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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문화관광해설사 관광현장 답사 결과보고서 이 명 철
본 답사는 한국관광공에서 초청하고 해당 지자체에서 50%를 지원하여 우수사역사문화해설자를 각 광역시도에서 1명씩
추천하여 일본의 나라, 오사카, 교토, 고베지역의 역사와 문화 문화재 등을 답사하는 여행이었습니다. 전북에서는 제가 추천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저를 추천해준 전북문화관광해설사회 회장님을 비롯한 임원진과, 한국관광공사 사장님, 그리고 고창군 이강수 군수님, 문화관광과 관계관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이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마음으로 졸필이지만 이글을 올립니다.
또한 역사 문화에 관심을 가지신 모든 분들께 다소나마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첫날(2013.6.9)
출국 수속은 간단하였다. 모두 여행에는 도가 튼 사람들이기에 가능한 것 같았다.
“짐은 몇 번 창구에서 붙이고, 몇 번 창구로 오세요.”가 끝이었다. 다들 알아서 검색대를
통과 하여 지정 창구에서 여유롭게 대기하였다.
정확히 10:40에 비행기는 서서히 이륙하였다.
공항의 모습이 보이다가 세상이 보인다.
캠코더를 통하여, 창을 통하여, 비행기 날개에 가려 일부만 보이는 구름 아래 세상은 사람은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자연이었다. 보이지 않는 사람, 나의 존재란 어떤 의미일까.
처음에는 세상이라도 보이더니, 이제 세상마저 보이지 않는다. 구름 위를 날고 있는 그 위로 구름과 파란 하늘만 보인다. 저 하늘이 우주인가 보다.
기내식으로 아침밥을 먹었다.
일본에 착륙하였다.
‘친절한 것 같으나 차가운 나라, 질서와 친절이 몸에 벤 나라’, 일본에 도착한 것이다. 발로 걸어서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고, 사진을 찍고, 기록하고를 부지런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서서히 무거운 중력으로 나를 누르는 것 같다.
전용차량을 타고 칸사이 국제공항에서 일본 최대의 청동불상을 모신 동대사(東大寺) 및 사슴공원까지는 1시간 40분이 걸린다고 한다.
차 안에서 비로소 인사 및 본인 소개가 시작되었다.
조병천 가이드의 소개 기법이 보통이 아니다. 신뢰가 간다.
가이드는 각자 인사 및 소개 시간을 2-3분이라고 제한을 두었다.
‘여기서도 스토리텔링이 시작되는 것 같다’라는 생각에 실없는 미소가 나온다.
“저는 전북 고창 선운사에서 10여 년 동안 해설하고 있는 이명철입니다. 사찰에서 해설하고 있는 만큼 한국불교와 일본불교가 어떻게 같고 어떤 면이 다른가를 비교해가면서 공부하겠습니다.”라고 인사했다.
중간에 점심을 먹었다. 현지식 뷔페였다.
도쿄에 사는 큰딸 집에 왔을 때, 큰딸이 해주는 밥상만 받았고, 아다미(熱海)온천 등에서도 주인이 차려주는 밥상에서 식사를 하면서도 조금씩 나오는 그 밥상이 다 먹기에는 결코 적은 음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었다. 여기 식당에서도 마찬가지다. 밥도 반찬도 맛있고 풍족하였다.
동대사(東大寺)는 사슴공원을 거쳐서 들어간다.
관광객이 인산인해다. 사슴들이 강아지처럼 사람들을 따라다닌다. 먹을 것을 달라는 것일 게다. 잘못 건드리면 뿔로 받치거나 차인다고 한다. 조심스럽게 사슴 옆을 지나간다. 1000여 마리가 넘는 사슴이 그늘 밑에 한가로이 배를 깔고 있거나 사람 곁에 있다. 우리 안에 있는 사슴만 보았던 나로서는 신기하였다.
동대사란 일본어로 '도다이지', 즉 동쪽에 세워진 큰 절이란 뜻이다. 목조사찰도 일본 최대요, 그 안에 청동불상도 일본 최대로 유명한 절이다.
신라 의상대사의 제자였던 '심상대덕'이 백제 '양번스님'의 초청으로 화엄불교를 강설하게 되었고, 이에 성무천왕은 747년부터 동대사를 짓기 시작했으며, 총책임자는 고구려인 복신이 맡았다 한다. 그 외 대불 주조도 백제 사람이며, 대불전 건축은 신라인 등, 생각해보면 모두 고구려 백제 신라인들이 주도하여 이룩한 절이라 아니 할 수 없겠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745년에 쇼무천왕(聖武天王)의 발원으로 로벤(良弁)이 창건하였고, 창건한 동기가 전염병을 막고 천왕의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세웠다는 설을 제기한다. 백제인 행기스님의 도움으로 세워졌다는 이야기는 꺼져가는 불처럼 가물가물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허공장보살 비로자나불 여의륜관음보살
청동 비로자나불은 앉은 키가 16m이며 얼굴만 5m, 손바닥이 310cm라고 하는데 손바닥 안에 16명이 올라갈 수 있고, 청동이 무려 250톤이나 들어갔다고 한다.
대불전 안으로 들어갔다. 큰 부처님이 설법인 아니면 여원인을 취하고 계셨다. 가이드에게 부처님 명호를 물어보았다. '비로자나불'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비로자나불은 '지권인(智拳印)을 취하는데, 일본의 비로자나불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비로자나불 왼쪽에는 여의륜관음보살상(如意輪觀音菩薩像)이, 오른쪽에는 허공장보살상(虛空藏菩薩像)이 협시로 앉아계셨다. 허공장보살은 지혜와 자비를 무한히 베푸는 보살로 준말로 허공이라고도 하는데, 허공장구문지법(虛空藏求聞持法)이라 하여, 허공장보살을 본존으로 하는 수행법이다. 두뇌를 예리하게 하고 기억력을 좋게 한다고 한다.
고창 선운사의 비로자나불 일본 동대사의 비로자나불
비로자나불(毘盧遮羅佛)이란 어떤 부처인가.
석가모니부처님의 열반 후, 불교의 발달 과정에서 의문점이 발생하는 것이었다.
첫째는 시간적인 의문이고, 둘째는 공간적인 의문이었다.
첫째 시간적인 의문이란, 석가모니부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에만 부처님이 이 세상에 존재했으며, 그 이전의 영원한 과거나, 입멸 이후 영원한 미래에는 부처님이 존재하지 않는단 말인가? 하는 의문이다.
둘째 공간적 의문이란, 석가모니부처님은 인도 외에 다른 나라는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 세계에 두루 존재하지 않는단 말인가 하는 모순이었다.
이와 같은 시간적 공간적 의문점을 해소하기 위하여 ‘비로자나불’이란 부처님을 의인화 시킨 것이다. 즉, ‘석가모니부처님은 세상이 열리면서부터 비로자나불로 계시다가 이 세상에 오셔서는 화(化)하여 석가모니부처님이 되셨고, 열반 후에는 다시 비로자나불로 돌아가셨다’는 의인화가 그것이다.
이렇게 되면 영원한 과거에도, 영원한 미래에도 부처님은 영원히 이 세상에 두루 계시는 것이 된다. 그래서 비로자나불은 석가모니부처님의 청정하고 항상 변하지 않는 법신(法身)인 것이다. 법신 비로자나불이 열심히 수행하는 모습이 보신(報身) 노사나불이며, 이 세상에 오신 모습이 화신(化身) 석가모니불인 것이다. 그래서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을 法ㆍ報ㆍ化 삼신(三身)이라 부르며, 일심동체인 것이다. 이와 같이 법ㆍ보ㆍ화 삼신불체계를 화엄사상에 기인한 신앙체제라 한다.
그런데 일본의 동대사 박물관에는 대일여래(大日如來)가 좌상(坐像)으로 계셨다. 촬영금지로 되어있어 사진은 찍지 못했다.
대일여래란 부처님을 신(神)으로 믿는 밀교(密敎)에서 비로자나불을 바꿔 부르는 명호이다. 밀교에서 비로자나불의 다른 이름인 대일여래란 우주를 구성하는 육대(六大)로서 삼라만상 그대로가 대일여래의 모습이며 일체의 활동이 대일여래의 활동이며 현상세계가 곧 제불보살이란 것이다. 그리고 이때의 대일여래와 석가여래는 동체(同體)란 것이다.
동대사의 비로자나불도 박물관의 대일여래로 보아 밀교적 차원이 강한 것 같은데, 내 얕은 소견으로는 결론을 말하기에는 훨씬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西의 광목천왕(廣目天王) 北의 다문천왕(多聞天王)
관음상 왼쪽에 北의 다문천왕, 허공장보살 오른쪽에 西의 광목천왕이 무서운 모습으로 불전을 외호(外護)하고 있었다.
제석천의 권속인 사천왕과 범천의 권속인 금강역사 등은 본래 불교의 신들이 아니고 불교가 발생하기 1500여년 이전의 고대인도의 토착신앙인 힌두교와 합쳐진 브라만(한역 바라문)교의 신들이었다. 즉, 불교와 융합된 인도의 토착신앙의 신들인 것이다.
불교는 이와 같이 각 나라에 전파되면서 그 나라의 토착신앙의 신들을 수용하여 불교 화하였다. 중국에서는 도가(道家)신앙인 칠성과 현왕(불교에서 시왕(十王) 등을 수용하였고, 우리나라에서는 산신과 독성(단군신앙, 혼자 깨달았다 하여 독성) 등을 수용하였다.
그리하여 불교 본래의 신인 부처님, 보살, 나한 등은 전각(殿閣:대웅전, 무량수전, 극락전, 문수전, 원통전 등) 안에 모시고, 불교와 융합된 토착신앙의 신들은 앞이나 뒤, 옆에 당(堂)이나 각(閣)이라 하여 불법을 보호하는 외호신(外護神)으로 모신다(칠성당, 산신각, 독성각 등).
그런데 일본은 같은 전각 안에, 즉 한 건물 안에 이러한 외호신들을 다 모시는 것 같았다.
그뿐 아니라, 부처님의 16제자 중의 하나인 '빈주루존자'가 일본인의 독특한 신(神)의 상(像)으로 모셔져있는데, 자신이 아픈 부위와 같은 곳을 문지르면 효과가 있다고 믿고 어찌나 문질러 쌓는지 목신상이 반질반질하다.
일본에서는 부처님을 ‘호도께’라 한다. 이는 조상신을 의미한다. 그들은 사람이 죽어서 50년이 지나면 ‘호도께’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죽어 50년이 지나면 제사를 지내지 않고 신사에 ‘호도께’로 모신다.
또한 그들 신사(神社)에 모셔진 신(神)을 우지가미라 하여, 고대 씨족이 봉제(奉祭)하는 신을 지칭한다.
일본인들은 새해를 맞으면 절이나 신사(神社)에 참배를 한다. 이는 태고 적부터 자연히 발생한 생활습관이며, 신사는 그들의 원초적 신앙이다. 우리나라에서 조상에게 차례를 모시는 것과 같은 의미다. 따라서 일본 절에서는 이를 수용 만하였다.
그러니 일본인들이 절에 와서 부처님께 절하고, 절과 함께 있는 신사에 그들의 조상신 ‘호도께’에게 참배하는 것은 그들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생각된다.
일본은 외래문화를 정신없이 수용하면서도 종국에는 자기화하고 마는 문화능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능력이 외부로 나갈 때는 지나친 국수주의(國粹主義)로 흐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가이드를 따라 동대사 뒤에 있는 신라((가라쿠니) 신사로 갔다. 이 신은 역병(疫病)을 다스리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 역병이 돌면 신의 노여움으로 알고 제(祭: 마츠리)를 지내는데 일본인들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하여 우리라도 가서 잠깐 보고 왔다.
동대사란 큰 절 안에 부처와 보살,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고, 또 일본의 조상신들인 여러 신사가 같이 세워져 있는 일본식 불교 신앙, 이는 불교와 일본인 신들의 적절한 융합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토착문화를 기반으로 점차 외래문화를 수용하여 다양한 문화구조를 지니고, 이 같은 문화구조의 다양성을 다시 분화하여 종파불고를 형성하게 되나 전체적으로는 각 종파가 지난날의 문화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다시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여 전통을 확립해 나간다. 예를 들면 신화를 바탕으로 수용한 불교가 비불신앙(秘佛信仰)의 형태로 존속하고 있음이 그와 같은 것이다.
그리하여 일본은 두 종교가 상생의 길을 걸어오면서 아름다운 종교의 화합을 이루어냈다.
이에 관하여 한국문화는 전통은 유지하되 하나의 전통적 기반이 다양한 문화요소를 모두 수용하여 한 줄기의 문화기반을 확립하기 보다는 불교 이전시대, 불교시대, 유교시대, 기독교 시대, 등으로 분리되어 이들은 각각의 전통을 이어왔다. 그리하여 각 종교가 상생 화합하지 못하고 불협화음만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것 같아 일본의 종교화합이 부러운 마음까지 드는 것이었다.
동대사 박물관 안에서는 사진 한 장 찍지 못하고 나와 교토로 이동하여 호텔에 들어가기 전에 저녁 식사를 할 식당의 특성을 설명하며 모두 24접시를 먹어야 하는데 20접시를 먹으면 거의 짐승의 수준이라는 웃음소리를 한다. 그래서 나는 식당에 들어가기 전에 “어디 오늘 짐승 한 번 되어볼까!”하고 농 섞인 말을 하였더니 더러는 웃는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생긴 식당에서는 처음 먹어본다. 정신 바싹 차려야 먹을 것 같았는데, 조병천 가이드의 자상한 설명으로 아무런 문제없이 먹을 수 있었다. 짐승 수준의 절반 정도 밖에 먹지 못하였다.
호텔로 들어갔다. 나는 광주광역시의 임윤수 선생님과 같은 방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이국에서의 하룻밤을 넘기고 있었다.
다음은 둘째날, 세계문화유산 금각사와 고태사, 고태사에서의 다도 체험과 세계문화유산 청수사 등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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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일본 보면 우리랑 비슷한게 참 많이 보이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