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보살과 무착스님
문수는 문수요, 무착은 무착이다.
중국(中) 오대산(五臺山) 산중(山中) 암자(庵子) 금강굴(金剛窟)에서 한 스님이 손수 밥을 해 먹으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 스님은 어려서 출가(出家)하여 무착(無着)이라는 법명(法名)을 받아 계율(戒律)과 교학(敎學)을 공부하다가 문수보살(文殊菩薩)의 영지(靈地) 오대산에 참배(參拜)하고 문수보살(文殊菩薩)을 친견(親見)하고자 기도를 했다. 그런데 산중 암자라 식량(食糧)이 떨어져 산 아래 마을로 내려가 양식을 탁발(托鉢)을 해서 올라오다가 소를 몰고 가는 한 노인(老人)을 만났는데, 노인의 모습이 범상(凡常)치가 않아서 자기도 모르게 뒤를 따르게 되었다. 한참을 뒤쫓아 가다 보니 전혀 보지 못했던 웅장한 절 한 채가 나타났다. 노인이 문 앞에 서서 균제(均提)야! 하고 불렀다. 한 동자(童子)가 뛰어나와 소고삐를 잡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 따라 들어가 노인에게 인사를 드렸더니, 동자가 아주 향기로운 차를 한 잔 내왔다. 노인이 묻기를 자네는 오대산에 무엇 하러 왔는가? 저는 문수보살을 친견하여 그 가호를 얻고자 찾아왔습니다. 자네가 가히 문수를 만날 수 있을까? 자네 살던 절에는 대중은 얼마나 되고 어떻게 살아가는가? 300여명 되는 대중(大衆)이 경전(經典)도 읽고 계율(戒律)도 익히면서 삽니다. 이곳은 어떠합니까? 전삼삼 후삼삼(前三三 後三三)이네, 용과 뱀이 뒤섞여 산다네.(龍蛇混雜 凡聖交參) 무착(無着)은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밖은 어두워져서 무착은 노인에게 하룻밤 쉬어갈 것을 청했다. 애착(愛着)이 남아 있는 사람은 이곳에서 자고 갈 수 없네. 하고는 매정하게 동자에게 배웅하게 하고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할 수 없이 어둑해진 길가에 나와서 무착은 동자에게 물었다. 조금 전에 그 노인에게 이곳 대중의 수효를 물었더니 전삼삼(前三三) 후삼삼(後三三)이라고 하시던데 도대체 무슨 뜻인가? 물으니, 동자(童子)가 큰 소리로 무착(無着)아! 하고 불렀다. 엉겁결에 네!. 하자, 그 수효(數爻)는 얼마나 되는가? 하며 동자가 다그쳐 물었다. 무착은 다시 또 말문이 막혀 동자를 쳐다보며 이 절 이름은 무엇인가? 반야사(般若寺)라고 합니다. 하며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니 웅장하던 절은 금시에 간 곳이 없었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동자도 사라지고 없는데, 허공에서 한 구절(句節) 게송(偈頌)이 들려왔다.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面上無瞋供養具) 부드러운 말 한 마디 미묘한 향이로다(口裡無瞋吐妙香) 깨끗해 화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心裡無瞋是眞寶)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無染無垢是眞常) 이렇게 눈 앞에서 그렇게 오매불망(寤寐不忘) 바라던 문수보살(文殊菩薩)을 친견(親見)하고도 알아보지 못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恨歎)하며, 무착은 더욱 수행에 힘써 앙산혜적 선사(仰山慧寂禪師)의 법(法)을 이어받았다. 그러던 어느 해 겨울, 동짓날이 되어 팥죽을 쑤고 있는데 김이 무럭무럭 나는 죽 속에서 거룩하신 문수보살(文殊菩薩)이 장엄(莊嚴)하게 나타났다. 그 옛날 오대산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回想)되었으나 그때 와는 완전히 딴 판이 된 무착(無着) 스님은 팥죽을 쑤던 주걱으로 문수보살(文殊菩薩)의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갈기는 것이었다. 문수보살은 놀래어 어이! 무착 ! 내가 바로 그대가 그렇게도 만나고 싶어하던 문수(文殊)일세 문수(文殊)야! 했으나 이 말을 받은 무착(無着) 스님은 문수(文殊)는 문수(文殊)요 무착(無着)은 무착(無着)이다. 만일 문수(文殊)가 아니라 석가(釋迦)나 미륵(彌勒)이 나타날지라도 내 주걱 맛을 보여주리라. 하고 당당하게 말을 했다. 그러자 문수보살(文殊菩薩)은 쓴 꼬두박은 뿌리까지 쓰고 단 참외는 꼭지까지 달도다. 내 삼대겁(三大劫)을 수행하여( 爾三大劫修行) 노승의 혐의를 입었으나(還被老僧嫌疑) 쓴 조롱박은 뿌리까지 쓰고(苦瓠連根苦) 달디단 외는 꼭지까지 사무쳐 달구(甘苽撤蔕甘)나! 내가 오늘 에사 괄시를 받아 보는구나. 하는 말을 마치고 슬며시 사라져 버렸다. 깨치기 전과 깨침 후의 무착(無着)은 진리(眞理) 당체(當體)를 체득(體得)한 오자(悟者)의 외침이 문수(文殊)는 문수(文殊)이고, 무착(無着)은 무착(無着)이라고 당당(堂堂)하게 사자후(獅子吼) 향상일로(向上一路) 일구법문(一句法門)이다. 무착문희선사 오도송을 보자, 누구라도 잠깐 고요히 앉아있는 것이, 모래알, 만큼 많은 칠보탑 쌓기보다 낫네, 귀한 탑도 끝내는 티끌 되고 말거니와, 한 생각 맑은 마음 깨달음을 이루네.(若人靜坐一須臾 勝造恒沙七寶塔 寶塔畢竟碎微塵 一念淨心成正覺) 불교는 타력종교(他力宗교)가 아니고, 자력종교(自力宗敎)임을 설파(說破) 선화(禪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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