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명 평전
제9장 언론은 정도를 걸어야 한다
2. 자유언론의 길을 밝힌 세계언론인 대회
문선명은 1970년대부터 세계 곳곳에서 신문을 창간해 사람들의 의식과 생활수준을 높이는 일에 온 힘을 기울였다. 나아가 전 세계의 언론인들이 한데 모여 자신의 위치를 되돌아보고 급변하는 지구촌 시대에 언론은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토의하기 위해 세계언론협회(World Media Association)를 만들었다.
언론협회는 전 세계의 자유 언론이 함께 만나 언론의 도전적, 윤리적 문제들을 재검토하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다양한 사건들의 보도와 분석, 분쟁 지역에서 언론인들의 안전 등과 관련된 문제 등을 토의 하기 위해 1977년에 만든 단체다. 이곳에서 매년 개최한 세계언론인대회(World Media Conference)는 명실공히 전 세계의 언론을 아우르는 거대한 대회였다.
놀라운 사실은 전 세계의 수많은 언론인들이 신문과 방송, 잡지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해 왔으면서도 이 대회에 참석할 때까지 서로가 개인적으로 만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마치 외따로 떨어진 섬처럼 고립되어 지내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펜을 무기로 삼아 밀접하게 관계를 맺어 오면서 세계적 불의에 대항했다. 만약 그들이 진즉에 만나 언론이 가야 할 올바른 길을 모색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었다면 세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었을 것이다.
세계언론인대회는 두 가지 이유에서 중요했다. 첫째, 이 대회는 결코 어떤 것에 의해서도 방해 받지 않았다. 둘째, 자유언론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관련된 문제들을 최대한 폭넓게 다루었다. 대회가 열릴 때마다 적게는 16개국에서부터 많게는 90여 개국 오색인종의 언론인들이 참석했다. 기자뿐만 아니라 출판과 방송 종사자, 교수, 정치인, 정부 고위 관료, 사회과학자들이 참여했다.
첫 번째 언론인대회는 문선명이 1975년에 일본에서 창간한 「세카이닛뽀(世界日報)」 주최로 도쿄에서 열렸다. 이 대회는 본격적인 세계언론인대회의 전야제 격으로 주로 아시아 언론인들이 참석했고, 대회 주제는 '위기의 세계와 언론의 사명'이었다. 참가자들은 미국 선거보도에서 새로운 기술들이 지닌 문제점과 역사가로서 언론인의 역할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또한 정치와 경제발전, 자원과 환경, 변화하는 인구와 시민권 등 중요 기사들을 어떻게 잘 보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토로했다. 그리고 정부의 간섭에서 벗어나 진정한 언론자유를 누리는 방법도 빠뜨리지 않았다.
본격적인 제1차 세계언론인대회는 1978년 10월 뉴욕에서 '자유언론의 미래'라는 주제로 열렸으며 16개 나라에서 28명이 참석했다. 제2차 대회는 1979년 뉴욕에서 '새로운 세계 정보 질서 안에서 자유언론의 전망'이라는 주제로 17개국에서 36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으며, 제3차 대회는 1980년에 '언론의 특성과 책임'을 주제로 31개국 65명이 참석해 전 세계적인 대회가 되었다. 이 대회에 참석한 미네소타 주립대학 국제관계학 교수이며 대회 의장을 맡았던 로버트 린드세이(Robert Lindsay) 박사는 선진국과 후진국을 나누는 거대한 차이에 대해 "고위 정치인들이 동서와 남북의 소통 문제를 치유하기 위한 미사여구를 늘어놓고 있을 때 인도 캘커타의 뒷골목에서는 가난에 찌든 한 노인이 굶주림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역설했다. 린드세이 박사의 인상적인 연설은 세계의 격차를 아주 잘 설명했다고 할 수 있었다.
제4차 대회는 1981년 '정보위기, 자유에 대한 도전'을 주제로 37개국 97명이 참석했으며 제5차 대회는 서울에서 열렸다. 그때 문선명은 '사회의 제 문제와 언론의 책임'이라는 주제로 연설했다.
"언론인회의의 범위는 범세계적이요, 우리가 추구하고 달성하려는 이해는 국제적인 것입니다. 선한 세계의 건설을 위한 가치관의 절대 도덕 기준은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어요. 왜냐하면 그분만이 영원하시고 불변이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은 관념의 하나님이 아니시며 우리의 하루하루 생활에 임재하셔야 합니다. 진리 앞에 거짓은 분쇄되기 마련이며 그 거짓이 설사 크나큰 경제력, 정치력, 사회적 힘으로 뒷받침되어 있다 할지라도 결국 그 거짓이 진리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제6차 대회는 콜롬비아에서 열렸고, 제7차 대회는 1984년 일본에서 '언론의 신뢰성과 사회적 책임'을 주제로 열렸다. 문선명은 그때 댄버리에 수감 중이었기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으며 참석자들은 문선명의 수감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미국 대통령에게 보냈다. 제11차 대회는 냉전이 첨예하던 1990년 4월에 동서 진영의 언론인, 정치가, 학자 등 6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모스크바에서 열렸다. 문선명은 '참된 통일과 하나의 세계'라는 제목으로 주제연설을 했다. 이 대회는 세계언론협회, 세계평화정상의회, 라틴아메리카통일연합(AULA), 소련의 노보스키통신사와 공동으로 이루어졌다. 이 대회는 소련이 공산주의를 포기하게 만드는 중요한 대회였다.
제18차 대회는 2001년 도쿄에서 60개국 500여 명이 참석했다. 레이건 대통령 시대 국무장관을 역임하고 1970년대 NATO 총사령관을 지낸 알렉산더 헤이그는 기조연설을 통해 냉전 이후 국가 간의 본연의 자세에 대해 연설했으며, 덴 퀘일(Dan Quayle) 전 부통령은 "미디어는 종교를 멀리 피했으며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해오지 않았다"면서 "이제는 신앙의 자유, 종교적인 확신을 존중하고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계언론협회가 행한 많은 일들 중 중요한 것의 하나는 '언론인들을 위한 사실 탐사여행'이었다. 1980년대, 쿠바로 인해 중미는 적화의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문선명은 독일과 남미 지역뿐만 아니라 중미 지역에 사실조사단을 파견했다. 파견의 목적은 보이는 것 이면에 감추어진 것들, 즉 소련과 동맹국들이 진행하는 일을 밝혀내는 것이었다.
문선명은 "언론이 진실을 추구하면 보다 나은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세계 언론인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언론윤리상(MEA)을 제정했다. 이 상은 매년 진행되는 세계언론인대회에서 저널리즘의 가장 높은 이상을 실천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수여됐다. 상패에는 아름답게 디자인된 보석이 박혔고, 상금으로 1만 달러가 주어졌다. 1985년 제8차 언론인대회에서 첫 번째 수상자로 페드로 차모로(Pedro Chamorro)를 선정했다. 그는 나카라과에 있는 「라플렌사 La Prensa」 신문사의 공동 편집장이었다. 그의 아버지 역시 언론인으로 소모사(Somoza) 독재정권에 의해 암살당했다. 산디니스타 혁명 이후 차모로는 자유를 위해 싸운 공로를 인정받아 상을 받았다. 두 번째 수상자는 미국의 방송인 브라이언 램(Brian Lamb)이며 이후 콜롬비아의 구일레르모 카노(Guillermo Cano), 미국의 리드 어빈(Reed Irvine), 리 샤피로(Lee Shapiro), 짐 린델로프(Jim Lindelof)등이 받았다.
문선명이 후원한 세계언론인대회는 그동안 많은 일을 했다. 기자들과 방송인들, 학자와 고위관리들이 언론의 사명과 자유, 책임 등에 대해 되돌아보고 새로운 소명을 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공산주의를 무너뜨려 세계평화를 앞당기는 데도 이바지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