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나의 주 부활의 주 Date 2011. 4. 24
Text 1Crn 15,50-52
(50)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1. 제가 어렸을 때 어른들에게서 들은 말 중에 잊혀지지 않는 말이 있습니다. 봄에 나뭇가지에 물이 올라 새 잎이 나오거나 꽃망울이 맺는 것을 보시면서 탄식조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에고~ 사람도 새 봄이 되면 저렇게 다시 꽃이 피는 나무처럼 다시 새로워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살고 다시 새로워지는 것, 다시 움을 틔우고 다시 꽃망울을 맺으며, 다시 열매를 맺는 것, 그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부활을 우리 인생들에게 선물해 주십니다. 부활의 능력, 부활의 기운, 부활의 기적이 저와 여러분에게도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이 시간 우리에게 주시는 고전15장의 말씀이 이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감당 못할 고난이 닥쳐와도 나는 두렵지 않네/ 여호와의 손잡고 일어나 반드시 승리하리라/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 나에게 능력을 주시니/ 무슨 일을 만나든지 내가 승리하리라” 할렐루야!
2. 여러분, 오늘이 부활절입니다. 오늘이 부활절인 것은 우리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부활절에 제일 먼저 마음에 새겨야 할 진리는 나의 주님은 그 어떤 악한 권세와 기운을 이기실 수 있는 더 강력한 생명의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옛날에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같은 방에 있었는데 어떤 사람은 그 중에서도 살아나는 것을 봤습니다. 똑 같이 음식을 먹었는데 어떤 분은 식중독에 걸려 초주검이 되는데 어떤 사람은 아주 괜찮거나 그저 약간 배가 이상하다 할 정도인 경우도 있지요. 침투해 온 병균이나 독을 대항하여 몸을 지키려는 항체의 능력이 쎈 분들, 몸 안에 있는 생명의 기운이 강한 분들은 이겨내더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절대로 쇠약해지거나 죽지 않는 막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밝히 보여준 것이 바로 부활 사건이었습니다. 살점이 뜯겨나가는 쇠갈고리 채찍으로 온 몸을 만신창이로 만들었습니다. 먹을 것을 주지 않아 허기지게 하였습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길을 오르게 했습니다. 십자가에다 못으로 그 손과 발에 못을 박아 고정시켜놓고 세워놓았습니다. 못 박힌 자국으로부터 피가 있는 대로 다 흘러나와 탈진하게 했습니다. 완전히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후에는 무덤에 장사지냈고 그것도 못 미더워 병사들로 하여금 무덤을 경비하게 했습니다. 이중 삼중 사중으로 주님을 가두었습니다. 그런 상태로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습니다. 정말 완전히 끝난 상황 같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막강한 생명력은 여봐라는 듯 그 사중 오중의 사망 줄을 끊고 다시 사신 것입니다. 나의 주님 그 분은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가르침입니까? 어둡고 음습하며 절망하고 타락하게 하는 사망 권세를 완전히 이기시고 새롭게 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 주닙이시라는 말입니다.
나사로는 죽었었습니다. 장례를 치른지 나흘이나 지나 이미 썩어 냄새가 날 정도로 완전히 끝났었습니다. 그런데 썩어 냄새나던 송장에 주님의 부활의 기운이 들어가자 진짜 다시 살아났습니다. 오라비가 죽었다고 우는 마르다에게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셨던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라는 여자는 일곱 귀신이 들렸던 사람입니다. 그녀의 인생은 완전히 망가졌었습니다. 집에서 뛰쳐나온 막달라 마리아는 한 가정의 자녀로서도, 여성으로서의 모습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까지 모두 잃어버린 인생이었습니다. 그렇게 망가졌던 그녀의 인생에도 주님의 부활의 기운이 들어가니 정절을 알고 수치를 알며 인생의 존엄한 가치를 아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돈에 눈이 어두워 동족들의 피를 빨아먹으면서도 부끄러워 할 줄도 모르고 죄책감도 갖지 않던 여리고의 난장이 삭개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자기 사무실 앞으로 지나가시는 주님을 보려고 길가 돌무화과 위에 올라갔다가 주님을 만납니다. 그 수전노 같은 인생에게 부활의 생명력이 들어가자 목숨보다도 귀히 여기던 재산의 절반을 구제비로 내놓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믿으십시오. 당신도 부활의 주님으로 인하여 깨어지고 부서지고 녹아져서 새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3. 부활이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하지요. 그런데 왜 부활이어야 할까요? 굳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있지요. 오늘 읽은 말씀에도 나와 있습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고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는 것을 이유로 삼습니다. 다시 말하면 혈과 육, 더 정확히 표현하면 죄에 오염된, 마귀의 꾐에 빠져 타락한 옛 사람은 죽어 없어져야만, 깨지고 부서지고 녹아져야만 새 부대가 되어 새 술을 담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죽는다는 표현 대신 ‘홀연히 변화 되리니’라는 말로도 표현하였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도 부활할 수 있다는 희망의 소식입니다. 또한 부활하려면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사실도 가르쳐줍니다. 더러운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을 수 없습니다. 먼저 더러운 것들은 깨끗하게 처치한 후에야 그릇으로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안 된 사람이 사울 왕입니다. 그는 참으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고 좋은 기회도 잡은 사람이었습니다. 삼상 성경에 소개된 사울은 온 이스라엘 사람보다 키가 머리 하나 만큼 컸다고 했습니다. 타고난 신체조건을 갖추고 있었다는 얘기이지요. 용모도 아주 준수했다고도 했습니다. 요즘 말로 얼짱 몸짱이었습니다. 이런 우월한 몸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프리미엄입니까? 그리고 매우 겸손한 성품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즘 보궐선거를 치르고 있습니다만 서로 자기를 뽑아달라고 얼마나 아우성입니까?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는 것, 근거 없는 흑색선전은 기본입니다. 인지상정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왕으로 선택되었을 때 자신은 할 수 없다면서 수레 뒤에 숨어서 나오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리더십이 있었고 당대 최고의 지도자 사무엘과 밤을 새며 시국을 논할 수 있을 정도의 식견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왕이 되었습니다. 백성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조건들은 분명히 상대적으로 우월한 것은 틀림이 없었습니다만 그런 상대적 우월성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그저 한 세상 그럭저럭 살아가기에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다수의 사람들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로 쓰임 받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이쯤에서 오늘 말씀을 한 번 더 상기시켜 드립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고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50절) 그래서 사무엘은 사울을 처음 만났을 때 제일 먼저 부탁한 것이 “(6)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7)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삼상10,6-7)는 말씀이었습니다.
변하여야 합니다. 변하여 새 사람이 될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 기회를 놓치면 대대손손 후회할 일이 생깁니다. 이번 5/13-15 동안에 있는 아주 특별한 3일간의 동행도 변하여 새사람이 될 기회입니다. 깨어질 것들이 깨어지고 부서질 것들이 부서지며, 녹아야 할 것들이 녹아지고 새로워질 것들을 새로워지게 하는 기회로 삼으십시오.
4. 자 이제 오늘 설교의 마지막 단락입니다. 설교를 통해 기회를 붙잡을 수 있는 오늘의 마지막 기회입니다. 이 마지막 단락에서라도 꼭 가슴이 뜨거워지기를 희망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역사 종말의 날에 있을 부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역사 종말의 시간을 알리는 천사장의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면 이미 죽었던 사람들은 모두 다시 살아날 것이고, 그 때 살고 있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비단 오늘 읽은 말씀 구절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빌3,21에서는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고 하였고, 살전4,16-17에서도 “(16)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께서는 벧전3,1ff에서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그 때와 꼭 같이 그냥 있다고 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3: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3: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성도는 최후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날에 대한 소망과 확신을 가지고 있어 힘들고 어려운 세상에서도 낙망하지 않고 기쁨으로 살 수 있습니다.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절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가야할 길을 가고 해야 할 일을 합니다. 포기란 이제 성도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코 지금 세상의 더러운 것 때문에 장차 올 크고 영화로운 새 세상을 놓치지 않습니다.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과 같이 수감되어 있던 손명복 목사님의 말씀에 의하면 하루 밤에는 기도하기를 하나님 내일은 그냥 항복하겠습니다. 못 견디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주님이 ‘기철아 기철아 얼마나 많은 조선의 목사들이 다 나를 버렸는데 너도 나를 버릴래?’라는 책망을 듣고 통곡을 하며 순교를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는 나중에 “소나무는 죽기 전에 찍어야 시퍼렇고 백합화는 시들기 전에 떨어져야 향기롭습니다. 이 몸도 시들기 전에 주님 제단에 드려지기를 바랄 뿐입니다”라고 고백하며 순교의 길을 가셨다고 합니다.
2011년 부활절에 우리 모두 최후 부활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하고 세상에 휘둘리지 않는 송죽 같은 신앙의 절개를 결심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