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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고려는 정중부, 이의방 등 무신들이 정권을 잡고 나라를 흔들던 무신정권 초기였습니다.
이들은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는 민란과 반란(대표적으로 서경의 '조위총의 난' 등)을 무력으로 찍어 누르는 데만 급급했습니다.
명학소 주민들의 요구를 들어주어 신분 질서나 행정 구역의 틀을 흔드는 것은 자신들의 기득권 체제를 위협한다고 판단했기에, 회유는 어디까지나 시간 벌기용 임시방편에 불과했습니다.
2. 현장 지휘 및 회유·진압을 맡았던 관리들
조정에서는 반란을 회유하고 진압하기 위해 여러 관리들을 파견했는데, 이 과정에서 정부의 기만책이 집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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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유와 수습 단계: 명학소를 '충순현'으로 승격시킬 때 현령으로 파견된 내원승 양수탁, 현위 김윤실, 그리고 민심 수습을 위해 파견된 장군 박순, 형부낭중 박인택 등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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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벌 및 강경 진압 단계: 앞서 초기 진압 실패 후 대장군 정황재, 장군 장박인을 비롯해 나중에는 대장군 정세유, 이부 등의 군사 지휘관들이 동원되어 철저한 무력 진압을 수행했습니다.
결국 이들은 백성들과 맺은 약속을 국가의 신의보다 '통제 대상인 천민들의 반란'으로만 여기고 뒤로 가족들을 인질로 잡는 야비한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 때문에 망이가 격분하여 정부의 기만책을 폭로하는 글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지식채널e [역사] 고려시대의 민란, 망이·망소이의 난
이 영상은 당시 백성들을 벼랑 끝으로 몰았던 무신 정권의 수탈과 지배층의 위선적인 태도를 시각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