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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재 목사 / 아골 골짜기 (호 2: 14-23)
1. 타락의 골짜기
1) 복의 근원을 혼돈하는 것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소돔 같은 거리에도 사랑 안고 찾아 가서 종에 몸에 지닌 것도 아낌 없이 드리리다.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 없이 드리리다.
우리 오늘 아침에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하는 이 말씀의 이야기의 중심이 아골 골짜기입니다. 호세아서 2장의 전장의 내용을 한 마디로 상징적으로 요약해 주는 단어가 아골 골짜기입니다. 아골 골짜기라 하면 무엇을 생각나게 합니까 아골 골짜기는 추한 골짜기입니다 타락의 골짜기요 징계의 골짜기입니다. 심판이 진행되었던 형극의 골짜기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이성을 앞에 놓고 있는 시점에 아간이라는 사람이 시날산 아름다운 외투 한벌이 눈에 너무 아름답게 보였고 은금 보화가 유혹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외투 한 벌과 은금 보화를 숨긴 범죄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치명적인 손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로 인하여 그 대가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로 치고 돌 무더기를 만든 골짜기 이름이 아골 골짜기 입니다 고통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이 아골 골짜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타락의 골짜기 이며 수치인 곳이 가장 아름다운 상징하기도 하는 것이 아골 골짜기입니다. 왜 이렇게 아름다운 골짜기가 되어졌습니까? 본래는 추한 골짜기요 타락의 골짜기요 심판의 골짜기였는데 하나님의 손길을 통하여 회복이 되어진 것입니다. 타락과 징계와 회복의 스토리를 보여 주는 골짜기입니다.
이 시간에 첫번째로 아골 골짜기는 타락의 골짜기인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유목 민족이었습니다. 출애굽에서 사십 여년의 광야의 노정을 통과 후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농사를 지어야 할 필요가 생겨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농사에 대한 영농의 기술이 부족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원주민들에게 영농 방법을 배우게 되는데 농사 짓는 방법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원주민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풍년을 달라고 섬기는 신이 있었습니다. 바알이라는 신입니다. 원주민들은 일년 농사에 풍년을 주는 것이 바알신이 준다고 믿고 바알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었는데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농사의 기술을 배우면서 그들에게 전염이 되어서 바알 신을 섬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타락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축복의 근원을 하나님으로 믿어 왔던 것이 축복의 근원을 혼돈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타락의 첫 순서 입니다. 본문 5절에 보면 “저희의 어미는 행음하였고 저희를 배었던 자가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대저 저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저희가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느니라”(호 2:5) 여게 호세아의 고멜이라는 여인이 본남편이 주는 모든 은총을 저버리고 간부를 따라가면서 저희가 내게 모든 것을 준다. 이 말씀은 호세아를 통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의 관계를 보여 주는 것 입니다. 각양 좋은 은사가 빛들의 아버지로부터 오는 것인데 바알이 모든 복을 주고 있다. 복의 근원을 하나님에게서 바알로 혼돈하고 있는 것이 타락의 첫 순서입니다. 이것은 과거 수천여년 전에 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와 우리 자신들도 우리도 모르게 하나님에게 생사가 달려 있다고 하던 것이 어느 순간에 내 지식이 들어서 내 재능으로 월급을 받고 있고, 사업에 성공하고 있고, 부요를 누리고 있다 하는 순간에 우상을 섬기게 되고 우상에게 절하는 자가 되어 집니다.
바알을 섬기고 바알이 우리에게 풍년을 줘야 한다. 비를 줘야 한다. 이것이 타락의 첫 순서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잊어버리고 내 지식이 언변이 형통하게 복되게 한다고 생각 되어지는 것이 구약이 바알을 섬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2) 축복의 근원을 망각한 것
타락의 순서 두번째는 8절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가 알지 못하도다”(호 2:8)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주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간부를 섬기면서 바알을 섬기면서 바알을 섬긴 것도 내가 준 것인데, 축복의 근원을 혼돈 했는데, 이제 8절에 보니까 하나님이주신 것을 가지고 바알을 위해서 주면서 간부를 대접하면서 축복의 근원을 완전히 망각을 해 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세상에 나아가서 잊어버린 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타락의 순서입니다.
우리 자신들이 주님과 조금씩 멀어지다가 보니 나의 복의 근원 되는 그분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까마득히 잊어버리게 됩니다. 요나가 다시스로 가면서 배 밑창에 가서 잠을 자고 있는데 위에서는 사람들이 죽을동 살동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깊이 타락의 그늘, 방탕에 처해 있기 때문에 타락의 상태입니다.
우리의 영적 상태를 점검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년 전, 삼년 전과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삶이 예배와 가까워 지고 있는지 멀어지고 있는지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망각의 현 주소를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축복의 근원을 혼돈하고 망각하고 깡그리 잊어버리는 상태까지 깊어 지고 있는 것입니다.
3) 사랑의 대상을 바꾼 것
13절 “저가 귀고리와 패물로 장식하고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가서 나를 잊어버리고 향을 살라 바알들을 섬긴 시일을 따라 내가 저에게 벌을 주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저가 고멜이 호세의 아내 고멜이 본 남편이 준 은혜를 가지고 귀고리 장식을 하고 간부를 따라 가면서 간부에게 보이려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축복을 받아서 바알을 섬기고 제사를 드리고, 우상에게 제물을 바친다 말입니다 그 날 수 대로 저를 벌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축복의 근원을 혼돈한 이스랄엘 백성들, 망각한 이스라엘 백성들 이제는 사랑의 대상을 바꾸어 버립니다. 남편을 위해서 연지 찍고 치장을 해야 하는데 바알을 위해서 합니다. 우상을 섬기는 이일에 투자를 하니까 하나님이 심히 싫어 하는 것입니다.
말로는 예수 예수 부르짖는데 삶 속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그 날수를 따져서 벌하리라. 정탐꾼들이 사십일을 정탐하고 왔을 때 부정적으로 평을 하니 하루를 일년으로 계산하여 40년의 광야 생활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첫째가 축복의 근원을 혼돈하더라. 축복의 근원을 망각하더라 사랑의 대상을 바꾸더라 여게는 하나님이 질투 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랑의 대상을 바꾸는 것이 세상과 짝하는 것이 간음하는 것이라. 원수가 되는 것이라.
오늘 아침에 아골 골짜기의 첫 단계는 타락의 골짜기 징계의 골짜기 이 타락의 과정을 벗어나기를 축원 합니다. 나 자신의 복의 근원되는 것을 혼돈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 지능 재주가 아니면 안된다고 매달려 있지는 않은지? 우상은 하나님께서 기어코 깨트리십니다. 성경에 보면 교만, 우상, 외식은 절대로 용서치 않습니다. 기어코라도 깨트립니다. “화 있을 진저” “화 있을 진저”(마 23) 일곱차례의 원인이 외식입니다. 타락이 어디서 들어 왔느냐 우상을 섬기는 데서 들어왔기 때문에 엄격하게 냉정하게
2. 징계의 골짜기
1) 징계를 만나거든 찬양을 하라.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냥 둘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징계의 메초리를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보고 지낼 수 없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제 아골 골짜기의 징계를 들고 찾아 오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를 붙들고 호소 하기 시작합니다. 징계의 장이라고 하는 히브리서 12장에 보면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 12:8) 징계가 없는 자는 사생자라, 버린 자라.
우리의 삶에 징계가 있으면 하나님께 찬양 하시기 바랍니다. 시편 73편 기자가 악한 자를 보고 심히 고민 했습니다. 악을 행하는데 형통하니 번민에 빠져 들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계시느냐 공의가 이 역사 세계에 집행 된다는 것을 믿어도 되는가? 실족 할 번 했습니다. 이런데 그가 골방에 들어 갔습니다. 성소에 들어 갔을 때 그들의 결국을 영감이 뜨여 져서 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미끄러운 데 두사 졸지에 황폐하게 되는 것을 봤습니다. 새 알이 깨어 지듯이 형통이 형통인줄 알았는데 파멸이라. 그냥 버려 둔 자들이라. 그것을 알고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심장이 찔렸나이다,,,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시 73:27-28)고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나타나거든 찬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가시에 찔려서 피가 철철 나도 그래도 나를 버리시지 않는군요 울면서라도 찬양 하시기 바랍니다.
2) 징계의 삼 단계
① 장애물을 체험하게 한다
2장 6절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저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사무엘서에 보면 내가 사울과 그 자손을 버렸지만 다윗아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너를 버리지 않겠다.
사업을 하다가 잘 안됩니까 장애의 벽이 있습니까? 오 주여 감사합니다. 나 같은 죄인을 버리지 않으시는 군요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메초리는 아플지 모릅니다.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더 큰 파멸을 막아 주는 화근을 막아 주는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인줄 알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아골 골짜기에서 징계를 체험하게 합니다. 욥이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체험의 신앙입니다. 내 눈으로 봤다는 말입니다. 내가 경험하고 체험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서 끊임 없이 경험시키고 체험 시키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교육 비가 어마어마 하게 들었습니다. 독생자를 희생 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과 예정 순서대로 창조하시고 창조한 모든 것들을 지금도 섭리 하시고 있습니다. 인간의 타락과 구속의 역사 이 일을 위해서 비도 오고 번개도 오고 봄, 가을, 겨울이 오는 것입니다. 크고 작은 일들이 이 모든 일들이 세밀하게 운영 되고 있다는 절대 주권 역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가운데 내가 뭐라고 여러분들이 뭐라고 이 하나님의 큰 역사의 수레바퀴가 돌아가고 있는데 구더기 같은 인생이랴.
우리 ᄒ 무섭습니다. 대단 합니다. 위대합니다. 인간 몇 백만명 아무것도 아닙니다. 수십 억을 싹 홍수에 멸망시킨 ᄒ 입니다. 내 하나가 똑똑 그려 쌓아도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심판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데 왠 은혜 왠 사랑인지? 내 하나가 조그만큼 기침만 해도 열만 안해도 잠을 안자고 돌보는 사랑하는 어머니보다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나님이랴.
‘웬말인가 날 위하여 주돌아 가셨나 이 벌래 같은 날위해 큰 해 받으셨네’
정말 내 하나가 뭐입니까 별 존재 아닙니다. 그 분께서 가치를 부여 해 주시니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본질상 진노의 대상이었는데 그 외아들을 희생 시켜 주심으로 저와 여러분의 가치와 존재 의미가 회복 된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입니다. 가시와 담을 막을 때에 찬송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내까짓기 뭐라고, 오 주여 찬송과 영광을 받으십시요, 영광을 돌리십시요.
하나님께서는 장애물을 우리에게 체험을 시킵니다.
② 상실을 체험하게 한다.
두번째로 9절 “그러므로 그 시절에 내가 내 곡식을 도로 찾으며 그 시기에 내가 내 새 포도주를 도로 찾으며 또 저희 벌거벗은 몸을 가리울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 그 시기가 어떤 시절입니까 타락의 시절, 방탕의 시절 간부따라 가는 시기 입니다. 가시와 담으로 막아도 안 돌아 오면 상실을 체험하게 한다. 상실은 하나님을 잘 믿을 때는 재물을 주시고 자식도 주고 좋은 아파트도 주셨는데 조금 살만 하니 세상을 따라 갑니다. 내가 줬던 의식주 내가 다시 빼앗아 오겠다. 상실을 체험하게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축복이 하나씩 둘씩 빠져 나가거든 하나님께 찬송 하십시요, 징계 입니다.
내가 가졌던 것이 하나씩 둘씩 빠져 나갑니다. 재산, 명예, 위신, 지위가 나를 떠나 가게 됩니다. 빨리 하나님께 찬양하시고 돌아 오라 말입니다. 왜 줬던 것을 빼앗으십니까? 내 백성은 줘 놓으니까 주인을 잊어버립니다. 없으면 돌아 가거든,
탕자가 아버지의 재산을 받아서 먼 나라에 가서 빈 털털이가 됩니다. 더 이상 도야지 먹는 열매로 배를 채울 수 없는 그 때에 생각합니다. 내가 아버지께로 돌아가자.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눅 15:21) 돌아 갑니다. 상실의 체험을 왜 하게 합니까 돌아 오라는 섭리 인줄 알고 빨리 돌아 서면 잃을 것이 덜 잃게 됩니다. 잃었던 것은 아버지 집에 다 있습니다. 더 좋은 것이 아버지 집에 있습니다.
징계의 경고는 사랑의 경고 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 오면 다시 다 찾게 됩니다.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 1:21-22) 입술로 범죄하는 죄를 짓지 않았어요, 그런데 욥이 갑절이나 축복을 받았습니다.
상실을 잃어버립니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빠져 나갈 때 하나님의 사랑의 경고인 줄 아시고 이 상실의 체험을 통해서 빨리 주님께로 돌아 서시기 바랍니다.
③ 수치를 체험하게 한다
2장 10절 “이제 내가 그 수치를 그 연애하는 자의 눈 앞에 드러내리니 저를 내 손에서 건져낼 사람이 없으리라” 하나님께서 세번째 징계는 수치를 체험하게 합니다. 그 사회에 그 세계,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 더 이상 부끄러워 살 수 없을 만큼 수치를 당하게 합니다. 산산조각을 하나님이 내 버립니다. 수치의 경험을 할 때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주일 날 감사 헌금 제목을 보면 대개 잘되게 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좀 더 성숙 된 감사가 징계를 받을 때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가시와 담으로 막을 때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게 있는 것이 하나씩 둘씩 빠져 나갈 때 더 큰 것을 때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재물이 없어 질 때 하나님께서 내 몸을 쳤더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욥이 열 자식이 다 죽고 그 많은 재산을 다 잃어도 원망 불평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라.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정금같이 나오리라.
오직 우리의 소망은 천국
수치를 당하면 더 이상 막다른 골목이 없구나 하고 빨리 돌아 오시기 바랍니다.
장애물, 가시와 담, 두 번째 상실, 잃어 버려, 재산, 자식, 건강, 직장을 잃어 버립니다. 세번째가 수치를 당하게 합니다. 그 때 빨리 하나님에게로 돌아 서시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3. 회복의 골짜기
1) 광야로 끌고 갑니다.
회복의 골짜기 15절에 보니 아골 골짜기에 소망의 문을 주리라. 저주의 골짜기기 끝나고 이제 하나님께서 새 일을 시작하겠다는 것입니다. 회복도 세 단계로 본문이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2장 14절 “
개유 한다 말은 안타가운 심정으로 타이른다. 네가 어쩔려고 이러나 이러지 말라. 그런데 여게 보면 거친들로 데려 가서 호텔로 가서 하면 되는데 거친 들로 데려 가서 하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리 수 없이 선지자를 통해서 돌아 오라 돌아 오라 외쳐도 백성들이 끝끝네 말 안듣습니다. 바벨론으로 끌고 갑니다. 포로로 끌려 가기 전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다가 바벨론에 가서 신앙의 불길이 타 올라요, 통회하면 하나님 앞에 설득을 당하더라 말입니다.
아가서 4장에 보면 거친 들에서 가마를 타고 옵니다.
광야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혜택, 자연적인 혜택이 없는 곳이 광야 입니다. 그 누구에게도 손 내밀 수 없는 곳에 가니 하나님을 찾게 되더라.
저와 여러분들을 거친 들로 끌고 갑니다. 그 누구도 내가 의지 할 만한 도움의 손길이 끊어 져요, 인연의 줄이 다 끊어 집니다. 적막 강산입니다. 허허 망망한 빈들판입니다. 여기까지 가서야 설득 안 당할 수 없어.
모세를 공주의 아들의 호사스런 삶에서 미디안 광야로 끌고 갑니다. 장인 이드로의 머슴살이를 하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곳으로 끌고 갑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예민하시기 바랍니다 민감하셔야 합니다. 노루와 사슴 같이 깜짝깜짝 놀라야 합니다. 풍랑은 일어서 죽을 지경인데 요나는 잠을 못 깨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통해서 개유하시거든 빨리 돌아 오시기를 바랍니다. 그 때 회복이 있습니다.
2) 소망의 문을 줍니다
15절 “. 하리라” 거기서 비로소 지금까지 타락의 골짜기를 맴돌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징계의 골짜기로 찾아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빈털터리가 됩니다. 축복 받은 장노님 집사님들이 빈털터리가 됩니다. 빨리 돌아 서면 이전보다 갑절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기서라도 돌아 서십시요. 그라면 들판의 거친들 바벨론으로 끌고 가서 타이릅니다. 그 때 꺼꾸러지지 않을 수 없어.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 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흘려 주시니 곧 회개 하는 마음으로 주 앞에 옵니다.
주님 박대 해 버리면 내 인생은 그 순간이 마감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나를 다 버려도 주님이 오른 손으로 두려워 말라….세우리라 주님이 나를 붙잡아 주면 천하가 버려도 염려 할 것이 없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거기서 사랑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마십시요, 자본이 많이 손상이 됩니다. 주의 징계는 한 번으로 족합니다. 징계를 재미 보면 안됩니다.
타락의 골짜기 징계의 골짜기가 아골 골짜기입니다.
회복의 문이 열려 집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 나타나는 곳입니다. 목자를 잃어버린 양이 저 혼자 헤메이다가 목자를 만나면 목자에게로 달려와 안깁니다. 목자는 그것을 귀엽다고 어깨에 메고 기뻐 돌아 옵니다. 이것이 기독교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디까지 타락하고 진창 만창이 되어도 징계를 맞아도 돌아 오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 1:18) 돌아만 오면, 주홍 같은 죄도 눈과 같이 성결해 지고 진홍같이 검붉은 죄라도 영원히 성결의 은혜를 입는 회복의 은총이 기독교의 특성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합니까?
소망의 문을 열어 준다고 하면서 어렸을 때에 15절에 새 인생이 시작 됩니다. 주님이 거기서 응대 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 오던 때와 같이 하리라. 계시록의 에베소 교회에 처 사랑을 말합니다. 소년의 우위와 결혼 때의 첫 사랑, 사람이 살 수 없었던 사막을 통과 할 때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통과 하던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였던 것, 어렸을 때 출애굽 후 광야를 통과 할 때
하나님과 우리 그리스도인들과의 관계, 출애굽 할 때, 소년 때의 우의,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다른 아무 것도 끼이지 않고 우리는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는 단계, 이것이 회복의 두 번째 단계 입니다.
십계명의 서론이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출 20:1-2) 어린양의 은혜 입니다. 보혈의 은혜 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첫 사랑을 요구 합니다.
3) 사랑의 회복
16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이 고멜이 원래 창녀를 아내로 삼아라 하니까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것을 따라 창기를 아내로 삼았어요, 이러니 집을 나갑니다. 은 삼십냥으로 다시 가서 사 오너라. 끝 없이 주님을 배반하고 떠나 가는 우리를 다시 사 옵니다. 이것이 사랑의 고통입니다. 배반의 고통을 당하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못 버리고 다시 사랑하시고 계십니다.
아가페의 사랑, 주권적 사랑이, 사랑의 병이 드신 하나님이 16절에 그 때사 간부 따라 잃어버릴 것 다 잃어 버리고 망할 때에 아무도 찾아 주지 않는데 본 남편이 받아 주니 간부보다 당신이 낫다는 것을 그 때 깨닫게 됩니다.
19절 20절 회복의 클라이막스입니다.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 장가를 드시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우리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세상 따라가고 연락 따라 갔는데 기어코 우리를 달래고 얼래고 첫 사랑으로 회복 시키고 내가 이제 너희에게 새 장가 들겠다. 새 언약 신약 성경을 줘서라도 대한민국에 태어난 저와 여러분들에게 새 장가를 들도록 해 주시겠다. 부부관계를 회복 하겠다.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이 뜨겁고 놀라운지 그래서 구약 학자는 구약의 요한복음이라. 그리고 요절은 2장 16절로 봅니다.
4. 십자가 앞에 나가자
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의 드라마입니까 이러한 드라마의 장소적 배경이 아골 골짜기라. 본래 아골은 범죄의 골짜기 타락의 골짜기요 심판이 진행 되었던 곳인데 소망의 문을 열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아골 골짜기가 어디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는 곳입니다. 우리의 겉자리를 들고 십자가 앞에 서시기 바랍니다. 징계를 다 벗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