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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6일(목) 전도서 2:1~11 ‘참된 인생의 목적’ 찬송가 277장 양떼를 떠나서
오늘은 본문 전도서 2:1~11절 말씀을 통해서 ‘참된 인생의 목적’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인생을 참으로 의미있게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한 번 뿐인 인생을 잘 살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오늘 본문을 한번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솔로몬은 즐거움으로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육체적인 성공과 향략을 추구했습니다. 1절에 보면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 삼아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라고 기록합니다. 솔로몬은 자신을 위해서 즐겁게 낙을 누리려고 했습니다. 그냥 즐거움이나 재미있는 삶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공과 향략을 추구하여 삶의 의미를 찾던 시도가 헛되고 허무할 뿐이라고 고백합니다. 2절에도 “내가 웃음에 관하여 말하여 이르기를 그것은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에 대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였노라”고 했습니다. 물론 우리의 인생에서 세상 즐거움와 웃음이 주는 그 자체는 무의미하거나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로써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은 다 미친 것이며 소용없는 일이라고 전도자는 말합니다. 즉 하나님 없이 자신의 향락과 쾌락만을 추구하는 인생은 결국 허탈감과 헛됨을 경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생의 참된 의미와 기쁨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외면한 채 오직 나만의 즐거움과 향락을 추구하고 있다면 우리의 인생의 방향을 돌이켜야 합니다. 지금 내가 추구하는 인생의 방향은 무엇입니까?
솔로몬은 계속해서 3~9절 말씀을 통해서 계속 자신이 추구했던 잘못된 인생의 방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무엇이 선하고 아름다운 인생인지를 찾고자 ‘쾌락과 성공’을 추구했습니다. 오늘 3~8절 말씀을 보니 그 모든 것의 중심이 ‘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라는 것을 중점을 두면서 3절에서 8절 말씀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내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을 지혜로 다스리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내가 어떻게 하여야 천하의 인생들이 그들의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어떤 것이 선한 일인지를 알아볼 때까지 내 어리석음을 꼭 붙잡아 둘까 하여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며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나를 위하여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을 주기 위하여 못들을 팠으며 남녀 노비들을 사기도 하였고 나를 위하여 집에서 종들을 낳기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도 내가 소와 양 떼의 소유를 더 많이 가졌으며 은 금과 왕들이 소유한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나를 위하여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솔로몬은 자신의 육신을 즐겁게 하고자 술을 마시고, 자신의 육신을 즐겁게 하고자 사업을 크게 벌리고, 포도원과 동산과 과수원을 만들어 많은 노비를 두었습니다. 또한 막대한 부귀영화를 누리고 많은 처첩을 두면서 육신의 쾌락을 즐겼습니다. 9절에 세상의 지혜까지 소유한 그는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최고의 행복을 얻은 듯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결코 자신에게 궁극적인 기쁨과 만족을 주지 못했습니다. 진정한 기쁨과 만족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인생의 진정한 목적은 세상적인 행복이 아니라 거룩함에 있습니다. 나는 지금 나의 만족과 창성함을 위해 세상에서 무엇을 좇고 있습니까? 나의 인생의 궁국적인 목적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거룩함에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의 즐거움을 누리는 데 있습니까?
계속해서 솔로몬은 10,11절에 자기 눈이 원하는 것과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이라면 절제하지 않고 막지 않았다고 기록합니다. 10,1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솔로몬은 눈이 원하는 것과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이라면 절제하지 않고 따라갔습니다. 사도요한이 말한 세상에 있는 모든 것,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며 모든 쾌락을 누렸고, 많은 성취를 자기 수고의 마땅한 대가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가 깨달은 것은 자기 힘으로 기쁨을 얻으려고 한 그것이 바람을 잡는 것처럼 허무하고,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었으며, 보람도 찾을 수 없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인생에 있어서 진정한 의미를 무엇일까요? 무엇을 해야 인생을 진정으로 즐겁고 보람되고 의미있게 살 수 있을까요? 소요리문답 제1문인 ‘인생의 제일된 목적은 무엇인가?’에서 인생의 제일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인간은 세상에 있는 필요하고 유용한 것을 얻기 위해 합당한 방법으로 사모하고 노력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선택하고 그를 영원히 즐거워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오 영원한 분깃이시라”(시 73:25,26) 우리의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영원토록 그 분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분리되었던 관계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회복하는 것이 최우선이겠죠? 하나님은 죄인된 우리를 위해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6~18) 그래서 그 분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첫 걸음일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다음에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그 분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는 삶이 인생에게 참된 기쁨과 영원한 유익을 가져다 주게 됨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 분께서 나를 위해 계획하시고 섭리하신 인생의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서 가치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인생에서 ‘나’라는 단어가 점점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 오직예수님, 오직 성령’을 드러내고, 자랑하고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나를 즐겁게 하고자 각종 쾌락을 추구하며 세상에서 성공하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자 한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을 외면한채 나 자신만을 위한 수고를 이제는 그치고 이제부터는 주님의 뜻을 따라 살며 수고하기로 결심합니다. 주 안에서 참된 기쁨과 영육간의 즐거움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ttps://youtu.be/TTcv8E_KFy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