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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물에도 이끼가 끼듯
이른 아침 안 사람인 마 옥연이 조반을 차렸다고 소리를 질렀다.
“ 오늘은 어찌 그리도 일찍 밥을 차린 거야.”
“ 당신은 만날 밥을 해도 몰라요. 나는 오늘 회원들과 만나는 날이라서 일찍 밥을 한 거예요. 내가 없으면 당신은 하루를 쫄딱 굶는 때도 있잖아요.”
“ 그런가. 나는 그것도 모르고 있었네. 나는 좀 있다가 먹을 테니 당신 먼저 자시고 가도록 해요, 뭐니 뭐니 해도 밥을 먹어야 힘이 나니까.”
“ 밥을 먹어야 힘이 난다구요. 힘이 나면 뭘 해요. 써먹지도 못하면서.”
“그게 무슨 소리야.”
“ 무슨 소린지 몰라서 물어요. 저 건너 박 첨지는 아무리 술을 먹고 밤중에 집엘 와도 허허 대면서 우리 마나님을 잘 모셔야지 하고 사랑을 해 준다는데 당신은 언제 그런 말이나 한 번 했느냐구요.”
“ 내 몸이 요새 고단해서 그렇지 뭐 만날 그랬나.”
“핑계대지 말고 어서 밥이나 자셔요.”
“ 알았어.”
흥룡이 가만히 생각을 하니 최근에 와서 마누라 곁에 자주 안 가는 것이 습관이 된 것이 사실이긴 하다.
그 사연을 따져 보니 3년 전 부터 농협의 조합장이 교체되면서 틈만 나게 되면 회의를 소집을 하였으니 마을이장을 맡고 있는 신 흥룡은 빠질 수가 없었다.
마을의 이장은 해마다 영농 철이 돌아오기 전에 각 가정의 비료 수급 사항을 파악을 하여 신청을 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 정작 자기네 일은 하지를 못해도 부락의 일을 빈틈없이 책임을 지지 않을 수가 없어 만날 농협엘 쫓아다니다가 해가 저무는 것이 보통 있는 일이었다. 조합장과 신 흥룡이 더구나 죽이 맞는 것은 두 사람 다 술을 좋아하다 보니 일이 끝나게 되면 저녁을 곁들여 막걸리 한잔을 나누는 것은 보통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술 한 잔을 나누다 보면 그것이 1차로 끝나지 않고 맥주 집으로 향하였고 그곳에서 성이 차지 않으면 다시 노래방으로 가서 도우미의 손을 빌어 선곡하고 목이 쉬도록 노래를 부르다가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 시간은 보통은 새벽 1시 또는 2시나 되어야 들어오게 되니 그땐 마누라는 한밤중이니 언제 마누라를 안아줄 겨를도 없었다.
사실 신 흥룡은 이장을 맡기 전 나이 서른 살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야 말로 동네에서 장사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힘을 쓰던 청년이었다.
마을 씨름대회는 물론 면 대항 씨름대회에서 1등을 하여 가마솥을 탄 적도 있었다.
힘이 장사가 되다 보니 아내와의 밤일도 1년 365일 하루도 빼지 않을 정도였으니 여자들이 들으면 세상에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 하겠지만 정말이었다,
그런데 이장을 맡은 다음부터는 집의 일이나 마누라보다는 공적인 일에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다 보니 조합장은 하루 건 능금씩 신 흥룡을 불러내었다.
“우리 조합에서 신 흥룡 이장님만큼만 성의를 다해서 협조를 해주시는 분이 세분만 되어도 우리조합이 군내에서 가장 모범적인 조합이 될 텐데 그러지를 못한 것이 좀 아쉽긴 합니다. 하지만 이장님이 일인 삼역을 해주셔서 이만큼이나 조합이 잘 되고 있으니 그것이 이 조합장의 복이기도 하지요.”
이런 날이면 조합장은 신 흥룡을 그냥 보내지 않았다.
“ 이장님. 오늘 딱 한 잔만 합시다. 늦으면 집의 마나님에게 점수를 잃을 테니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작전을 끝내야 합니다. 공연히 시간을 끌다가 아주머니한테 눈 밖에 나면 안 되거든요”
조합장의 말에 고무된 이장은 그러지 않아도 꿉꿉한 때라 은근히 그러기를 바랐는데 조합장이 한잔을 하자니 얼마나 귀에 쏙 들어오는 소리인가. 더구나 엊그제 술집에 새롭게 삼삼한 아가씨가 왔다는 말에 이장은 벌써부터 흥분이 가시지를 않고 있는 판에 조합장님 덕에 한잔을 톡톡히 얻어먹게 생겼으니 이런 때는 집도 절도 생각은 멀리 가고 오로지 마음은 외곬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렇게 토를 달고 보니 이날도 밤 1시까지는 따 놓은 당상이고 신 흥룡은 거시기한 밤을 보낼 수가 없어 이 순간만은 아내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천하에 그런 호사가 없는 밤이다.
“이장님 슬로우 슬로우 킥킥 아시지요. 너무 강하게 다루지 말고 모래 위에 괸 물에서 피라미가 살살 헤엄을 치듯이 아니 처녀 각시가 첫날밤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안절부절못하는 그 찬 라를 이용하는 겁니다. 그리 되면 금방 화독에 물이 끓듯 그 밤은 요지경이 될 것입니다.
어느 결에 그 긴 밤도 짧게 지나고 나면 그렇게 황홀했던 밤도 순간처럼 흘러가고 말았으니 이제 남은 일은 이장이 식전바람에 머리는 하늘로 뻗치고 바지에는 술이 엎질러져 얼룩지고 구겨진 것을 입은 채 집으로 돌아올 수박에 없으니 이런 꼬라지의 남편을 곧게 받아드릴 아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 이제는 밤 1시가 아니라 날까지 새고 오니 밤을 새운다면 한마디 알려주기라도 할듯한데 그럴 시간이 없었던 모양이지요. 마음대로 해요. 내가 말린다고 들을 사람도 아니고…”
아내는 잠도 제대로 자지를 못했는지 수척한 얼굴로 한 마디를 하였다.
“미안해. 조합장님과 술을 대작하다 보니 이렇게 날밤을 새운가 보아. 다시는 안 그럴 테니 용서해주어요.”
“ 족제비도 낯짝이 있다는 소리도 못 들었어요. 족제비도 사냥을 하다가 밤이 되면 굴을 찾아들어간다고 하던데 어쩌면 사람으로서 족제비만도 못한 생활을 하니 그런 사람을 어떻게 믿고 살아요. 나는 근래에 와서 당신이라는 존재를 다시 보았고 이제는 진저리가 날 정도가 되어 어떤 때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을 때도 있어요. “
무서리가 내리는 이른 아침처럼 싸늘한 바람이 휙휙 불어제치듯이 아내의 한마디 한마디는 신 흥룡의 마음을 갈 갈이 뭉개놓고 있었다.
이럴 때는 아무리 전승을 거두고 돌아온 장수라 할지라도 무릎을 꿇어야 한다. 머리를 조아리고 아내의 치마꼬리라도 잡고서 손이 발이 되고 발이 무릎이 되도록 문 들어지도록 빌어야 한다.
지금 아내의 성질은 약이 오를 대로 올랐는데 그것을 무시했다가는 당장 이 집의 세끼 밥은커녕 농사일이며 마구간에 송아지는 누가 다 거둔다는 말인가.
‘ 조합장님도 그렇지만 옥희라는 그 색시는 왜 남의 집안 사정도 모르고 덮어놓고 술을 앵기고 게다가 왜 옷까지 훌러덩 벗고는 한 여름에 아낙네들이 밤중에 강물에 뛰어들듯이 그렇게 덤비느냔 말이야. 사람이 술이 과하면 엉뚱한 행동이 이어진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그 기회를 마치 용 잡았다는 듯이 사람을 용을 쓰지 못하게 하였으니 거기에 넘어가지 않는 남자가 어디 있어. 그 순간은 기분이 좋고 그 순간만은 밤이 몇 밤이라도 이어지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아 ! 지금 생각하면 그때에 일어났어야 한단 말이야. 왜 못 일어났느냔 말이지.’
신 흥룡은 어제 저녁의 그 패기는 다 어디로 도망을 갔으며 색시 앞에서 큰소리치던 용기는 또 어디서 나왔던 것인가.
그러나 저러나 큰일은 큰일이다. 아내가 저렇게 화를 내보기도 처음 있는 일이지만 뿔이 날대로 났으니 아내가 하는 말이라면 네네 하고 들어 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흥룡의 아내는 평소에 바가지라는 것을 긁지 않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흥룡이가 지금까지 마음대로 행동을 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흥룡의 마누라 옥연 이는 집에서는 부지런하고 남편과의 사이도 무척 좋은 처지였으나 이 근래에 와서 부쩍 남편의 행동에 대해서 불만이 쌓이기 시작을 하자 지금은 아주 잊어버린 황 정규 생각이 문득 스치고 있었다.
옥연이 열여섯 살 중학교를 다닐 때의 일이다.
시골에서 자란 옥연 이는 무남독녀의 귀여운 딸이고 엄마에게는 가장 사랑스런 딸이었다.
그런데 그때에 한반에 있던 남자 학생 중에서 황 정규는 공부는 잘 못하지만 얼마나 멋을 부리고 다니는지 여자 아이들이 걔가 떴다 하면 모두가 토끼처럼 귀를 쫑긋 하고는 쫓아다녔는데 그때에 황 정규는 다른 아이들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옥연 이를 좋아하였다
옥연 이는 원래 외동으로 자라서 그런지 여자 친구들 간에도 휩싸여 다니지를 않아서 친한 친구도 별반 없었는데 어떻게 자리를 앉다가 황 정규와 함께 앉은 다음부터 옥연 이는 은근히 남자에 대해서 호기심이 생겨 집에서 엄마가 맛이 있는 음식을 해주면 그것을 한두 개 싸다가 황 정규에게 갔다가 주곤 하였다.
그런데 이 시기에 황 정규를 가까워지려고 하던 애가 있었으니 공부는 보통이고 그림 그리기만은 잘 하는 여 실주였다.
여실주가 황 정규를 좋아하게 된 동기는 언젠가 학교에서 가을에 과수원으로 실습을 나간 적이 있는데 이날 여자 아이들은 집에서 커다란 양재기를 가져와 거기에서 수확하는 사과를
담아서 나르게 되었는데 여 실주는 깜박 잊고는 양재기를 가지고 오지를 않아서 울상을 하고 있자 그것을 알게 된 황 정규가 그 근방에 있는 친척집에서 양재기를 빌려다가 여 실주를 주었던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도구를 가지고 오지를 않아서 선생님에게 꾸중을 들으려니 하였는데 황 정규 바람에 벌을 받지 않게 도와주니 여 실주는 그 다음부터 황 정규에게 관심을 두고는 은근히 그에게 추파를 던지기까지 할 정도로 좋아하였지만 황 정규는 여 실주의 그런 표현을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 건지 도무지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의 소지품검사를 하다가 황정규의 주머니에서 옥연이의 연애편지를 발견하셨던 것이다.
담임선생님은 평상시에 아이들의 행동에 대해서 좀처럼 꾸중을 하시지 않는 분이셨는데 그 런 일이 있은 며칠 후에 선생님은 황 정규와 옥연 이를 따로 조용히 부르시고는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시기만 하였다.
그렇지만 선생님의 주의를 단단히 받고난 뒤에도 둘은 이다음에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결혼을 하자면서 손가락까지 걸었다.
그런데 옥연이가 가만히 황 정규의 태도를 보면 걔는 이따금 멍하니 하늘만 쳐다볼 때가
있기도 하고 어떤 때는 혼자말로 중얼거리기도 하여 혹시 그가 어떤 병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지만 크게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황 정규가 갑자기 몸이 아파서 결석을 하고 병원에 입원을 하였다고 하였 다.
아침에 그 소리를 들은 옥연 이는 오후에 선생님께 조퇴를 맡았으니 머리가 아프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옥연 이는 조퇴를 맡자마자 바로 황 정규가 입원을 하였다는 병원으로 가니 정규는 그때 다른 검사실로 갔다가 늦게야 병실로 돌아와서 옥연이가 온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옥연 이는 먹은 것이 걸려서 왔다는 그의 소리를 들으면서 조그만 아이도 아닌 학생이 그런 일로 입원을 하느냐고 나무람 하자 정규는 미안하다 소리만 하였다.
이날 수업이 끝나고 난 후에 여 실주는 남몰래 혼자 꽃을 사가지고 병원엘 들어간 후에 입원실을 알아가지고 막 문을 살며시 열어보다가 기겁을 하였으니 그 안에는 어느 결에 마 옥연이가 정규 머리맡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저 계집애가 언제 벌써 여기를 와 있는 거야. 못된 년 같으니라구 그러면서도 학교에서는 머리가 아프다고 조퇴를 해.’
여 실주는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구르고 싶었으나 병원의 복도이니 그럴 수도 없어서 우선은 입원실에서 멀리 떨어져서 걔가 나가기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다 저녁때가 되어도 옥연 이는 그 방에서 나올 줄을 몰랐다.
여 실주는 꽃다발을 들었으니 병실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꽃을 가지고 집으로 그냥 돌아갈 수도 없어서 그냥 얼마동안을 한쪽으로 비켜 서있는데 옥연이가 밖으로 나오고 있어 얼른 자리를 비켜 뒤로 숨어 있다가 용기를 내어서 병실로 들어갔다.
“ 실주가 어쩐 일이냐. 뭘 만날 보면서 여길 찾아왔어.”
정규가 말을 하였지만 여 실주는 옥연이가 온 것에 대한 화가 풀리지를 않아서 처음에는 아무 말도 하기가 싫었다.
그러다가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는 어디가 아프냐고 묻자 정 규는 의사 선생님이 말씀을 하시는데 어른이 되는 병이라고 하면서 밥을 좀 적게 먹으라고 한다면서 웃었다.
실주는 방금 옥연이가 왔다갔냐고 묻고 싶었으나 차마 말이 나오지를 않아서 가만히 있자 정규가 그가 궁금해 하는 말을 먼저 하였다.
아까 옥연이가 선생님이 병이 어떤지 갔다 오라고 해서 왔다고 하였는데 나는 몇 시간을 엑스레이 찍느라 영상실에 있었는데 옥연 이는 그때까지 기다리다가 방금 집으로 돌아갔다고 하였다.
실주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옥연이와 황 정규가 무척 가깝게 지나는 것으로 인해서 산통이 다 깨지는 것 같아 그것이 무척 기분을 나쁘게 하였다.
실주는 아무래도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정규의 의사를 물어야 할 것 같아서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하였다.
“정규야. 너 옥연 이를 좋아 하고 있지 그렇지.”
그러자 정규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더니 한참 후에 엉뚱한 소리를 하였다.
“ 나는 네가 무슨 뜻의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실주는 그 말을 듣고는 정규를 나름대로 사랑하고 있는 자신이 멀쑥해지고 말았다.
‘사람이 눈치가 있어야 하는데 정규의 말대로 아무리 그에게 가까이 가려고 해도 관심조차 두지를 않으니 한편으로는 화까지 났지만 그렇다고 강제적으로 너 내가 사랑하고 있는 것도 모르느냐고 말을 할 수도 없어서 꽃다발을 주면서 “어서 나아라.” 하고는 돌아서 나오고 말았다.
병원을 나오던 실주는 한참동안이나 방금 있었던 황 정규와의 대면을 생각하니 도무지 화가 풀리지를 않으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고 있었다.
황 정규는 사실 옥연 이를 좋아하고 있는데 여 실주가 다가오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일부러 그와 거리를 두기 위해서 어정쩡한 행동을 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학교 다닐 때는 그렇게 황 정규와 옥연이가 서로 좋아 하였지만 사람의 일은 알 수가 없는 것인지 갑자기 옥연 네가 이사를 간다고 하기에 옥연 이는 아버지에게 이사 가지 말자고 하였지만 그 말은 들어지지를 않았다.
옥연 이가 이사를 하게 되고 낯서른 환경에 처하게 되자 한동안은 황 정규 생각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새롭게 친구들을 서귀지 않을 수 없게 되니 정규를 그리워하는 마음도 차츰 식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한때이기도 하고 한 여름에 소나기가 지나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였지만 가만히 생각을 해 보아도 그때엔 몹시 그리울 때가 많았지만 그 그리움을 풀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또 다른 환경은 친구들을 사귀게 하고 거기에서 황 정규를 대신할 만한 애인을 만나게 되었으니 지금의 남편이었다. 결혼하기 전 1년가량을 연애를 하다 보니 황 정규는 머릿속에서 안개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살아가면서 이따금 친구들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게 되면 모두가 신랑들이 집에서 조용히 마누라의 말을 잘 들으며 제 역할을 다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옥연의 남편만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남편에 대한 불만이 일기 시작을 하였다.
지금까지 그는 남이야 뭐라고 하든지 간에 묵묵히 신랑에 대해서는 일체 말을 하지 않는다고 소문이 날 정도로 입이 무거운 여자였다.
아니 할 말로 마 옥연이 시집을 올 때만 해도 동네 아낙네들이 두레우물가에 모이기만 하면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가감 없이 풀어내고는 하하 호호대다가 물 한 동이를 이고 가면서도 그 생각을 하곤 물동이의 물을 반은 엎지르기도 하는 것은 보통 있는 일이었다.
주로 그들이 하는 말들은 남편과 아내간의 사랑 이야기로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그때야말로 애정에 대한 책도 많지 않아서 읽을 수도 없으니 서로간의 자기들이 겪는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면 우물가는 아낙네들의 정보의 통로요 그들의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 보낼 수 있는 곡간이었다.
그렇다고 우물가에 모여서 집안의 이야기를 다 털어놓고 하는 것도 아니다.
이야기를 잘 하는 아낙네를 만나게 되면 두레박으로 물을 푸던 아낙네들이 이야기에 팔려 두레박물을 덜컹 떨어뜨리는 때도 있으니 얼마나 재미가 있으면 두레박줄을 다 놓치겠는가.
그런가 하면 남의 이야기를 허허대며 재미있게 들으면서도 자기 남편과의 이야기는 입도 벙긋하지 않는 여편네가 있기도 하고 남이야 뭐라고 하든지 입만 열었다 하면 입에 가시 돋친 이야기며 주막에서나 들을 수 있는 객담까지 서슴치 않는 아낙네까지 있었다.
그는 어디서 그렇게 주워들은 이야기가 많은지 처음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그의 행색부터 뜯어본다. 그런데 차려입고 나오는 것은 특별한 게 없는데 입만 열었다 하면 멍하게 앉아 있던 사람들이 입을 헤헤 벌리고 그의 이야기를 듣느라 정신을 못 차린다.
그 이야기를 구수하게 잘 하는 여인이 바로 황 가희 이었다.
그때 동네마다에는 계를 조직하고 매달 한 번씩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도 하고 때로는 마을에서 보건진료소의 소장을 초빙해서 여자들의 질병에 대해서도 물어보기도 하였다.
여자들의 모임 중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매년 봄가을로 광관을 가는 일이었다.
새마을운동으로 온 마을이 잘 살아보자는 운동을 펼친 후에 살림살이가 차츰 늘어나게 되자 그때에 한 창 마을별로 관광을 가기 시작을 하였다.
해마다 5월이 되면 부녀회장은 관광지를 정하고 보통 1일 여행이 아니면 3박4일간으로 정하고 관광회사와 예약을 하였다. 이번에는 1일 관광을 하기 위해서 아침 일찍 회장네 집 앞으로 모이라고 하였는데 그러기 며칠 전부터 회장인 마 옥연은 총무인 계 수나하고 이번에 당일 여행을 가는데 필요한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출발 당일 날 회원들이 가방을 들고 나오자 회장과 총무는 밤새워 만든 간식거리를 한 봉지 씩 나누어주고 식전에 해온 백설기 한 덩어리씩을 아침 대용으로 나누어 주었다.
새벽에 나오게 되니 어떤 회원은 아침을 굶고 나오기도 하고 또 어떤 회원은 조반을 먹고 나오기도 하였는데 아침을 먹은 사람이나 안 먹은 사람이나 간에 봉지를 나누어 주면 한사람도 싫다는 사람은 없었다. 누구나 그것을 타다가 가방 속에 넣는 것이니 이것이 다 관광을 하고 돌아가면 아이들에게 나누어줄 선물이 되었다.
관광차가 출발하기 전에 회장은 오늘 우리를 안전하게 이끌어주실 가사님을 소개하자 모두가 박수를 치는데 그때 검은 안경을 쓴 기사님이 만면에 웃음을 띠우면서 인사를 하였다.“저처럼 잘난 기사를 골라서 여러분을 모시게 해주셔서 영광입니다. 저의 마누라이상으로 잘 모실 터이니 아무 걱정일랑 하지 마십시오. 잘 모시겠습니다. 그럼 곧 출발합니다.
기사님의 인사가 끝나자 회장은 또다시 박수로 격려를 보내자고 하자 모두는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쳤다.
회장은 이어서 일일이 회원을 소개를 하였는데 그 사이에 꾸벅 꾸벅 졸고 있는 이는 맨 앞에서 다섯 번째 간에 앉아 있는 안동 댁이라고 불리는 용 수자였다.
“ 용 수자씨. 어젯밤에 잠을 잘 못 잤어요. 아침부터 졸게.”
“ 관광을 가는 날은 초저녁부터 잠을 푹 자야 하는데 딴 짓을 한 모양이군.”
맨 앞에 앉아 있는 맹 추희가 말을 하자 그 뒤에 앉아 있는 한 소희가 말을 받았다.
“야. 너는 관광을 가는 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냐. 아침에 걷는 것을 보니 조금은 자세가 비뚤어졌던데 너야말로 곧게 잔 것 같지 않더라.”
그러자 차안이 금방 폭소가 터졌는데 맹 추희의 얼굴이 벌게지면서 한 마디를 더 하였다.
“ 그렇다면 여기서 시치미를 뗄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지 모르겠네. 나는 겉으로 점잖은 척 하면서도 거시기구멍으로 호박씨를 까는 사람들이 제일 싫더라.”
아무래도 더 나가다가는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갈 것 같자 회장이 한마디를 하였다.
“ 여기들 좀 봐요. 기사님이 계시니까 거시기한 얘긴 삼가도록 합시다.”
“ 하하하. 괜찮습니다. 다 아는 말씀이니 계속하셔도 괜찮습니다.”
“ 자 그럼 우리 이제는 우리를 즐겁게 해줄 분이 나오셨으면 합니다. 누구라도 좋으니 어서 나오셔요.”
그때 중간에 앉아 있던 황 가희가 앞으로 나오는데 입을 가리고 나오자 회장이 왜 입을 가
리냐고 하니까
“ 호호 입이 너무 예뻐서 여러분이 질투를 하실까 봐서요.”
그러자 장내에서 함박웃음이 다시 터졌다.
황 가희는 나오자마자 코가 땅에 닿도록 인사를 하고 나서는 자기소개부터 하였다.
“ 회장님이 불러 주셔서 나오기는 하였지만 여러분을 웃기기나 할지가 걱정입니다. 저는 아시다 싶이 황골 마을의 이 씨 집안의 맏며느리로 열아홉 살에 시집을 갔습니다. 왜 그리 빨리 갔느냐구요. 옛날에 비하면 너무 늦게 간 셈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조혼 시절에는 열세 살이면 시집을 보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시집간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웃 할머니께 들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어느 때인지는 모르지만 열일곱 살짜리 아들을 장가를 들였는데 색시는 열세 살이었다고 합니다. 시부모는 아들 장가를 들이긴 하였지만 신부가 어려서 아기를 낳을 수가 있을까 하고 시아버지가 걱정을 하자 시어머니는 아들이 그만큼 장성하였으니 창구멍도 잘 뚫는 놈이 뚫어진 구멍 하나 제대로 뚫지 못하겠느냐고 하였답니다.
그런데 정말 이듬해 가을에 나이 어린 며느리가 팔월 추석에 콩 송편 하느라 차지게 반죽해
놓은 크기의 아들을 낳아서 시어머니께 안겨드리자 시어머니는 입이 함박만큼 커지면서 우
리 며느리의 거시가가 꽤 튼튼한 가비여 하면서 칭찬을 하자 시아버지는 덧붙여서 그렇구
말구 갓 마흔에 첫 버선이라 드니 시집을 오자 바로 이집의 대를 이어줄 손자를 낳았으니
세상에 이런 며느리가 어디 있어. 아무래도 이 시아비가 며늘아기를 불러서 그동안 수고하
였다구 뽀뽀라도 한번 해주어 하지 않아요. 하였답니다. 그러자 갑자기 시어머니가 벼락 치
는 소리를 영감에게 하였으니 뭐이 어쩌구 어째 며느리에게 뽀뽀를 하겠다구. 내 이제까지
그런 줄을 몰랐더니 이놈의 두상이 나중에는 별 말을 다 하니 어디서 그런 못된 짓을 하려
고 그래. 아이고, 못살아 저런 영감을 둔 내 팔자여! 그래도 지금까지 믿거라 하고 살았는데
알고 보니 천하의 잡놈인 것을 모르고 살았으니 억울하다 억울해. 왜 진작 강 건너 홀아비
가 나를 좋아한다고 야반도주를 하자고 할 때에 선뜻 나서지를 못했는지. 이년의 팔자가 고
것밖에 되지를 않아서 그렇겠지. 왜 우리 어머니는 저런 사람을 천하의 제일 잘 난 사내니
안심하고 신랑으로 삼으라고 하였을까요.
그 내막도 나중에 알고 보니 어머니가 미투리 한 켤레에 넘어갔다는 말이 들리니 그것은 또
무슨 말이냔 말이여. 이 딸이 그래 미투리 한 켤레 만도 못하단 말이 아니냔 말이여. 그러
고 보니께 당대엔 딸 알기를 대 가을에 까부람질하는 키만도 못하게 취급을 한 거여. 그러
니 부모님은 미련 없이 아무 놈이나 데려가라고 하였을 것이고 저 신랑은 나를 좋아라. 하
고 마음 놓고 데려갔겠지. 그렇다고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를 원망할 수는 없는 일. 만일 그
때 어머니가 그러지 않았다면 나는 또 어떤 놈팡이에게 갔는지도 모르지 않여. 아이구 내
팔자여! 일이 이리 되자 시아버지는 손자를 본 것은 좋으나 앞으로 며느리에게는 한마디 칭
찬도 하지 못하게 생겼으니 이런 죽을 노릇도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까. 자 여기서 제 일탄
이야기는 마무리가 되네요. “
어쨌거나 그전 이야기라고 하지만은 현대에 와서 결혼으로 인해 빚어지는 여러 가지 이야기
가 있을 것이니 웃으면서 생각 좀 해 봅시다.
그러고 보니 제가 마이크를 잡은 지가 한참은 된 것 같으니 입놀림을 좀 하셔도 되겠지요.
마침 아침에 보니 총무님이 간식꺼리를 싸가지고 오셔서 나누어 드리는 것을 보았는데 잡수
실 시간을 충분히 드리겄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관광을 하는 데는 입이 즐거워야 한다고
명심보감이라나. 하여간 어떤 책에 그렇게 적혀 있다고 합디다. 그리고 간식을 잡수시면서
제가 손가락으로 나오시라고 하면 무슨 말을 할지를 생각해 두시기를 바랍니다.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를 해도 좋습니다. 시집살이하던 이야기. 옛날에 연애 걸던 이야기. 친
구들 골려주던 이야기. 신랑과 사랑을 나누던 이야기. 아기 낳던 이야기. 우물가에서 들었던
남녀 간의 펄펄 끓는 이야기. 소꿉친구와 재미있던 이야기. 직장에서 상사를 좋아하던 이
야기. 친구 간에 서로 몰래 사랑한 이야기.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예시를 하지 않은 말들이
많을 겁니다. 오늘 여기서 한 이야기는 여기서 헤어지고 나면 다 허공으로 날아갈 것이니
그런 줄 아시고 기탄없고 숨김없이 솔직하게 빠짐없이 이야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한 가지 부탁의 말씀은 기사님이 들어서 곤란한 이야기는 저녁에 우리들끼리 이야기하면
더 좋을 것입니다.
자. 그러면 제 2탄을 쏠 분을 앞으로 모시기 전에 저가 어느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
해드렸으니 이번에는 저에 대한 말씀을 하고 넘어가도록 하겄습니다. 괜찮겠지요?
먼저 저의 사연이 무엇이냐고 물으실 것 같아서 그것부터 밝혀야 하겄습니다. 사실을 말한다면 나는 부잣집의 아들 없는 딸 삼형제의 셋째 딸로 태어나서 귀여움을 많이 받는 바람에 언니에게서 때로는 매를 맞을 때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언니들이 미워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2 학년 때에 하루는 작은 언니가 저녁인데 밖으로 나가서는 들어오지를 않아서 큰 언니에게 물어보았지만 언니는 공부만 하느라 대꾸도 해주지를 않아서 그냥 밖으로 나와서 막 대문 밖으로 나가려는데 깍지광에서 바스락 하는 소리가 나서 귀를 기울이고 있다 보니 그 안에서 남자의 소리가 들리는데 분명히 일꾼 오빠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다시 들어보니 이번에 속삭이는 여자의 목소리가 조그맣게 났는데 도무지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누구의 목소리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더라니 까요. 그래서 다시 귀를 기울이니 세상에 작은 언니가 글쎄 ”어서 옷을 벗으란 말이야. “ 하는 것이었지요.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가슴이 뛰었지요. 그러면서 언니가 일꾼오빠와 무슨 짓을 할 모양이로구나. 생각을 하고는 얼른 큰 언니 방으로 뛰어 들어가서 언니보고 말을 하자 언니는 시험 공부하는데 방해되게 무슨 소리를 하느냐면서 들은 체도 하지를 않아서 할 수 없구나 하고는 방에 가서 공부를 하려니 책이 눈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생각은 깍지광에만 가 있었지요. 여러분은 이런 경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참 대답하기 어려우시지요.
아닌 게 아니라 그때 중학교 2학년으로 올라간 나는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이성에 대해서 한참 그리워한다고 할까. 하여튼 남자애들을 보게 되면 그의 신체조직하며 성장의 모습이 여자애들과 어떻게 다를까 궁금해 하던 차여서 나는 다시 깍지광으로 달려갔지요. 가면서 깍지광의 문을 확 열어 볼 작정이었는데 웬걸 그 사이에 두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없었던 것입니다.
‘ 그 새 어디로 간기여.’
나는 다시 집으로 들어와서 혹시나 하고 작은 언니네 방문을 열고 보니 세상에 이 언니가 귀신처럼 머리를 풀어헤치고 거울을 보고 있지 않겠어요. “
“ 언니 뭐하는 거여.”
거울을 보던 언니가 소스라쳐 놀라더니
“ 언니. 간 떨어지겠다 왜 그리 소란이냐.” 하는 것이었지요.
“ 언니 어디 갔다 왔지. 그렇지?”
그러자 언니는 태연스럽게 깍지광에 쥐가 있는 것 같아서 일꾼오빠에게 쥐를 잡아달라고 하였다고 능청을 떨더라니 깐요.
“옷을 벗으라고 하던데 그 말은 무슨 말이었어.“
그러자 언니는 대답을 하지 못하더니 한참 만에 더듬거리며 말을 하는 것 이었지요
“저기… 쥐를 잡으려니 오빠 윗도리를 벗어서 잡으란 뜻이었지.“
“언니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 듯도 하여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지요.
그런 일이 있은 후에 언니의 동태를 열심히 살펴보았지만 그 후에는 별 다른 이상을 찾을 수가 없었으니 그날 깍지광에서의 수수께끼는 영영 풀리지를 않았습니다.
언니의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고 다음은 다른 분의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마침 용 수희 씨가 나오시네요. 어서 앞으로 오셔서 좋은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
“ 안녕하세요.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이렇게 여러분의 얼굴을 대하고 보니 지난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신 분이 몇 분 있네요. 관광을 하려면 힘이 있어야 하거든요. 좋은 장면이 있다면 걸어가서 보아야 하는데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신 분이 걱정이네요. 그렇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다리가 아프면 버스 안에서 쉬면되고 골이 아프면 기사님이 준비하신 두통약을 먹기만 하면 낳을 것입니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우리가 이렇게 밖엘 나오게 되면 무엇보다도 하루 종일 웃어야 하지 않겠어요. 정말 웃어 운 이야기 한 마디하고는 들어 가겄습니다.
말씀을 드리기 전에 여러분은 잘 때에 신랑을 어느 쪽에 두고 잡니까. 나는 그게 궁금한 여자예요. 왜냐하면 왼손잡이는 신랑을 왼쪽에 두고 자야 편한데 우리 신랑은 오른손잡이라서 그런지 나를 꼭 자기의 오른 쪽에다가 뉘이고 자거든요. 그래서 나는 그게 싫다고 하면 한사코 상대방은 그게 아니라면서 자기의 방식을 고수합니다, 여러분 이런 경우 어찌 해야 좋을지 의견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
그러자 손을 드는 사람이 있었으니 염 수자 이었다.
“ 그것은 말입니다. 신랑을 왼쪽에 두던 오른쪽에 두던 간에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멀쩡한 사람들이 오른쪽 왼쪽 가릴 것 없이 우선 사랑을 하려면 몸을 밀착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밤에 집에 돌아가자마자 맨 먼저 그렇게 해 보시면 신랑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히히.”
그러자 뒤쪽에서 킬킬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그 소리에 절실한 면이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말씀을 들어보니 과히 어려운 일이 아님에도 그렇게 고민을 한 것은 아닌가요.”
“그럼 다음 또 말씀하실 분 나와 보셔요. 모처럼 여행을 하게 되니 마음이 들뜨는 것이지만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풀어놓으니 더욱 재미있지요. 그럼 맨 뒤에 있는 금 배희씨가 또 나오시네요. 금 배희씨는 지금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고 있다는 것만 압니다. 금 배희씨가 나오시네요. 어서 오세요. 재미있는 말씀 좀 부탁드립니다.”
“ 금 배희입이다. 황 가희 씨가 말한 대로 나는 농사를 지으면서 부업으로 화장품을 팔고 있는데 사실 농사는 신랑이 짓는 답니다. 어떤 때 부부가 함께 일을 할 때가 많지만 신랑이 주로 하고 나는 구경이나 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면서 어떻게 장사를 하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농사라는 것은 여러 분이 아시다 싶이 일 년 열두 달 동안에 두서너 달가량 농한기가 있을까 그 외에는 논과 밭에서 씨 뿌리고 김매고 거두는 절차를 밞아야 낟알이 우리 입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런 이치를 알고 농사를 짓다 보면 집과 논밭에서 하루도 떠나지를 못하게 됩니다. 논과 밭뿐입니까. 밤에는 요 .우리 신랑이 얼마나 놀이를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내가 피곤하다고 하면 그것은 사랑을 나누고 나면 다시 되살아난다면서 몇 번이고 그야말로 황소가 암소를 보게 되면 몇 번이고 기어오르듯이 그렇게 나를 대하니 좋기도 하고 어떤 때는 자고 싶기도 한데 그러지를 못합니다. 어떻게 해결방법이 없을까요.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앞좌석 쪽에서 히히대며 웃는 소리가 들리었다.
“ 그러고 보니 너무 좋은 풍경들 속에서 잘도 사시고 계시네요. 그것이 인생의 낙이고 그것이 우리들에게 필요한 활력소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제는 말의 마무리를 해야 하겠네요. 곧 점심때가 되니 어디 가서 입을 즐겁게 해야 하지요. 그러기 전에 마지막으로 저의 말씀을 하겄습니다. 황 가희 저의 남편 고 숭치 씨는 한 때는 복덕방을 하였으나 언젠가 건물 하나를 소개한 것이 저당 잡힌 것을 감쪽같이 모르고 중개를 하였다가 손해만 본 다음에는 복덕방을 고만두고는 집에서 놀게 되었지요. 황 가희는 식구들을 굶길 수가 없자 할 수없이 보따리 장사를 하여 수입을 올리다가 그래 가지고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 나중에는 가게 세를 하나 얻어서 잡화상점을 하게 되고 남편으로 하여금 상점 일을 보라고 하였는데 복덕방을 하던 남편은 하루에 반은 놀면서 일을 하던 사람이라 가게에 궁둥이를 부치고 앉아 있지를 않는 거예요. 만날 문을 열어놓고 돌아다니다 보니 가게 물건이 팔리지를 않게 되어 불가불 가게는 파리만 날리게 되고 빚만 덜컹 지고는 가게를 처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편 얼굴만 바라보고 살다가 가게를 모처럼 하다 보니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다음에는 다른 직장을 얻어 볼 생각입니다. 여자로서 할 일은 많다고는 하지만 막상 현장에 부딪치다 보니 모든 것이 그리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제 인생을 뒤돌아보니 신랑을 잘 만났다면 고생을 하지 않고 잘 살 수도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을 후회한 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물은 이미 엎질러졌으니 주워 담을 수도 없고 모둔 것이 팔자려니 하면서 살렵니다. 혹시 나와 같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여자가 있다면 함께 일감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나와 함께 일을 하시고 싶으신 분은 점심시간에 만나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만 마이크를 총무님께 넘기겠습니다.”
마이크를 받은 총무는 지금까지 몇 분의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듣다 보니 지금 이 차가 어디를 왔는지 도무지 알지를 못하겠네요. 수고해주신 분에게 박수를 보냅시다.
그리고 한참 후에 총무가 다시 마이크를 잡더니 지금 여행 목적지인 충청도 법주사에 도착을 하였다고 하였다. 총무는 우선 목적지에 도착을 하였으니 점심을 먹은 후에 경내를 돌아보고 시간이 닿는 대로 등산을 한 후에 일정을 마치기로 한다고 하였다.
황 가희의 하는 이야기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던 옥연이는 자기 남편에 대한 일말의 이야기 거리가 없지는 않았지만 인생 살아가는 과정이 다 다른 가운데서도 옥연이의 남편에 대해서 생각을 하니 근래에 와서 그에게 불만을 가져온데 대해서 생각할 바가 많았다.
결혼할 때만 해도 서로가 좋아서 결혼을 하였고 살다가 보니 주야로 흘러가는 개울물에도 이끼가 끼듯이 인생사에도 그런 험이 비일비재할 것이지만 인간의 욕심이란 그렇지를 못한 것인가.
“ 회장님 어서 내리시지. 뭘 하셔요.”
총무의 한마디에 옥연이가 자리에서 일어서니 갑자기 머리가 팽개르르 돌면서 어지러워 의자를 붙잡고 자리에 앉자 총무가 왜 그러느냐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金 斗 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