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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혜미야의 눈물과 기도.
성경: 1: 1-5
4절-5절 "느혜미야가 이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지키는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느혜미야는 "이 말을 듣고"에서 "이 말이란" 자신의 동생 하나니가 예루살렘에 갔다가 에스라선지자가 귀환해서 쌓던 중이였던 성벽을 시기하는 사마리아의 사람들이 성벽이 완성되면 분명 바사왕을 배반할것이라는 모함의 고소를 올리므로 이것을 우려한 바사의 아닥사스다왕이 성벽쌓는것을 중단시키고 내가 지시할때가지 기다리라고 할때 , 이 조소를 받아진 받아진 사마리아 방백 르흠과 서기관 심새가 사람들을 몰고와서 그동안 쌓아 올렸던 성을 훼파하고 성문을 불사르고 또한 유대인을 능욕하는 그 광경을 목도한 느혜미아의 동생 하나니아가 바사로 돌아와서 수산궁에 있는 형에게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 동생이 해주는 말을 듣고 느혜미아는?
1,앉아서 웁니다.
"수일동안 슬퍼했다"고 합니다.
느혜미야의 눈물은 고난에 처해 있는 자기 민족을 향해 흘린 값진 눈물입니다.
시편 126편에 바벨론의 포로로 있던 자신들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여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린자중에 한사람이 바로 "느혜미야"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흘리는 눈물 하나님이 안보시는것 같으나 다 보십니다.
열왕기하 20장 3절에 보면 히스기야왕이 죽을 병이 걸립니다. 그때 이사야 선지가 찾아와서
"너의 집을 처치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이때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며 "심히 통곡하더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가 그 말을 해주고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했는데 5절에"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을 십오년을 더할것이며 내가 너와 이성을 앗수르왕의손에서 구원하겠고 내가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이 " 네 눈물을 보았노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신자의 눈물을 보십니다.
느혜미아의 눈물은 하나님 앞에 쏭는 영적인 눈물입니다. 육체적 눈물이 아닙니다.
고린도 후서 7장 10절 말씀 처럼 "하나님의 뜻데로 하는 근심의 눈물"입니다.
이와 같은 눈물은 반드시 시편 126편에 말씀처럼 "기쁨으로 그 단"을 거두게 합니다.
시편30편 11절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주께서 민족을 향해 우는 느헤미아의 눈물을 받으시고 다시 3차귀한의 길을 여실뿐만 아니라 성벽을 재건하게 하여 주시므로 "슬픔이 변하여 춤이되게 하셨고,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습니다"
시편 126편에1-3절에서"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때에 우리 잎에는 웃움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고 그들의 기쁨을 한편의 시로 담아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5:4)라는 주님의 말씀과 같이 먼저 애통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느혜미야의 애통!!, 사도행전 21장4절에 "바울의 애통!!" , 예레미아9장 1절에"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그렇게 되면 살륙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곡읍하리로다"(렘9:1)고 한 예레미아의 애통의 마음이 저와 여러분 속에도 솟아올라야 합니다.
점점 예수믿는 사람이 적어지는 이 도시를 보고 우리는 애통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향락사업이 번창하고, 갓바위가 관광단지로 개발된다는소식에 우리는 애통하는마음을 가져야합니다. 서문교회가 오늘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하여 복음을 외치지않고 벙어리되어 있는것에 대해 애통하는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신앙을 버리고 세상을 향해 달려가는 자녀를 둔분은 애통하는마음 가져야 합니다.
느혜미아 처럼 앉아서 하나님 앞에서 울어야 합니다..
운다는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힘으로 안된다는 고백입니다"
"인간의 힘을 모두 포기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아니면 안되겠나이다"의 고백이 눈물입니다.
느혜미아의 눈물은 귀중한것입니다. 그러나 울고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울고 있다고 해서 무슨 변화가 일어나는것이 아닙니다. 울던 느혜미야는 ?
2,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느혜미아의 기도는 ?
(1) 4절에 보면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드리는 기도"였고 5절에보면 "주여 간구하나이다" 즉 "간구"하는기도였습니다. 간구란 말은 기도중에 기도 제목을 정하여 그 제목이 이루어 질때까지 엎으려서 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느혜미아 2장 1절에 "아닥사스다왕 이십년 니산월"까지 기도를 한것같습니다. 2절에 보면 그때까지 그 얼굴에 수색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기스르월(12월)부터 니산월 (3-4월)까지 기도를 중단하지 않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더군다나 얼마동안 한지는 모르지만 금식까지 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느혜미야처럼 기도하길 원합니다.
민족을 위해서, 대구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되 때론 금식까지 하면서 애통하는 마음을 갖고 주님앞에 엎드렸으면 합니다.
스코틀렌드의 죠지 맥도널드는 "하나님을 배제하고 어떤일을 하면 그 일은 반드시 비참하게 실패할것이다 성공한다고 해도 비참하게 성공한다"고 했습니다.
기도없이 어떤 일이든 제데로 이룬다는것은 불가능입니다..
기도는 역사를 바꿉니다.
느혜미야 단 한 사람의 기도의 시작이 무너진 예루살렘성벽을 재건하는 대역사를 일으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느혜미아처럼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놀라운일이 일어납니다.
주후 4-5세기걸쳐선 산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를 우리는 잊지 못합니다.
어거스틴의 아버지는 신앙이 없고 방탕한 사람입니다.그러나 어머니는 믿음이 독실하고 총명하고 아주 경건한 부인이였습니다.
어거스틴이 머리는 어머니를 닮아서 아주 총명하고 이학교,저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수재였으나 행실은 아버지를 닮아서 설흔살이 될때까지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똑똑한 젊은이라면 누구나 다 로마로 가는것을 꿈꾸었는데 어거스틴도 예외가 아니라 로마로 가려고 했을때 그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로마로 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안그래도 방탕한 아들이 로마에 가서 어떤일을 저지를런지 몰랐기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 로마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어머니 모니카는 너무나도 상심이 되서 자기 목사님을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내가 아들을 위해서 30년을 기도해왔고, 또 로마로 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종래 이 아들이 로마에 가니 이것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라고 목사님 앞에서 통곡을 하면서 울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목사님은 "그렇게 많은 기도를 받은 사람이 그냥 죄가운데 있을 수는 없으니까 과히 낙심하지 말고 계속 기도하시라"는 격려의 말을 해 주었습니다.
급기야 마음에 놓이지 않았던 어머니는 아들을 따라 로마까지 따라갑니다. 그 아들이 북편에 있는 밀란으로 가자 그곳까지 또 따라갑니다. 그곳에서 암부로스라는 유명한 목사님을 어거스틴이 만나 그분의 설교를 듣고 어거스틴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33살때 밀란 교외에서 고요히 동산속에 앉아 있다가 "어서 책을 펴서 읽으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래서 성경책을 폈는데 로마서 13장 13-14절입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성경말씀을 받는 순간 어거스틴은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회개한후에 고향으로 돌아오다가 어머니가 작은 촌에서 병이들어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떠나기전에 어머니가 변화된 아들을 보면서 "내가 여기서 세상을 떠난다고 섭섭해 말라. 나는 내 기도를 이루었으니 나는 한이 없다 내 시체를 어디장례할까 염려하지 말라 고 하며 내가 네게 한가지 부탁하는것은 네가 제단에 나가서 기도할때마다 나를 기억해 달라"는 이 말한마디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의 기도를 많이 받은 어거스틴은 기독교의 역사의 큰 인물로 그 이름을 남깁니다.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 집니다.
하나님의 큰 일은 바로 기도하는 그 사람에게서 부터시작이 된다는것은 바로 성경이 증명하고 역사가 증명을 하지 않습니까?
느혜미아의 간구가 오늘 여러분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2),느혜미아는 기도를 시작하면서 먼저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5절을 보면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프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5절)
①느혜미아의 자신의 기도를 받으시는 분은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라는것입니다.
이 칭호는 당시 이교도들이 섬기던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땅에다 세운 인조의 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천지를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절대 주권의 "하늘의 하나님" 에게 기도한다는것입니다. 대상을 구분했고 또한 분명히 했습니다.
우리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유일신이요, 창조주시요, 전능자이시며,전지하신분이시며 무소부재하실뿐만 아니라 자존자이시며 ,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독생자를 보내신 자비로우신분이십니다.
지난시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기독교인의 30% 점쟁이한테가서 구한다는것이 말이됩니까?
요즘 종교다원주의 라고 하는 사단의 사상이 기독교를 잠식해오고 있습니다.
인도의 신학자 사마르타는 타종교들 속에도 그리스도가 얼마든지 있을수 있고, 그리스도만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도 타종교들과 세속 이념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하며 즉 타종교 속에서 그리스도를 찾고, 타종교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을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이 사상이 WCC에서 수용하고 있는 사상입니다.
그래서 얼마전 호주에 있었던 WCC대회때 우리 나라 정현경 교수가 참석해서 말하기를
" 본인은 우리가 성령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춤을 추는 동안 나와 더불어 여러분의 신발을 벗고 거룩한 땅위에 설 수 있도록 초대하고 싶습니다. 비천한 마음과 몸으로 우리가 피주물의 울부짖음과 그리고 그 안에서 성령의 울부짖음을 들으십니다.
오소서! 흑인 노예여자, 이집트인 하갈의 영,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착취당하고 버림받은 하갈의 영이여 오소서 (창16:12) 오소서! 우리아의 영, 그의 아내 밧세바에 대한 다윗왕의 탐욕으로 말미암아 전쟁터에 보내져서 죽임당한 장군의 영이여 오소서(삼하11:1-27)
오소서! 입다의 땅의 영, 그의 아버지의 신앙에 희생되어 '그가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하면서 하나님께 맺은 그녀 아버지의 약속때분에 불태워 죽은 입다의 딸의 영혼이여 (사사기 11:1-27).
계속 부르다가......
우리 역사에서 이들 억압된 한맺힌 영들은 성령이 생명을 위해 말하는 바 연민과 지혜를 통과시키는 매개자가 되어왔습니다. 이들 영혼들의 외침을 듣지 않고는 우리는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본인은 우리 모든 조상들이 여기 우리들에게 출현하여 여러분들을 불안하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영혼들은 우리에게 유형적이며 보여지도록 오신 성령의 초상입니다. 그 영혼들로 인해서 우리의 중심에 계신 성령의 구체적이고 유형적인 임재를 느끼고, 만지고,맛볼 수 있습니다."이것은 무당들의 접신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곳에서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느혜미아는 아니다, 다르다, 내가 기도하는 하나님은 "하늘의 하나님" 땅의 신들과는 다른분이시다라고 분명히 고백하는것입니다.
느혜처럼 우리의 신앙고백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느혜미아는?
②"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라는것이니다.
무엇이나 기도하면 못들어 주실것이 없는 , 어떤 절박한 문제든 다 해결해 주실 수 있는 "크신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앞에서 우리가 함부로 경거망동할 수 없는 "두려워해야할 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루터는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너무 인간의 머리속에 가두어 조그마한 분으로 생각하는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설마 그 병을 치료하실 수 있을까? 하나님이 정말 그 일을 해줄 수 있을까? 자기 머리로 하나님을 제한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에게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습니다.
알렉산더가 정복을 다 마치고 난 다음에 자기 심복들에게 필요한것이 있으면 달라는 대로 다 주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큰 집을 달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그 동안 전쟁때문에 너무지쳐서 1년동안 휴가를 달라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예쁜여자 10명을 달라고 구해 달라고 했습니다. 별난것을 다 구했는데 구하는대로 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알렉산더의 부하 중 데닉이라는 사람은 왕에게 나와서 대왕께서 정복한 나라중에 하나를달라고 구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감히 그런 소원을 말하리라고는 조금도 생각지 못했기때문입니다.
아무리 충성된 신하라고 하지만 어찌 나라를 구하겠습니까? 너무나도 큰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알렉산더가 껄껄 웃으시더니만 "그래 나라 하나를 네게 주마! 너는 나를 나라 하나라도 달라고 하면 줄 수 있는 큰 인물로 보았으니 내가 너에게 은혜를 베풀겠노라"고 했습니다.데릭은 알렉산더를 큰 인물로 보았던 것입니다. 나라라도 줄 수 있는 큰 분으로 보았다는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이렇게 큰 분으로 보고 있는가? 한 번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시편81편 9-10절 "너희 중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이방신에게 절하지 말지어다. 나는 너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했습니다.
입을 넓게 열라고 하였습니다.
윌리암캐리는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으라. 위대하신 하나님의 일을 구하라 그리고 위대하신 하나님이 위대한 일을 이루실것을 기대하라"고 하셨습니다.
크게 구하는 자가 큰 일을 합니다 작게 구하는 자가 작게 일합니다.
하나님을 작은 하나님으로 붙들어 메시지 마시길 바랍니다.
③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프시는 주님"이심을 느혜미아는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에 약속으로 주신것은 반드시 이행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무디는 "큰 바다가 마를지언정 하나님의 약속은 변치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기도속에 이 "하나님이 이미 해주신 언약"을 들고 나옵니다. 8-9절의 내용,즉 레우기 26장 33절, 신명기 30:1-4절의 약속을 들고 기도하면서 9절끝에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건데 기억하옵소서"라고 언약하신것을 기억하여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나오는 기도 힘이 있고, 응답이 빠릅니다.
또한 느혜미야는 "긍휼을 베프시는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긍휼"을 붙들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앞에 기도할때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이런기도는 주의 긍휼을 붙드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언약을 붙들고, 긍휼을 붙들고 기도할때 하나님은 결코 외면치 않으시고 들어주심을 볼수 있습니다.
영왕기상 21장을 보면 아합왕이 아내 이세벨의 충동을 받아서 얼마나 하나님보시기에 악독한 짓을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하나님이 오직했으면 엘리아를 통해서 3년 반동안 비를 내래지 않게 했을까요? 그래도 깨닫지 못하니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어서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자나 놓인자나 다 멸할것이요 또 네 집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처럼 되게 하고 아히야의 아들 바야사의 집처럼 되게 하리니 이는 네가 나의 노를 격동하고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까닭이니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영황기상 21장 27절에 보면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때에 그 옷을 찝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행보도 천천히 한지라" 하나님 죽을죄를 졌다는것입니다. 회개한다는 것입니다.이것은 하나님의 긍휼을 붙드는것입니다. 그러자 28절이하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합이 내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저가 내 앞에서 겸비함을 인하여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하십니다.
아무리 아합처럼 살았더라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무릎을 꿇으면 하나님의 마음이 그저 불쌍히 보셔 내릴 매 거두시는 자비로우신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민족의 고통을 보면서 운 느혜미의 눈물 우리도 그 눈물 머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울지만 않고 기도에 몰입하는 느혜미야의 모습을 통해 우리도 무너지고 있는 신앙, 무너지고 있는 도덕, 무너지고 있는 가정, 무너지고 있는 사회를 향해 기도에 몰입해야 할줄합니다. 그 기도하는곳에 "하늘의 하나님!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 계명을 지키는자에게 언약을지키시며 긍휼을 베프시는 하나님!"께서 다시 느혜미아를 통해서 성벽을 제건시킨것과 같이 기도하는자를 통해 오늘의 무너진곳을 다시 회복케 하는 역사를 일으켜 주시는 주님이심을 믿고 느혜미아처럼 한주간 살아보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드립시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옥련지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