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어떤 걸 써야 할까요?
저는 이렇게 답해드리고 싶어요.
자신이 '가장'쓰고 싶었던 이야기를 써야 한다.
중요한 건 '가장'입니다.
문제의식에서 소재가 나오는 법이거든요.
제가 수업에도 말씀드렸던,
글을 쓸 때는 예를 들어
주제를 '인생'으로 잡지 말고,
내 인생에서 있었던 일 중 '가장'좋았거나, '가장'슬펐거나, '가장'인상 깊었던 한 사건에 대해 쓰고
그 이야기로 시작해 마무리를 인생의 의미로 확장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시작은 하나의 점이에요.
그 점을 이어서 내용에 선을 잇고
마무리는 면을 만들어 내는 것이죠.
좋은 글은 자세한 글이에요.
뜬 구름 잡는 글, 뭘 말하려는지 모르겠는 글, 글쓴이 자신은 드러내지 않은 채 큰 말만 쓰여있는 글,
이런 건 좋은 글이 될 수 없죠.
원래 수업 시간에 같이 얘기 나누려고 했던 질문을 남깁니다.
여러분들도 생각해 보셔서 댓글로 남겨주시면 좋겠어요. 제가 먼저 남깁니다.
1) 나는 글을 쓸 때 어떤 모습인가?
글의 시작은 한 줄의 메모나 단상으로 시작해요.
한글의 빈문서 1을 열고 한 두 줄을 적습니다.
그다음 눈알을 굴리고, 옆을 쳐다보고, 인스타그램을 열어요.
지인들의 사진에 '좋아요'를 누릅니다. 다시 닫고, 글로 돌아와요.
몇 글자 끄적이다 삭제합니다. 메일함을 열어요. 온 메일도 없어요. 괜히 스팸메일함 비우기를 해봅니다.
다시 글로 돌아와요. 깜빡 잊고 주문 안 한 것들이 하필 생각납니다. 쿠팡에 접속해 로켓프레시 주문을 하고 다시 글로 돌아옵니다.
생각해요. '작가는 무슨...' 자책하고 작가를 때려치우자 생각한 다음 다른 작가의 책을 읽습니다.
멋진 문장에 감탄하며 자극을 받아요. 다시 글로 돌아와요. 안 써져서 머리를 쥐어뜯어요.
이렇게 글은 일상의 하찮은 것들에 매번 져요. 매번 좌절해요. 그런데 중요한 건
'다시 글로 돌아온다는 거예요.' 결국은 쓴다는 거예요.
글쓰기는 일상에 매번 지면서도 결국은 이기는 겁니다. 그렇게 한 편의 글을 완성시키는 겁니다.
2) 글을 쓰는 나는 글을 쓰지 않는 나와 어떻게 다른가?
글을 쓰는 나는 좀 더 사려 깊어져요. 깊이 응시하고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가만히 앉아 써야 하니까바쁜 일상 속에서 유일하게 멈춰서 가만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게 되죠.
쓰는 시간엔 좀 더 느려지고요. 그런 제가 좋아요.
쓰지 않는 날들은 그냥 일상을 빠르게 흘려보내기만 하죠. 정신없고요. 일하는 기계 같기도 하고.
맨날 바쁘게 검색만 하다 살다가 천천히 사색하게 되는 게 글쓰기예요. 그게 가장 큰 다른 점인 것 같아요.
걱정은 많이 하면 안 좋은데, 고민은 많이 해 보는 건 좋은 것 같아요.
글 안 쓰고 그냥 바쁘게 살면 걱정스러운데,
글 쓰는 동안에는 주제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더 잘 쓰고 싶어서도 고민해요. 그건 좋아요.
글 쓰는 사람, 좀 멋지기도 하고요.
멋진 글을 쓰기 위해 또 고민하고요. 그런 것들이 다 좋더라고요.
3)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이건 제가 여러 번 말씀드렸죠.
이해하기 위해 쓴다고요. 이해할 수 없었던 일과 사람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씁니다.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그것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하고요,
생각을 정리해야 합니다. 생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건데, 글은 눈에 보이는 거라
내 생각을 글로 쓰면 내 생각을 볼 수 있는 거라서, 저도 제 생각이 납득이 돼요. 그게 이해겠죠.
많은 것들을 이해하게 되면
일단 화가 덜 나고요. 다음에 비슷한 일을 겪었을 때 더 잘 대처할 수 있게 되고요.
무엇보다 제 마음이 편해져요.
받아들이기 위해, 이해하기 위해 씁니다.
4) 글쓰기는 나에게 무엇인가?
글쓰기는 제가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 같아요.
남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일 수도 있고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일 수도 있고요.
어쨌든 둘 다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기록'은 기억보다 힘이 세서
잘 남겨 놓은 기록이 우리를 더 잘 살아가게 만들어 준다고 믿어요.
좋은 글을 쓰면 좋은 사람이 된다고 믿습니다.
글쓰기는 저에게 생을 잘 사는 가장 명확한 방법 같아요.
주저리주저리 적어보았습니다.
자, 마지막 첨삭 파일을 올립니다. 참고하시고요.
여러분도 이제 마지막 수업 때 나눌 편지도 잘 써보세요!
파이팅!
첫댓글 임희정 작가님! 몸이 아프셔서 출근도 못하셨다니 걱정입니다. 그런데 또 이렇게 긴 글을 써 놓으셨네요. 우리들을 생각해 주시는 작가님의 마음에 감동입니다. 약이랑 음식 잘 챙겨 드시고 얼른 힘내시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충분히 쉬시는 것이 중요할텐데요... 어제 수업 시간에 [계속쓰기] 책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이 그 작가님의 상황이 그려져서 였을 겁니다. 가정주부라는 것, 내 손으로 해내야 할 일들이 줄줄이... 그런 상황이 임희정 작가님도 마찬가지시겠지요. 그래서 저는 여성 작가님들을 좋아합니다. 임희정 작가님처럼 모든 것을 잘 해내시느라 아프게 된 과정들이 떠올라서 짠합니다. 푹 쉬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목요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금순님 감사해요! 저는 계속쓰기 책 중에 제일 좋아하는 문장이 이거예요. '책임져야 할 일들이 있기에 요령과 장비를 갖춘다' 그동안 요령과 장비없이 그저 열심히만 해오다 아파버린 저에게 엄청 강한 울림을 주는 문장이었어요. 그래서 그 요령과 장비를 잘 갖춰보려고 노력중입니다. 금순님도 그러셨으면 좋겠어요. 우린 책임져야 할 일과 사람이 있으니까요. 삶의 우선 순위에 '나'를 두는 노력도 하며, 다른 사람 보살피듯 나도 돌보며 그렇게 또 살아가야지요. 매번 따뜻한 응원 덕분에 힘낼 수 있어요 감사합니다. 잘 회복할게요!^^
@임희정 작가님! 감사합니다~ 주위 사람들은 잘 모르기도 하더라고요~ "요령과 장비" 저도 좋아서 밑줄 그었습니다. 100% 좋은 책,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께서도 기운차리시길 기원합니다.
1) 나는 글을 쓸 때 어떤 모습인가?
고삐가 풀린 듯 자유로운 모습이 됩니다. 늘상 시간이 부족해서 컴퓨터 앞에 앉을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과제처럼 생각되거든요. 이번 여름은 너무 더워서 한낮에는 둘째를 출근시켜놓고 카페에서 둘째를 기다리는 세시간 동안이 글쓰는 시간이라서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답니다. 유튜브를 열어서 집중에 좋은 피아노 명곡을 켜서 이어폰을 꽂으면 글쓰기 자세가 완성됩니다. 브런치, 카페, 블러그를 한차례 순례하고 나서 글쓰기를 시작합니다.
2) 글을 쓰는 나는 글을 쓰지 않는 나와 어떻게 다른가?
글을 쓰는 나는 조금 더 착해지는 것 같습니다. 솔직해 지기도 하지요. 실수도 글에 적고 실수에서 깨달은 사유도 쓰게 되고요. 좋은 글을 쓰려면 좋은 삶을 살아야 된다는 말을 믿기에 생활에서도 실수를 줄이고자 애쓰게 됩니다. 글을 쓰게 되면 글 속에 내가 보이고, 내 생각과 실수들이 보이는 것 같아요.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도 하게 되고요.
3)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사실은 글을 쓰고 싶으면서도 이 질문을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생활에서 쌓인 감정을 글로 풀어서 감정쓰레기통이라고 하면, 이건 정말 아닌 것 같고요... 좋게 표현해 보자면, 글을 쓰면 삶이, 감정이 정리되는 느낌이 듭니다. 늘 바쁘기만한 일상이 시간순으로 사건순으로 정리가 되는 느낌요. 글쓰기를 하면서 늘 생각해야할 화두입니다.
4) 글쓰기는 나에게 무엇인가?
나 혼자만 있을 수 있는 시간입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자기만의 방'같은 느낌이지요. 사람에게는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지요. 온 가족이 나만 바라보고 나에게 무언가를 해주기를 바라는 가족시스템이라 제게는 '글쓰는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하답니다. 매시간 엄마곁을 맴도는 둘째도 "엄마 글쓰는 시간"이라는 말에는 혼자 놀기를 해주거든요.
1) 나는 글을 쓸 때 어떤 모습인가?
우선 글쓰기 직전까지가 매우 어수선합니다. 지금은 과제나 숙제 형태로 글을 쓰는 단계니까 항상 일정에 쫓깁니다.
시험 기간엔 뉴스마저 재미있듯 마감의 압박이 있는 그 때가 원래 딴 짓이 가장 재미있는 법.
글쓰기를 위해 노트북을 열면 우선 익스플로어 창 위쪽에 떠있는 탭들을 눌러보게 됩니다. 넷플릭스의 나는솔로를 잠깐 틀었다가, 티빙의 벌거벗은 세계사도 잠시 보고, 바둑 유튜브 채널도 들릅니다.
평일 저녁에는 핸드폰에 야구 중계를 틀어놓고 폰을 거치대에 세워둡니다. 쓰기는 써야 하는데, 머리속에 뭔가 단서는 있는데 정리가 안되니 착수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일단 첫 줄을 쓰기 시작하게 되면 탄력을 받아서 줄줄 써내려 갑니다. 에세이 수업 이후에는 어차피 나중에 또 고칠 기회가 있으니까 하는 생각으로 좀 더 편하게 쓰게 되었습니다.
시작이 어려운 건 역시 글쓰기도 마찬가지더라구요.
2) 글을 쓰는 나는 글을 쓰지 않는 나와 어떻게 다른가?
가장 큰 차이는 문화 소비자에서 생산자가 된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거에요.
글을 쓰지 않을 때는 취미든 놀이든 더 잘, 형식을 갖추어, 세련되게 소비하기 위해 배우고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글을 쓰면서는 일상적인 상황이나 고난한 사건, 크게 관심 없었던 남들의 이야기에도 관심을 가지게되고, 생각하게 되고 어떻게 이야기를 한번 만들어 보면 재미있으려나를 계속 고민하게 됩니다.
그래서 글쓰는 나는 호기심을 계속 유지하게 되요.
3)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지금은 재밌으니까 씁니다.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스트레스를 받거나 글이 안써저서 괴롭거나 하는 단계는 아니에요.
글을 쓰는 건 일종의 놀이 같아요. 창의적인 놀이. 그러니까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노는 거긴 한데, 그런데 그냥 막 놀기만 하는 것은 아니고 조금 의미있게 놀고 있다 정도?
아 몰라 그냥 써. 아직은 이렇게 편한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4) 글쓰기는 나에게 무엇인가?
여행보다 연애보다 재미있는 일. 세상에 재미있는 일이 많겠지만 지금까지 해본 일 중에 아마 가장 오랫동안 질리지 않고 할 것 같은 일.
글태기야 오지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