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평리 마을 한 가운데, 두 채의 큰 기와집이 있는데, 그중 남쪽에 위치한 '쌍암고택'은 마을에선 '미동댁', '동성댁', '삽개댁'등 택호로 불리워 왔다. 이 집은 1979년 12월 31일부로 문화재청 중요민속자료 제 105호로 지정되어 문화재청의 보호를 받고 있는 우리 마을의 유산이다. 과거 집 동남쪽으로 큰 바위 2개가 있어서 '쌍암고택'으로 불려지게 되었는데, 바위 1개는 아직도 이웃집(한밤댁) 담벼락에 남아 있지만 나머지 1개는 옆집을 지으면서 땅에 파묻었다고 한다.
안채 대들보에는 상량문이 적혀 있는데, 오래되어 겨우 알아볼 정도이지만 ' 崇禎三乙亥(숭정3을해)'라고 적힌 걸 알아 볼 수가 있는 바 이 집의 건립연대가 조선조 영조31년 1755년임을 알 수가 있다. 이 집은 원래 전주최씨 최광익(崔光翊)이 자신의 살림집으로 지은 걸로 알려지고 있지만 당시의 여러가지 정황으로 짐작컨데, 최광익 본인이 직접 지었다기 보다는 어머니인 진성이씨가 지은게 아닐까 추측해 볼 수가 있다. 그렇게 추측하는 이유는 최광익은 이 집을 짓기 시작할 무렵인 즉 영조 29년 1753년 나이가 23세로 계유년(癸酉年) 식년시(式年試)에 진사 3등으로 입격을 하였고 이듬해인 1754년에는 형 셋이 동시에 진사와 생원시에 입격을 하였다. 이 집의 상량연도가 1755년인 바 이 집을 짓기 위한 준비와 착공연도는 적어도 2년 전쯤으로 봐야 되는 바 결국 최광익과 형제들이 과거 공부와 과거 시험에 열중하던 때인 바 최광익이 20대 초반의 나이에 과거 공부를 하면서 직접 자신의 집을 짓는다는 건 생각하기 어려우며 결국 모친인 진성이씨가 이 집을 지은게 아닐까 추측을 해 본다. 사랑채의 경우에는 상량문에 '崇禎三戊午四月丁四十六日庚辰'으로 적혀 있는 바 정조22년 1798년 4월 16일'에 건립이 된 걸로 되어 있는데, 안채에 비해 43년 후에 지어진 것으로 되어 있는 바 안채와 비슷한 시기에 지었던 안채와 비슷한 시기에 지었던 사랑채를 헐고 나중에 다시 지은게 아닐까 생각이 되었지만 최근에 당시 집주인이었던 최승우가 기록한 '재와기(䏁窩記)'의 기록을 보면 선친으로부터 물려 받은 작은 규모의 3량(樑)집을 헐 수가 없어서 기존의 작은 집에 덧대어 증축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전해 오는 얘기로는 사랑채를 지을 당시에 최승우가 '한양의 대궐 건물을 본 떠서 지었다'는 말도 전해지고 있지만 이 집보다 10년 전(1788년)에 지어진 이웃의 북애고택 사랑채와 구조가 거의 같으며 당시의 경상도 지방의 건축 양식인 바 대궐 건물을 본 떠서 짓지는 않았지만 전문가들에 의하면 당화(唐花) 문양을 주두(柱頭)에 사용하는 등 쌍암고택 사랑채의 경우 '민가에서 볼 수가 없는 구조가 군데군데 있다'고 하는 바 최승우가 증축을 하면서 다른 건물의 구조를 많이 적용한 걸로 추측할 수 있다.
이집을 지은지 33년 후인 정조10년 1786년에 이집의 북쪽 건너편에 최광익의 작은 아들인 최승우(崔昇羽)의 살림집('서울댁'으로 택호가 불리는 북애고택北厓古宅)을 지은 후 쌍암고택에 살고 있던 큰 아들인 최성우(崔成羽)와 집을 바꾸었다고 한다. 그래서 북애고택에는 대대로 최성우의 후손들이 살아 왔다. 그런데 당시의 여러가지 정황으로 봐선 최광익의 두 아들이 각각의 집에 살다가 집을 서로 바꾼 것이 아니고 애초에는 작은 아들인 최승우의 살림집으로 지어 졌으나 집이 완공되자 큰 아들인 최성우가 그 집으로 입주를 하게 된 것으로 추측이 된다. 해평마을의 최씨문중에선 과거부터 '큰 집이 작은 집보다 밖으로 나가선 안된다'고 전해 오기에 해평마을에선 안쪽은 북서쪽인 바 큰 아들인 최성우가 북쪽 즉 안쪽에 위치한 북애고택으로 입주한게 아닐까 추측이 되는데 그 이유로는 후대에서도 그런 예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집에서 살던 최승우가 비교적 늦은 나이인 45세 때인 순조 14년 1814년에 문과에 급제한 후 한양으로 벼슬 길에 나서게 되어 비게 된 이 집에 당시 쌍암고택 북서쪽 이웃에 살던 최승우의 백부인 최광옥(崔光玉)의 차남인 최장우(崔章羽)의 후손이 쌍암고택으로 이사를 하여 오늘날까지 쌍암고택에는 최장우의 후손이 거주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문화재청의 자료에는 이 집에 대한 정보가 아래와 같이 남아 있다.
지정번호 : 중요민속자료 제105호
지정연도 : 1979년 12월 31일
소재지 : 경북 구미시 해평면 해평2길 40(해평리 239)
시대 : 조선시대
분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소유주 : 최열
첫댓글 최장우의 아들 최운영(의인 출입) 이 구입 현재까지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