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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돌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 그런 면에서 제주 돌문화공원은 제주도와 돌의 관계를 잘 표현한 곳이다. 8주차 문화탐방 주제는 ‘제주의 돌문화’ 이며 제주 돌문화공원에 모든 설명이 다 들어있다. 이런 곳을 단 2~3시간 탐방으로 끝내고 후기를 쓰려니 벅차다. 특히 이 곳은 사진 작가들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이다. 원래 순서대로 유 작가님께서 맡으셨다면 더 좋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있다. 나 나름대로 느낀 탐방 소감을 시작해 본다.
1. 제주의 돌이란?
집 주변에서 텃밭을 가꾼다고 흙을 팠다가 혼난 적이 있다. 파도 파도 계속 돌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문이 생겼다. 어떤 것은 암석으로 남고 어떤 것은 흙으로 변했는가? 그 기원은 분명 마그마란 용암으로 같지만, 이후의 풍화 과정, 지표 환경, 용암 시대 차이 때문에 어떤 곳은 바위(현무암)로 남고, 어떤 곳은 흙(토양)으로 변했다. 제주에서는 이와 같이 바위로 남아 있는 곳을 ‘빌레’ 라고 한다. 밭 한가운데 떡 하니 바위가 나타나면 그게 바로 ‘빌레’이고 여기서부터 제주 돌의 역사와 문화가 시작된다.
제주의 돌이 형성되는 과정은 지역마다 다르다. 그 이유는 1)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풍화의 차이, 2) 용암 분출 시기의 차이, 3) 용암 냉각 방식 차이, 4) 지형, 배수 조건, 5) 화산재, 스코리아(송이), 화산회 토층 여부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설명은 돌 박물관에 상세히 전시되어 있는데 우리는 다행히(?) 이 부분을 생략하고 바로 제주의 돌 문화 탐방을 시작했다.
2. 제주의 돌문화
제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여기에는 과학적인 설명 보다도 먼저, 믿거나 말거나 신화적 요소가 가미된 설문대할망 이야기가 등장한다. 제주의 돌문화는 설문대할망 신화로 시작해서 신화로 마무리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역할이 지대하신 설문대할망 전시관이 올해 6월 개장했으니 돌문화공원에서 가장 늦게 준비된 것이다. 전시관 건물은 진작에 완공되었는데 그 안의 내용물을 채우는데 공을 들인 셈이다. 그런데 실체가 없는 스토리텔링의 신화를 전시하려니 어려움이 있었나? 그 전시물 보니 문화적 감성이 부족한 나로서는 별 감흥이 없고 그저 오백장군, 돌하루방이 일렬로 도열하고 있다. 이런 전시물이 설문대할망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신화는 신화로 끝내야 하는데 그것을 형상화 하다 보니 무리가 있는 듯 보였다.
허지만 제주 돌문화의 시대별, 기능별 야외 전시장은 우리 같은 탐방객에게 무언가 설명하려는 기획자의 의도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제주인이 척박한 환경에서 일구어 낸 제주의 돌문화를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제주의 돌에 대한 애증은 육지, 바다, 하늘에 다 녹아있었다. 그것이 제주의 돌문화를 이끈 힘이었을 것이다.
3. 제주 돌문화공원의 구성
제주 돌문화공원은 신철주 북제주군수가 제안하고, 과거 신혼여행의 탐방지로 유명했던 탐라 목석원 주인인 백운철 선생의 기증과 기획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목석원에는 기기묘묘한 전시품이 많아 제주 돌문화 스토리텔링의 원조라 할 수 있다. 도에서는 30만평의 부지를 제공하고, 민간에서는 전시품과 기획 아이디어를 제공하여 완성할 수 있었다.
돌문화공원은 테마별로 크게 5개의 Zone으로 나뉜다. 첫번째 돌박물관, 두번째 돌문화 야외전시장, 세번째 전통초가마을, 네번째 설문대할망 전시관, 다섯번째 오백장군 갤러리로 구성되어 있다. 또 관람 소요 시간대별로 30분, 1시간, 2시간, 3시간 코스가 있으며 각 시간대에 2~3개 코스가 소개되어 있다. 단체관광객들은 대부분 1~2시간 코스로 관람하는데 첫번째로 가는 돌박물관에서 진을 다 빼기 때문에 진짜 핵심인 돌문화를 돌아볼 여유가 없어 그냥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사진 몇 장 찍고 관람을 끝낸다. 이 부분이 많이 아쉽다.
우리의 탐방도 학술과 지질학 연구를 전시한 돌박물관을 패스하였고 진정한 돌문화를 배우려고 애를 썼으나 역시 시간이 문제였다. 여기 후기를 작성하며 그런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자 했다. 각 Zone별로 탐방의 주요 내용을 사진 위주로 다시 정리해 보았다.
가) 돌박물관 Zone
-물장오리 연못; 물장오리 분화구를 재현한 현장이다. 설문대할망이 빠져나오지 못한 연못의 신화가 있는 곳이다. 그러나 신화의 여신은 죽지 않고 물의 근원이 되었다. 조선 시대 여성 신들은 대부분 죽는 운명(예; 지리산 노고단의 여신 노고할미는 죽어서 신이 됨)이지만, 제주도 신화는 여성신이 살아서 세상을 다스리는 주체적 존재로 남아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설문대할망’으로 제주도의 산과 땅을 만들었다. 조선 유교의 ‘여성의 순종’과는 거리가 먼, 모성, 창조, 자연의 여신이었던 것이다. 이 여신이 낳았다는 오백장군 신화는 제주 사회의 공동체적 정체성과 자연 순응의 철학을 상징한다. 제주 돌문화공원내 곳곳에 세워져 있는 오백장군은 오늘도 어머니의 은혜를 입고 돌로 변해 제주의 땅을 지키고 있다.
-전설의 통로; 삼다의 섬 제주는 돌, 바람, 여자가 많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재앙을 의미하기도 했다. 돌이 많아 농사 짓기 척박하고, 바람이 많아 배를 타고 나가 남자들이 돌아오지 못해 노동력이 부족했고, 상대적으로 여자가 집안을 일으켜야 했다. 삼다의 의미는 제주인에게는 재앙이었지만 이것을 다시 승화시킨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제주의 돌은 화산이 폭발하여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현무암으로 산과 들, 해안에 드러나 있고 땅을 조금만 파도 그 웅장한 덩어리가 떡 버티고 있다. 현무암의 위층 껍데기 부분에는 많은 구멍이 있지만, 아래층은 구멍이 매우 적다. 팥죽이 뽀골 뽀골 끓을 때 모습을 상상해 보자. 용암이 1200도 온도에서 끓을 때 가스가 올라 와서 만든 기공이 바로 현무암 구멍이다.
현무암에 구멍이 나서 물이 잘 빠진다는 것은 아주 잘 못된 인식이고, 현무암은 무조건 구멍이 있다고 잘 못 알고 있다. 현무암 중간에 보면 기포가 올라간 흔적이 보이고 올라 가는 방향을 알 수 있다. 기저 현무암은 단단하고 구멍이 없다.
-하늘 연못; 물장오리 연못과 더불어 이 곳도 신성한 장소로 연출하여 만들었다. 얼마 전까지 장화를 신고 들어가서 사진을 찍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안 된다. 신성한 장소에 장화를 신고 들어가는 것 자체가 잘 못된 것이었다. 바로 옆 광장은 2025년 재즈 페스티벌을 개최할 예정인 것 같다. 신화와 페스티벌, 과거와 현재가 어울리는 곳으로 돌문화공원의 비즈니스 컨셉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주변을 둘러보니 지그리 오름이 왼쪽에 보이고, 바농 오름이 오른쪽에 보이고, 멀리 한라산도 보이니 이런 멋진 풍광을 가만 놔 둘리 없다. 대관도 하나의 비즈니스고 도민들에 대한 서비스이니 적극 활용할 모양이다. 잘 만 사용하면 설문대할망도 좋아하실 것 같다.
나) 돌문화 야외전시장 Zone
-몰 방아; 육지에서는 ‘연자 방아’라 하여 소가 돌리고, 제주에서는 말이 돌리기 때문에 ‘몰 방아’라고 한다. 아래에 있는 돌은 알 돌, 위에 있는 돌을 윗 돌이라고 한다. 옛날 제주 마을에서는 30가구에 하나씩 만들었다 하니, 이런 큰 돌을 구하기 위해 동네사람들이 함께 힘을 합쳐 공동체 사회를 이루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서로를 ‘삼춘’ 이라고 불렀고 이웃 집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호칭을 통일시켰다. 방아에 구멍이 많은 것을 보면 현무암의 윗 부분을 선택하여 이용한 듯하다.
-수형석(樹型石); 용암이 흘러가다가 서 있던 나무를 순식간에 감싸며 굳어 생긴 나무의 형상을 가진 돌을 말하며 수형석(=용암수형 熔岩樹型), Lava Tree (=Tree Mold) 이라고 한다. 쉽게 말하면, 용암이 나무를 본떠 만든 돌기둥 또는 속 빈 형상이다. 그런데 이것을 설명하고 있는 설명문에는 엉뚱하게 ‘용암구’에 해당하는 설명문이 적혀 있다. 이런 오류를 어떻게 수정해야 할까? 아무튼 이 수형석에 얼굴을 대고 사진을 찍으면 ‘나무의 생명’이 불을 이기고 살아남은 생명의 흔적이므로 장수(長壽)한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
-용암구(熔岩球); 용암 덩어리가 굴러다니며 둥글게 굳은 것으로 가운데 뚫린 모양은 수형석과 비슷하지만 나무 줄기 모양은 아니다. 내부에 스코리아(분석구, 송이)가 있기도 하다.
-거석 문화(巨石文化); 큰 돌을 이용한 문화를 말한다. 청동기 시대 전후에 거대한 돌을 세우거나 쌓아 만든 무덤, 제단, 기념물을 남긴 것을 통칭한다. 가장 잘 알려진 고인돌(Dolmen)은 선사시대 청동기 문화의 대표적인 무덤 형태로, 큰 돌을 이용하여 시신을 매장하는 묘제이다. 덮개돌(상석)과 받침돌(지석) 구조로 이루어진다. 그 외 몇 가지 용어를 정리하면,
지석(支石); 고인돌에서 덮개돌(상석)을 받치는 돌
입석(立石); 돌을 세워서 세운 기념비적 돌 기둥. 제사나 영토 표시, 또는 위령비 역할
선돌(立石碑); 입석과 거의 동일, 다만 민속적으로 신성시된 돌
석관묘(石棺墓); 돌판을 이용해 만든 석제 관(棺) 안에 시신을 넣은 무덤
-돌담 문화; 제주의 자연환경과 제주인의 생활 지혜가 결합된 대표적인 민속 경관 문화이다. 제주의 공동체 정신, 자연 친화적 지혜를 보여주는 세계적 농업유산이다. 주요 기능은 바람막이, 경계 표시, 배수 기능, 자연 순환이며, 현무암 無시멘트 담장 문화이다. 몇 가지 주요 돌담의 유형을 살표보자.
밭담; 밭의 경계담. 농경지 구분하고 바람을 막아 줌
울담; 집 둘레의 담. 바람과 외부 시선을 차단하여 주거를 보호해 줌
축담; 집의 외벽을 구성하고 있는 담
산담; 마을 둘레 산 쪽 경계로 마을 영역을 구분한 담. 또는 묘를 산이라 했으며 무덤 둘레를 쌓은 무덤담도 산담이라 함
올레담; 올레길 주위의 담.
원담; 바닷가 조간대에 쌓아 썰물 때 고기를 잡기위한 담
잣담; 들판에 마소 방목하기 위해 구분하는 담
정주석; 출입구를 막는 나무 막대(정낭) 3개와 이를 거는 정주석으로 이루어 짐. 대문을 대신하여 사용되며 집주인 부재 여부를 표시함
-다양한 돌의 활용;
돌방아(Stone Mortar, Stone-Mill); 곡식이나 콩 등을 찧거나 빻기 위해 사용된 돌기구. 몰방아와 다르게 여인네들이 이용할 수 있는 크기로 제작됨
돌확(Stone Trough); 주로 부식물을 빻는 자그마한 절구. 떡을 만들 때 사용함.
돗도구리(돼지먹이통); 돗통시에서 기르는 돼지의 먹이통. 돼지가 밟아도 쉽게 넘어지지 않게 원형, 사각형으로 제작
도구통(Mortar); ‘도구방에’, ‘절구통’ 이라고 함. 적은 양을 도정, 제분할 때에 사용
기름틀(Oil Press); ‘봉애기’라고 하였고 기름의 재료를 볶고 압축시켜 기름을 뽑아내는 틀. 기름이 잘 흐르도록 골이 나있음.
등경돌(Stone Lamp); 송진이 많이 엉킨 소나무 조각인 관솔을 제주에서는 ‘솔칵’이라고 함. 이 솔칵을 올려놓고 불을 밝힌 원시적인 조명기구.
구들돌; 온돌방을 만드는 얇고 넓은 돌로, 굴묵에서 불을 때면 고래를 통해 들어간 뜨거운 불기운이 구들돌을 달궈 난방이 됨. 주로 조면현무암이 사용됨.
곰돌; ‘쉐(송아지) 가르치는 돌’ 또는 ‘콧돌’이라고 함. 송아지에게 밭갈이를 가르치기 위해 쟁기 대신 묶고 끌게 함
맴돌(Cattle tying stone); ‘쉬왕’ 또는 ‘테틀막’이라 하고 외양간에서 소나 말이 도망가지 못하게 줄을 묶어 사용
뒷간 돌; 돗통시에서 사용하던 변기 뚜겅 돌
주춧돌(Foundation Stone); 초가집 기둥이 쉽게 썩지 않도록 지상 40~50cm 정도의 주춧돌을 높게 세움
이상으로 제주인이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던 대표적인 돌 기구들을 보았다. 여기에 옛 조상들의 지혜가 묻어 난다. 허지만 오늘 관람객들은 여기는 잘 안 온다. 돌박물관의 지하 전시 공간에서 에너지를 다 쏟고 그냥 지쳐 나가는 경우가 대분이다. 안타깝다.
-제주 돌의 종교적 이용; 제주 돌은 제주인의 신앙 매개체로서 역할도 했다. 다시 말해 생활과 신앙이 하나로 융합된 상징물이었다.
방사탑(防邪塔); 마을의 액과 귀신 등 사악한 것을 막는 의미로 마을 입구 또는 해안가에 두 개를 세웠다. 제주 순수한 말로 ‘거욱대’ 라고도 하였고, ‘거욱’은 높이 솟다란 뜻이고 ‘대’는 탑(기둥)을 의미한다. 방사팁을 쌓을 때 첫돌을 놓는 사람은 죽는다는 전설도 있었다. 동네의 허한 기운을 막아, 전염병, 화재 등을 예방하고, 바닷가에도 해상 사고나 전염병을 막고자 하여 세웠다. 예로 신흥리 바닷가 방사탑은 썰물 때 드러난다. 방사탑 속에 무쇠 솥 (화재를 막음)과 주걱 (재물을 들어 옴)을 넣어 주민들의 소원을 기원했다. 방사탑 위에는 새 모양의 돌을 올려 놓았고, 때로는 돌하루방도 올려 놓았다.
제주도는 어느 땅이던지 파면 이런 돌들이 줄줄이 나온다. 제주 사람들은 그런 하찮은 돌로 이처럼 다양한 돌 문화를 만들었다. 연대도 만들고, 해안가를 두른 환해 장성을 만들었다. 밭담을 쌓은 것은 고려 말부터였다. 밭을 갈다가 힘 쌘 사람들이 점점 침범하여 분쟁이 생기는 것을 보고, 김구라는 판관이 백성의 원성과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밭에 모아둔 돌을 밭 경계에 쌓으라고 하여 생겨났다. 이처럼 위대한 일을 해낸 판관 김구를 기리는 행사를 지금도 한다고 한다.
산담은 고려 때 고려장 문화에서 조선 시대 매장 문화로 넘어 오면서 제주에 흙이 적고 바람이 세서, 야생동물로부터 무덤을 보호하고 구분하기 위해 돌담을 둘렀던 것이다. 또 들판에 불을 질러 진드기 등 해충을 없애고 목초를 기르기 위함이었는데 불로 조상이 깨어날 것 같아 돌담을 둘렀다고 하는데, 귀신이 들고 나가는 신문(神門)도 만들었다.,
이와 같이 돌을 다루고 다듬고 하기에 너무 힘들어 대용물로 대나무를 심어 돌 대신 대나무를 활용한 생활 용기를 제작하기 시작하였고 지금도 다양한 대나무 생활용품이 많이 남아 있는 이유가 바로 돌 문화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다) 설문대할망 전시관 Zone
설문대할망 전시관; 6월에 오픈하여 신축의 깨끗하고 정결함이 돗 보인다. 들어 가는 입구가 길어 기대하고 들어가니 오백장군과 돌하루방이 양쪽에 도열해 있다. 마치 설문대할망을 맞이하는 것처럼.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며 어떤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만 그런가? 돌하루방의 다양한 모습도 볼 수 있는데, 제주목, 대정현, 정의현의 차이를 알수 있는 설명이 없다. 단지 미리 설명을 들어 대정현 돌하루방은 눈 주위가 두겹으로 핑핑 돌게 우머러스하게 만들어졌다 하니 한번 더 보게 되었다. 정의현 돌하루방은 코가 큰 게 특징히고, 제주목 돌하루방은 보다 근엄한 모습이 특징이라고 한다. 각 지역의 돌챙이들의 실력 차이라 할수 있겠다.
라) 오백장군 갤러리 Zone
-조록나무뿌리 형상물 전시관; 조록나무는 한라산 해발 약 700m 이하에서 자라며, 이 나무가 죽은 뒤 고사목 뿌리는 땅 속에서 남아 썩거나 흙에 분해되지 않고 독특한 형상으로 남게 된다. 이것을 ‘조록형상목’이라고 하며 그 희귀성과 고유성으로 지방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원래 5.16도로변에 있던 탐라 목석원에 소장하고 있던 형상물들을 기증 받아 돌문화공원내 오백장군 갤러리에서 상설 전시하고 있다. 나 역시 목석원에 들러 그 형상물들의 숨은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 전시관의 입구와 내부에 제주 출신 서예가로 유명한 소암 현중화 선생의 글이 걸려 있는데, ‘괴석기근하위이작야 (怪石奇根何爲而作也)’ 곧 ‘기이한 돌, 기묘한 뿌리 – 왜 이리 만들어졌는가?’라는 철학적 물음을 서예 작품으로 남겼다.
4. 기이한 생물 이야기
제주 돌문화공원 탐방 중에 만난 몇 가지 기이한 생물의 이야기를 정리하였다.
지의류(地衣類); 한자로 땅 地, 옷 衣로 표기하며 바위, 나무 등에 마치 버짐 피듯이 자라고 있는 균류(곰팡이)와 녹조류 또는 남세균의 공생체 생물이다. 리트머스라는 물질을 추출하여 산성과 알카리성을 판별하는 지시자로도 사용한다. 리트머스는 지의류의 종 이름이 아니고 2차 대사산물 이름이며 산성 또는 알리카리성을 만나면 분자구조가 변하는데 우리는 그 변화를 색의 변화로 보고 판별하는 것이다. 이 종류는 환경의 지표종으로 이용되는데 종에 따라 오염지역에 사는 종과 청정지역에 사는 종이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종종 이까류와 혼동되는데 지의류는 청녹색으로 딱딱하고 납작하게 붙어있는 반면 이끼류는 순수한 녹색이고 손으로 만져질 정도로 부드럽다.
한라돌쩌귀; 맹독이 있으며 투구 모양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독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천남성, 진범, 한라돌쩌귀 등이 있고 사약을 만들 때 사용했다고 한다.
자귀나무; 유월에 분홍빛 꽃이핀다. 잠자는 귀신이라는 별명처럼 밤에 입이 붙고, 낮에는 다시 떨어진다. 이 열매로 만든 술이 합환주로 부부 금실이 좋아진다하여 결혼식에 썼다. 이 나무를 합환목이라하여 부부 침대로 만들기도 하였다 한다.
맺는 말
제주의 돌문화를 느끼기에 제주 돌문화공원 만큼 좋은 곳은 없다. 이 광활한 벌판에 돌문화공원을 조성한 기획의 의도는 좋았으나, 관람객 입장에서 보면 각 Zone간의 거리가 너무 멀게 느껴진다. 물론 전기 관람차가 다니고 있지만, 수 많은 관람자가 이용하는데 제한적이다. 매표소가 전통 초가집으로 되어 있어 운치는 있으나, 출구와 입구가 한 칸의 초가집 좌우로 있어 출구와 입구 동선이 좁아 들어가고 나가는 사람들이 부딪히고 있다. 30만평의 전시공간과 입장객 수를 고려하면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할 것 같다. 한가지 첨언을 한다면 기념품 판매점을 출구 쪽에도 만들어 제주의 토산품을 판매하는 비즈니스 전략도 필요해 보인다. 끝으로 제주의 돌문화를 마음껏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관계자와 관광 종사자들은 홍보에 힘쓰고 관광객을 유도하는데 많은 노력을 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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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전문가의 시각으로 교수님 다웁게
내용을 잘 정리해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어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 보입니다.
고맙습니다.
역시 정리가 너무 잘되었네요.
위의 글을 확인하니 다시금 돌문화공원에 가고싶어지네요. 이번에는 여유있게요😊
네~~
자주 가볼만한 장소라고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
와아~ 정갈하고 자세하게 잘 분류해서 기록해주셨네요~감사합니다
후기를 읽으면서 새삼, 제주인의 삶에서 돌이 차지하고 있는 무게(?) 가 참 크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돌을 파헤쳐야 밭을 만들수 있었지만, 그 돌로 생활에 필요한 모든것을 만들었네요.. 죽어서는 돌담안에 묻혔구요.. " 제주인에게 돌은.. 모든것이다.." 라고 한다면 과장일까요 ㅎ
간직하고 두고두고 읽고싶은 기록입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생각을 정리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돌챙이'의 퍽퍽하고 고난의 삶은 어땠을까?
이번 탐방도 무언가 배워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세심하게 잘 설명해주어 공부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문탐반 수강하면서 지금껏 무심히 지나쳤던 제주의 아름다움에 깊은 매력을 느꼈고 큰 감동을 받았으며 보람이 큽니다.. 모두들 홧팅하세요~~~
님은 이미 농원에서 제주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제주 사람들의 삶에 대한 돌 문화를 넘 낱낱이 리얼포스로 정리해 주신 백과사전 읽고 또 읽고 계속 자료곳간 뒤지러 와봐야겠습니다 ㅎㅎ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히 읽고 갑니다
오늘도 행복 만드시는 시간되세요^~^
되도록 꼰대짓 안하려고 노력하지만~~
배운게 그것이라 어쩔수 없네요.
재미없는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세부적으로 정리된 글 잘읽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돌문화공원은 작자님의 놀이터이지요?
저한테도 재미있는 곳이었어요.
감사합니다.
와우~ 대단하십니다^^.
돌문화 공원의 모든 면을 이렇게 정리해주시니 다음 방문 시에 더욱 느낌있는 탐방이 될 것 같습니다.
정리 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