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득국(忍之得國) - 참을 줄 알아야 나라를 얻는다. 이상호(소소감리더십연구소 소장) 1. 인내심 없는 지도자들은? 말과 행동의 신중함은 모든 사람이 가져야 할 기초 덕목이기도 하다. 정치인을 포함한 지도자들은 물론이고, 한 나라의 최고 통치자에게 있어서는 특히 중요한 덕목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말과 행동이 신중하면 나라도 얻을 수 있다(인지득국忍之得國)고 하였다. 그런데 오늘날 정치인들 상당수가 말과 행동을 신중하게 하지 못하여 구설에 오르고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심하면 국제적 외교까지 비틀리게 하기도 한다. 한참 전에는 야당의 한 의원이 사찰을 두고 ‘대동강 물을 팔아먹는 봉이 김선달’에 비유하여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그것을 봉합하느라 엄청난 예산을 확보하였다. 일반 정치인들은 그렇다 치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 최고 통치자의 말실수는 대단히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것은 그의 통치철학과 행위를 유추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제 외교 관계에서 저지르는 말과 행동의 실수는 국격의 문제이며 나아가 아름다운 외교적 성과를 일거에 무너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하고 난 후, 지금까지 잦은 말실수로 세간의 구설에 올랐고, 야당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동안은 그런대로 넘어갔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중동 순방 때 UAE에서 아크부대를 방문하여 격려 연설 도중에 나온 ‘UAE의 적은 이란이고 우리의 적은 북한’이라는 말실수는 수습하기가 곤란한 또 수습하여도 앙금이 남을 수준이었음은 부정할 수가 없다. 윤 대통령의 이러한 말실수는 젊은 검사 시절부터 몸에 밴 가벼운 농담 수준의 가벼운 말 습관의 문제이기도 한 것 같다. 대통령이 된 지금은 달라져야 한다. 말과 행동에 중후함을 가지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예로부터 말과 행동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은 수많은 속담과 격언은 물론 선각자들의 당부이기도 하였다. 오늘날 전하는 종교 경전 중에서 인내를 큰 미덕으로 강조하는 대표적인 것이 ‘코란’으로 알려져 있다. 코란에 “신은 인내심 강한 자와 함께 계신다”고 하였으며, 마호메트는 “인내는 만족의 열쇠이다.”고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또한 “인내는 정의의 일종이다”고 하였으며(명상록), 동양 고대 최고의 정치 철학자인 공자도 “군자는 중후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으니, 배움도 견고하지 못하다(子曰 君子 不重則不威니 學則不 固고니라)<논어 학이편>”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인내는 무조건 참는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전략적 인내와 인격적 인내를 모두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모든 잘못된 문제의 근원은 참지 못하고 성급히 말하고 행동하는 데서 발생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특히 이런 인내는 정치인과 통치자들에게 절대 필요하다. 그래서일까? 후세 사람들은 당나라의 이세민을 가리켜 인내의 도(道)가 나라를 세우는 데까지 이르렀다고 칭송하였다. 2. 당태종 이세민의 인지득국(忍之得國) 수나라가 고구려 정벌 등 잦은 대외 전쟁과 권력 다툼으로 혼란에 빠지자 백성들의 삶은 도탄에 빠지고 각지에서 군웅들이 들고 있어 났다. 그중에서도 가장 세력이 강했던 것은 타이위안의 유수 이연(李淵 566~635, 장안(長安), 중국 당나라(618~907)의 창건자, 초대 황제 (618~626 재위)이었다. 이연은 세력이 강성해지자 수나라를 제압하고 618년에 당을 건국했다. 특히 당고조 고조 이연의 여러 아들 중에 둘째인 이세민은 건국의 일등 공신이었다. 이세민은 어려서부터 지략이 뛰어나고 용맹하였으며 욕망이 강했고 부하를 잘 다루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에게는 늘 겸손과 지혜로 조언하였던 것으로 유명한 아내 장손 황후가 있었다. 다소 다혈질적인 이세민은 황후의 말을 늘 경청하였으며 황제가 된 후 통치를 잘하여 당을 반석위에 올려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세민의 이러한 통치철학과 방법은 정관정요에 잘 나타나 있다) 당나라가 건국되고 정국이 안정을 찾기도 전에 조선의 태종 이방원 때의 ‘왕자의 난’처럼 이연의 아들들 사이에 황위 계승을 두고 다툼이 벌어졌다. 그 다툼 중에서도 가장 치열하게 다툰 것이 이세민과 그의 형인 이건성이었다. 이세민은 당연히 건국의 일등 공신인 자기에게 황제의 위를 물려줄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아버지 이연은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장자인 이건성을 태자로 삼고 지지하였다. 그리고 셋째 아들 이원길을 제(齊)나라 왕에 봉하였다. 이세민은 진왕(秦王) 겸 상서성 장관인 상서령과 천책상장(天策上將)이라는 이상한 직책을 만들어 임명했다. 이연의 이세민에 대한 이런 대접은 태자인 이건성과 나머지 아들들의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 형제들의 치열한 경쟁 관계에서도 이세민은 여유를 찾으며 당대 최고의 선비 18명을 모아 학사에 임명하고 그들과 날마다 학문을 논하면서 뜻을 펴나가고 있었다. 그 선비들을 뒷날 당 18 학사라고 불렀다. 이런 이세민에 대해 나머지 아들들은 더욱 불안하게 여겼으며 두려워하며 모의하여 참소하기에 이르렀다. 그러한 과정에서 이세민은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위기는 이건성에 의한 것이었다. 위기의식을 느낀 이건성은 이세민을 불러 격려와 위로의 잔치를 열었다. 이건성은 이세민을 죽일 작정으로 술에 독을 타서 마시게 했다. 이세민은 분위기상 마시지 않을 수 없어 마셨으나 집에 돌아와 복통을 일으켜 피를 엄청나게 토한 다음에야 겨우 목숨을 건졌다. 그리고 몸을 추슬러 거동이 자유로워지자 이번에는 이건성이 부친과 함께 사냥을 떠나면서 이세민에게도 말 한 필을 주어 동행케 했다. 이세민이 말을 타고 사슴을 쫓고 있었는데 갑자기 말이 발작을 일으키는 바람에 말에서 떨어져 죽을 뻔하기도 했다. 이세민은 이런 모든 음모와 수모를 참고 견디며 발설하지 않고 차근차근 거사를 준비해 가고 있었다. 이제 이세민을 죽이려는 음모는 한계에 이르렀다. 제왕(齊王) 이원길이 돌궐족 정벌에 나설 때는 이세민 휘하의 장수들을 자신의 부대에 배속시켜 줄 것을 고조에게 요청하였으며, 출정식 연회 때 이세민을 죽이려고 했다. 이 모든 낌새를 알아차린 이세민은 지금까지 참고 준비해 온 때가 되었음을 감지하고 고조에게 “태자 이건성과 이원길이 후궁을 넘보는 불효를 저지르고 있다”고 참소하면서 고조 이연의 화를 돋우었다. 이연은 자신의 후궁까지 넘본다는 소리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다음날 이건성과 이원길을 심문하겠다고 불렀다. 이건성과 이원길은 고조의 부름을 받고 궁으로 향하는 도중 일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고 즉시 말머리를 돌리려 했다. 그러나 이때를 노린 이세민의 병사들은 매복하고 있다가 일제히 이건성과 이원길 일파를 공격하였다. 그리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세민은 넷째 아들에게 기습을 당해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장손무덕 등의 도움으로 살아났고 전세가 역전되어 이세민은 달아나는 이건성에게 활을 쏘아 목을 꿰뚫었고, 넷째 또한 화살을 맞고 쓰러졌다. 승리는 이세민의 것이었고 이세민은 정적인 형제들을 모두 제거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626년). 그것이 역사에 남는 ‘현무문의 변’이다. 그렇게 이세민은 골육상쟁의 피비린내 나는 난을 겼으면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때 이세민의 나이 28세였다. 그러나 이세민은 황제가 된 후 문무를 통틀어 선정을 베풀었으며 당나라를 안정시키는 치세를 이루었다. 그래서 뒷날 사가들은 이세민을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군주’로 평가하기도 한다. 후세의 사가들이 말하는 이세민이 황제가 되고 뛰어난 군주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인(忍), 겸(謙), 관(寬), 변(變) 등 네 가지로 요약정리할 수 있다 첫째, 인(忍)은 인내(忍耐) 즉 참음을 말한다. 이세민은 참을 줄 알았다. 그는 다혈질적인 성격임에도 참고 때를 기다릴 줄 알았다. 입이 무거웠고 함부로 말하거나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현무문의 변이 있기 전에 그는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면서도 참고 견디며 자신을 준비할 줄 알았다. 그리고 황제가 된 후에도 수많은 일을 참고 때를 기다릴 줄 알았다. 거기에는 훌륭한 신하와 현명한 황후인 장손 황후도 한몫했다. 정치인에게 있어 인내는 단순한 인내가 아니다. 바로 전략적인 인내다. 참음으로 때를 기다릴 줄 알고 때를 위하여 준비할 줄 아는 인내다. 따라서 참아야 하는 것이 말과 행동이다. 말과 행동에 신중을 기하므로 남이 의심하게 하거나 구설을 만들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치인에게는 말과 행동의 여유와 은유와 유머가 절대 필요한 것이다. 둘째, 겸(謙)은 겸허(謙虛)함이다. 이세민은 겸허할 줄 알았다. 그가 황제가 되기 전에 18 학사들을 불러모아 학문과 정치를 논하면서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자기 자신도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그는 황제가 된 후에도 신하들의 의견을 잘 청취하였으며 판단을 예리하게 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방현령(房玄齡, 578∼648, 당(唐)나라 초기의 재상. 18학사의 첫 번재 지명자, ‘정관의 치(治)’를 이끌어간 핵심 인물, 이세민 치하에서 15년간 재상을 함)의 간곡한 고언을 무시하고 고구려를 정벌하다가 큰 망신을 당한 경우도 있었으나 그의 주변에는 늘 충직한 신하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늘 학문을 숭상하고 자신을 수양하려 애썼다고 한다. 셋째, 관(寬)은 관용(寬容)이다. 그는 특히 인재를 아낄 줄 알았다. 그리고 능력 있는 인재를 골고루 등용하려고 애를 썼으며 인재 활용의 균형을 발휘할 줄 알았다. 그 옛날 한 고조 유방처럼 천하를 손에 넣고 난 후 함께 고생한 개국공신인 한신을 죽이는 등 대대적인 숙청을 하였던 것과는 달리 능력 있는 인재를 아끼고 우대하였으며 견제할 줄도 알았다. 그래서 공신들은 이세민에게 변함없는 충성을 하였다. 그리고 학문을 장려하여 인재육성에 힘썼다. 장손무덕은 현무문의 변에 일등 공신일 뿐 아니라 이세민을 지켜온 수족과 다름없었다. 그런 장손무덕이 관직을 이용해 뇌물을 받고 있다는 고발이 들어왔다. 이에 이세민은 장손무기를 탄핵하라는 신하들에게 ‘장손무덕은 마땅히 처벌받아야 하나 개국공신이며 관직도 높고 봉록도 충분한데 학문이 깊지 못하여 저지른 흠이니 서적을 읽고 학문을 닦는다면 명예를 알고 부끄러움을 깨달을 것이니 기회를 주자고 달래었다. 그러면서 장손무덕에게 비단 열 필을 하사하면서 부끄러움을 깨닫게 했다. 이에 신하들이 어찌 처벌이 마땅한 죄인에게 비단까지 하사하시면서 달래느냐고 항변했다. 이세민은 사람에겐 기본 성품이란 것이 있는데 처벌받는 것보다 이유 없는 상을 받을 때가 더 괴로운 법인데 그래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금수에 불과하다면 끌고 가서 목을 벤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라며 달래었다. 장손무덕은 한동안 깨우쳐 나아지는가 하더니 또 사사로운 작당으로 죄를 짓자 이세민은 할 수 없이 그를 관직에서 박탈했다. 이런 사례는 인재를 아끼고 깨닫도록 회유하는 관용의 미덕이 있음을 드러낸 것이었다. 넷째, 변(變)은 변통(變通)이다. 변통은 시대의 변화 상황을 정확하게 읽고 그에 맞는 정책을 시행함을 의미한다. 이세민은 상황의 변화에 대한 신하들의 의견을 잘 청취하였고 그를 존중하였으며 상황에 맞게 정책을 잘 변화시켰다. 그래서 이세민의 시기에는 정책의 변화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는 수나라의 잔존세력이 있었고 특히 전국에 이건성을 따르던 세력들이 포진해 있어 어느 때 반격해 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신하들과 이 문제 해결을 늘 고민하였다. 그때 바른 소리 하기로 유명한 신하 위징이 ‘사사로운 원한을 거두시고 이들을 공정하게 대하시면 그들은 보복심을 버리고 복종해 올 것이나, 그렇지 않고 피의 보복을 계속하면 끝없는 반역의 재난이 연속될 것’이라며 간언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세민은 위징을 특사로 임명하여 이건성의 추종 세력이 집중되어 있던 하북 일대의 민심을 안정시키게 했다. 위징이 하북에 도착하니 현무문의 정변 때 도망친 태자 이건성을 따르는 무리들이 두 수레가 넘치도록 잡혀있었다. 이에 위징은 “내가 장안을 떠나기 전에 조정에서는 이미 이건성과 이원길의 부하들을 사면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소. 지금 이들을 잡아 가두는 일은 조정의 위신을 해치는 일이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아직 그 명령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함이니 이들을 장안을 압송하는 것은 헛수고일 뿐이오. 특히 황상께선 이치안과 이사행을 석방하여 나를 수행하게 하면 업무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 말씀하셨소.”라고 말하면서 그들을 사면하도록 했다. 위징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두 사람을 석방하고 황제에게 보고를 올렸다. 이 일로 화북 일대의 민심은 수습되었고 이세민의 정권은 더욱 공고해졌다.(렁청진 저, 김태정 역, 변경, 더난 출판사) 이처럼 이세민은 신하들의 의견을 잘 청취하였으며 강경 정책을 쓰면서도 정적들을 용서하는 변통으로 정적들을 친구로 만들 줄 알았다. 이세민은 경직되지 않았으며 철학이 분명했으나 고집부리지 않았다. 이세민은 인(忍)을 바탕으로 관(寬), 겸(謙), 변(變)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알았다. 거기에는 황제 스스로 학문을 연마하고 수양하는데 힘썼으며, 신하들의 말을 경청하는 열린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겸허와 관용을 실천하였기에 인재가 모였으며 신하들의 충성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3. 지도자가 인내해야 할 것 정책 결정과 시행에 있어서 변통할 수 있음의 바탕에는 정세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결단만이 아니라 관용과 겸허가 함께 작용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포괄하고 조종하는 것이 바로 인(忍)이다. 참고 때를 기다리며 준비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특히 전쟁에서 유효한 것이지만 모든 상황에서 이를 모르고 성급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인(忍)이 없으면 관(寬), 겸(謙), 변(變)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모든 것의 중심에 인(忍)이 작용한다. 그 인은 전략적 인내다. 그러면 어떤 것들에 대한 전략적 인내가 필요할까? 그것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말과 행동에 대한 인내다. 유명한 하이데거가 언어는 사고의 집이라고 하였지 않았나? 모든 사람의 말에는 생각의 현실과 지향이 담겨 있다. 그래서 말은 언제나 중요하다. 지도자의 말과 행동은 특히 중요하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지도자의 말과 행동은 그의 통치 철학과 정책의 방향을 유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도자의 말과 행동은 사사로운 것일지라도 모두 공적인 것이 된다. 그래서 지도자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은 항상 세간의 관심을 끈다. 따라서 지도자는 말과 행동의 신중함을 보여야 하며 때로는 직유보다는 은유와 유머가 큰 역할을 한다. 지도자가 말과 행동에 삼가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강퍅한 말과 행동이다. 강퍅한 말과 행동은 첫째, 상스러운 말과 행동이다. 욕설이나 비속어 등이 담겨 있는 말과 행동은 삼가야 한다. 이는 그의 인격과 사생활을 의심하게 한다. 둘째, 격한 말과 행동이다. 격한 말과 행동은 분노를 삭이지 못한 것으로써 오해를 불러들이고 사람을 떠나게 하며 정책의 실수를 가져오게 한다. 셋째, 근거없는 본말이 맞지 않는 말과 행동이다. 지도자의 말과 행동은 그 출처와 본말이 분명하여야 신뢰를 얻게 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신뢰와 국민의 동의를 얻기 힘들어진다. 그리고 지도자는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결정하는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 설명하려는 사람은 자기 말을 많이 하고 남의 말은 잘 듣지 않으려 한다. 따라서 설명하려 하기보다는 충분히 듣고 결정하려고 하여야 한다. 그리고 지도자의 말은 변명이 아니라 진실해야 한다. 변명이나 회피성의 대화를 하는 사람을 지도자로 뽑으면 국민은 그에게 사기를 당할 수 있다. 둘째로 지도자가 참아야 할 것은 분노(忿怒)다. 분노는 친구를 모두 떠나게 하는 악마와 같은 것이다. 분노는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성급하게 결정하고 행동하게 함으로 일을 그르치게 한다. 지도자는 기분 나쁜 소리를 듣더라도 말과 행동 표정의 변화가 없어야 할 때가 있으며, 때로는 웃는 얼굴을 하여야 할 때도 있다. 분노는 성급하고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도출하게 하며 주변 참모들의 언로를 막는 역할도 한다. 화를 내는 지도자에게 고견을 제시할 참모들은 그리 많지 않다. 분노는 이상한 특성을 가지고 있어 또 다른 분노를 유발한다. 그래서 지도자의 분노는 부하의 분노를 유발하며 결국 모든 것을 분노의 세계로 이끌 수 있다. 그리고 지도자의 분노는 정적을 제거하려고만 하지 친구로 만드는 일에는 관심이 없어진다. 그러면 정치적 보복은 끝이 없어진다. 이는 매우 위험한 세상을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토론이나 어떤 공개석상에서 분노를 참지 못하는 사람은 지도자로 뽑아서는 안 된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링컨이 적을 친구로 만든 사례는 분노를 다스려 관용의 미덕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그의 철학과 인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례를 깊이 새겨보아야 한다. 셋째, 지도자가 참아야 할 것은 정책의 결정이다. 어떤 지도자는 정책을 결정하에 있어서 자기가 이미 다 말해 버렸기 때문에 참모들이 할 말이 없는 경우가 많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지도자는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결정을 하는 사람이다. 어떤 정책을 결정할 때 찬성과 반대,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 등을 충분히 듣고 최종 결정을 내리는 자이다. 여기에는 지도자의 정치적 철학과 비전이 포함된다. 이를 위해서 지도자는 항상 ‘악마의 대변인’을 가까이하고 토론장에 심어두어야 한다. 악마의 대변인은 당 태종 이세민의 곁에 있던 방현령이나 위징, 성충과 같은 사람들이다. 특히 위징은 바른말 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이세민은 위징을 제거하려고 몇 번을 마음먹었으나 장손 황후의 권고도 있고, 다음날 생각하니 위징의 말이 옳음을 느끼고 그를 가까이하였다. 그리고 방현령의 직언을 듣지 않고 고구려 정벌을 강행하여 큰 낭패를 보았다. 백제의 의자왕은 성충(成忠,?∼656)같은 충신의 충언을 듣지 않고 오히려 감옥에 가두었기에 망국의 왕이 되었다. 충성스럽지 않은 신하는 직언하지 않는다. 자기 이익과 권세에 눈이 먼 신하는 교언영색(巧言令色)하며 통치자의 비위만 맞추려 할 뿐이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방현령, 위징, 성충은 ‘악마의 대변인’이었다. 중요한 정책 결정에 악마의 대변인을 잘 활용한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 바로 케네디 대통령(John F(itzgerald) Kennedy, 1917∼1963)이었다. 그의 쿠바봉쇄 결정은 역사에 길이 남고 미국인들은 지금까지 그를 존경한다. 그런데 참을성이 없는 지도자는 악마의 대변인을 심어두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그 반대의 의견을 청취하지도 않고 오히려 분노한다. 그리고 자기의 생각과 고집을 우선하기에 정책을 성급하게 결정하고 후한을 남긴다. 위와 같이 보면 지도자가 말과 행동을 신중하게 하여 품위를 지키고 존경을 받게 하는 것, 분노하지 않음으로 사람들을 떠나지 않고 내 편에 두게 하는 것이나 언로를 막지 않는 것, 올바른 정책 결정을 하게 하는 것, 공과 사를 분별하여 사사로이 일을 처리하지 않는 것 등 모든 통치행위의 중심에는 인(忍)이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인(忍)은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기본 덕목이며 통치행위의 시작이요 끝일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서 인(忍)은 전략적 인(忍)이다. 사자가 사슴을 사냥할 때 은밀한 곳에서 사슴의 동태를 살피며 숨을 죽이고 참고 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최대의 공격을 가한다. 만약 사자가 조금이라도 흔들려 참지 못하면 사슴은 금방 눈치채고 달아나 버린다. 그날 사자는 굶어야 한다. 이런 날이 잦으면 사자는 굶어 죽는다. 결정적 순간을 위해 참을 줄 아는 사자의 본성은 생존을 위한 필수수단이다. 당태종 이세민이 나라를 얻은 것도 인(忍) 때문이라고 하지 않았나. 모든 지도자가 인(忍)의 의미를 새기고 실천할 수 있으면 태평함은 더욱 크고 성공한 지도자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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