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19일 오후 5시 30분이 조금 지나 명동대성당 김 추기경님 조문 행렬에 뒤 늦게 참여했다. 추운 날씨에도 참여 하는 분들의 표정은 맑았다. 가톨릭회관을 돌아 중앙극장 쪽으로 가다 다시 충무로쪽을 향해 한참을 가서도 줄을 설 수 없었다. 가는 도중 직장에서 함께 봉사했던 신자를 만나니 연도에 가 보라고 한다. 가톨릭회관의 뒷문을 통해 3층에 가니 연도가 중간쯤이었다. 1층에 연도가 시작되었다는 안내원을 따라 1층에서 약 30분간에 걸친 연도를 할 수 있었다.
"주님, 추기경 스테파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연도를 마친 나는 다시 긴 줄의 끝으로 갔다. 어린 아이 둘과 함께 온 자매님과 할머니, 할아버지, 아저씨 등 그 분들과 함께 바쁜 걸음으로 명동 성전으로 발길을 옮기다가 명동생활의 많은 날을 보낸 중국집 '성화장'도 예전과 같이 성당 정문 바로 건너편 오른편에 약국위 2층에 그대로 있었다. 성당주변은 높게 건물로 정비가 되었지만 여전히 뒷골목은 존재했다. 화려한 도회지의 어두움은 아직 끝나지 않아 보였다. 달라진 것은 IBK 기업은행 로고가 밤의 불빛으로 커다랗게 빛나고 있었다.
발길은 성전안으로 들어 서기 직전 오른쪽에 성물방과 교육관에 근조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라는 애도 현수막이 걸려 있다. 잠시 이 곳을 드나들던 옛 생각이 났다. 견진성사에서 대부모로 아내와 함께 찾았던 명동성당, 우리 직장 최고 책임자의 견진성사 축하를 위해 찾았던 성당 그리고 금융인 미사 준비와 참례로 찾았던 명동 대성당,,,무엇보다 80년대 민주 성지로 몸살을 앓던 그 때 명동 성당은 우리의 버팀목 아니었던가! 그리고 지금 내가 명복을 빌기 위해 찾는 하느님 나라로 가신 고 김수환 추기경과의 짧고 굵은 만남에서 가졌던 따사로움을 느끼면서....
이미 몇 분전에 입관예절을 마친터여서 나는 제대밑에 안치된 영정앞에서 잠시 성호를 그으며 존경과 사랑 그리고 영원한 안식을 주시라고 하느님께 기도했다. 많이 조문하는 데 누가 되지 않게 스스로 억제된 시간을 쓰고 나오니 아쉽다.
많이 달라진 명동 1가 4번지의 길을 따라서 2호선 명동입구역에서 집에 오는 지하철을 탔다.
사실 나는 장례미사인 오늘(20일,금) 휴가를 냈다. 그리고 장례미사에 참석했다. 일찍 나서지 못하고 8시 30분경에 집을 나섰다. 명동성당에 도착하니 9시가 지나 25분쯤 되었다. 벌써 많은 분들이 가톨릭 회관 마당에 운집해 있다. 사제, 수녀님 등 성직자들의 모습도 자주 눈에 띄었다.
명동 성당안으로는 들어 갈 수가 없다.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20여년전 1987년 시국미사 때 추기경님의 강론을 듣고 그 날 저녁 밥 먹는 것도 잊은채 시국데모에 참여했던 그 자리에 약 3시간 정도 서서 장례미사에 참여했다. 지난 1987년 1월 6일 아들 베네딕도를 낳았다. 그 해 4월 전두환 대통령은 국민의 직접 선거에 의한 대통령 직선제 개헌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에 개헌하지 않겠다(호헌)고 하여 전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내게 했고 많은 시민들이 독재의 시퍼런 폭압에 죽고 다치고 인권이 유린되었다. 그 때 불의와 독재의 정권에 맞선 분이 바로 김 추기경님이었다. 그 날 저녁 퇴근무렵 시국미사에서 추기경님의 결연에 찬 강론을 들었었다. 오늘은 그 분을 떠나 보내는 장례미사에 참석하여 보니 바로 그 자리였다.
날씨가 추웠지만 같이 했던 수 많은 분들은 하나 같이 슬픔과 함께 한 사람의 성자를 보내는 아쉬움속에 사랑의 훈김이 있었다. 정말 아이러니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바로 20여년 전에 내가 시국미사에 섰던 그 자리에서 김 추기경님의 운구차가 출발하였다. 추기경님이 영원히 명동성당을 떠나는 모습을 보았다.
뉴스를 보니 약 30여분 동안 특집으로 장례미사를 보도하고 있다. 오늘 김 추기경님 장례미사를 드리는 시간에는 전국이 잠시 멈추어 버린 듯하였다고 한다. 모든 한국민들의 마음속에 추기경님이 있다. 웰-다잉(잘 죽은 것), 아름다운 떠남(죽음), 사랑 바이러스 라는 말이 김 추기경님의 서거로 인해 한국 사회에 급속히 퍼진 신드롬이다. 장기 기증이 평소 30명이었던 하루 평균 기증자가 100명에서 180명까지 늘었다고 한다.
한국의 큰 어른,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신 사도로서 김수환 추기경은 한국인에게 종교, 진보와 보소,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 할 것 없이 존경받는 분이셨다. "감사하고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말씀이 유언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계명도 "서로 사랑하라."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그리고 명동 성당은 지난 5일 동안 40여만명이 오갔지만 사건 사고가 없고 질서가 잘 유지되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 주었다. 배려와 양보의 미덕이 우리에게 좋은 것이라는 것을 일깨워 준 고 김수환 추기경님을 본 받은 덕 아니겠는가.
김 추기경님의 장례미사는 정진석 추기경님의 교황 특사 자격으로 "교황장" 으로 거행되었다. 정부도 국민장은 아니었지만 그에 걸 맞는 예우로 장례에 협조하였다고 한다. 특히, 불편을 겪은 자동차 운전자들과 시민들도 아무렇지도 않고 오히려 장례에 협조하는 분위기를 보였다. 날씨는 아침 초반에는 흐렸지만 햇빛이 비치고 있었다. 바람은 불었고 추운 날씨에도 미사에 나온 노인들의 모습에서도 행복한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서로에게 따뜻한 마음의 인사를 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국 국민이 모든 것을 뒤로 한채 한 분의 거룩한 삶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가 된 하루였다.
집으로 와서 점심을 아들 베네딕도와 함께 하였다. 아들이 묻는다. " 그 분이 정말 대단하였나 봐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어요. 추기경은 어떻게 되나요. 착한 일을 하면 되나요." 설명하려니 말문이 막힌다. 설명할 수 없어 답답하다.
오후에는 푹 잤다. 티비를 켜 보니 용인 공원 묘역에 추기경님이 영면을 취할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마지막 김추기경님 하늘나라가는 길을 추모하는 모습이 보였다.
추후 세워질 묘비(墓碑)엔 김 추기경의 사목표어인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PRO VOBIS ET PRO MULTIS)'와 성경 시편의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는 구절이 새겨질 예정이다. 몇 년 전 추기경님이 지인들에게 묘비에 새길 구절로 시편을 말씀하셨다고 한다.
"하느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하십시요. 용서하십시요." 주님을 평생 찾던 우리의 목자 김 추기경님의 생전의 말씀이다.
주 하느님,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에게 영원 안식과 평화를 허락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