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경덕 시집 『악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밤』
<못주머니>
군용 천막으로 만든 국방색 못주머니
목수인 아버지 허리에 매달려 살았다
나로도, 녹동, 광양, 거문도까지
파도를 넘어 일거리를 찾아 따라가던 못주머니
바쁠 땐 아버지 입이 못주머니였다
서너 개씩 입에 물리던 못들
망치 소리 빨라지면 입에 물린 못들도 하나씩 사라졌다
손에 박인 못자국과 비릿한 쇳내는 모두 못주머니에서 나왔다
탕, 탕 망치의 장단에 나무의 뼈가 이어지고
기둥이 서고
지붕이 덮이고
집들이 일어섰다
미송 나왕 소나무 편백
단단하고 여린 나무의 속살을 매섭게 파고들던
대못 무두못 살못 납작못
집 속으로 사라진 그 많은 못은
집의 뼈가 되어 돌아오지 않았다
늦은 밤, 지친 허리를 놓고
나무연장통으로 들어가던 초라한 못주머니
온갖 못들이 전대처럼 생긴 주머니에 우글거리며 살았지만
못에 찔린 상처와 먼지뿐
탈탈 털어도 땡전 한푼 나오지 않았다
<뻐꾹채는 피고>
뒷산에서
바람을 타고 마을로 내려오던 그 소리
어느 나뭇가지에 홀로 앉아있었을까
둥지 하나 짓지 못한 어미 가슴에
발갛게 번진
봄볕에 열흘을 말려도
마르지 않는 울음이 어렴풋이
탱자울타리를 넘어오면
고모는 방아를 찧다 말고
치맛자락으로 쏟아지는 가슴을 받아내고
그때 어린 내게 뻐꾸기울음이 옮겨붙었다
뻐, 꾹, 뻐, 꾹,
오래전 뻐꾸기가 되어 날아간
볕에 다 바랜 고모와
뻐꾹채 피던 그 늦봄을
나는 주머니에 가만히 담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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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의 시 & 산문
못주머니/ 마경덕 시집/ 『악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밤』
박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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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27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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