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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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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E:126°02′ N:34°36′ |
면적 |
1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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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사항 |
1380년경 나주나씨가 처음으로 입도하여 정착하였다고 하며, 섬의 형국이 연화만개형태이므로 연꽃 화를 쓰고 섬의 산들이 낮고 평탄하다 하여 옷의를 써서 하의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대유학자 초암 김연 선생이 고향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고 그 분의 위패와 유품인 고서적을 보관한 덕봉강당이 하의면 대리에 있다. 330여년간 이끌어온 하의도 토지 분쟁이 1949년 유상반환으로 해결되자 항쟁기간(특히 일제시대) 중 공헌한 사람을 기리기 위한 토지항쟁비가 하의면 대리에 세워져 있다.
망마산 동굴, 대리당에 대한 전설과 연자방아 놀이, 모내기 소리, 도리깨 소리 등이 전승되고 있다. 특산물로는 마늘, 낙지, 전통식초, 유자 등이 있다.
특히 유자는 토질 및 자연환경이 적합하여 재배의 적지이며 질이 좋다. 인근 청정해역에서 김, 미역, 톳 양식으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하의도에는 웅곡 선착장이 있다. 하의도, 대야도, 신도(이상 전남 신안군)는 서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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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까지의 배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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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하의도 : 조양페리2, 뉴조양페리 ◈출항시간 : 06:30, 10:00, 14:10 ◈배편문의 : (주)조양운수 061-244-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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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숙박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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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철( 면소재지 - 낚시배대여 )061-275-40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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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항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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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의도는 1623년 조선 인조때부터 1950년대까지 3백년넘게 장구한 농지탈환운동이 벌어졌던 역사적인 섬.
3백년에 걸친 농민운동의 무대 하의도을 조명해 보자. 조선조 선조 때 맏딸 정명 공주의 불치병을 치료한 홍계원을 사위로 삼고 하의3도(하의도, 상태도, 하태도)를 그에게 무토사패로 준다.
즉 농민들은 세금을 호조에게 내지않고 홍씨 가문에 바쳐 왔다. 홍씨 가문의 결세징수권이 만료되었으나 계속 받아가니 섬사람들은 홍씨 가문과 호조에 일토양세(一土兩稅)을 바치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1723년 섬사람들은 경조제소를 냈고, 1908년 경성공소원에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판결을 받았으나 그 사이 토지 소유권은 일본인 토쿠다에게 넘어 갔다. 결국 하의 삼도 농민은 농민회를 결성하여 항쟁을 계속하게되었으며 광복 후에는 미군정청으로 귀속되고 말았다.
다시 농민들은 농민토지 탈환 운동을 하게 되었고, 농민들의 요구를 받아 들여 국회에서 무상환원을 결의했으나 6.25 전쟁으로 말미암아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1957년에 드디어 유상상환으로 하의도 주민들의
소유가 되었다.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웅곡선착장 부근에는 토지항쟁기념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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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봉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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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의도는 지조높은 유학자 초암 김연의 고장이기도 하다. 김대중 대통령이 다녔던 덕봉강당은 1908년경 후학 양성을 목적으로 조선말 대유학자이신 초암 김연선생(1883-1959)이 설립(당시 "봉람제"라 불림)했으며, 당시 신간서적이라면 국내는 물론 중국, 일본까지 돌아다니면서 2,000여 권의 고서(필사본)를 모았다.
초암의 높은 학문을 배우러 나주, 신안의 모든 지역에서 수천명의 제자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1952년경 후학도 천여명이 주축이 되어, 현위치에 봉람제를 신축, 덕봉강당이라 명명했다. 현재 덕봉강당은 초암선생의 자 김춘배옹이 관리하고 있으며, 고서적(성리대전 등) 166종, 1441권이
소장되어 있으며, 오성(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과 퇴계 율곡, 초암선생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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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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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2km,폭1km,수심2m의 신도해수욕장은 해송,아카시아,수기나무,동백나무 등이 자생하고 있다.
신도는 섬 전체가 경관이 뛰어나고 울창한 송림과 산림은 마치 원시림을 방불케 한다.
또한 해안에는 길이800m의 모래밭과 백사장이 있어 여름 피서지로는 제격이다.
또한 20여년전부터 방목해 놓은 흑염소 천여마리가 산에서 자생하는 약초와 야생초를 먹고 자라 약효가
뛰어나다. 마을 주민에게 예약하면 흑염소 바베큐도 맛볼 수 있다.
신도의 특산물로는 돌미역, 꽃게등이 있으며 여름철에는 마을에서 직접 돌미역을 구입할 수 있고 신도
꽃게는 전국에서도 맛이 제일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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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초바다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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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밀, 보리를 부원료로 일체의 화학약품 처리 없이 순 전통재래방식으로 제조한 건강식초로서 다도해
정청해역 하의도 해변에서 자라온 소나무 솔잎을 채취/ 가공하여 만든 천연 건강음로이다. 타우린, 칼숨과 50여종의 미네랄 성분이 있어 빈혈, 감기, 성인병 회복에 좋다.
가격은 민속식초는 0.9L X 15 이 5,000원이며, 실로암 바다솔은 30g X 100 이 70,000원이다. 문의처는 신안미속식초(061-244-9904), 실로암 전통식품(061-275-365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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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과 일몰을 한꺼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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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해에 위치한 하의도는 일출과 일몰을 함께 구경할 수 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서남해의 거친파도를 물리치고 어둠을 뚫고 수평선
위로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많은 것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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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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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의 하의도 생가복원사업은 대구지역 노인들의 정성어린 성금
기탁으로 마무리되어서 동서화합의 표본이 되고 있다.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는 김대통령이 태어난 곳으로 지난 98년 대통령 취임이후 국내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나 국토최남단인 하의면 섬마을까지 찾아온 관광객들은 실망을 금치못했다. 당시만해도 생가터는 밭으로 변해있었고 고작해야 대통령
고향집터라는 푯말만 서있어 생가에 대한 의미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하의도를 방문했던 대구 노인복지대학 노인회(회장 김상수)는 국가역사와 국민교육적 차원에서 대통령 생가가 꼭 복원돼야한다며 1백20만원의 성금을 기탁해 생가복원작업의
불을 당겼다.
성금기탁을 계기로 하의도 대통령 종친들이 장손인 김홍일 의원을 주축으로 당시 김대통령 생가를 뜯어
옮겨 살고 있던 이웃마을 주택을 매입, 목재 등 건물의 골격을 수거해 복원에 들어갔다.
생가는 대지 7백46평에 18평의 6칸 접집으로 안채와 창고 1동 화장실 1동 등의 부속채와 함께 지난해 9월 헐린 지 60여년만에 복원돼 동서화합의 성과물로 평가되고 있다.
대구노인회원들은 이같은 인연을 계기로 하의도 웅국부녀회원들과 모녀결연을 맺어 매년 상호 초청방문 등을 통해 우의를 돈독히 함은 물론 끈끈한 모녀의 정으로 승화시키고 있어 정이 넘치는 동서화합의 장을 열고 있다.
대통령 취임 2주년에는 지역적 갈등을 없애고 화합의 날 선포를 위해 대구 노인복지대학생들과 임진강 대성동 자유의 마을 부녀회 귀순자 협회회원들이 하의도를 방문해 국가안녕과 민족단합을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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