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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비추는 태양의 불법 - 제32회 인간혁명의 종교⑫
마음이야말로 중요 -
인류에 널리 퍼지는 ‘인간혁명의 드라마’
“창가학회의 사명은 종교혁명에 있다.”
1955년 12월, 여자부 총회에 참석한 은사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선생님은 당당히 외치셨습니다.
창가학회는 창립 이래 ‘종교를 위한 인간’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 진정한 인간을 위한 종교의 시대를 여는 운동을 펼쳤습니다. 그것은 이른바 종교혁명의 역사 그 자체였습니다.
선생님은 계속해서 ‘종교혁명은 바로 인간혁명’이라고 언급하셨습니다.
“인간혁명이 무엇이냐 하면 머리를 바꾸는 것이 아니다. 행복하고 다복한 생활을 하는 것이다.
종교혁명은 싸움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생활과 싸우는 것, 자신이 행복해지고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목적이다.”
‘종교혁명’ 즉 ‘인간혁명’
자신의 생활과 치열한 격투 끝에 자신도 행복해지고 다른 사람까지 행복으로 이끈다.
그러한 자타 함께 행복을 지향하는 삶 속에 ‘인간혁명’이 빛나고 그것이 ‘종교혁명’이라고 차대를 짊어질 젊은 여자부 벗에게 이 지고한 진리를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 한사람이 인간혁명 드라마의 주인공입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확실한 행복의 궤도를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니치렌(日蓮) 대성인은 ‘마음만이 중요하다’는 대철리를 가르쳐주셨습니다.
‘마음만이 중요하다’는 말처럼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인간혁명’을 쟁취할 수 있는 궁극적인 요체가 여기에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문하의 신심을 최대로 상찬
대성인은 문하 시조 깅고에게 “다만 마음만이 중요하니라.”(어서 1192쪽)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깅고는 주군을 절복한 일을 계기로 동료를 비롯해 여러 사람에게 박해를 받는 등 인생의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대성인은 깅고에게 어디까지나 한결같이 올바른 신심의 마음으로 이 고난에 맞서 이겨내도록 격려하셨습니다. 어떠한 마음이냐에 따라 일체의 승부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또 사도의 센니치니에게도 “마음이야말로 소중합니다.”(어서 1316쪽) 하고 쓰셨습니다. 센니치니는 남편 아부쓰보가 사도에서 멀리 떨어진 미노부에 계신 대상인 곁으로 갈 때마다 몇 번이나 진심 어린 공양물들을 챙겨 보냈습니다. 자신이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남편의 빈 자리를 지키는 센니치니의 노고에 대성인은 마음을 쓰셨습니다.
그리고 거리는 멀어도 ‘당신의 마음은 확실히 받았다’고 만감의 격려를 보내셨습니다.
이 ‘마음’이 바로 ‘사제불이의 마음’을 가리키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타의 마음’ ‘도전의 마음’ ‘확신의 마음’
‘올바른 신심에서 우러난 마음’ 또 ‘사제불이의 마음’이 바로 인생의 행복과 승리를 열어 영광스러운 일생을 구축하는 힘이 됨은 성훈에 비춰 분명합니다.
이번에는 ‘인간혁명의 종교’의 결론으로 니치렌불법에서 최고봉의 철학인 ‘마음만이 중요하다’에 초점을 맞춥니다. 특히 ‘이타(利他)의 마음’ ‘도전의 마음’ ‘확신의 마음’이라는 관점에서도 논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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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삼덕어서>(어서 1598쪽 1행~3행)
식(食)에는 삼(三)의 덕(德이 있으니, 일에는 명(命)을 잇고 이(二)에는 색(色)이 늘어나고 삼에는 힘을 더함이라. 남에게 물품을 베풀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법인데, 비유하면 남을 위해 불을 밝히면 내 앞이 밝아지는 것과 같다.
<현대어역>
음식물에는 세 가지 덕이 있다. 첫째는 생명을 이어주고, 둘째는 색을 더하고, 셋째는 힘을 강하게 하는 덕이다. 남에게 양식을 베풀면 내 몸을 돕는 셈이 된다. 예를 들면 남을 위해 등불을 켜면 내 앞도 밝아지는 것과 같다.
‘식(食)은 목숨’-따라서 ‘식’에 감사를
먼저 불법에서 설하는 ‘이타의 마음’에 관해서입니다.
<식물삼덕어서>①는 대성인이 음식물을 공양한 문하에게 고마움을 전하려고 쓴 편지라고 배견할 수 있습니다.
이 어서에서 대성인은 ‘식(食)’의 세 가지 작용을 가르치셨습니다. 즉 ①생명을 유지하는 작용 ②건강을 증진하는 작용 ③몸과 마음의 힘을 왕성하게 하는 작용입니다. 말 그대로 ‘음식은 목숨’임을 나타내셨습니다.
기후불순 등 악조건에 굴하지 않고 목숨을 연명할 ‘먹을거리’를 기르고 지키고 도와주신 존경하는 농어광부(農漁光部) 여러분에게 거듭 고개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자타 공히 행복’ 실현을
대성인은 “남을 위해 불을 밝히면 내 앞이 밝아지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을 배려하고 손을 내미는 행동이 그 사람을 위해서만이 아닌 자신의 복덕이 됨을 가르치셨습니다.
이 구절은 수많은 동지가 심간에 물들여 실천의 지표로 삼은 성훈입니다.
초대 회장 마키구치 쓰네사부로(牧口常三郞) 선생님도 이 정신을 소중히 여겨 《창가교육학체계》에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의타적 생활’이나 자기 중심의 ‘독립적 생활’에서 ‘공헌적 생활’로 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하셨습니다.
이 사회공헌 그리고 공존공영의 철학과 신념이 바로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신앙을 관철한 창가가족의 자각이자 영예입니다.
우리 존귀한 동지는 세간에서 어떤 말을 듣더라도 불법자로서 “주군을 위해서도 불법(佛法)을 위해서도 세간에 있어서의 마음씨도 정말 좋았었다 하고, 가마쿠라의 사람들의 입으로 칭송받게 하시라.”(어서 1173쪽)는 이 성훈을 가슴에 품고 그야말로 절벽을 맨손으로 오른다는 마음으로 지역과 사회에 적극 참여해 신뢰를 받는 실증을 보였습니다. 어디까지나 철저히 “사람의 행동”(어서 1174쪽)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이런 신념과 행동이 쌓여 이웃과 교류를 촉진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선의 연대를 구축하는 커다란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타의 행동’이 자신을 풍요롭게
한신·아와지대지진과 동일본대지진 그리고 구마모토지진 등 큰 피해가 발생한 재해 때에도 창가의 보우(寶友)는 자신도 재해를 당했지만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지원하고 격려했습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존귀한 음덕陰德)이 위대한 양보(陽報)가 되어 간사이와 도호쿠, 규슈 등을 희망의 빛으로 비추고 있습니다. 또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를 비춥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남을 위해’ 등불을 밝혔습니다. 눈앞에 고뇌하는 사람, 힘들어하는 사람 곁으로 가서 묘법(妙法)의 빛으로 자타 함께 무명(無明)②이라는 생명의 어둠을 밝혔습니다.
걸으면 걸은 만큼, 사회에 진력하고 서로 복운을 쌓을 수 있습니다. 학회원은 자타 함께 최고의 ‘행복 궤도’에 올라 인생을 나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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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식물삼덕어서> : 단간(斷簡, 부분적으로만 전해지는 문장)이기에 집필연대나 대고중(對告衆)은 불분명. 어떤 사람이 대성인에게 공양한 데 대해 음식물은 인간에게 소중한 것으로 세 가지 덕이 있다고 공양의 공덕을 언급하고 나아가 일체경과 부처의 관계를 설하셨다.
②무명(無明) : 생명의 근본적인 무지. 궁극적인 진실을 밝힌 묘법을 믿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음 또 그 무지에서 일어나는 어두운 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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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렌초>(어서 1045쪽 16행~17행)
과거 미래를 알지 못하는 범부는 이 경을 믿기 어려우며, 또한 수행하여도 무슨 보람이 있겠느뇨. 이로써 이를 생각하건대 현재에 안전(眼前)의 증거가 있는 사람이 이 경을 설할 때는 믿는 사람도 있으리라.
<현대어역>
과거와 미래를 알 수 없는 범부는 이 법화경을 믿기가 어렵다. 또 수행해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점에서 생각해 보면 현세에 눈앞의 증거를 나타내는 사람이 이 경을 설하면 그때에는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현실의 체험을 쌓는 ‘마음의 작용’
‘인간혁명의 드라마’는 이른바 학회원 한 사람 한사람이 펼치는 인생 승리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려움과 고난의 벽이 가로막는다 해도 결코 지지 않고 ‘도전하는 마음’으로 훌륭하게 신심의 실증을 보였습니다.
<호렌초>③>는 대성인의 문하로서 올곧게 신심을 관철한 소야 교신에게 주신 편지입니다. 1275년 교신이 아버지의 12주기를 맞아 대성인에게 보낸 공양과 추선공양의 때에 낭독할 글을 보낸 데 대한 지남입니다.
이 어서에서는 대성인이 교신의 효심을 찬탄하고 묘법으로 추선회향하는 공력을 밝히시면서 말법의 법화경 행자로서 대성인의 대확신과 대투쟁을 편지에 쓰셨습니다.
“과거, 미래를 알 수 없는 범부는 이 법화경을 믿기가 어렵다”고 있습니다. 본디 법화경은 난신난해(難信難解)이고 삼세(三世)의 인과(因果)가 설해져 있다 해도 과거나 미래를 알 수 없는 범부는 좀처럼 믿기 힘듭니다.
그래서 대성인은 눈앞의 증거, 즉 누구에게나 명백한 현증으로 무명에 덮인 범부의 눈을 뜨고 ‘신(信)’을 일으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어서 후반부에서 대성인은 법화경을 설하기에 대난을 만나는 당신의 투쟁 모습을 쓰셨습니다. 그리고 일찍이 경고한 자계반역난(自界叛逆難)과 타국침핍난(他國侵逼難)이라는 두 난④이 적중했다고도 언급하셨습니다.
국토의 숙명전환을 건 대투쟁을 하신 현증으로 대성인이 바로 말법의 법화경 행자가 틀림없음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렇게 배건됩니다.
문하가 엮어낸 승리의 대역전극
위대한 투쟁을 하신 대성인을 따라 문하들 또한 고난에 감연히 맞섰습니다.
깅고는 박해를 받아 역경에 몰리면서도 대성인에게 몇 번이고 지도를 받으며 강한 인내와 대성실로 주군을 섬기는 등 신심 근본으로 계속 도전했습니다. 그 결과 주군의 신뢰를 회복할 뿐 아니라 이전의 세 배나 되는 영지를 하사 받는 등 결과를 냈습니다.
두 번이나 아버지에게 의절당한 이케가미 형제에게 대성인은 “반드시 삼장사마(三障四魔)라고 하는 장해가 나타나는데, 현자(賢者)는 기뻐하고 우자(愚者)는 물러남이 이것이니라.”(어서 1091쪽)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용약환희하며 장마(障魔)에 맞서는 신심의 극의(極意)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이케가미 형제는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법화경의 신앙을 관철했습니다. 부인들도 합심해서 꿋꿋이 투쟁했습니다. 마침내 신앙에 반대하던 아버지도 입신하여 일가화락의 실증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대성인 문하도 각자의 처지에서 ‘눈앞의 증거’를 나타내 승리 드라마를 연출했습니다. 대성인은 애제자의 승리가 “무엇보다도 상쾌하다.”(어서 1175쪽, 취의)며 아주 기뻐하셨습니다.
신앙의 실증이 주변의 마음을 연다
대성인이 말씀하신 대로 창가 삼대(三代)의 사제는 어디까지나 ‘현증’을 중히 여겨 광선유포를 추진했습니다.
“도리 증문(證文)보다도 현증 이상은 없느니라.”(어서 1468쪽) 하고 있듯이 ‘눈앞의 증거’ 다시 말해 신심의 ‘실증’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체험이 바로 힘입니다.
전 세계에서 열리는 좌담회에서 회원들이 발표하는 존귀한 체험담이야말로 현대판 ‘눈앞의 증거’입니다.
또 비록 곧바로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고난과 어려움에 절대로 굴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 이미 승리한 모습입니다. 많은 사람의 공감을 부르고 용기와 희망을 보내지 않을 리 없습니다.
한 사람이 숙명전환하면 그 체험이 파동을 일으켜 확대되고 이윽고 윤회하는 이 사회의 숙명까지 변혁한다, 실로 ‘인간혁명’ 즉 ‘세계평화’의 방정식이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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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호렌초> : 1275년 4월 소야 교신에게 주신 어서. 말법의 법화경 행자를 비방하는 죄와 공양하는 공덕을 설하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법화경으로 추선공양하는 것은 최고의 효도라고 설하셨다. 대성인은 소야 교신의 신심을 상찬하여 ‘호렌 상인’이라고 부르셨다.
④자계반역난(自界叛逆難)과 타국침핍난(他國侵逼難)이라는 두 난 : 약사경에 설해진 칠난(七難) 중 두 가지 난. ‘자계반역난’은 같은 편끼리의 싸움. 내란 등 난을 말함. ‘타국침핍난’은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는 난. 대성인은 <입정안국론> 집필 당시 아직 일어나지 않은 두 난을 예언하고 각각 ‘2월 소동’과 ‘몽고 내습’이라는 형태로 적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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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이치니부인어소식>(어서 1253쪽 16행~17행)
법화경을 믿는 사람은 겨울과 같다.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되느니라. 아직도 옛날부터 듣지 못하고 보지 못했노라. 겨울이 가을로 되돌아간 것을 아직도 듣지 못했노라. 법화경을 믿는 사람이 범부가 되었음을. 경문에는 “약유문법자(若有聞法者) 무일불성불(無一不成佛)”이라고 설해져 있느니라.
<현대어역>
법화경을 믿는 사람은 겨울과 같습니다.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됩니다. 예로부터 지금껏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습니다. 겨울이 다시 가을로 되돌아갔다는 소리를, 또 지금껏 듣지 못했습니다. 법화경을 믿는 사람이 부처가 되지 않고 범부인 채로 있다는 것을 경문에는 “만약 법을 듣게 된다면 성불하지 못한 자는 한 사람도 없다.”(법화경 방편품)고 설해져 있습니다.
가장 괴로워하는 사람을 격려한다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된다.”
말할 나위도 없이 세계의 동지가 가슴속 깊이 새겨 늘 실천의 양식으로 삼는 성훈입니다. 이토록 단적으로 ‘인간혁명’의 빛을 발하는 경문은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 반드시 일생성불(一生成佛)⑤을 이룰 수 있다고 하는 확신의 마음을 배견할 수 있습니다.
<묘이치니부인어소식>⑥은 가마쿠라의 신심이 강성한 여성 문하에게 주신 편지입니다.
다쓰노구치법난, 사도유배가 일어나자 수많은 문하가 퇴전했습니다. 그러나 묘이치니는 남편과 함께 법화경의 신앙을 관철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남편이 소령을 몰수당하는 등 난을 만났습니다.
게다가 대성인이 사도유배에서 사면 받기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남은 묘이치니는 자신도 건강이 썩 좋지 않은데다가 병든 자식들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불안한 상황이었을까요.
그러나 그처럼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묘이치니는 사도로, 미노부로 대성인에게 사람을 보내 모시게 하는 등 의연하게 스승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이런 묘이치니의 진심에 ‘반드시 행복으로 이끌겠다’ ‘일생성불하게 만들겠다’고 온 힘을 다해 격려하신 내용이 이 어서입니다.
역경을 극복하는 희망의 종교
성훈에는 “법화경을 믿는 사람은 겨울과 같다”고 전제하셨습니다. 희망의 봄을 맞이하려면 시련의 겨울을 이겨내야만 합니다.
왜 ‘법화경을 믿는 사람’에게 겨울처럼 혹독한 시련의 때가 찾아올까요?
그것은 법화경에서 설하는 대로 성불을 지향하는 불도수행의 도상에 ‘삼장사마(三障四魔)’와 ‘삼류강적(三類强敵)’이 나타나 불법자의 전진을 방해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⑦
그러나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겨울이 가을로 역행하지 않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듯이 아무리 추운 겨울과 같은 상태가 계속되어도 언젠가 반드시 따뜻한 봄이 찾아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엄동설한 같은 역연(逆緣)도 끝까지 인내하고 강성하게 신심을 일으켜 꿋꿋이 투쟁하면 틀림없이 승리의 꽃을 활짝 피울 수 있습니다. 승리는 정해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심은 끝까지 관철해야 합니다. 도중에 걸음을 멈추거나 의심을 일으켜 퇴진하면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환희로 가득 찬 봄을 굳게 확신하고 착실하게 끈기 있게 명랑하게 나아가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도 내버려두지 않는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법화경 방편품의 글을 인용하신 대로 “만약 법을 들을 수 있는 자는 한 사람도 성불하지 않는 자는 없다”는 것입니다.⑧
어느 특정한 사람만 봄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묘법의 씨앗을 뿌림으로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그 누구도 내버려두지 않고, 만인에게 성불의 길이 열려 있는 것이 묘법입니다. 니치렌불법의 세계종교다운 탁월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일화(一華)를 봄으로써 봄을 짐작하여라.”(어서 222쪽) 하고 씌어 있습니다. 한풍 속에서 늠름하게 피어 있는 한 송이 꽃이 있으면 봄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묘법으로 승리의 꽃을 피운 한 사람이 있으면 ‘그 확신의 마음’에 따라 희망의 봄바람이 향기롭게 불어와 주위에 ‘환희의 봄’ ‘승리의 봄’이 번집니다.
‘마음’은 일체를 변혁하는 무대
마음은 불가사의합니다. 마음의 묘용(妙用)⑨로 일체가 바뀝니다.
마음 하나로 지옥에도 즐거움이 있습니다.
옥중에서 순교하신 마키구치 선생님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입니다. 당시 검열로 덧칠되어 삭제된 말이지만 선사(先師)의 의연한 대경애가 그리워집니다.
이번에는 ‘이타의 마음’ ‘도전의 마음’ ‘확신의 마음’을 배웠습니다. 학회원은 니치렌불법을 신앙함으로써 마음 풍부한 경애를 깨닫습니다.
‘불퇴의 마음’ ‘상승의 마음’ ‘선구의 마음’ ‘전진의 마음’ ‘불굴의 마음’ ‘결정(決定)의 마음’ ‘용기의 마음’ ‘자애의 마음’ ‘포용의 마음’ ‘격려의 마음’ ‘감사의 마음’ 그리고 ‘투혼을 관철하는 마음’
우리는 나날의 착실한 불도수행으로 어느새 ‘불계의 마음’ ‘보살계의 마음’을 자기 생명의 대지에서 불러냅니다. ‘마음 하나’로 자신을 바꾸고 주위를 바꾸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념삼천(一念三千)의 비술을 체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마음가짐이나 일시적으로 위안하는 말 따위의 관념론이 아닙니다. 진정한 ‘마음의 변혁’은 ‘현실 변혁’을 약속합니다. ‘내 마음’ 즉 생명경애를 깊게 만드는 것이 인간혁명하는 종교의 진수입니다. 공덕은 다름 아닌 자기 생명의 변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심은 어디까지나 준엄한 자세가 중요합니다. 마(魔)에 지거나 불평과 푸념에 휩쓸려 버리면 마음은 후퇴합니다. 미묘한 일념의 차이로 결정되고 맙니다.
“엄(嚴)함이라, 삼천나열(三千羅列)이로다.”(어서 714쪽) 입니다.
‘마음 하나’로 성불이 결정됩니다. 따라서 ‘마음만이 중요’합니다.
미래를 창조하기 위한 신심
어서에 “목숨은 실로 일념에 지나지 않으므로 부처는 일념수희(一念隨喜)의 공덕이라고 설하셨느니라.”(어서 466쪽)⑩ 하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이때’ 발심하는 일념으로 일체를 바꿀 수 있습니다.
불법자의 마음은 ‘현당이세(現當二世)의 마음입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를 돌아보고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부터 미래를 향해 힘차게 건설을 시작해야 합니다.
현실의 인생에는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겠지요. 비록 아무리 원통한 시련이 있어도 신심만 지지 않으면 반드시, 꼭 앞으로 대승리하는 인(因)을 새길 수 있습니다.
인간혁명에 빛나라!
‘어디까지나 광포 서원에 꿋꿋이 살겠다는 마음’
‘어디까지나 학회와 함께 전진하겠다는 마음’
바로 묘법에 살아가고, 사제에 살아가고, 동지와 함께 살아가는 ‘마음’만 확실히 있다면 거기에서 일체가 열립니다. 미래를 구축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의 ‘마음’에 있습니다.
그러려면 모두 다 같이 각자 위치에서 홀로 서야 합니다. 우리 지용의 용자에게는 ‘이 세상에서 다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 동지의 인간혁명에 빛나라!
인류의 행복과 평화의 봄을 향해 인간주의의 태양의 세기는 마침내 그 빛을 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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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일생성불(-生成佛) : 일생 동안 부처가 되는 것. 범부가 그 몸을 고치지 않고 일생 동안 성불의 경지에 도달함을 말한다. 역겁수행의 반대말.
⑥<묘이치니부인어소식> : 1275년 5월, 미노부에서 묘이치니에게 주신 어서. 묘이치니의 남편이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대성인의 사도유배 사면을 알고 얼마나 기뻐했을지 모른다고 그리워하면서, “법화경을 믿는 사람은 겨울과 같고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된다.”고 말씀하시어 순수한 신심을 관철하라고 격려하셨다.
⑦ 삼장사마(三障四魔)는 불도수행을 방해하는 세가지 장애(번뇌장, 업장, 보장)과 네 가지 마(음마, 번뇌마, 사마, 천자마)를 말한다. 삼류강적(三類強敵)은 석존 멸후 악세에 법화경을 홍통하는 사람을 박해하는 세 종류의 강적. 속중증상만(俗衆黑增上慢, 재가의 박해자), 도문증상만(道門增上慢, 출가의 박해자), 참성증상만(僭聖增上慢, 박해의 윈흉이 되는 고승).
⑧ “만약 법을 듣게 된다면 성불하지 못한 자는 한 사람도 없느니라.”(법화경 137쪽)
⑨ 묘용(妙用) : 묘법의 심원한 공덕력. 여기서는 중생의 생명에 갖추어진 본유(本有)의 불가사의한 역용(작용)을 말한다.
⑩ “인간의 생명은 궁극적으로 일념의 생명이기에 부처는 일념수회(一念隨喜)의 공덕이라 설하셨다.”고 하는 취의. 일념은 순간의 마음을 말함. 수회란 환희. 일념수희의 공덕은 법화경의 일구일게를 듣고 조금이라도 믿는 마음이 있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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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예고맙습니당 마에지지 않기위해 오늘도 더욱더 강성하게 기원합니다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