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 ‘여로’ 열풍
기억과 추억 사이/옛날 고향 이야기
2006-01-08 13:48:42
내 어린 시절, 텔레비젼의 등장은 마을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지금은 텔레비젼 없는 집이 없을 정도로 그 모양대로 크기대로 안방에 앉아 심심풀이를 달래 주지만 그 시절만 해도 텔레비젼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중학교 3학년 시절, 고향인 안화리에서 거리가 얼마되지 않는 옆 마을로 이삿짐을 풀고 난 그 다음 해, 마을엔 흑백 텔레비젼 한 대가 들어왔다. 마을에서 제법 부자티를 낸다고 하는 대헌이네 집이었다. 전자제품이 거의 없는 시대라 보니 텔레비젼은 집에 들어앉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돌려놓기에 충분했다.
밤이 되면 사람들은 귀신에 홀린 듯 대헌이네 집으로 모여들었다.
그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 '여로' 때문이었다. 여로는 전국이 떠들썩할 정도로 사람들이 재미있게 보던 인기 드라마였다. 웬만한 사람들은 장욱재의 흉내를 낼 정도로 여로 열풍은 사람들의 마음속을 깊게 파고 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만큼 드라마를 재미있게 본 적도 드물었다. 머리를 쥐 뜯어 먹은 듯 엉성하게 깎은 장욱재의 바보연기는 압권이었다. 이 빠진 얼굴을 찡그리며 바람이 새 나가는 발음으로 ‘색시야’ 를 부르는 장욱재의 표정은 꼭 한편의 코메디를 보는 기분이었다.
장욱재는 천상 배우였다. 지금은 연기 인생에 종지부를 찍었지만 지금 장욱재가 부활한다면 드라마의 새 지평을 열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의 연기 실력은 판이하게 다르니 그런 반전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일성 싶은데도 장욱재의 연기는 지금까지 선명하게 내 마음에 부각되었다. 그런 장욱재의 능청스런 연기를 보러 대헌이네 집에 가는 날은 장날 같았다. 저녁만 후딱 해 치우고 나면 어른이나 아이들 할 것 없이 대헌이네 마당은 시장바닥처럼 북적거렸다. 돗자리와 침상을 내 놓고 그 위에 앉아 마루에 놓인 텔레비젼에 눈길을 주었다. 미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사람들은 주변에 늘어서서 감칠 맛나는 드라마에 푹 빠져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대헌이 동생 종헌이가 대문 앞에서 보초를 섰다. 마당이 너무 복잡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래서 사람을 가려 집에 들여보냈다. 종헌이는 마치 표를 받는 극장직원 같기도 했고 수상한 사람을 수색하는 순사 같기도 했다. 종헌이의 힘은 막강했다. 한쪽 다리를 약간 저는 아이였는데도 텔레비젼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를 하지 못했다. 더구나 아이들은 종헌이 앞에 서면 가슴부터 졸였다. 어른들은 들어갔지만 여자들과 아이들은 퇴짜 맞는 일이 많았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아이들은 낡은 울타리 틈새로 집안 사정을 엿보거나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는 뿌연 화면을 훔쳐보기도 했다. 어떤 아이들은 뇌물도 갖다 바쳤다. 뇌물이라고 해봤자 기껏해야 사탕이나 지우개, 연필 같은 것들이었다.
다행이도 나는 친구인 대헌이가 있어 운 좋게도 들어갔지만 대문에서 서성이는 아이들을 보면 어깨가 저절로 올라갔다. 자부심이 대단했다. 빽으로 선택받은 사람만이 누리는 특권이었다. 이렇게 집안에 들어가면 마을사람들이 수도 없이 모여 있었다. 장욱재가 가발 머리를 북북 끓기라도 하면 마당이 떠나갈 듯 웃음보를 터뜨렸고 "색시야"를 연발하면 기둥이 흔들리도록 박수를 쳤다. 얼마나 재미있던지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여로가 끝나고 옛날 가수가 나와 구성지게 노래하는 프로를 보고 나면 밤이 이슥해졌다. 달이 중천에 떠올라 환하게 웃고 있었고 별들도 깜박깜박 졸고 있었다. 풀벌레 소리도 요란하고 간혹 소쩍새 소리 깔린 길을 따라 집에 들어가면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그 드라마 보는 재미에 푹 빠져 헛된 시간을 보낸 일이 많았다. 낮에는 학교 갔다 오고 노는 날엔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고 나면 저녁에는 대헌이네 집에 가는 것이 다반사였다. 드라마는 삶의 여유와 낮의 피곤을 풀어주는 청량제 역할을 독톡히 했다.
그런데 여로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프로 레슬링이 있는 날이었다. 프로레슬링은 김일과 천규덕이 나와 희환한 묘기를 선보였는데 그런 묘기를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듯했다. 김일이 상대방 선수를 박치기 할 때의 통쾌함이나 천규덕이 땅땅한 체구로 거구들을 휘어잡을 때는 대헌이네 좁은 마당은 고함과 박수소리로 왁자지껄했다. 극성스런 모기 때문에 모닥불도 지폈다. 타닥타닥 허공으로 솟구치는 불티에 밤하늘의 별들도 매운지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눈물을 찔끔거리면서도 김일과 천규덕을 응원했고 거구의 힘에 깔려 고통으로 몸서리 칠 때는 주먹을 불끈 들어 조바심을 가지기도 했다. 그 때만해도 레슬링이 진짜인줄만 알았다. 서로가 짜고 하는 쇼인줄 전혀 몰랐다. 김일의 찢어진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주먹이 아닌 흉기를 사용하는 걸 보면 쇼라고 하기엔 믿을 수가 없는 것들이 많았다. 이렇게 여로를 보고 레슬링을 보며 대헌이네 마당을 전세낸 듯 붉적거리던 사람들의 발길도 점차 뜸하게 되었다. 좋은 세월 때문이었다. 세월이 가져다 준 문명이 집집마다 파고들어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았기 때문이었다. 대헌이네 텔레비젼보다 더 크고 선명한 칼라가 등장하고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전자 제품들이 봇물처럼 밀려들 때 대헌이네 텔레비젼은 내버려도 주어가지 않을 고물딱지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헌이네 텔레비젼은 크기도 손바닥만 하고 찌직 거려 불편이 많아 더했다. 마을에 텔레비젼 한 대만 있을 때는 귀신에 이끌린 듯 자신도 모르게 구경을 하러 가던 사람들도 이제는 그 집의 텔레비전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참 간사스러운 것이 인간의 마음이었다. 더 좋은 것이 생기면 이전의 것은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은 기억탓이라고 보다는 교만에서 오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그 때 대헌이네 집에서 보던 드라마 맛이 더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척동자도 알다시피 요즘의 드라마는 불륜 그 자체다. 불륜의 소재가 드라마를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라마 소재가 현실을 반영한다고 하지만 현실을 앞서가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다.
아무리 이혼을 밥먹 듯 하고 불륜이 심각하다지만 텔레비젼은 공적인 매체로서 그 기능을 정화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가난을 숨기려고 희까번쩍하는 텔레비젼을 들여놓고 대형 제품만을 선호해도 우리의 마음의 뿌리는 토속적인 서정에 있다. 소박한 것을 지향한다는 뜻이다. 무우나 오이처럼 맵지도 짜지도 않고 그저 밋밋한 성격, 남을 탓할 줄도 모르고 주면 주는 데로 받으면 받는 데로 순리와 여유로 삶을 헤쳐 나가던 그 성격 탓에 마음은 자꾸 옛날을 돌아보는 것이다. 불륜의 소재를 빼놓지 않으면 드라마의 구실을 하지 못하는 요즘 드라마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자꾸만 순수하고 때 묻지 않는 서정을 갈구하는 지도 모를 일이다. 가끔 시골에 가서 대헌이네 집 앞 골목을 지나칠 때 마다 그의 마당을 들여다보곤 한다. 혹시 또 사람들이 모여 마루에 텔레비젼을 올려놓고 재미있게 보고 있지는 않을까 궁금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