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과학적 단일안 제시하면 증원 규모 유연하게 논의할 수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5월 22일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정부는 의료계에 의대정원 증원과 관련한 ‘과학적 단일안’을 마련해달라고 재차 요구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5월 22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2026학년도 이후에는 의료계가 과학적인 단일안을 제시한다면 증원 규모를 유연성 있게 논의할 수 있다고 수차례 밝힌 바 있다”며 “정부는 언제든 어떤 형식이든지 대화에 임할 자세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한 총리는 “정부는 오랜 기간 의견 수렴을 거쳐 의대 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을 준비했다”며 “의료개혁은 국민과 환자를 위한 개혁이자 의료인 자신을 위한 개혁”이라고 말했다.
그간 정부는 여러 차례 의학교육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마다하지 않고 국립의대와 지역의대에 대한 시설 투자를 대폭 확대할 것이라는 방침을 밝혀왔다. 박민수 중대본 제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2차관)은 5월 20일 중대본 브리핑에서 “교수요원과 시설, 기자재 등 연차별 투자 로드맵이 담긴 ‘의대교육 선진화 방안’을 조속한 시일 내에 확정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의료계에 소모적인 갈등과 대정부 투쟁을 마치고 보건의료의 미래에 대한 건설적인 대화와 논의에 동참하기를 거듭 촉구하고 있다. 한 총리는 5월 16일 대국민 담화에서 “전면 백지화의 입장을 떠나서 미래 선진의료체제 구축을 위한 논의의 장인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료개혁특위)에 참여해달라”며 “전공의들도 사법부의 판단과 국민의 뜻에 따라 집단행동을 멈추고 병원으로 복귀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미 의료개혁특위는 본격적으로 가동되고 있다. 의료개혁특위는 산하에 의료사고안전망전문위원회, 전달체계·지역의료전문위원회, 필수의료·공정보상전문위원회, 의료인력전문위원회 등 4개의 전문위원회를 구성했는데 모두 구체적인 의료개혁 방안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 중 하나인 ‘전공의 연속근무 단축 시범사업’은 참여 병원의 신청을 마쳤다. 박 차관은 5월 22일 중대본 브리핑에서 시범사업 참여 병원을 모집한 결과 신청 조건을 충족하는 수련병원 96곳 중 46%인 44곳이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들 병원에서는 전공의 연속근무 시간을 36시간에서 24~30시간으로 단축하는 시범사업이 시행될 전망이다.
군의관 120명 추가 배치 계획
한편 정부는 비상진료체계 유지를 위해 필요한 인력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5월 22일 중대본 회의에서는 군의관 120명을 의료기관에 추가 파견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정부는 지난 3월부터 의료기관별 지역 내 역할, 파견수요를 고려해 공중보건의사·군의관을 파견하고 있다. 5월 22일을 기준으로 세 차례 파견을 통해 공중보건의사 257명, 군의관 170명 등 총 427명이 전공의의 공백을 메우고 있다. 이들은 22개 공공의료기관에 131명, 42개 민간의료기관에 284명, 중앙응급의료센터에 12명 배치돼 있다.
추가로 파견될 군의관 120명은 중증질환 수술을 담당하는 주요 상급종합병원과 응급실 운영에 어려움이 있는 권역응급의료센터, 공공의료기관의 수요를 반영해 배치된다. 이에 따라 수도권 주요 상급종합병원에 66명, 권역응급의료센터에 30명, 수련기관 등 지역별 주요 종합병원과 공공의료기관에 24명이 배치될 예정이다. 파견기간은 5월 23일부터 6월 16일까지 4주다.
이들 군의관 120명이 추가로 근무를 시작하면 현장에는 총 547명의 대체인력이 근무하게 된다. 정부는 보건의료 재난 위기 ‘심각’ 단계 기간에는 근무 기간을 연장하거나 새로운 인력으로 교체하면서 파견인력의 현원을 유지해나간다는 방침이다.
한편으로 정부는 대학병원 등에서 근무 경험이 많은 퇴직 혹은 퇴직예정 의사가 지역·필수의료 분야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니어의사 지원센터 운영을 시작했다. 시니어의사 지원센터에서는 현재 공공의료기관, 대학병원, 수련병원 등 194곳을 대상으로 수요를 조사하고 있다. 정부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병원과 시니어의사 간 연계를 지원할 계획이다.
중증·응급환자 중심으로 비상진료체계가 운영될 수 있도록 상급종합병원과 진료협력병원 간 협력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현재 68곳의 암 진료협력병원을 포함한 185곳의 진료협력병원이 지정·운영되고 있다. 박 차관은 5월 20일 중대본 브리핑에서 “총 1만 8119건의 진료협력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상급종합병원에서 치료 후에 인근 진료협력병원에서 사후 관리를 한 사례가 1만 7593건이고 환자와 상의해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협력병원으로 전원한 뒤 진료협력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사례는 526건이다.
의료전달체계 근본적으로 개선할 것
특히 암 진료협력병원에 대한 정보는 응급의료포털 누리집(www.e-gen.or.kr) 또는 응급의료정보제공 앱(E-Gen)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정부는 응급의료포털을 통해 지역, 암 종류, 지원 치료별 암 진료협력병원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또 5월 9일과 14일에는 상급종합병원과 진료협력병원을 대상으로 회의를 개최해 운영 상황 등을 점검하고 현장 의견을 청취했다. 이 회의에서는 진료협력병원을 더욱 확대할 것과 사업 종료 후에도 의료기관 간 유기적인 협력이 유지될 수 있도록 진료역량 정보가 지속적으로 제공됐으면 한다는 건의사항이 제시됐다. 박 차관은 “정부는 향후에도 의료기관 간 협력이 유지될 수 있도록 건의사항을 적극 검토할 것”이라며 “이번 비상진료체계 운영이 상당 수준의 진료역량을 갖춘 종합병원의 역할과 병원 간 협력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환자의 증상과 중증도에 맞춰 병원의 역할을 분담하고 협력을 강화하는 비상진료체계는 의료전달체계 개혁으로 이어지는 디딤돌이 될 전망이다. 박 차관은 5월 20일 브리핑에서 “고난도·고위험 환자와 2차 병원에서 진료 의뢰된 환자는 상급종합병원에서 중점적으로 진료할 수 있게 하고 중등증 이하의 환자와 1차 의료기관에서 진료 의뢰한 환자는 종합병원이나 전문병원에서 담당할 수 있도록 의료전달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김효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