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작가회 이종완 원고
-나무 관련 원고
숲속 나무 학교에서
꿈꾸는 나무 학교 이야기들이
숲속 가득 즐거운 노래로 울려 퍼지면
때로는 구름을 타고 오시고
바람의 숨결로 다가 오시고
목마른 곳곳에는 빗방울로 흘러내리고
단풍옷 벗은 골골에는 하얀 눈으로 오시는
자연의 위대한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비밀처럼 제 안에 숨어 있는
낮은 종소리가 울려퍼지면
햇살을 타고 반짝거리는
환한 웃음조각들
계절의 변화를 따라가는 기다림의 향기는
나무의 나직한 기도 소리를 타고 흐릅니다
시 6편
꿈꾸는 손
-원강희 님에게
단 한 번도 꿈의 길을 잃지 않고
뒤돌아보지 않고 달려온 행복의 길
어리석음의 시간은 아니었다
철썩거리며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파도가 미련하다고 하겠는가
다만 새로움에 눈을 뜨는 시간이
날마다 새로움 설렘이었으니
꿈은 늘 꿈속 늘 꿈속에서도
꿈을 그리워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늘 빈손이면 그 또한 어떤가
잡히면 다시 놓아주는 낚시 꾼이 아니라
처음부터 바늘 없는 낚시를 드리운 강태공처럼
구수한 삶을 꿈꾸지 않았어도
어느새 가마솥에 눌어붙은 누룽지 마냥
사람들에게 구수하게 읽혀지면 좋겠다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는 반죽을 만지며
새로운 구수함으로 다가서고자 한다
늘 싱싱하게 팔딱 뛰는 사천 포구의 활어가 되어
사랑이 사랑을 잊는다
잊으려는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다
이미 잊은지를 모르는 채
사라져버린 기억들
슬픈 기억뿐 아니라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기억까지
모두 소멸하는 블랙홀
무엇을 믿지 못한다
내가 왜 지금 이길을 걷고 있는지
어디로 어디까지 가야할지도 모른다
사람에 기대어 살아가지만
한번 흩어진 기억은 돌아오지 못한다
앞으로의 기억들 조차도
기록만이 나아갈 길이다
다시 잊는다고 해도
기록을 품고 살아가야 한다
날마다 새로운 환경에서 눈을 뜨고
날마다 새로운 사람들과 마주치며 살아도
그들을 믿고 살려면 기록밖에는 없다
전쟁보다 더 치열한 구조다
이젠 모두들 알지만 나만 모르는 내 상태
치매의 늪은 깊기만 하다
골목길 단상
그리움이란 문장 하나가
텅 빈 나의 여백을 가득 채우고 있다
내 인생이 나열된 뒷골목 속에서는
이리저리로 굽어진 허름한 표정의 집들
어수선하게 하늘을 가리는 전선들과
벗어나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린 촉 낮은 전구들
밀물같은 어둠 속에서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즐거웠다
한없이 밀리고 밀리며 닿은 곳
찬바람이 쓸고 가는 쾡한 골목의 점방에서는
따끈따끈하게 덥혀지는 찐빵과
오래된 연탄난로 위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보리차 주전자
어스름한 풍경을 지우려는지
솔솔솔 날리는 하얀 눈발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모두 꽃 걸음 되도록 함박눈이 내린다
지나가던 바람 멈춰서고
깜박이며 졸고 있던 가로등 불빛도
어느새 함박눈 속으로 덮여가고 있다
다시 봄을 맞는 외로움
꽃잎 우표를 붙인
선물같은 봄편지가 도착하였다
긴 겨울 밤을 세우며
날 위해 써내렸을
저 향기로운 꽃잎 만큼의 사연들
잘 어울리던 시간도 있었고
이젠 어찌어찌해도 어울리기 힘들지
내 표정에서 인정하기 싫지만
어쩔수 없이 흘러버린 날들
남들의 눈에서는 이미
오래전 인정된 낡아버린 나의 봄
어떤 이유가 있나요?
그냥 흘러가 버려서 쓸쓸할 뿐입니다
우리 언젠가는
언제쯤이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눈부신 따스함이 아직 남아 있는데
긴 겨울을 이겨낸 꽃들이 피어나
그대의 향기처럼 내게 다가오는데
아직은 그대와 함께 걷던 거리도
전혀 낮설지 않고 익숙하기만 한데
우리에게 열린 인연의 창을 닫지 못해
편안함이 너무 달콤하게 다가왔을까
그대의 빈자리는 너무나 큰 공백
아무리 지친 날이어도 그댈 떠올리면
감미로운 웃음이 퍼져가곤 했는데
난 아직 상처받지 않았어 아프지 않아
그댄 아직 내 곁에 있으니까 멀지 않아
눈물 따위는 내 앞을 가리지도 못하지
사랑이란 영원히 유통기한이 없으니까
유통기한이란 변하기 때문이야
우리들의 사랑은 언제나 내 기억속에 있어
변하지 않는 내 자그마한 세상에
어디로 찾아 나서지 않아 그대를
지금 그댈 떠올리는 시간이 달콤해
언젠가 우리는 또 만나서 웃고 있겠지
길을 찾아서
기다림은 늘 나의 몫이었어
하지만 그냥 목만 빼고 기다리진 않ㅇ르래
너에게로 가는 길을 이젠 내가 찾아 나서야지
아무리 멀어도 갈거야 아무리 힘들어도 난 갈거야
누군가 길을 다 지울 수는 있겠지만
내 마음이 그 길을 꼭 찾아내고 말거야
내 마음 속에서는 다른 길은 보이지 않아
그대는 어느 하늘 아래서 날 생각할까
너의 향기와 그 눈빛 그리고 얇은 웃음까지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나는 다 기억하고 있어
추억 속의 그대가 아닌 눈앞의 그대를 만나러
이미 누군가가 다 지워버린 길을 다시 찾아갈거야
이종완 약력
o월간 『스토리문학』(2005년) 동시 부문, 『한맥문학』(2005년) 시조 부문, 『한국문인』 시 부문(2009년) 등단
o『아동문학세상』 (2017년) 동시 부문 등단
o시집 『어느 봄날』, 동시집 『나무 일기』, 『엄마꽃』
발간사
다시 새로운 꿈을 꾸는 강릉 작가
작가는 왜 작가이어야만 하는가
늘 새로운 꿈을 꾸지 않으면
왜 작가들은 낡아만 가는가.
비둔한 하루를 훌쩍 떠나보내고
낡아버린 창을 활짝 열어둔다
새로움 공기가 활력을 불어 넣을 때 까지
안목항 포구에서 저 멀리 바다를 바라다 본다
수평선이 그어진 저 너머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
그리고 아직도 줄 하나를 제대로 긋지 못한 나를 본다
그리움이야 이제와서 더 어찌할거나
보내지도 못하고 붙잡지도 못하는걸
그저 운명의 장난이거니 하면서 끌고 간다
낮은 꽃 한송이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나도 낮은 자세를 하고 눈높이를 맞춘다
세상을 대하는 작가들의 자세도 이러하리라
숙명처럼 이어지는 작가의 길에 서서
아득하기만 한 지나온 길을 보면
또 다시 걸어가야 할 숙명이 나를 맞이한다
세상을 나의 문법으로 읽으면서
세상을 모두 잊어버리는 작업을 한다
보이는 것이 모두가 아님을 알기에
틈을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 때가 반드시 있다
그 틈새를 메울 아주 귀한 단어 하나
그 방점을 찍고 나서야 기쁨을 느끼는 존재들
들린다고 무두 듣지 않고 흘려버린다
보인다고 보지 않고 잠시 눈 감는다
말하고 싶어도 입 다물고 듣기만 한다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이 다 부질없다
직위가 무엇이건 가진 것이 있건 없건
그저 작가는 글로써 말을 대신할 뿐
또 하나의 생각을 틀 속에 가두어본다
강릉작가들의 눈부신 잠적 속에서 피어난 글꽃들이
제5집의 작업을 맞아 틀을 깨고 나오길 바란다
끝으로 강릉작가 제5집 발간에 애쓰신 김경미 편집주간님, 그리고 강릉문화예술 활성화 사업에 지원해 주신 강릉문화재단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24년 12월 24일
강릉작가회 회장 김 학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