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회고록
회고록은 자신을 단두대에 올려놓은 듯 각골의 정신으로 진실을 말해야 하는 글이다. 더구나 대통령의 회고록은 글을 쓰는 사람은 치자의 위치에 이었던 일을 쓰는 것이고, 읽는 사람은 피치자의 입장에서 반추하는 일이다. 그것도 한 시대를 같이 체험했던 일이니 호도하거나 위장한다고 거짓이 진실이 될 수는 없다. 다만 화자와 독자의 해석에 다른 부분이 있음을 인정할 뿐이다.
요즘 노태우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이슈가 되고 있지만 피치자의 입장에서 회고록의 독후 소감을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회고록에는 엄청난 치적을 면류관의 옥구슬처럼 드리우고 있지만 필자가 읽은 소감은 회고록 보다는 참회록을 썼어야할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IMF를 불러들인 장본인이다. 그로 인하여 많은 국부는 유출되고, 국가 경제가 도탄에 빠져 국민들은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다. 이에 대하여 자신의 무능은 반성치 않고 군사독재를 청산한 것을 치적으로 강조하였다. 군사독재에도 장단점은 있었다. 그 옥·석을 가리지 않고 자기의 감정에 치우쳐 싸잡아 비판함으로써 국민적 공감에 이르지 못하였을 뿐만이 아니고 일부 관련자들의 불쾌한 감정만 유발하였을 뿐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김영삼 후보의 대선 자금으로 3,000억 원의 돈을 주었다고 하였다. 받고 안 받고는 당사자 간의 문제이지만 김영삼은 노태우의 쌈지 돈이 아니라고 하였으니, 쓰기는 썼다는 말이 되고, 그 측근은 직접 조달해서 썼다고 하였다. 직접 조달했다면 누구에게서 얼마씩을 받았는지?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썼는지? 그 자금이 비자금에 해당되지는 않는지? 그 돈의 용도를 밝혀야 하고 합법성 여부의 문제도 따져야 할 것이다.
유권자들에게는 후보자의 점심 한 끼를 얻어먹어도 어마어마한 벌의 올가미를 만들어 놓고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썼을까? 일반 유권자들로는 상상이 미치지 않는 부분이다.
여하간 3,000억 원을 줬다는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이 보도를 듣고 놀라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일반 유권자들은 내가 찍어준 후보자가 대통령이 된 줄 알고 있었는데 3,000억 원을 주고 대통령을 산 꼴이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대선 자금에 보태 쓰라고 주었다는 돈이 삼백만 원이라면 짐작이 가는 돈이지만 3,000억 원이라는 돈은 상상이 미치지 안 는 돈이다. 트럭 한대에 백억 원씩을 실었다면 30대의 트럭이 필요하다. 그래도 실감이 안 간다면 우리 5천만 국민 한 사람당 6천 원씩에 해당하는 돈이다. 뿐만 아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언도한 추징금이 2,628억 9,600만 원이다. 김영삼 대선에 준돈 3,000억과 이 추징금을 합하면 5,628억 9,600만 원이다. 국민 일인당 백만 원이 넘는다. 이런 돈을 기업들부터 빼앗았으니 기업이 부도가 나지 않고 견딜 수가 있었겠는가? 이때부터 IMF 구제금융의 싹은 움트고 있었던 것이다.
회고록의 기록을 인용하면 “시중(市中)의 금리에 비하여 융자 또는 차관은 월등히 유리한 조건이었음으로 기업의 입장에서는 금융을 받는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이득을 취하는 것이었다. 그 금융 차액 또는 차관액의 일부를 떼어 통치 또는 정치자금으로 충당하였다고 한다.”
가정의 장롱 속에 묻어둔 돈을 은행에 예금으로 유치하여 그 자금을 산업자금으로 활용하는 것은 은행의 고유 업무이고 그렇게 권장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여야 하는데 금융 자금의 활용까지도 정부가 베푼 혜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대통령을 했으니. 이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왕조 시절 임금보다 무서운 독재자의 욕심으로 군림하였던 것이다.
더욱 기가 막히는 일은 아파트 200만호 건설을 대단한 업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지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고 있다는 말이다.
1987년 말 노태우 정부가 인수할 당시 우리나라의 총 가구 수는 645만 가구였다. 임기 말인 92년 말까지 4년간 건립한 가구 는 모두 264만 가구였다. 그러니 87년 말에 비하면 40%에 달하는 집을 지은 것이다. 주택문제만을 논한다면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 경영은 주택문제만을 해결한다고 나라가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아파트 200만호 건설이 우리 경제에 미친 부작용을 살펴보면
(노태우 정권하에서의 경제 문제는 이장규 외 저 『경제가 민주화를 만났을 때』에 자세하게 분석되어 있다.)
1990년 초 아파트 200만호 건설 계획이 발표되자 전국의 부동산은 일제히 뛰기 시작했다. 200만호의 아파트를 지을 땅의 확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파트 건설은 부작용과 함께 시작 되었다. 부족한 철근은 중국에서 들여왔고 부족한 모래는 바다 모래를 쓰다가 짓던 아파트가 무너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보다 돌이킬 수 없는 문제는 일손의 부족이었다. 당시 건설 현장의 일용 노동자들의 하루 임금은 여자 10,000-15,000 원. 남자 20,000-25,000 원이던 것이 차츰 오르기 시작하더니 몇 달 사이에 여자 2-3만 원, 남자 5-6만 원으로 뛰어 올랐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니 전국 노동계의 임금 문제는 활화산의 폭발처럼 막을 방도가 없었다.
조선업체에서 일하던 용접공들의 한 달 월급이 60-70만 원이었으니 일용 근로자의 수입에 못 미치는 월급이다. 이러니 노동조합이 보고만 있을 리 만무하다. 노조가 불법 파업을 해도 법을 적용할 명분이 없다. 정부에서는 파업은 안된다고 하니 기업체는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급여를 올려주려면 돈이 필요한데, 돈이 없으니 은행에 대출을 요구하면 은행은 추가 담보의 제공을 요구했을 것이다. 그러나 추가로 제공할 담보물이 없으니 정부는 신용대출을 지시했을 것이다.
생산성 보다 높은 임금을 지불하는 기업체는 당장의 결손을 노정 시키지 않으려면 분식회계는 필연적인 결과일 수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보면 대우 그룹의 김우중 회장은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급격한 임금 상승은 물가고로 연동되어 파산 가구가 늘어났다. 견디다 못한 기업체는 살길을 찾아 임금이 싼 외국으로 빠져 나갔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다. 실업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지금 당장은 몇몇 기업의 수출 호조로 세계 7위의 수출국이라고 하지만 빈부의 차는 더욱 심화되고 있으니 나라의 장래가 백척간두에 서있다. 이 원인이 노태우 정권의 무리한 통치자금의 거출과 200만호 아파트 건설의 후유증이다.
한번 올라간 물가를 내리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역사를 가정할 수도 없고 가정해서도 안 되는 일이지만, 아파트 건설을 한승규 경제 부총리의 진언을 수용하여 우리나라의 경제규모에 맞춰 일 년에 45만 가구씩만 짓고 5,600억 여원의 비자금(통치자금)을 거두지만 않았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세계 일류국가로 성장 했을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이 당신들 두 대통령의 통치하에 살았던 국민 한 사람의 시각이다.
하여간 회고록에 지난날의 비리를 밝혀 현실 정치의 부패상을 일부나마 알려 주었으니 우리 유권자들은 새로운 각오가 필요한 때다.
다가오는 19대 국회의원 선거와 18대 대통령은 선거에는 인면수심의 가면을 쓴 呂不韋(진나라 제상)의 간계에 속지 않고 유능한 사람을 뽑느냐에 따라 우리나라의 미래가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사심 없고 미래 지향적인 대통령을 모시는 방법은 우리 유권자 모두의 손에 달려있다.
망구(望九) 노인의 망령이라고 할지 모르나 현 정치권의 작태로는 백년하청일 것이다. 민주주의는 주권재민이니 유권자 모두의 지혜를 집결하여 현명한 리더를 선출하자면 유권자들의 계몽과 모아진 민의를 관철시킬 조직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