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모 곡
27구역 5반 안병호 스테파노
유난히도 비도 많이 오고 무더웠던 올여름, 입추가 지나고 처서가 다가오고 있으니 무더위도 시간 앞에서는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무더운 여름이 오면 내 기억 한편에 깊이 박혀있는 어머니를 떠올립니다. 그해 여름도 올여름만큼이나 무더웠던 것 같습니다. 무척이나 바빴던 그해, 난생처음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했던 지난해의 여름휴가를 떠올리며 같이 가기로 한 지리산 계곡의 늦은 여름휴가를 며칠 남겨 두고 홀연히 하느님의 부르심
을 받아 선종하신 나의 어머니.
평안북도 의주에서 박해를 피해 몇 대째 산속에서 옹기를 굽던 독실한 천주교 집안의 맏딸로 태어나신 어머니는 해방과 함께 밀어닥친 공산당을 피해 할머니의 고향인 해주로 할머니와 막냇동생과 함께 피신하셨지만 곧 뒤쫓아 내려오시기로 한 나머지 가족과는 영영 못 만났다 하십니다. 6.25 전쟁 후 양장 기술을 배우시어 당시 꽤나 유명했던 명동의 모 백화점 양장점에 다니셨고 당시 군인이셨던 아버지를 만나 명동성당에서 결혼하시어 삼남 일녀를 슬하에 두시고 나름대로 행복한 생활을 하셨지요. 어머니 나이 34, 내 나이 8살 때 아버지의 교통사고로 평화롭던 가정에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13번의 대수술 끝에 목숨은 살리셨지만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 신세를 지고 30여 년을 사셨지요. 여자 나이 34살, 한 가정의 삶의 무게를 조그만 어깨에 짊어지기에는 너무나 안타깝고, 힘든 나이가 아니었나 싶네요. 어렸을 땐
잘 몰랐는데 내가 나이 먹어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고 살다
보니 뼈저리게 와닿습니다.
집을 팔아 병원비로 충당하고, 결국 서울 생활은 포기하고 경기도 지축리로 이사 오게 되었지만, 자식에 대한 교육열은 어찌나 대단하셨던지 초등학교 2학년인 나도 지축리에서 사직동 까지 한 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통학시키셨지요. 생계에 쪼들 리며 어렵게 사셨지만, 하느님에 대한 믿음만큼은 어머니를 지탱해 준 큰 힘이 되셨지요, 당신이 자식들에게 못 해주는 부분은 하느님께서 채워주시리라 굳게 믿었으니까요. 덕분에 우리 4형제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성당에 열심히 다닐 수 있었고,
나름대로, 주일학교, 중고등부 학생회, 주일학교 교사 활동을
통하여 착하고, 올바르게 신앙 안에서 성장할 수 있었지요.
형제들이 성장하여 결혼을 앞둔 나이가 되었을 때 말씀하셨지요. “장애자가 있는 집안에 한 식구가 된다는 것이 너무 고맙고 감사한 일이지만, 내가 남의 사람을 들이는 조건은 단 한 가지다. 같은 신앙을 가져야 하고, 결혼 후에 신앙을 유지하며, 자식들 또한 신앙 안에서 키울 수 있는 사람이면 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그 덕분에 우리 4형제는 모두 성당에서 혼배성사를 받았고, 그중 3명은 무교, 개신교 신자였었으나 모두 영세 후 천주교인이 되었지요. 명절 때가 되면 온 식구를 모아 성당에서 미사 드리는 것을 제일 좋아하셨지요, 평소 성당에 잘 안 나가던 식구가 있으면 어머님은 미사 후에 “아무개야 왜 성체를 모시지 않니? 아무리 바빠도 주일
미사는 빠지지 마라.” 하셨지요 늘 우리 식구들은 어머니의
지적 때문인지 명절 때마다 고해성사를 보느라 분주했지요.
건강하셨던 어머니가 어느 날 갑자기 주무시다가 심장마비로 하늘나라의 부르심을 받던 날 온 가족이 갑작스러운 비보에 큰 슬픔에 잠겨 장례미사를 치를 때 주례 신부님께 큰 위로를 받았지요. 레지오마리에 단원이었고 연령회 활동도 열심이었던 어머님의 장례미사는 레지오장으로 엄수되었으며, 강론 중에 신부님께서는 “우리 요안나 자매님이 손수 떠주신 스웨터를 입고 지난 겨울 따뜻하게 잘 지냈는데... 늘 자식들에게 짐이 안 되게 고통 없이 좋은 모습으로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게 기도하셨었는데, 하느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자매님을 본받아 기도 열심히 하세요. 분명히 하늘나라에서 하느님께서 어서 와라 요안나! 하시며 반갑게 맞이
해 주실 겁니다”
지금은 내 곁에 계시지는 않지만, 뜨거운 여름이 되면 사랑스러운 어머니의 숨결을 많이 느낍니다. 제 나이 환갑을 넘어 어머님의 봉사와 희생의 반의반도 못 따라가지만 성당에서 조그만 봉사를 하며 주님 안에서 생활할 수 있게 목숨을 주시고 신앙을 주시고, 무한한 사랑을 주신 어머니께 감사드립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주님, 저의 어머님이신 요안나에게 영원한 안식을 베푸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