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생활말씀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마태 15, 28)
예수님께서 이방인들의 땅인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제자들과 드디어 휴식을 좀 취하시려는 듯 합니다.
어쩌면 고독과 침묵, 기도와 쉴 곳을 찾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여인이 부르짖는 소리가 들립니다.
복음서의 다른 여러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이 여인의 이름이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
제자들은 이 여인을 귀찮고 성가시게 여겨,
예수님께 “저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하면서,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여인을 돌려보내시라고 ‘간청’합니다.
하지만 (가나안 출신의) 이 여인은 자신이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아울러 자신이 여성이라는 점이나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말씀하시는 것에도 개의치 않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려’ 고생하고 있어서
그 치유를 절실히 바라는 어머니이기에, 예수님께 다가가 직접 뵙고자 하고
그분 앞에 ‘엎드려 절하며’ 끈질기게 도움을 청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시며
전례 없이 냉정하게 말씀하십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이 여인은 예수님께서 거절하시는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자신들 지역이 예수님께서 우선시하시는 선교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도 이해하고자 합니다.
여인은 하느님께서 은총을 기계적으로 분배하시는 분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관계를 이루기 원하는 아버지이심을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의 보잘것없음을 스스로 인정할 때 비로소 그런 관계에 이르게 되리라고 짐작합니다.
여인은 이를 깨닫고 예수님의 눈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이로써 이 여인은 마치 상대편을 벽쪽으로 바짝 밀어붙여 꼼짝 못하게 하듯이,
예수님께서 자신의 부탁을 받아들이시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즉 부스러기조차 기꺼이 받아먹겠다는 사람이 지닌 겸손함으로 예수님을 감동시킵니다.
심지어 이 여인이 지르는 소리까지도 믿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복음서에서는 다음과 같은 몇몇 동사들을 통해, 마치 조각彫刻을 하듯 그 여인의 크나큰 믿음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즉 그 여인은 밖으로 ‘나와’ 예수님께로 ‘옵니다.’ 그리고 ‘소리 지르고’ ‘웁니다.’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그분 앞에 ‘엎드려 절합니다.’ 불가능한 것도 주님께는 가능하다고 믿는 확 신과 끈기를 고스란히 ‘유지합니다.’ 예수님의 냉정한 말씀에 그 여 인은 흠 없는 논리로 ‘응답합니다.’ 모성애와 신뢰가 그 여인의 강점 입니다. 그리하여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인의 딸이 나았습니다.” 이 말씀은 한 사람 안에 깃들어 있는 생생한 믿음, 살아 움직이면 서 그 효력을 발휘하는 믿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사진과도 같습니다. 동시에 이 말씀은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당시 히브리 문화권이 아닌 곳에 문호를 개방하는 과정에서 고민한 점과 이를 통 해 앞으로 나아간 여정을 비춰 보이기도 합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러한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이 복음서를 썼던 것입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이 가나안 여인1의 경우처럼,
“갑작스러운 난관 앞에서, 혹은 우리의 계획을 뒤엎는 예기치 못한 사건이나 중병,
무한정 연장되는 듯한 매우 고통스러운 상황 등으로 우리의 믿음 역시 위기에 처할 수 있습니다.”2
평화가 없는 세상, 구조적 불의, 심각하게 병든 지구,가 정적,
사회적 갈등도 우리의 믿음을 흔드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약점 중 하나는 끈기와 굳은 믿음이 부족하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이 어려운 상황에,
때로는 황당하고 어이없는 상황에 부딪히는 것을 허락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정화하고자 하십니다.
우리가 진정 그분께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길 줄 아는지,
그분의 사랑이 우리의 계획이나 열망,
우리의 기대보다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우리가 참으로 믿는지 보고자 하십니다.”3
살리바Saliba에게 실제로 이러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살리바 역시 (시리아의) 자신의 도시 홈스Homs와 연로하신 부모님을 떠나야만 하는 상황인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유리 가게는 전쟁으로 참혹하게 찢긴 이 도시와 마찬가지로 파괴되었습니다.
살리바는 다른 젊은이들처럼, 다른 곳에서 새 기회를 찾아야 할지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이에 굴복하지는 않았습니다.
22세의 나이에 그는 상처 입은 자기 민족을 위해 무언가 보람된 일을 반드시 하겠다는 의지로
‘리스타트RestarT 프로젝트’4를 통해 그에게 주어진 기회를 붙잡았습니다.
그는 작은 식료품점을 열었는데, 이 도시의 시민들은
그의 어머니가 손수 만든 치즈와 요구르트, 버터, 그리고 콩류와 기름, 향신료, 커피 등을
거기서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식료품점에는 이미 냉장고 한 대와 소형 발전기 한 대가 도달했습니다.
살리바는 가게 문을 닫고 쉬는 날에는 고령이신 아버지와 함께,
가난한 가정들에 음식 바구니를 전달하곤 합니다.5
빅토리아 고메스|포콜라레운동 총본부 「생활말씀」 편집 위원
각주>
- 마르코 복음 7장 24절-30절에는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이라고 나온다. -옮긴이
- 끼아라 루빅, 1994년 6월 생활말씀, in eadem, 『생활말씀Parole di Vita』, 파비오 차르디 엮음. (끼아라 루빅의 저작들 제5권, 치타누오바 출판사, 로마, 2017년), 550쪽 참조.
- Ibid. (같은 책, 같은 쪽 참조)
- 2011년 3월 15일 시리아 사태 이후, 이어진 전쟁으로 시리아 국민의 90%가 빈곤 상태로 살 아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RestarT project (Restart to Stay: 머물기 위한 재출발 프로 젝트)는 제조 및 판매 활동 분야의 경험이 있으면서도 고용 상태에 있지 않은 이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사업 프로젝트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도움을 주려는 포콜라레운동의 국제 구호 활동 NGO인 AMU의 프로젝트 중 하나이다. 이로써 이들이 시리아를 떠나지 않고서도, 자신들의 경 제적 현실을 개선하고 시리아의 전후 복구 및 재건 과정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수혜 자들은 돈 대신 기계 시설이나 장비, 사업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물품 등을 받는다. 이들은 자신 들이 받은 물품이나 장비 등의 가치의 50%에 해당하는 금액을 나중에 화폐 형태로 상환하여 또 다른 프로젝트를 위한 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 관련 웹사이트: https://www.amu-it.eu/ progetti-int/syria-restart/?lang=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