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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내게도 분명 그런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흑백 텔레비전으로 밖에 남아 있지 않은 그런 사진들과 아주 희미하게 빛이 바래서 비가 오는 것처럼 금이 간 필름처럼 산산이 부서져 버린 기억들이 있었다.
아, 그때 나는 어떻게 살았던가, 춥고 보잘 것 없고 가난하고 궁핍하던 어린 시절과, 뺀질거리며 지독하게 말도 안 듣던 철없는 시절의 내 모습과, 언제나 머리에 수건을 쓰고 분주하시던 어머니.
함박눈이 내려앉는 새벽에도 식어가는 아랫목 이불 속에 파묻혀 귓가로 듣던 그 소리, 어머니가 아침식사를 마련하시기 위하여 혼자 가마솥 뚜껑을 열고 닫으시는 소리, 나무를 뚝뚝 분질러 아궁이에 넣으면 타닥타닥 나무가 타는 소리, 살강에서 그릇을 꺼내 씻는 소리, 된장국이 끓는 소리, 이윽고 코끝을 스치던, 밥에서 나는 구수한 냄새와 숟가락 젓가락 놓는 소리.
아무도 어머니를 도와드리지 않았다. 철없는 어린 것들은 그저 이불속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추운 겨울날 새벽에 혼자 일어나 어머니는 물을 길어와 밥을 짓고 된장국을 끓이고 상을 차리셨지만 어린 나와 동생, 누나도 별로 어머니를 도와드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 새벽같이 일어나 밥 짓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농사일하고 시보리 뜨고, 어머니는 얼마나 혼자 각다분하셨을 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당을 쓸어라, 물을 길어와라, 닭이나 돼지에게 밥 줘라, 청소해라 하는 어머니의 명령들을 우리들은 잘 듣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십 초반의 나이에 과부가 되어 혼자 6남매를 키우신 어머니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어머니는 그 작은 몸으로 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해내신 것일까.
지금처럼 세탁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냉장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처럼 보일러가 있어서 그저 수도꼭지만 틀면 더운 물이 나오는 그런 세상도 아니었다. 지금처럼 그저 전자레인지의 스위치만 누르면 엄청난 화력이 생기고, 버튼만 누르면 저절로 밥을 해주는 신기한 기계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요즘 같은 시절에도 4식구 밥을 먹고 나면 설거지도 한참 걸리고 씻어야 할 그릇도 많다. 그런데 어머니와 6남매가 먹는 한 끼 식사는 얼마나 거창했을까. 아마도 밥 한 번 먹으려면 물을 길어다가 아궁이에 불을 때고, 쌀과 보리를 씻어 안쳐야 하고, 된장국 하나만 끓이려고 하여도 불을 끌어다 뚝배기를 놓고 호박이나 고추 등 이것저것을 넣어야 할 것이다. 그릇은 몇 개이며 숟가락 젓가락은 얼마나 많아야 하는가. 아마도 그렇게 먹는 한 끼 식사는 지금으로 보면 매일 매일이 무슨 잔칫상이나 생일상 차리듯 해야 했을 것이다.
육남매가 벗어놓는 옷은 어떻게 빨았을까. 세탁기도 없었던 시절이 아닌가. 거품도 잘 나지 않는 빨래비누마저 아껴가면서 추운 겨울에도 맨손으로 그저 방망이로 두드리고 비벼가면서 빨래를 하셨을 것이다. 그렇게 온종일 빨래하고 밥 짓고 청소하고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하고 나면, 허리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셨을 게다. 아마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조차 모르게 밤이 되면 어머니는 또 바느질을 하고 시보리를 뜨고 하시며 저절로 눈이 풀려 졸리는 몸을 가누지 못하셨을 게다.
그럴 때마다 라디오를 틀어놓고 남인수나 황금심의 노래를 들으셨으리라. 지금 이렇게 내가 노래를 좋아하는 것도 사실 그런 어머니를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남인수의 청아한 목소리가 다시 울린다.
다시 한 번 그 얼굴이 보고 싶어라.
몸부림치며 울며 떠난 사람아,
저 달이 밝혀주는 이 창가에서
이 밤도 너를 찾는 이 밤도
너를 찾는 노래 부른다.
(추억의 소야곡)
그 시절의 노래를 들어 보면 내가 요즘 듣는 소설과도 많이 닿아 있다. 일제강점기와 6.25 한국전쟁을 겪으며 지독하게도 고통스럽게 살아가던 사람들의 이야기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타향을 떠나 객지를 떠도는 사람들의 유랑기,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 헤어진 연인이나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 거기에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을 치는 생존 현장의 모습.
그래서일까, 옛날 노래 속에는 삶의 애환과 정서가 처절하게 녹아 있는 것 같다. 가사 속에 유난히 눈물, 이별, 슬픔, 고향, 추억이 많고 또한 애절한 사랑노래도 많다.
문득 “가난하다고 사랑을 모르겠는가”하고 노래하던 신경림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그랬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때 그 시절의 사람들이 지금의 사람들보다 더 애절하고 순수하고 정열적인 사랑을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가끔 그들의 사랑법을 요즘의 그것과 비교해보고는 쓴 웃음을 짓곤 한다. 그래봤자 부질없는 일이고 헛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문득 그런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배가 고파본 적이 없어 키도 크고 피부는 하얗고 아주 잘 생겼다. 너무 먹으면 살이 찔까봐 먹는 것을 가려 먹는데도 길거리에 가면 온갖 음식이 넘쳐나서 음식 귀한 줄을 모른다. 겨울에도 패딩점퍼 입고 부츠신고 나가면 춥지 않고, 택시만 타면 어디든 갈 수 있다. 손에는 언제나 휴대폰이 있어서 실시간 연인의 위치를 알 수 있다. 그러니 하고 싶은 말은 언제든 할 수 있고 카페에 앉아 느긋하게 연인을 만나면 된다.
옛날 사람들은? 치마저고리를 입었으니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웠겠다. 화장품인들 제대로 사용했으랴. 가무잡잡한 얼굴에 늘 음식이 부족하여 피부는 거칠고 머리카락은 푸석푸석했을 것이다. 누구를 만나려면 편지를 쓰고 약속장소에 가서 마냥 기다려야 한다. 연락할 방법도 없고 못 만나도 할 수 없다. 웬만하면 걷고 아니면 전차를 타고, 다방에 가면 담배연기 자욱한 그 속에서 여인은 수줍고 사내는 주종관계(主從關係)에서의 주인(主人)같다. 삶은 척박하고 어깨의 짐은 무겁다. 그래도 사람 귀한 줄 알고 어른 공경할 줄 알았다.
어쩌다보니 내가 읽은 소설들은 대개 여성이 주인공이었다. 내가 그런 취향인지 아니면 옛날소설들은 다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소설 속에서의 여성들은 거의가 얌전하고 순정적이고 지순하고 애달프다. 그러면서도 어떤 때는 강인하고 현명하고 굳세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나는 남자이지만 여성에 대하여 많이 알게 되고 느끼게 되었다. 내가 젊었을 때만 하여도 나는 나약하다는 것, 가냘프다는 것, 힘이 약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몰랐고 느끼지도 못했었다.
아마도 내가 남자였기 때문이리라. 책을 들거나 가방을 들거나 무거운 것들을 한 손으로 들고도 힘든 줄 몰랐고, 무거운 것을 번쩍 들어 옮기거나 발로 나무를 밟아 우지끈 부러뜨릴 때에도 힘든 줄을 몰랐었다.
하지만 이제 내 나이 육십오 세가 되었다. 올해는 명실 공히 정부가 인정하는 공식적인 노인(老人)이자 어르신이 된 것이다. 하지만 말이 어르신이지 요즘은 나이가 들었다고 어르신 대접을 해주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그런 대접을 받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나이가 들자 나는 힘이 없어졌다. 이제 20킬로그램짜리 쌀 한포대도 쉽게 들어 올리지 못하고 버둥댄다. 그러다보니 내가 여성이 된 기분이 든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여성이란, 얼마나 가냘픈 존재인가. 가느다란 팔, 작은 손목, 좁은 어깨. 그 몸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가 우선 힘겨운 일이다.
나는 우선 그런 남녀 간의 신체적인 차이를 모르고 살았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내 어머니가 그랬고 누나들이 그랬고 이제 내 딸들이 전부 여자이건만. 나는 왜 그렇게도 여자들을 이해하지 못하였던고.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여성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얼마나 남자들에 의해 차별받고 짓밟히고 업신여김을 받아왔는지를. 그래서 저 불과 100여 년 전만 하여도 지아비는 하늘이고, 서방은 받들어 모셔야 할 존재이며 감히 그 뜻을 거슬러서도 안 되는 그런 세상 속에서 살아왔음을. 그래서 나는 느낀다. 어머니, 그 가냘픈 존재가 없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아니 나 뿐만 아니라 우리 6남매는 이 세상에 살아갈 가치도 없는 존재였음을 안다.
내 아내가 그 가녀린 손목으로 그 수많은 일을 해내는 동안 얼마나 그 몸이 힘들었을까 하는 점을 나는 이제야 이해하고 있다. 그 작은 몸으로 견뎌내야 했을 유산의 고통과 출산의 위대한 여정을 나는 이제야 조금은 이해하고 반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이 가야 할 길이 전혀 공평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불리한 것에 분노하고 세심하게 반응하고자 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이 여성임에 나도 여성의 편임을 인식하고 세상에 맞서, 남성에 맞서 함께 대응하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아버지로서의 사명임을 또한 믿는 것이다.
일제시대와 → 6.25동란과 → 60~70년대의 가난을 거쳐 우리는 드디어 2,000년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들의 뿌리는 여전히 저 가난과 모진 풍파를 헤치고 우리를 길러낸 세대이기에 그 분들의 은공을 저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저 불운하고 슬프고 불쌍한 세대의 피와 눈물이 없이 우리가 저절로 존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오늘의 우리는 그들의 과거를 잘 모르지만 우리가 모른다고 해서 그들의 과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춥고 긴 겨울날 옛 노래를 들으며 나는 어머니의 무명옷과 치마폭을 생각한다. 5척 단구(短軀)의 그 작은 몸으로 감싸 안고 붙안으며 애지중지 키워낸 생명이 바로 우리이다. 그 배운 것 없고 가난하며 궁핍한 여인의 강인한 생명력이 없었던들 오늘의 우리 형제들은 없었을 것이다. 아, 이 얼마나 숭고하고 거룩한 모정(母情)이었으랴. 누가 여인을 약하다고 했는가. 철없고 오만하고 어리석은 것들은 모두가 사내들이었느니, 너희 두꺼운 낯가죽으로 감히 여인을 평하지 말지어다.
나는 3일 내내 그렇게 옛 노래를 들었다. 듣고 또 듣고 질리도록 들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그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궁상맞고 구질구질하여 싫다고 진저리를 치는 옛날 한국 소설들을 들으며 나는 내 어머니와 그 시대 여인들의 삶과 그들의 한과 슬픔을 공유하며 간간이 눈물을 훔치기도 하였다(2021.1.4.).
밥
나 어릴 때 울어머니
밥 한 그릇 이불 속에 넣어 두셨지
군에 가고 없는 자식
밥 한 그릇 가마솥에 넣어두셨네
늦은 밤 술에 취해 들어가도 울어머니 반겨주셨네
따뜻한 손 내미시며 다정하게 물으셨네.
밥 먹었느냐
(간주)
아, 다시 듣고 싶은 그 음성
그 따뜻한 손 그리워라
지금도 내 가슴에는
식지 않은 밥 한 그릇 남아있네
추운 세상 힘들어도 밥 한 그릇 남아 있네
넘길 때마다 목이 메이는
그 뜨거운 목숨 한 덩이
넘길 때마다 목이 메이는
그 뜨거운 목숨 한 덩이
식지 않고 아직 남아 있네
식지 않고 아직 남아 있네
그리하여 이 가곡은 2024. 2. 29. 채보를 하였고, 2025. 3.15. 구광일작곡가의 편곡으로 피아노 3단악보가 완성되었으나 아직 녹음을 하지는 못하였다.
https://youtu.be/LRt4WMvxLAE?si=zH9PtroRs1f9Yv6s
첫댓글
작가님.
참으로 추억속에 한 페이지를
역어주셨습니다
양떼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