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단
이태준
찰찰하신 노老주인이 조석으로 물을 준다. 거름을 준다. 손아孫兒들을 데리고 일삼아 공을 들이건마는 이러한 간호만으로는 병들어 가는 화단을 어찌하지 못하였다.
그 벌벌하고 탐스럽던 수국과 옥잠화의 넓은 잎사귀가 모두 누릇누릇하게 뜨기 시작하고 불에 데인 것처럼 부풀면서 말라들었다.
"빗뭉이나 수돗물이나 물은 마찬가질 텐데……."
물을 주고 날 때마다, 화단에서 어정거릴 때마다 노인은 자못 섭섭해 하였다.
비가 왔다. 소나기라도 한줄기 쏟아졌으면 하던 비가 사흘이나 순조로 내리어 화분마다 맑은 물이 가득가득 고이었다.
노인은 비가 개인 화단 앞을 거닐며 몇 번이나 혼자 수군거리었다.
"그저 하눌 물이라야……억조창생億兆蒼生이 다 비를 맞아야……."
만지기만 하면 가을 가랑잎 소리가 날 것 같던 풀잎사귀들이 기적과 같이 소생하였다. 노랗게 뜸이 들었던 수국잎들이 시꺼멓게 약이 오르고 나오기도 전에 움츠러지던 꽃봉오리들이 부르튼 듯 탐스럽게 열리었다. 노인은 기특하게 여기어 잎사귀마다 들여다보며 어루만지었다.
원래 서화를 좋아하는 어른으로 화초를 끔찍이 사랑하는 노인이라, 가만히 보면 그의 손이 가지 않은 나무가 없고 그의 공이 들지 않은 가지가 없다. 그 중에도 석류나무 같은 것은 철사를 사다 층층이 테를 두르고 곁가지 샛가지를 짜르기도 하고 휘어붙이기도 하여 사층 나무도 되고 오층으로 된 나무도 있다. 장미는 홍예문같이 틀어올린 것도 있고 복숭아나무는 무슨 비방으로 기른 것인지 키가 한 자도 못 되는 어린 나무에 열매가 도닥도닥 맺히었다. 노인은 가끔 안손님들까지 사랑마당으로 청하여 이것들을 구경시키었다. 구경하는 사람마다 희한해하였다.
그러나 다행히 이러한 화단이 우리 방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번도 노주인의 재공才功을 치하하지 못한 것은 매우 서운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있는 재주를 다 내어 기르는 그 사층 나무 오층 나무의 석류보다도 나의 눈엔 오히려 한편 구석 응달 밑에서 주인의 일고지혜一顧之惠도 없이 되는 대로 성큼성큼 자라나는 봉선화 몇 떨기가 더 몇 배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이다.
무럭무럭 넘치는 기운에 마음대로 뻗고 나가려는 가지가 그만 가위에 짤리우고 철사에 묶이어 채반처럼 뒤틀려 있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괴로운 꼴이다. 불구요 기형이요 재변이라 안할 수 없다.
노인은 푸른 채반에 붉은 꽃송이를 늘어놓은 것 같다고 하나 우리의 무딘 눈으로는 도저히 그런 날카로운 감상을 즐길 수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불유쾌를 느낄 뿐이었다.
자연은 신이다. 이름 없는 한 포기 작은 잡초에 이르기까지 신의 창조가 아닌 것이 없다. 신의 작품으로서 우리 인간이 손을 대지 않으면 안 될 만한 그러한 졸작, 그러한 미완품이 있을까? 이것은 생각만으로도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우리는 자연을 파괴하고 불구되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을 창조하거나 개작할 재주는 없을 것이다.
이태준 (李泰俊, 1904―?)|소설가
저서|《구원久遠의 여상女像》《해방전후》《문장강화文章講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