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엡 1: 15 - 23 바울의 기도 ( 4 )
엡 1: 21 이 세상과 오는 세상 -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자기 오른 편에 앉게 하심으로써 그를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셨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의 모든 이름들 위에 뛰어난 이름이 되셨다. 빌립보서 2: 9-11은 말씀하기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하였다.
물론 이 사실은 아직 불완전하게 보인다. 이 사실은 아직 다 이루어진 것 같지 않다.
불신자들은 예수의 이름을 무시하고 있고, 이방 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영광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 오른 편에 앉으셨다는 사실은, 그의 권세가 어떠하시며 그의 영광이 어떠하심을 증거 한다.
무지한 세상이 그를 인정치 않고 그에게 합당한 영광을 돌리지 않는 것뿐이지, 그는 지금 아버지와 함께 동등한 권세를 가지시고 동등한 영광을 누리신다. 그는 지금도 진실한 주의 백성들을 통하여 영광과 찬송을 받으신다.
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는 세상에서 활동하고 있는 천사들을 가리키는 말인 것 같다. 그들 중 어떤 천사들은 선하지만, 어떤 천사들은 악하다.
베드로전서 3: 22은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고 말씀하였다.
이것은 하나님과 적대하는 초자연적인 악한 세력이다(6: 12, Gnilka, Caird, Barth).
네 가지 명칭이 특별한 순서나 격차, 혹은 직급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당시에 횡행(橫行)하던 영지주의 교사들을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Cole, Wood).
* 골 1: 16 -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바울이 네 가지 초자연적 적대 세력을 언급한 것은 네 가지 적대 세력을 설명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그러한 적대 세력을 지배하시고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2]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여기서 '세상'으로 번역된 '아이오니'(*)는 '세대'(this age)라는 의미로 공간적인 개념이 아니라 시간적 개념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하지만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단순히 시간적인 개념으로만 사용되지 않고 현재의 세태와 다가올 세태 및 생활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 마 12: 32 -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 갈 1: 4 -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 딤전 6: 17 -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 눅 20: 35 -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 엡 2: 7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이와 마찬가지로 본문에서도 현재의 세대와 앞으로의 세대 양자를 모두 가리키는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본 절의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은 현재와 미래의 변화하는 세대와 세상을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모든 세대를 주관하시는 분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시고 오른편에 앉히심으로 모든 이름보다 뛰어나게 하셨다.
엡 1: 22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오른 편에 앉게 하심은 모든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심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유의 주이시다. 만물은 그의 발아래 있고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시다.
만물 중에는 인류의 원수인 사탄도 포함된다. 사탄은 마침내 그리스도의 발아래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의 발아래 굴복될 것이다.
시편 110: 1은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고 증거 하였다.
또 로마서 16: 20은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아래 상하게 하시리라.'고 말씀했다. 사탄이 그리스도의 발아래, 곧 우리의 발아래 굴복되는 때는 바로 주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그 때이다.
1]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본문은 시 8: 6의 인용이다.
'복종하게 하시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페탁센'(*)은 만물이 그분에게 달려 있음을 시사한다.
만물 즉 초자연적인 세력과 모두 세대의 인간들, 그리고 온 우주는 그리스도의 주권에 복종해야하며 그를 통해서만이 참 생명과 존엄성을 회복하게 된다.
* 시 8: 6 -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2]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바울은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비유한다.
머리는 그리스도가 교회에 생명을 부여하시는 분이며, 교회의 주인이 되심을 시사한다(Bruce, Foulkes).
교회는 그리스도를 적대하는 모든 세력에 대해 대항할 권세와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이다(Wood).
앞서 언급한 모든 만물에 대한 그리스도의 주권과 교회에 대한 주권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백성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교회를 힘이 아닌 사랑과 온유, 거룩함으로 지배하시며 통치하신다(Bruce).
지금은 모든 이들이 그 앞에 복종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재림의 때가 되면, 인류의 원수 사탄이 그 앞에 굴복되는 그 때가 되면, 예수 그리스도는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다.
그 때 우리는 요한계시록 5 장의 찬송을 부르게 될 것이다. 요한계시록 5: 13은 증거하기를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라고 했다.
그러면, 높임을 받으신 그리스도와 교회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첫째로,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머리이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다.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다.'는 원어(에도케 케팔렌 휘페르 판타 테 엑클레시아)는 '교회에게 만물 위의 머리로 주셨다.'라고 직역할 수 있다.
'만물 위의 머리'라는 표현은, '머리'라는 말이 '우두머리, 통치자, 주'라는 뜻임을 보인다.
에베소서 5: 23과 골로새서 1: 18에도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라고 표현하였는데, 그것들은 다 통치적 의미로 볼 수 있다.
즉, 그리스도께서 만물의 주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교회의 머리이시므로, 교회는 그에게 절대 순종해야 한다는 뜻이다.
교회의 참된 지휘자는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머리'라는 말은 유기체적 의미도 가진다. 머리와 몸은 불가분리(不可分離)의 관계이다. 머리가 없는 몸은 죽은 것과 같다.
에베소서 4: 15-16은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한다.'고 표현하였다.
이 말씀은 이런 유기체적 의미를 보인다. 그리스도와 교회는 생명적 관계에 있다. 교회는 잠시라도 그리스도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생명이요 힘이시다.
엡 1: 23 만물 안에서 -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
1] 교회는 그의 몸이니
본문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생명을 수여받은 유기체임을 나타낸다(Bruce, Wood).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때만이 유기체로서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깊은 진리를 보인다. 예수 그리스도는 한 개인이지만, 또한 새로운 인류이시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5 장에서 그를 '마지막 아담' 또는 '둘째 사람'이라고 표현하였다(45, 47절).
* 고전 15: 45-47 - 45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창 2:7)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인류가 선택되었다.
* 엡 1: 4 -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며 정돈된다.
* 엡 1: 10 -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는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 한 새 사람을 이루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
* 엡 2: 15 -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6 장에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로서 내려 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라.'고 말씀하셨다(37-40절).
2]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본 절에 대해서는 세 가지 견해가 있다.
Ⓐ 교회가 그리스도를 충만케 한다는 의미이다(Hendriksen, Calvin, Lenski).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 즉 교회와의 연합을 통해서 완전하게 될 수 있다.
Ⓑ 본 절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충만하심이라는 의미로(Blaikie)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그리스도 안에 영속적(永續的)으로 거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 골 2: 9 -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 본 절은 교회가 그리스도로 채워지는 것을 의미한다(Wood, Bruce).
이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
그리스도는 교회 안에 내재하시며 교회로 하여금 충만케 하셔서, 교회가 자신의 분량까지 완전해지도록 인도하시며 역사하신다(Foulkes, Wood, Bruce).
* 골 3: 16 -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또한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라고 표현된다. 이것은 또 무슨 뜻인가?
'충만케 한다.'는 원어(플레로오)는 '충만케 한다.' 또는 '완전케 한다, 완성시킨다.'는 뜻을 가진다. 즉, 이 단어는 '충만'이라는 뜻과 함께 '완성'이라는 뜻을 가진다.
'충만케 하시는'이라는 원어(플레루메노스, 현재 중간태 분사)는 정확히 번역하면 '자신을 위해 충만케 하시는' 혹은 '자신을 위해 완성시키시는'이라는 뜻이다.
교회의 충만과 완성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측면에서 이해될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충만한 성취요 완성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개인적으로나 세계적으로 교회를 통해 충만히 이루어지고 있다.
창세전의 하나님의 선택과 2천 년 전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성령께서 죄인을 중생시키시고 성화시키시고 마침내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이 모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교회를 통해 충만히 이루어지고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전도, 곧 지역 복음화와 세계 복음화의 기지(基地)일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자체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충만한 성취인 것이다.
교회의 충만과 완성은 수적인 면에서도 이해된다. 하나님의 선택된 자들 전체가 다 구원받을 것이다. 그것은 수적으로 충만한 구원이다.
요한계시록 7: 9은 증거하기를,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라고 하였다.
(1) 대상 -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십사만 사천의 인을 친 후에 흰 옷 입은 무리는 전 세계에서 나옴을 알 수 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은 '셀 수 없는 무리'를 연결하는 표현이다. 이렇게 요한이 중복적으로 표현한 것은 구원의 문이 모든 민족에게 열려져 있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Morris).
* 계 5: 9 -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① 각 나라 - 국가를 초월
② 족속 - 민족을 초월.
③ 백성 - 신분을 초월
④ 방언 - 언어를 초월.
⑤ 흰 옷 입은 무리는 전 세계에서 나옴을 알 수 있다.
⒜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필요 없다.
⒝ 복음이 땅 까지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2) 흰 옷 입은 셀 수 없는 큰 무리.
① 여러 견해.
⒜ 십사만 사천은 들림 받은 직후의 유대 그리스도인이고, 셀 수 없는 무리는 천년 왕국의 보좌 앞에 있는 이방 그리스도인들이다. 개벨라인[A. C. Gaebelein], 스코필드[C. I. Scofield] 등이 주장한다.
⒝ 십사만 사천은 유대 그리스도인들이며, 셀 수 없는 무리는 유대와 이방 그리스도인들이다. 따라서 십사만 사천은 큰 무리들 가운데 포함된다. 벵겔[J. A. Bengel], 존슨[A. F. Johnson] 등이 주장한다.
⒞ 십사만 사천이나 셀 수 없는 무리들은 모두 유대와 이방의 그리스도인이다. 단지 이방인들이 유대인보다 더 많은 숫자를 이루고 있다. 알포드[Henry Alford], 비더울프[W. E. Biederwolf]등이 주장한다.
② 저자의 견해 : 흰 옷 입은 무리는 십사만 사천과 다르다. 큰 환난을 통과한 자들로 천년 왕국에 들어간 변화된 성도들이다.
⒜ 십사만 사천과 셀 수 없는 무리의 비교.
구 분 : 십사만 사천의 무리 : 흰 옷 입은 셀 수 없는 무리
장 소 : 지상에서 일어난 사건 : 천상에서 일어난 사건
시 기 : 환난 전반기 : 환난 이후의 사건[7:14]
내 용 : 구원에서 예정[인 맞음] : 실현된 구원의 모습
인 원 : 십사만 사천[한정된 수] : 셀 수 없다[무 한정된 수]
대 상 :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 전 세계의 많은 성도
특 성 : 사역적인 무리 : 구속사적인 무리
⒝ 흰 옷은 그리스도 앞에 설 때 성도들이 입는 옷으로 구속의 은혜로 의의 승리를 찬양하는 예복이다. 마귀를 대적할 때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지만, '그리스도의 신부'로써는 성결의 흰 옷을 입어야 한다.
* 엡 6: 11-17 - 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 계 19: 8 -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 종려 가지를 드는 것은 승리와 기쁨, 축제를 상징하고 있다.
⒟ 셀 수 없는 것
* 창 13: 16 - 땅의 티끌 -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찐대 네 자손도 세리라.
* 창 15: 5 - 하늘의 별 -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 창 32: 12 - 바다의 모래 -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정녕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3) 모습 :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① 흰옷의 의미
'흰 옷'은 정결과 승리를 상징하는 옷으로 이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아 구속받았음을 나타낸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아 구속(救贖)함을 받은 자들이 피 뿌린 옷을 입고 의인들이 된 자들을 말한다.
다른 천사가 인을 치니 흰옷을 입고 종려가지를 들고 나온 많은 사람들이 있다.
⒜눈 * 시 51: 7 -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양털
* 사 1: 18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우유
* 창 49: 12 - 그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 이는 우유로 인하여 희리로다.
⒟ 씻음[회개]
* 단 11: 35 - 또 그들 중 지혜로운 자 몇 사람이 쇠패하여 무리로 연단되며 정결케 되며 희게 되어 마지막 때까지 이르게 하리니 이는 작정된 기한이 있음이니라.
⒠ 순결, 성결
* 단 7: 9 -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이가 좌정하셨는데 그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
② 손에 든 종려나무 가지.
'종려 가지'는 일반적으로 승리나 기쁨의 상징으로 사용된다(Trench, Vicent, Alford).
* 대하 3: 5 - 그 대전 천장은 잣나무로 만들고 또 정금으로 입히고 그 위에 종려나무와 사슬 형상을 새겼고
* 겔 41: 20 - 땅에서부터 문통 위에까지 그룹들과 종려나무들을 새겼으니 성전 벽이 다 그러하더라.
⒜ 초막절의 초막
* 레 23: 40 -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 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칠일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 느 8: 15 - 또 일렀으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산에 가서 감람나무 가지와 들 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무 가지를 취하여 기록한 바를 따라 초막을 지으라 하라 하였는지라.
⒝ 번영
* 시 92: 12 -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발육하리로다.
⒞ 아름다움
* 아 7: 6-8 - 6 사랑아 네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어찌 그리 화창한지 쾌락하게 하는구나. 7 네 키는 종려나무 같고 네 유방은 그 열매 송이 같구나. 8 내가 말하기를 종려나무에 올라가서 그 가지를 잡으리라. 하였나니 네 유방은 포도송이 같고 네 콧김은 사과 냄새 같고
⒟ 승리
* 요 12: 13 -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 계 7: 9 -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 솔로몬의 성전
* 왕상 6: 29-36 - 29 내외소 사면 벽에는 모두 그룹들과 종려와 핀 꽃 형상을 아로새겼고 30 내외 전 마루에는 금으로 입혔으며 31 내소에 들어가는 곳에는 감람목으로 문을 만들었는데 그 문 인방과 문설주는 벽의 오분지 일이요 32 감람목으로 만든 그 두 문짝에 그룹과 종려와 핀 꽃을 아로새기고 금으로 입히되 곧 그룹들과 종려에 금으로 입혔더라. 33 또 외소의 문을 위하여 감람목으로 문설주를 만들었으니 곧 벽의 사분지 일이며 34 그 두 문짝은 잣나무라. 이 문짝도 두 짝으로 접게 되었고 저 문짝도 두 짝으로 접게 되었으며 35 그 문짝에 그룹들과 종려와 핀 꽃을 아로새기고 금으로 입히되 그 새긴데 맞게 하였고 36 또 다듬은 돌 세 켜와 백향목 두꺼운 판자 한 켜로 둘러 안뜰을 만들었더라.
성경과 역사가 증명하는대로, 교회는 쇠퇴하는 단체가 아니고 수적으로 성장하고 충만하여져 가는 단체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구원받은 자들로 충만케 하고 계신다. 그것이 교회의 정체이다.
결론적으로
20절부터 23절까지의 말씀에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정돈할 수 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의 역사로 말미암아 지금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오른 편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한다.
예수의 이름은 모든 천사들과 모든 인간들의 이름들 위에 뛰어나신 이름이시다.
세상은 그를 모를지라도, 우리는 그의 이름을 높이고 그의 영광을 찬송해야 한다.
둘째,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되심을 바로 인식하고 그에게 절대 순종해야 한다.
그는 우리의 참된 지도자이시며 통치자이시다.
그러므로 교회는 오직 신구약 66권의 말씀에 계시된 대로 그의 뜻에 겸손히 복종해야 한다.
교회의 본분은 오직 그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이다.
셋째, 우리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라는 이 놀라운 사실을 깨닫고 몸의 충만과 완성을 위해 힘써야 한다.
이것은 우리 개인의 영적 성장과 교회 전체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또한 지역 복음화와 세계 복음화의 사명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건립해야 하고 충만케 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우리로 말미암아 힘 있게 완성되도록 그에게 충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