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6. 09.
더불어민주당이 권력에 도취해 위험한 길을 걷고 있다.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이 올해 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법안에 기권표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민주당 윤리심판원으로부터 최근 경고 처분을 받았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강제 당론은 무조건 지켜야 하는 것”이라는 꼰대 입장을 밝혔다.
국회의원의 소신을 징계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로 이를 정당화시키는 민주당의 행태는 민주 정당임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의원 소신과 양심을 당론으로 짓밟는 것은 헌법과 국회법을 위반하는 독재적 발상이다. 헌법은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제46조 2항)고 규정한다. 국회법 제114조의2(자유투표)는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않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고 돼 있다.
의회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동등한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에 구속력 있는 법을 제정하는 회의체다. 독립적 헌법 기관인 국회의원을 당론으로 강제하고 처벌하는 것은 반의회적이고 반민주적이다. 2017년 5월 31일 자유한국당 의원 전원은 이낙연 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에 반대해 퇴장했지만, 김현아 의원은 혼자 참여해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민주당은 김 의원을 향해 소신 있는 정치인이라고 극찬했다. 다른 당 의원의 당론 위배는 소신이고, 자기 당 의원의 당론 위배는 징계 대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표리부동이고 이율배반이다.
금 전 의원 징계로 민주당은 자신의 정체성과 정신을 훼손시켰다. 민주당은 입만 열면 김대중 정신을 계승한다고 말한다. 위에 언급한 국회법 자유 투표 규정은 2002년 김대중 정부 시절 민주당 전신 새천년민주당이 주도해 신설됐다. 사실상 당론이 정해지면 국회의원이 당의 거수기로 전락하는 일이 빈번해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대선을 앞둔 11월 “정당의 의사 결정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며, 강제적 당론을 지양하겠다”고 약속했다. 민주당 당헌·당규에 국회의원 징계 사유에 당론 위반이 포함돼 있지 않다. 민주당 강령은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고 정당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정당이 되겠다”고 돼 있다. 금 전 의원 징계는 김대중 정신을 망각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 개혁 구상을 무시하며, 민주당 당헌·당규를 위반하는 참 나쁜 행태다.
역대 국회에서 보듯 미디어법 개정, 테러방지법, 공직선거법 개정같이 민감한 정치 현안을 둘러싸고 여야 간 당론과 당론이 부딪히면 국회는 무조건 파행으로 갈 수밖에 없고 동물 국회가 판을 치게 된다. 특히 거대 여당인 집권당이 당론에 집착하면 자제와 상호 존중이라는 규범이 파괴되고 결국 의회민주주의는 무너지게 된다. 민주당이 ‘의회 독재’의 유혹에서 벗어나 민주 정당임을 입증하기 위해선 금 전 의원에 대한 징계를 즉각 철회해야 한다.
강제 당론은 잘못된 관행이고 반드시 청산돼야 할 적폐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하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퍼지기 시작한다. 사소한 일을 방치하면 큰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민주당이 금 전 의원의 징계를 방치하면 소신과 양심은 사라지고 억압과 징계만이 지배하는 음습한 국회의 서곡이 될 수 있다.
소신과 양심 대신 아부와 당리당략이 판을 치면 대한민국 국회의 미래는 없다. 반대로 강제 당론을 당당하게 거부하고 자신의 소신과 양심에 따라 국민의 편에 서서 의정 활동을 펼치는 용기 있는 의원들이 많아질 때 21대 국회는 비로소 ‘협치 국회’ ‘일하는 국회’로 거듭날 수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회의원들은 누구를 대표하고, 어떻게 대표할지 깊이 성찰하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변화의 시작은 성찰이다.
김형준 /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