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 나오는 ‘열둘’이라는 숫자와 ‘사흘’이라는 숫자의 상징성에 대해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 성전에서 토론 활동을 시작하신 때가 열두살입니다. (‘열둘’이라는 숫자는 상징성을 갖고 있습니다.) 복음을 선포할 사명을 받은 복음 선포자들의 숫자도 열둘입니다(마태 10,1-2.7 참조). 육신에 따른 예수님의 부모가 아들을 잊어버렸다가 하느님의 지혜와 은총으로 충만한 예수님을 사흘 만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찾은 것은 마리아와 요셉이 게으르게 빈둥거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사흘만에 찾았을까요?) 그것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던 주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위하여 (십자가의) 수난을 이기고 사흘만에 부활하시어(참조: 마태 26,61; 27,63) 거룩한 영광 속에 하늘 보좌에 오르시리라는 (것을 미리 알려주는) 표징입니다.(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2,63.)
참고로, 암브로시우스는 오늘날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트리어에서 로마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암브로시우스는 372년 경에 서로마제국 황제의 관저가 있는 밀라노의 집정관(지방장관)이 되었습니다. 암브로시우스는 374년에 세례를 받고 그해 12월 7일 주교품을 받았습니다. 암브로시우스는 신자들을 가르치는 동시에, 신학을 배웠습니다.
390년 테살로니카에서 군중이 폭동을 일으키자,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수천 명을 죽였습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390년 성탄절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밀라노 대성당으로 들어오려고 하자, 암브로시우스는 공적으로 참회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성당에 들어올 수 없다고 황제를 가로 막았습니다. 황제는 어쩔 수 없이 그냥 돌아가 다음 공적으로 참회를 한 다음 부활절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암브로시우스가 397년에 죽기 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는 선하신 주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암브로시우스의 생애」 45,2)
예수님의 어머니가 “얘야, …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자, 예수님께서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48-49)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을까요? 여기에 대해 오리게네스와 존자 베다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 계시면서 그 성전)을 당신 아버지의 성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고 당신께서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오리게네스 『루카 복음 강해』 18,5.)
참고로, 오리게네스는 185년경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어린 오리게네스한테 성경을 암송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아버지는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193년-211년) 때 순교했습니다. 오리게네스는 문법교사로서의 활동을 그만두고, 그리스도교 교사로 활동했습니다. 그의 명성은 아주 높았습니다. 오리게네스는 데키우스 황제(249년-251년) 때 극심한 고문을 받고 석방되었지만, 후유증으로 254년에 죽었습니다.
신성의 본질에서 하나요 서로 나뉠 수 없는 거룩한 삼위일체의 거처가 서로 다른 곳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성전에서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 영원하신 당신의 권능과 영광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나자렛으로 돌아온 뒤로는 부모에게 순종하셨습니다. 이것은 겸손의 본보기이며, 당신의 참된 인성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존자 베다 『복음서 강해』 1,19.)
참고로, 영국에서 태어난 베다(672년경)는 어린 시절에 성 베드로 수도원에 들어가 살다가 30살 때 사제품을 받고 평생 수도원에서 살았습니다. 베다는 수도원에서 매일 부르는 성가와 성경 공부에 정성을 다했습니다. 배우고 가르치고 쓰는 것이 그에게는 항상 큰 기쁨이었습다. 베다는 735년 중병에 걸려 주님 승천 대축일에 죽었습니다. 9세기에 사람들은 베다를 ‘존자’, 즉 ‘존경스러운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단테는 베다를 ‘태양이 빛나는 하늘에 있는 위대한 스승’이라고 칭찬했습니다( 단테 「천국」 10,131).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콜로 3,13)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우리 모두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지내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성가정을 이루고 살도록 초대합니다.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하더라도, 어떤 상황에서도 성가정을 이루며 살려고 끊임없이 노력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