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봄비를 맞다
황 동 규
'휙휙 돌아가는 계절의 회전 무대나
갑작스런 봄비 속을
제집처럼 드나들던 때는 벌써 지났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하자 마음이 말했다.
'이마를 짚어봐.‘
듣는 체 마는 체 들으며 생각한다.
어제 오후 산책길에 갑자기 가늘게 비가 내렸지.
머리와 옷이 조금씩 젖어왔지만
급히 피할 수는 없었어.
지난가을
성긴 잎 미리 다 내려놓고
꾸부정한 어깨로 남았던 나무
고사목으로 치부했던 나무가
바로 눈앞에서
연두색 잎을 터뜨리고 있었던 거야.
이것 봐라. 죽은 나무가 산 잎을 내미네,
풍성하진 않지만 정갈한 잎을.
방금 눈앞에서
잎눈이 잎으로 풀리는 것도 있었어.
그래 맞다. 이 세상에
다 써버린 목숨 같은 건 없다!
정신이 싸아했지.
머뭇대자 고목이 등 구부린 채 속삭였어.
'이런 일 다 집어치우고 싶지만
봄비가 속삭이듯 불러내자
미처 못 나간 것들이 마저 나가는데
어떻게 막겠나?
뭘 봬주려는 것 아니네.‘
이마에 손 얹어보니
열이 있는 듯 없는 듯.
감기도 봄비에 정신 내주고 왔나?
일어나 커피포트에 불을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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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시와 수필
황동규 시 봄비를 맞다
조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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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54
24.09.14 03:2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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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4.09.14 06:55
첫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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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