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24일 주일 설교
성탄주일
제목:
마태의 예수 탄생 이야기
https://youtu.be/MucBj2Rw2Vk?feature=shared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태복음 1:1, 21~23
설교 목적
예수님의 탄생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소개할까? 마태가 전해주는 예수 탄생 이야기를 살펴보고 그 특징을 생각해 볼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님의 탄생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설교 개요
1. 문제제기: 예수님의 탄생은 어떤 의미일까?
2. 마태가 들려주는 예수 탄생 이야기
3. 새 이스라엘인 교회
*************
1. 문제제기: 예수님의 탄생은 어떤 의미일까?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성탄절이 되면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뻐한다. 성탄축하예배를 드리고 성탄 캐롤을 부른다. 이렇게 우리가 성탄절을 지키면서 우리는 무엇을 기념하는 것일까?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을 어떤 의미로 이해하는 것일까?
2023년도 성동구 성탄절 연합예배에서 나온 성탄의 의미는 무엇이었던가? 구유에 나신 예수님은 겸손의 상징이며 그것은 결국 땅에 평화를 위한 시각적인 메시지라는 것이다.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다툼이 사라지며, 예수님처럼 자신을 낮춰야 이 땅에는 평화가 임한다고 설교자는 성탄의 의미를 소개했다.
환영사와 격려사에서 드러난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우리의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으므로 성탄절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광고 카피라이터처럼 성탄절에 예수님을 믿기로 선택할 것을 촉구했다.
예수님의 탄생은 현재 기독교인들에게 위와 같이 대략 두 가지의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십자가의 죄사함이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므로 인간의 절대적인 필요인 죄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신 날이라는 것이며, 두번째는 예수님의 탄생 자체가 낮고 천한 모습이며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사랑하시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겸손과 희생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죄사함과 구원은 신약성경에서 중요한 주제다. 그리고 자신을 낮추어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섬김과 겸손을 본받자는 권면은 사도들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자기 아들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요한서신의 핵심이다. 이런 것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기리는 성탄절의 의미로 강조되어 왔다.
그런데 예수님의 탄생을 소개하는 마태와 누가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풀어가는지 생각해 보자. 나는 이번 설교에서는 마태의 예수탄생 이야기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2. 마태가 들려주는 예수 탄생 이야기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족보로부터 시작된다. 그 족보에서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소개된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시조이며, 다윗은 이스라엘 왕국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예수님이 그 두 사람의 자손이라고 소개되는 이유는 그 두 사람과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어떤 약속을 예수님이 이루실 것이라는 암시가 담겨 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언약을 성취하시는 분으로 소개된다. 아브라함의 언약은 하나님이 그와 그의 후손을 통하여 천하만민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아브라함 부부에게 많은 자손을 주셔서 이스라엘이라는 큰 민족으로 성장하게 하신다. 그리고 그 민족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셨는데 그것은 아브라함의 언약을 갱신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제사장의 나라가 된다는 시내산 언약은 사실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삼아서 천하만민에게 복을 주리라는 옛 언약을 실현하시려는 것이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열두 제자를 사도로 세우시고 새로운 이스라엘인 교회를 일으키신다. 그리고 교회에게 새로운 가르침을 주시고 새 언약을 맺으시면서 그들을 모든 민족에게 보내시며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신다. 전에 아브라함을 통해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라는 하나님의 축복선언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통하여 실현되는 것이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 소개된다. 다윗의 자손에 대한 예언은 이사야에 잘 나타난다. 그것은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돋아나 세상 나라들 위에 높이 설 것이며 만국이 그에게 와서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예언이다(이사야 11:10). 이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분이 장차 온 세상을 다스릴 왕이 되실 것이라는 기대를 낳았다. 마태는 예수님을 그렇게 다윗의 자손으로서 만국을 다스리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시는 분으로 소개한다.
마태복음의 시작 부분에 나오는 족보는 사실 왕들의 계보이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러 온 동방의 박사들은 예루살렘에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하고 질문을 한다. 바로 이 질문 때문에 헤롯왕은 베들레헴에서 영아살해를 저지르며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한다.
그런데 마태는 예수님의 애굽 피난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호세아의 예언을 인용한다. 그것은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러내었다’(호 11:1)는 말씀이다. 여기서 내 아들은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마태는 예수님이 애굽에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소개하면서 이스라엘의 경험을 동일하게 하신 것으로 소개한다. 그렇게 하면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개한다.
여기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중요한 주제가 나온다.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지만 실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와 변화산에서 기도하실 때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으로 반복하여 강조된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말은 시편 2편에 있는 것처럼 세상 나라를 다스리는 분이라는 뜻이다: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시편 2:6~8
이렇게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왕은 이스라엘의 왕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며, 그분은 만왕의 왕이 되신다. 이것이 마태가 들려주는 예수님 이야기의 중심 주제다.
그러면 마태가 들려주는 이 탄생 이야기는 오늘 우리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3. 새 이스라엘인 교회
교회는 전통적으로 예수님의 탄생을 우리의 구원을 위한 대속의 죽으심을 목적으로 하는 긴 여정의 시작으로 이해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탄생이야기에서 낮아지심을 강조했으며, 또한 예수님의 탄생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에게서 어떤 교훈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마태복음을 읽어보면 마리아와 요셉에 대한 강조점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묵묵히 순종하는 모습으로 소개되며 그런 순종이 결국 어떤 이야기를 완성하는가에 마태의 강조점이 있다.
사실 마태가 소개하는 예수님의 이름 풀이에는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라고 죄사함에 대한 언급이 있다. 그리고 임마누엘 예언을 인용하여 예수님의 탄생을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하심’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스라엘 사람인 마태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죄로 인하여 그들의 성전을 떠나시고 그 백성은 포로로 끌려갔고 열방의 조롱거리가 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이 사는 시대도 과거와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그들은 포로생활이 연장되는 시절이라고 자신들의 시대를 이해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다시 돌아오셔서 자기 백성과 함께하시는 것이며, 그렇게 되려면 먼저 그 백성의 죄가 용서되어야 한다. 사실 예언자들이 이것에 대하여 예언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에게 돌아오신다는 예언이 그것이다. 복음서 기자들이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여 세례 요한을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돌아오실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스라엘로 돌아오실 때 그 모습은 아기였으며 그 위엄은 나사렛 촌에서 나온 청년 예수였다. 그 결과 예수님은 자기 백성에게 배척을 받으셨고 죽임을 당하셨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마태는 교회가 새 이스라엘이 되었다고 소개한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그들을 반석으로 삼아 교회를 세우셨다. 그리고 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 세상에 빛이 되며 세상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제사장 나라가 된다.
마태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되었다고 소개한다. 그리고 그것은 새 이스라엘인 교회를 통해서 실현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이 창조 때부터 세상을 향하여 생육, 번성, 충만을 선포하시고 그 뜻을 이루시려고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스라엘을 건지시며 언약을 맺으셔서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세상을 이루게 하신 것을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바로 이 목적을 위해서 아브라함도 다윗도 부름을 받았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바로 그 뜻을 이루시려고 오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세상을 가리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라고 부르셨고, 그 나라의 실현이 임박했으니 그 나라에 동참하라고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사람들에게 전하고 가르치라고 명하셨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님의 탄생을 그 자체로만 볼 것이 아니라, 성경 이야기의 길고 긴 흐름 속에 면면히 이어져 오는 하나님의 계획과 경륜 속에서 바라보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보면, 예수님은 단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세 이래로 아브라함의 자손들과 함께하시면서 갖고 계신 그 위대한 경륜에 동참하는 사람들을 모아 하나님 나라에 동참하게 하시는 분이다.
예수님의 탄생이 기쁜 소식인 이유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기 때문이며, 그 약속의 핵심은 하나님의 백성을 회복하셔서 세상 만국을 복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 이스라엘로 부르심을 받고 새롭게 지으심을 받았음을 기뻐하면서 주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열어 주시는 새로운 세상이자 새로운 미래를 상속할 것을 기대하고 기뻐한다.
예수님의 탄생이 가져온 결과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서 그 탄생이 가지는 의미는 달라진다. 우리가 충무공의 탄생을 축하하는 이유는 그의 탄생이 특별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삶이 이루어낸 결과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이유는 그 일생이 만들어낸 결과가 놀랍기 때문이다.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통해서 바로 그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에서 족보와 예언의 말씀들을 읽을 수 있게 된다.
마태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어떻까?
‘예수님의 탄생이 왜 기쁜 일입니까?’
그러면 아마 마태는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까?
‘그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로 온 세상에게 복을 주시고 온 세상 만국을 다스리게 하시려고 자기 백성을 회복하시고 그들을 통해서 그 약속을 완성하시는 분이 태어나셨기 때문입니다. 그 언약의 백성이 바로 교회입니다! 이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이 대답에 공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