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주 즉위
조선정권은 오랫동안 외척들의 손에 농락되어 민중생활은 말못되게 쇠패하여졌다. 조씨(趙氏) 김씨(金氏)가 서로 견고 틀며 조정에 암운이 떠돌던 철종 14년에 왕이 하세하시고 무자한지라.
근친엔 아무 이을 자가 없음으로 대왕 대비 조씨는 왕가에 가장 최고 친권자(親權者)로 철종 임종 시에 대왕대비께서 그 자리에 임하시고 철종이 운명하심에 대보(大寶)를 거두어 가지시고 대위 이을 자를 물색하더니 경평군(慶平君) 욱(昱)은 탐학한 죄로 유배가고 덕흥대원군 사손 이하전(李夏銓)은 모반죄로 주육을 당하여 왕자 왕손을 가진 각 군가에서는 모두 공포를 느끼었다.
오직 시정에 방랑하던 흥선군(興宣君) 정응(晸應)도 아들이 있건만 무서워 숨기고 드러내지 않다가 조대비의 조카 조성하(趙成夏)의 소개로 흥선군은 몇 번 조대비를 가 뵈인 일이 있었는데 그때 조대비께서는 흥선군의 제2자 애명에 명복(命福)을 물으시고 잘 기르라 부탁하신 일이 있는지라. 흥선군은 더욱 두려워하며 허락의 대답을 올리지 못하였다.
그때 조대비께서 시국에 대한 정견을 흥선군에게 물으심으로 흥선은 숨김없이 자기의 포부를 아뢰었다. 조대비는 더욱 마음에 합당한 줄 생각하시고 계시더니 및 철종이 운명하심에 대비께서 시원임 대신을 모와 놓으시고 친서로 흥선군 제2자 명복을 익성군(翼成君)을 봉하여 익종(翼宗)의 종통을 이으라 칙교를 내리시고 원상(院相) 정원용(鄭元容)을 명하여 사왕을 모셔 오라 명하시니 그때 상신들과 외척들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왕가 최고 친권자의 명령이라 누가 거역하리오 외척 김씨들도 한 말도 없었고 조씨는 더군다나 자기네 일이라 말할 것도 없고 또 제1년 고하신 당년 81세 되신 노재상이 동의하시니 아무 이의가 없었다. 원상 정원용은 영의정 김좌근(金左根)과 승지 민치상(閔致庠) 등을 거느리고 의장을 갖추어 가지고 흥선군 사저에 익성군을 맞을 새 때는 곧 철종 14년 12월 13일이다.
창덕궁인 정문에서 즉위식을 행하였으니 이가 곧 이태왕이시고 또 고종(高宗)이시다. 즉위 시에 한 일화가 있으니 왕은 복건을 쓰고 담청포를 입고 궁에 들어가 살 때 백성들이 보려고 도립함에 호군들이 밀쳐 넘어지는 자 있는지라.
왕은 원상을 불러 내가 궁에 들어감이 무슨 뜻인고 원상이 대답하되 왕이 되심이다. 왕은 백성을 다스리는 자이다. 백성들이 나를 사랑하여 보려고 하는 것을 금하지 마시오. 원상이 이에 백성들의 첨청을 허락하였다. 왕의 나이 12세라 어림으로 대비수렴하시고 익종은 황부라 하고 헌종을 황형이라 하고 철종 황숙이라 하고 흥선군을 높여 대원군이라 칭하며 정권 총섭케 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