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애지 가을호를 펴내면서
아버지 김종겸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 홀딱 벗고 뛰어놀던 다섯 살의 어느 칠월 아버지는 하늘나라로 올라가셨다 아버지가 내 입에 사탕을 물려준 건 초등학교 여름방학 “맴맴맴맴 매미 소리가 즐겁게 퍼질 때 성경학교 기다리는 곳” 그곳에서 아버지를 처음 불러봤다 사탕을 주시는 아버지가 거기 계셨다 --김종겸 시집 {도레미파솔라시도}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이자 증오의 관계라고 할 수가 있다. 아버지가 없는 아들은 존재할 수가 없지만, 그러나 아버지의 말과 뜻에 따르는 아들은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 종의 건강과 종의 행복이 근본 목표이기 때문에, 아들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의 말과 뜻을 거스르고 자기 자신의 지상낙원을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게 된다. 아버지의 양육과 교육, 아버지의 보호와 유산은 너무나도 고맙고 감사한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무조건적인 충성과 복종을 강요하는 힘으로 작용하게 된다. 아들이 아들이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말과 뜻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자기 자신의 삶의 철학을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수용과 단절, 계승과 창조의 역사 철학의 문제이자 권력 관계이며, 아들은 ‘아버지 살해의 패륜아’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최초의 아버지는 모든 가치를 전복시킨 패륜아이며, ‘아버지 하나님’은 이 패륜아가 그 가면을 바꿔 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들이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가 이 세상에 없을 때, 아들은 그때서야 아버지의 말과 뜻과 그 은혜를 깨닫게 되고, 그 고마움과 감사함을 표시하게 된다. 모든 종교와 예배와 제사는 모든 불효자들의 ‘사후 복종의 형식’에 지나지 않으며, 이 ‘사후 복종의 형식’에 의하여 우리 인간들의 역사와 전통은 그 발걸음을 멈추지 않게 된다. 유태인으로 태어났지만, 가장 대표적인 반유태주의자였던 프로이트의 말에 따르면, 전지전능한 신이란 우리들의 아버지가 성화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김종겸 시인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불러본 적이 없”었는데, 왜냐하면 그가 “다섯 살” 때 그의 아버지는 하늘나라로 승천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은총과 고마움을 잘 깨닫지 못하지만, 아버지가 없는 아들의 고통은 이루 형언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언제, 어느 때나 하루살이와도 같은 최저 밑바닥 생활을 해야 하고, 문전박대의 멸시와 천대 속에서 정상적인 학교 생활은 물론, 장래의 꿈과 희망을 다 몰수당해야만 한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는 말은 애비 없는 후레자식의 한 맺힌 말이며, 언제, 어느 때나 든든한 보호자와 교육자인 아버지가 없는 자의 너무나도 처절한 절규라고 할 수가 있다. 애비 없는 후레자식은 최하 천민의 낙인이며, 영원히 상류 사회에서 도태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느닷없이 천둥 번개가 치고 아버지와 문전옥답이 다 떠내려가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문전걸식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 그의 운명이었던 것이다. 모든 인간은 아버지의 자식이며, 아버지의 보호와 가르침이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지만, 그러나 아버지를 상징적으로 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요컨대 우리는 모두가 다같이 아버지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이며, 아버지가 없으면 예수와 부처, 또는 그밖의 다른 스승과 신들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운명론은 결정론이며, 어느 누구도 이 운명론에서 벗어날 수가 없지만, 김종겸 시인은 “초등학교 여름방학” 때 그의 입에 사탕을 물려준 “아버지”를 만났던 것이다. [아버지], [아버지], 그토록 보고 싶고 불러보고 싶었던 [아버지]---. 그 아버지를 여름 성경학교에서 만나고 물에 빠진 자가 지푸라기를 잡듯이 그 아버지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인종, 문화, 기후, 풍토가 다르면 한솥밥을 먹기가 힘들지만, 학용품과 과자와 사탕과 함께 이민족의 신인 예수를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유태인의 하나님이고, 예수는 유태인의 자식이었다. 한국의 기독교는 아버지(단군)를 잃은 망국의 한과 함께, 그 서러움이 각인되어 있는 종교이며, 우리 한국인들의 가짜 구원의 종교가 되었던 것이다. 세속의 영역은 일과 생활의 영역이고, 종교의 영역은 신성의 영역이자 존경과 찬양의 영역이다. 이 세상의 삶이 어렵고 힘들 때마다 아버지 신을 창조해놓고, 그 아버지에게 끊임없이 존경과 찬양을 바치며 수많은 난관들을 극복해왔던 것이다. 모든 신들과 종교는 아버지의 대용품이며, 우리 인간들은 아버지가 없으면 이 어렵고 힘든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기획특집: 논쟁문화의 장’은 101번 째로 이인철 시인의 [초월 ai- 1] 외 4편과 반경환 작품론 [AI 인류의 삶의 철학-이인철의 시 세계], 이서빈, 이진진, 장진, 정구민, 글나라, 고윤옥, 우재호, 글로별, 이옥, 글가람 등, ‘남과 다른 시 쓰기 동인’의 시들을 내보낸다. 어느덧 인간의 시대에서 인공지능의 시대로 변모했고, 그 선두에 선 이인철 시인의 신작시 5편과 어느 동인들보다도 역사 철학전인 지식으로 무장을 하고 지구촌 환경의 위기를 고발하고 있는 ‘남다시 동인들’의 환경시는 더욱더 소중하고 유익하다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번 호의 ‘애지의 초대석’에는 유지현 시인과 이돈형 시인을 초대했다. 유지현 시인의 시 [용문사에서] 외 4편과 황치복의 작품론 [‘붉은 물’과 구겨짐의 시학], 이돈형 시인의 [쳇기] 외 4편과 임준현의 [시를 발견하는 또하나의 태도-유머와 위트의 시학]을 다 함께 읽고 감상해주기를 바란다. ‘애지의 초점: 이 시인을 조명한다’에서는 이영선 시인의 [감단 근로직]과 김보나의 작품론 [모과의 맛-이영선의 시세계], 홍정미의 신작시 [내몽골 초원에서] 외 4편과 오홍진의 작품론 [시간의 내력, 어둠의 깊이-홍정미의 시 세계]를 내보낸다. 본지는 이번 호에도 [秋] 외 4편을 응모해온 전은겸 씨와 [화엄매] 외 4편을 응모해온 김양미 씨를 애지신인문학상 당선자로 내보낸다. 아무튼 계간시전문지 {애지}와 편집진은 너무나도 분명하고 확고한 걸음으로 ‘애지의 창간 이념과 목표’에 따라 최선의 노력을 다하게 될 것이다. 비판만이 위대하고, 또 위대하다. 비판은 당신의 존재증명이다. 당신은 누구를, 무엇을 비판할 수 있는가?
애지 가을호 표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