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南漢山城
수어장대 453m
청량산 497.9m
남한산성 남문해발 370m
남한산성 서문
남한산성 북문 눈산행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축조되어 조선시대 수도
한양을 지키던 성곽. 산성. 사적.
남한산성 코스
단대 오거리역 ㅡ남한산성 유원지
ㅡ남한산성 남문 ㅡ수어장대 ㅡ
청량산 정상 ㅡ남한산성 서문 ㅡ
남한산성 북문 ㅡ남한산성 종로 ㅡ
남한산성 터널 ㅡ남한산성 유원지 ㅡ
단대 오거리역 ㅡ원점 산행
약 14km 약 5시간 산행 ㅡ
흔히 북한산성(北漢山城)과
함께 조선의 도성인 한양의
방어를 위하여 쌓은
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의 발굴조사 결과,
8세기 중반에 조성된 성벽과
건물터 등이 확인되어,
신라 주장성(晝長城)의
옛터였을 것으로 추정
되고 있다.
조선시대 남한산성은 주봉인
해발 497.9m의 청량산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연주봉(467.6m),
동쪽으로는 망월봉(502m)과
벌봉(515m),
남쪽으로도 여러 봉우리를
연결하여 성벽을 쌓았다.
성벽의 바깥쪽은 경사가
급한데 비해 안쪽은
경사가 완만하여,
방어에 유리하면서도
적의 접근은 어려운 편이다.
봉암성(蜂巖城),
한봉성(漢峰城),
신남성(新南城) 등
3개의 외성과 5개의 옹성도
함께 연결되어 견고한
방어망을 구축하였다.
성벽과 성 안에는 많은
시설물과건물이 있었지만,
지금은 동·서·남문루와
장대(將臺)·돈대(墩臺)·
보(堡)·누(壘)·암문·우물 등의
방어 시설과 관청, 군사훈련
시설 등이 남아 있다.
남한산성 지화문
[ 南漢山城至和門 ]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
에 있는 남한산성의 남문(南門)이다.
남한산성 서남쪽
해발 370m 지점에 있다.
선조 때 남문·동문 등을 수축
(修築)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아 그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남한산성의 사대문 중 가장 크고
웅장하며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산성으로 피신할 때 이 문을
통과하였다.
정조 3년(1779년) 성곽을
개축하면서부터 지화문
이라 불렀다.
성문은 홍예문으로,
높이 4.75m·폭 3.35m·
길이 8.6m이며 홍예기석 위에
17개의 홍예석을 쌓아 만들었다.
홍예문 좌우 성벽은 자연석을
수평줄에 맞춰 막돌 쌓기로
축조한 것이다.
1976년 복원된 문루는
정면 3칸·측면 3칸 규모이다.
남한산성의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게 인정되어
2014년 6월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된 유네스코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신규
등재되었다.
1985년에
지표조사가 실시된 이래,
1998년부터
8차례에 걸쳐 행궁터,
인화관터, 일부 성벽에
대한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그 결과 대략적인 축성 시기와
함께 변천 과정도 파악되었다.
수어장대
있는 조선후기 에 건립된 팔작
지붕의 건물. 장대·성곽시설. 보물.
이 건물은 조선 인조 2년
(1624)에 남한산성 축성과
함께 축조된 동·서·남·북의
4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장대로 산성 내 최고봉인
일장산성(해발 453m)에
위치하고 있어 성내와 인근의
양주, 양평, 용인, 고양 및
서울, 인천까지도 조망
할수 있는 곳이다.
당초에는 단층누각으로 축조하고
서장대라 불리었으며 남한산성의
수어를 맡았던
수어청(전, 좌, 우, 중, 후의
5관이 소속되었음) 중 우영장이
진을 치고 있었던 곳이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에는 인조가 친히
군사들을 지휘,
격려하며 청태종의 13만
대군과 대항하여 45일간을
항전하던 곳으로
영조 27년(1751)에는
유수 이기진이 왕명으로 서장대
위에 2층 누각을 건립하고 외부
편액은 수어장대, 내부편액은
무망루라 이름하였다.
청량산 497m
청량산(淸凉山)은 경기도 하남시
학암동, 성남시 수정구 양지동,
서울특별시 송파구 마천동에
걸쳐 있는 산이다.
이곳에 사적 제57호로 지정된
남한산성이 위치한다.
청량산은 일견 평범한 산처럼
보이지만 산속이 광대한
분지로 되어 있고 밖으로는
험한 경사를 이뤄 천혜의
요새지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청량산 482.6m,
남한산 벌봉 522m, 한봉 414m,
검단산 538.1m으로 이어지고
있어 산세의 구별이 모호하다.
산성은 정확히 말하면 청량산과
남한산에 걸쳐 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금암산(金岩山, 322m)과
더불어 남한산맥의 지맥
으로 분류되고 있다.
남한산성이 백제 온조왕 때
도성이었다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발굴조사 결과 백제 주거지
2곳과 저장 구덩이 8곳 등이
확인되었을 뿐 성곽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오히려『삼국사기(三國史記)』
에는 673년(문무왕 13)에
한산주(漢山州)에
주장성(혹은 日長城)을 쌓았는데,
성의 둘레는 4,360보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주장성은 곧 남한산성이고,
당시 돌로 쌓은 최대 규모의
산성이었다.
2005년에 북문과 동장대 사이의
제4암문과 수구(水口)터 주변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남한산성 우익문
[ 南漢山城右翼門 ]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에 있는 남한산성의
서문(西門)이다.
남한산성을 처음 쌓았을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정조 3년(1799)에 개축하여
우익문(右翼門)이라 부른다.
1637년 1월 30일 인조가 세자와
함께 청나라 진영으로 들어가
항복할 때 이 문을 통과했다고 한다.
서쪽 경사면이 가파르기 때문에
물자를 이송하기는 힘들지만
서울 광나루와 송파나루 방면
에서 산성으로 진입하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성문은 반원형 홍예문이며
높이 2.5m·폭 2.1m로 작고 좁다.
문 안쪽에는 2짝의 목재 판문이 있다.
정면 3칸·측면 1칸의 문루는
겹처마의 팔작지붕 양식이다.
남한산성에 대한 고려시대
기록은 광주부사를 지낸
이세화묘지명(李世華墓誌銘)이나
『고려사(高麗史)』에 몽고군이
침입하였을 때 ‘광주성(廣州城)’
으로 피하여 항전하였다는
것 등이 전한다.
산성 안에서 고려시대 건물터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광주성은
바로 남한산성으로 추정된다.
한편『세종실록지리지
(世宗實錄地理志)』에는
일장산성이라고 기록되었는데,
둘레가 3,993보이고 성 안에는
군자고(軍資庫)가 있으며
우물 7곳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으며,
성 안의 논밭이 124결(結)
이나 된다고 하였다.
이 기록 역시 신라 때 축성된
주장성, 일장성이 그대로
이어져 온 것으로 보인다.
성 안에는 광주부의 읍치를
산성 안으로 옮겼기에 행궁과
함께 많은 관아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유사시에 국왕이 거처할
행궁(行宮)이 73칸반의 규모이고,
하궐(下闕)은 154칸 정도이다.
남한산성 전승문
[ 南漢山城全勝門 ]
북문(北門)이다.
남한산성 북쪽 해발 365m
지점에 있는 북문으로,
이 문을 통해 세곡을 운반하였다.
인조 2년(1624)에 신축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정조 3년(1779)
성곽을 개보수할 때 개축한 후
전승문(全勝門)이라 이름 붙였다.
현재 편액은 걸려 있지 않다.
성문은 홍예기석 위에 10개의
홍예석을 쌓아 만든 홍예문으로
높이 3.65m·폭 3.25m이다.
성벽의 두께는 7.1m에 이른다.
단층의 문루는 정면 4칸·측면
2칸 규모이며
겹처마를 두른 팔작지붕을 올렸고,
주심포 양식의 민흘림 기둥을 세웠다.
기우제ㅡ인조때 큰가뭄ㅡ하눌이 감동동을 하였는가요ㅡ하늘에 먹구름이 몰려 오더니 ㅡ굵은 빗방울의 소나기가 ㅡ내리기 시작 했습니다.ㅡhttps://m.cafe.daum.net/rnqdmsekfl/VQoX/1571?svc=cafeapp
기우제ㅡ인조때 큰가뭄ㅡ하눌이 감동동을 하였는가요ㅡ하늘에 먹구름이 몰려 오더니 ㅡ굵은 빗
기우제 인조때 큰 가뭄이 들어서 농작물이 모두 타들어 가고 민심은 흉흉해졌습니다.인조대왕은 베옷을 입고 신하들과 함께 남한산성에 올라가 기우제를 올렸습니다.기우제에 하늘이 감동
m.cafe.daum.net
보고싶은내여인아ㅡ현 철 노래ㅡ남한산성 ㅡ눈오는 영상 입니다ㅡhttps://m.cafe.daum.net/rnqdmsekfl/VeFx/460?svc=cafeapp
보고싶은내여인아ㅡ현 철 노래ㅡ8월의 마지막더위ㅡ잠시라도 잊으시라구ㅡ
보고 싶은 내여인아ㅡ현철 노래ㅡ남한산성 ㅡ눈오는 영상입니다ㅡ
남한산성도립공원ㅡ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ㅡ성곽따라 한바뀌ㅡ남문.동문ㅡ
수어장대.영춘정 ㅡ남한산성 역사이야기ㅡ
http://m.cafe.daum.net/rnqdmsekfl/VROU/112?svc=cafeapp
남한산성도립공원 ㅡ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ㅡ성곽따라 한바뀌ㅡ남문.동문ㅡ북문.서문ㅡ수어장
남한산성南漢山城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축조되어 조선시대 수도 한양을 지키던 성곽. 산성. 사적.조선시대 남한산성은 주봉인
남한산성도립공원ㅡ남문 수어장대 ㅡ서문 연주봉 웅성 ㅡ북문 행궁 유네스코https://m.cafe.daum.net/rnqdmsekfl/VROU/68?svc=cafeapp
남한산성 도립공원ㅡ남문 ㅡ수어장대 ㅡ서문 ㅡ연주봉 웅성 ㅡ북문 ㅡ행궁 ㅡ유네스코
남한산성 도립공원 유네스코 등재남문, 수어장대 .서문,연주봉 웅성, 북문, 오거리남한산성 행궁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인기명산 95위인 남한산성은 1963년 1월 21일 사적 57호로 지정되었
남한산성 도립 공원 ㅡ유네스코 등제ㅡ남한산성 행궁 ㅡ남한산성 안에 있는ㅡ조선시대의 행궁ㅡ조선 시대 행궁은 총 19개 이다 ㅡhttps://m.cafe.daum.net/rnqdmsekfl/W39E/490?svc=cafeapp
남한산성 도립 공원 ㅡ유네스코 등제ㅡ 남한산성 행궁 ㅡ남한산성 안에 있는ㅡ 조선시대의 행궁
남한산성 행궁 南漢山城 行宮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의 남한산성 안에 있는 조선시대의 행궁터. 사적 제480호이다.남한산성의 행궁은 1624년(인조 2) 7월에 착공하여 1626년 11월에
남한산성 눈산행
나홀로 뚜벅이
오늘은 웬지 쓸쓸하다
따뜻한 날씨에
오늘은 남한산성에서
눈산행을 해보는구나
청솔 ㅡ임 경운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