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 싼 종이에선 비린내가 나고
향 싼 종이에선 향내 나기 마련이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말
유유상종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틀림없다고 믿게되는 날
전화 한 통화를 받고 참으로 씁쓸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협회에서 공 잘치는 사람 꼽으라면
손가락으로 우선일 사람의 음성이었다.
회장님이 모회장한테 우리랑 놀지 말라고 했어요?
그런말 한지가 오래됐다고 그러네요.
아무리 그렇다고해도 유치원생도 아니고 동호인들끼리 그런 말을 했다는게 유치한다는 것엔 동의한다.
한두살 어린애도 아니고 생각 자제가 교묘하다.
평소 소통없이 지내던 사람이 대뜸 물어본다는 말이
고작 이런 말전주에 놀아나 뒷담화라니 어이없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은 확실하게 따져볼 일이 아니면
객설에 휘말리거나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뒷담화나 말전주는 홀딱 까놓고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을 것이면 뱉지 말아야 격있는게 아닌가 싶다.
말해준 사람은 못밝힌다며 들은 내용을 확인하려
전화 한통화 때린다는 것은 격떨어지는 행위가 분명하다.
듣고 삼키던지 확 까발려 시비를 가리는 것이 옳다.
역지사지로 나는 그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런 말을 전달하는 사람이 과연 진정성 있는 사람인가?
본인에게 정말 유익한 사람인가?
왜 이간질을 하며 뒤에서 조종하려 하는 것일까?
곰곰 생각해 볼 대상이라고 본다.
무작정 그의 말을 듣고 흥분하고 개탄하기에 앞서
과연 나는 그 말을 믿어야 옳은 것인지 판단하고
과연 이런 말을 확인하는 나의 모습은 품격이 있는 것이지도 살펴볼 일이다.
회장은 모두를 품고 안아서 화평을 이루고 싶어한다.
나무 한 그루 보다 숲을 걱정하는게 일상이다.
개개인의 감정 따위에 매달릴 겨를이 없다.
미안하지만 소소하게 그럴 필요성도 못느낀다.
정정당당하게 잘못하는 것만 따지시라.
눈앞에서 똑바로 쳐다보며 옳고 그름을 밝히시라.
전화라는 것은 자칫 감정과 오해를 사기에 부족하지 않은 도구일 뿐이다.
비슷한 일이 유사한 사람에게서 발생하게 된 이번 사건은 두말할 필요성도 없다.
집 베란다에 굴비를 걸어 말리기 시작했다.
처음 샀을 땐 물기가 있어 냄새도 많이 났다.
며칠이 지나니 꼬들해지고 냄새도 없어졌다.
대가리 방향이 한곳을 향하게 엮어 놓은 굴비가 예쁘다.
손으로 만져도 탄력이 느껴지고 상처도 없다.
더 단단해진 굴비를 바라보며
사람도 적당히 수분을 빼야 탄력이 증가하겠구나 생각했다.
이제 굴비를 걷어 냉동고에 넣어둬야겠다.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꺼내 쓸모있게 먹어야지.
맛있는 굴비 먹을 날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