대해서 내가 비전이나 꿈이나 소원 따위를 가지면서 계획하는 게 아니고 내 마음이 죽는다는 거예요.
내 몸은 미래를 향해 갈 겁니다.
5년 뒤에 더 늙어지고 10년 뒤에 더 늙어지고, 언젠가 하나님이 정한 때가 오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기 전에 나이아가라 폭포의 물이 떨어지는 낙하지점에 도달하기 전에 우리는 이 시간의 흐름에서 빠져나가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내 과거에 대해서 죽고, 과거에서 이어지는 지금과 지금으로부터 이어지는 미래에 대해서 죽어서 이 시간의 흐름 바깥으로 나가야 된다는 얘깁니다.
자, 이제 주님이 지금 계시는 그 세상으로 인격인 내가 몸이 아닌 내가 이 흐름을 빠져나가려고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을 때, 그래서 아버지가 계시고 부활하신 주님이 아버지 우편에 계신 그곳으로 나가려는 마음의 소원과 희망을 갖고 십자가를 붙잡고 시간의 흐름에 대해 죽을 때, 성령께서 임하십니다.
성령께서 임하셔서, 성령의 감동이라는 이 말이 키포인트입니다,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여기서 성령이라는 말은 ‘in the Holy Spirit’ ‘성령 안에서’라는 뜻입니다.
성령 안에서 그 나라를 지금부터 봅니다.
다윗이 그 나라를 보면서 900년 뒤에 예수라는 사람의 몸에 태어날 그리스도를 먼저 보고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성령 안에서 우리가 시간 밖에 있는 세상을 보면서 이 땅을 살아가는 것이에요.
이게 바로 그리스도가 하시는 일이라는 겁니다.
성령 안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인격으로서의 ‘나’, 내 마음이 이 땅 위에서 몸을 쓸어가고 있는 이 시간의 흐름 바깥으로 나가야 된다는 겁니다.
시간이 닿는 곳마다 변화가 일어납니다.
내 살갗에 시간이 닿으면 살갗이 쭈글쭈글해지고 수분이 없어지고 늙어갑니다.
내 인생의 시간이 닿으면 나는 반드시 죽게 됩니다.
나무에 시간이 닿으면 자라고, 계속 시간이 닿으면 고목나무가 됩니다.
한때 푸르렀던 초목들이 시간이 닿으면 사막으로 변화가 됩니다.
시간이 닿으면 모든 게 변화가 됩니다.
이 시간 속에서 ‘인 타임’, 이 시간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화에서처럼 그 시간을 아까워하면서 이 땅 위에서의 시간을 연장시키기 위해서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기도합니다, 죽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오래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무병장수의 복을 받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오신 이유는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이 시간의 흐름이 끝나기 전에 빨리 시간의 흐름 바깥에 있는 세상으로 나가라는 얘기를 하시고 우리를 그렇게 이끄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얘기에요.
여러분, 왜 시간에 매여서 삽니까?
몸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몸이 아닌데 몸 중독에 걸려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몸 중독에 걸려있는 한, 하이데커의 말대로 몸은 시간과 함께 존재합니다.
시간이 없으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몸에 묶여있기 때문에 시간에 묶여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다윗 이야기를 하시면서 다윗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그리스도가 다윗이 태어난 후 900년 뒤에 이 땅에 오십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시간 바깥의 세계가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로서 있고, 그 세계로 이 시간 속에 묶여서 몸 중독에 걸려서 시간이 끝나면 끝나는 줄 알고 사는 사람들을 시간 밖의 세계로 이끌어 가시려고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음을 말씀해주고 계시고, 이제 며칠 뒤에 있을 십자가 사건이 이 시간의 흐름, 몸 중독에 빠져 시간과 더불어 살고 있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십자가를 통해 시간 바깥으로 이끌어나가시려고 십자가를 향하여 이제 가고 계시는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가 시간 바깥으로 나갈 때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 몸이 남아있는 이 시간 속으로 들어옵니다, 교환프로그램에 의해서.
우리는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의해서 기뻐질 수가 없고, 행복해질 수가 없고,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서 성공이라고 할 것이 없습니다.
그건 오직 이제 시간 바깥으로 나간 빈자리에 하나님이 오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실 뿐이지, 거기엔 성공도 실패도 없습니다.
이 시간 속에서 미국대통령이 되어서 살아도 성공이 아닙니다.
시간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는 한, 그는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재벌이 되어도, 성공이 아닙니다.
시간 속에는 성공이 없습니다.
시간 속에는 성취가 없습니다.
시간 속에는 행복이 없습니다, 행복은 시간 밖에 있고, 우리의 성공도 성취도 자랑도 시간 밖에 있습니다.
시간 바깥으로 나가야 됩니다.
시간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과 창조적인 의도를 펼쳐나가시는 장소이지, 우리가 성공하는 장소도 우리가 행복하고 기뻐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시간 속에 마음이 머물러 있는 것, 이게 바로 마귀가 원하는 것이고 마귀가 계략을 세워서 우리를 묶어두는 것이죠.
‘out of time’ 시간 밖으로 십자가를 통하여 나가서 시간 밖의 세상을, 다윗이 성령 안에서 그 세상을 보고 예수그리스도가 태어나기 900년 전에 예수그리스도를 향하여 주님이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이제 우리는 성령 안에서 오셨다가 하늘에 올라가신 그 주님을 향하여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시간 안에서는 우리의 성공도 행복도 기쁨도 만족도 없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관문을 통하여 시간 바깥에 있는 아버지의 나라로 들어가서 우리 마음이 성령 안에서 아버지를 뵈옵고 그곳에서 행복하게 하시며, 시간을 따라 흘러가는 우리의 몸 안에서 하나님의 뜻만이 이루어지는 역사가 있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