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5. 衛風
Ⅰ-5-① 淇奧三章(기욱3장)
(1장)瞻彼淇奧한대 綠竹猗猗로다 有匪君子여 如切如磋하며 如琢如磨로다 瑟兮僴兮며 赫兮咺兮니 有匪君子여 終不可諼兮로다
(첨피기욱한대 녹죽의의로다 유비군자여 여절여차하며 여탁여마로다 슬혜한혜며 혁혜훤혜니 유비군자여 종불가훤혜로다 興也라)
저 기수 언덕을 보건대 녹죽이 야들야들하도다. 문채 나는 군자여, 끊어놓은 듯 닦아놓은 듯하며 쪼아놓은 듯 갈아놓은 듯하도다. 엄밀하고 굳세며 빛나고 나타나니, 문채 나는 군자여, 마침내 가히 잊지 못하리로다.
猗於何反 咺 점잖을 훤, 굳셀 훤, 섧게 울 훤 諼 속일 훤, 잊을 훤
[참고1] 毛詩傳에서 綠竹은 小雅 采綠편의 綠과 같은 것으로 모두 王芻(왕추)라 했는데, 『爾雅』의 해설을 따른 것이다. 孫炎(손염)의 注에서는 왕추를 綠蓐草(녹욕초)라 했고 鴟脚莎(치각사)라고 했다. 李時珍의 『本草剛目』을 보면, 藎草(신초)에 대해 “이 풀은 녹색인데 황색 물을 들일 수 있으므로 黃草라고도 하고 綠竹이라고도 한다. 옛날에는 貢物 가운데 하나인 貢草로 들여 누런 금색 물을 들이는 염료로 썼으므로 염색하는 사람들을 ‘王芻’라 하고, 충성스러운 신하를 ‘藎臣’이라고도 한다.”고 했다.
[참고2] 위 제1장의 내용은 『대학』(아래 주석)과 『논어』 학이편 제13장에서 다음과 같이 인용해 쓰고 있다.
“子貢이 曰貧而無諂하며 富而無驕호대 何如하니잇고 子曰可也나 未若貧而樂하며 富而好禮者也니라 子貢이 曰詩云如切如磋하며 如琢如磨라하니 其斯之謂與인저 子曰賜也는 始可與言詩已矣로다 告諸往而知來者온여”(자공이 가로대, “가난하면서 아첨하지 아니하며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아니하면 어떠합니까?” 공자 가라사대, “괜찮으나 가난하면서 즐거우며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 같지 못하니라.” 자공이 가로대, “시에 이르기를 깎아 놓은 듯하고 닦아 놓은 듯하며 쪼아놓은 듯하고 갈아놓은 듯하다 하니 그 이를 이름이군요.” 공자 가라사대, “사는 비로소 가히 더불어 시를 말할 만하도다. 저 간 것을 알려주었더니 오는 것을 아는구나.”)
○興也라 淇는 水名이라 奧은 隈也라 綠은 色也라 淇上多竹하여 漢世猶然하니 所謂淇園之竹이 是也라 猗猗는 始生柔弱而美盛也라 匪는 斐로 通이니 文章著見之貌也라 君子는 指武公也라 治骨角者는 旣切以刀斧하고 而復磋以鑢鐋하며 治玉石者는 旣琢以槌鑿하고 而復磨以沙石이니 言其德之修飭이 有進而無已也라 瑟은 矜莊貌요 僴은 威嚴貌요 咺은 宣著貌라 諼은 忘也라 ○衛人이 美武公之德하여 而以綠竹始生之美盛으로 興其學問自修之進益也라 大學傳曰如切如磋者는 道學也요 如琢如磨者는 自修也요 瑟兮僩兮者는 恂慄也요 赫兮咺兮者는 威儀也요 有斐君子終不可諼兮者는 道盛德至善을 民之不能忘也라하니라
○흥이라. 기는 물 이름이라. 욱은 언덕이라. 녹은 빛이라. 기수 위에는 대나무가 많아서 한나라 세대에도 그와 같았으니 이른바 기원의 대나무가 이것이라. 의의는 처음 나옴에 유약하면서도 아름답게 성함이라. 비는 ‘문채 비’로 통하니 문장이 나타나 보이는 모양이라. 군자는 무공을 가리킴이라. 골각을 다듬는 자는 이미 칼과 도끼로 끊고 다시 대패와 변탕으로 문지르며, 옥과 돌을 다듬는 자는 이미 망치와 끌로 쪼고 다시 모래와 돌로 가니, 그 덕의 닦고 가다듬는 것이 나아감은 있으되 그침이 없음을 말함이라. 슬은 씩씩한 모양이고, 한은 위엄스런 모양이고, 훤(咺)은 훤히 나타나는 모양이라. 훤(諼)은 잊음이라. ○위나라 사람이 무공의 덕을 아름다이 여겨 푸른 대나무가 처음 나서 아름답고 성함으로써 그 학문을 함에 스스로 닦아서 점진적으로 더해짐을 흥기함이라. 『대학전』에 가로대 “‘여절여차’는 학문함을 이름이고, ‘여탁여마’는 스스로 닦음이고, ‘슬혜한혜’는 준율함(두려워하고 두려워함)이고, ‘혁혜훤혜’는 위엄 있는 거동이고, ‘유비군자종불가훤혜’는 성한 덕과 지극히 선함을 백성이 능히 잊지 못함을 말함이라.
隈 언덕 외, 굽이 외 鑢 대패 려 鐋 변탕(대패질할 때 깎아낼 두께를 대중하려 한 편 가를 깎는 연장) 탕 鎚 망치 추 鑿 끌 착
(2장)瞻彼淇奧한대 綠竹靑靑이로다 有匪君子여 充耳琇瑩이며 會弁如星이로다 瑟兮僴兮며 赫兮咺兮니 有匪君子여 終不可諼兮로다
(첨피기욱한대 녹죽청청이로다 유비군자여 충이수영이며 회변여성이로다 슬혜한혜며 혁혜훤혜니 유비군자여 종불가훤혜로다 興也라)
弁
저 기수 언덕을 보건대 녹죽이 푸르고 푸르도다. 문채 나는 군자여, 귀막이가 옥돌이며 고깔에 붙인 것이 별 같도다. 엄밀하고 굳세며 빛나고 나타나니, 문채 나는 군자여, 끝내 가히 잊지 못하리로다.
琇 옥돌 수 瑩 옥돌 영, 빛날 영
○興也라 靑靑은 堅剛茂盛之貌라 充耳는 瑱也라 琇瑩은 美石也라 天子는 玉瑱이오 諸侯는 以石이라 會는 縫也라 弁은 皮弁也니 以玉飾皮弁之縫中이니 如星之明也라 ○以竹之堅剛茂盛으로 興其服飾之尊嚴而見其德之稱也라
○흥이라. 청청은 단단하고 굳세며 무성한 모양이라. 충이는 귀막이라. 수영은 아름다운 돌이라. 천자는 옥 귀막이이고 제후는 돌로 함이라. 회는 꿰맴이라. 변은 가죽 고깔이니, 옥으로 가죽고깔에 꾸며서 가운데에 꿰매니 별이 반짝이는 것과 같으니라. ○대나무가 견강 무성함으로 그 복식의 존엄함을 흥기하여 그 덕을 일컬음을 보이니라.
(3장)瞻彼淇奧한대 綠竹如簀이로다 有匪君子여 如金如錫이며 如圭如璧이로다 寬兮綽兮하니 猗重較兮로다 善戱謔兮하니 不爲虐兮로다
(첨피기욱한대 녹죽여책이로다 유비군자여 여금여석이며 여규여벽이로다 관혜작혜하니 의중각혜로다 선희학혜하니 불위학혜로다 興也라)
圭
저 기수 언덕을 보건대 녹죽이 자리 같도다. 문채 나는 군자여, 쇠 같기도 하고 쇠줄 같기도 하며 규 같기도 하며 벽 같기도 하도다. 너그러우며 넉넉하니, 아아 중각이로다. 희롱도 잘하고 농담도 잘하니 포학한 짓은 아니 하도다.
簀 자리 책 較 비교할 교, ‘차체 각’ 수레 앞턱 가로나무(軾) 양 끝과 수레 상자 좌우 양 옆의 위로 덧댄 나무로 편안하게 기대 설 수 있도록 만든 나무를 말함. 부록의 ‘乘車名稱圖’ 참조.
璧
○興也라 簀은 棧也니 竹之密比似之則盛之至也라 金錫은 言其鍛鍊之精純이오 圭璧은 言其生質之溫潤이라 寬은 宏裕也요 綽은 開大也요 猗는 歎辭也라 重較은 卿士之車也라 較은 兩輢上出軾者니 謂車兩傍也라 善戱謔不爲虐者는 言其樂易而有節也라 ○以竹之至盛으로 興其德之成就하고 而又言其寬廣而自如하여 和易而中節也라 蓋寬綽無歛束之意라 戱謔은 非莊厲之時니 皆常情所忽而易致過差之地也라 然이나 猶可觀而必有節焉하니 則其動容周旋之間에 無適而非禮를 亦可見矣로다 禮曰張而不弛는 文武不能也요 弛而不張은 文武不爲也라 一張一弛는 文武之道也라하니 此之謂也라 (淇奧三章이라)
○흥이라. 책은 엮음이라. 대나무의 주밀함이 이와 같다면 성함의 지극함이라. 금과 석은 단련함이 정순함을 말함이고, 규벽은 그 타고난 바탕이 온윤함을 말함이라. 관은 크고 넉넉함이오, 작은 열리고 큼이오, 의는 탄사라. 중각은 경사의 수레라. 각은 수레 양쪽에 있는 기대는 나무의 위쪽에 나온 앞턱 가로나무이니 수레의 양 옆을 이름이라(부록 ‘乘車名稱圖’ 참조). 희롱과 농담을 잘하고, 포악한 짓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즐겁고 안이하면서도 절도가 있음을 말함이라. ○대나무의 지극히 무성함으로써 그 덕의 성취함을 흥기시키고, 또 그 너그럽고 넓고 자연스러워 화하고 안이하면서도 절도에 맞는 것을 말함이라. 대개 너그럽고 넉넉함은 숨기고 잡아매는 뜻이 없음이라. 희롱함은 엄숙한 때가 아니니 다 보통의 인정으로 경솔한 것이고 쉽게 허물을 이루는 처지라.
그러나 오히려 가히 볼 만하고 반드시 절도가 있으니 그 동용주선의 사이에 어디를 가든지 예가 아님이 없음을 또한 가히 볼 수 있도다. 『예기』(雜記下편)에 “조이기만 하고 풀지 아니함은 문왕과 무왕도 능치 못한 바요, 풀어놓기만 하고 조이지 않음은 문왕과 무왕도 하지 않음이라. 한번 조이고 한번 늦춤은 문왕과 무왕의 도라.” 하니 이것을 이름이라. (기욱3장이라)
棧 엮을 잔 輢 수레 양옆에 대는 나무 의 軾 수레 앞턱 가로나무 식
淇奧三章에 章은 九句라
按國語컨대 武公이 年九十有五에 猶箴儆于國曰自卿以下로 至于師長士히 苟在朝者는 無謂我老耄而舍我하여 必恪恭於朝하여 以交戒我라하고 遂作懿戒之詩하여 以自警하니 而賓之初筵도 亦武公悔過之作이니 則其有文章而能聽規諫하여 以禮自防也를 可知矣로다 衛之他君은 蓋無足以及此者라 故로 序以此詩爲美武公이라하니 而今從之也라
『국어』(춘추시대의 여덟 나라인 周 魯 齊 晉 鄭 楚 吳 越의 역사서)를 상고하건대, 무공이 나이가 아흔다섯에 오히려 나라에 경계를 하면서 “경으로부터 아래로 사 장 사에 이르기까지 진실로 조정에 있는 자는 나를 구십 늙은이라고 이르면서 나를 버리지 말고, 반드시 조정에서 정성스럽고 공경스럽게 하여 나를 사귀어 경계하게 하라.” 하고 마침내 아름다운 경계의 시를 지어서 스스로 일깨우니 ‘빈지초연’도 또한 무공이 허물을 뉘우치고 지은 것이니 그 문장이 있으면서 능히 법도 있게 간함을 들어 예로써 스스로 방어함을 가히 볼 수 있도다. 위나라의 다른 인군은 대개 족히 이에 미치지 못하니라. 그러므로 毛詩序에서 ‘이 시는 무공이 아름다이 여겼다.’고 했으니 이제 그 말을 따르노라.
[위풍 제1편 기욱3장(淇奧三章) 경문 다시 읽기]
(1장)瞻彼淇奧한대 綠竹猗猗로다 有匪君子여 如切如磋하며 如琢如磨로다
瑟兮僴兮며 赫兮咺兮니 有匪君子여 終不可諼兮로다 興也라
(2장)瞻彼淇奧한대 綠竹靑靑이로다 有匪君子여 充耳琇瑩이며 會弁如星이로다
瑟兮僴兮며 赫兮咺兮니 有匪君子여 終不可諼兮로다 興也라
(3장)瞻彼淇奧한대 綠竹如簀이로다 有匪君子여 如金如錫이며 如圭如璧이로다
寬兮綽兮하니 猗重較兮로다 善戱謔兮하니 不爲虐兮로다 興也라
淇奧三章이라
출처 : 『詩經講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