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위인 --세종 대왕
조선 제4대 왕. 집현전을 열어 유능한 학자를 육성하고 ‘훈민정음(한글)’을 만들었으며 측우기, 해시계, 물시계 등 각종 과학 기구를 발명하게 함. 국토 확장에 힘썼으며 문화 발달에도 힘을 기울여 〈삼강 행실도〉 〈용비 어천가〉 〈월인천강지곡〉 등이 편찬됨.
세종은 태종의 셋째 아들로 어릴 적 이름은 ‘충녕’이었다. 충녕 대군은 유난히 책 읽는 것을 좋아해 병에 걸려 누워서까지 책을 읽으려고 했다. 보다 못한 태종이 충녕 대군의 책을 모두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할 정도였다.
1418년에 왕위에 오른 세종은 우선 학문을 연구하는 집현전을 만들어 성삼문, 박팽년, 정인지, 신숙주, 최항 등 실력 있는 학자들을 뽑았다. 세종이 집현전 학자들을 얼마나 아꼈는지는 한밤중에 집현전에서 잠들어 있던 신숙주에게 임금이 입는 곤룡포를 벗어 덮어 준 일화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세종은 백성들이 어려운 한자를 익히지 못해 글을 모르는 것을 늘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래서 궁궐에 ‘정음청’을 세워 학자들과 함께 새로운 글자를 연구했다. 궁궐을 거닐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심지어 자리에 누워서도 세종은 늘 새로운 글자에 대한 생각을 했다. 밤낮으로 연구를 계속하다가 결국 눈병에 걸려 신하들이 몹시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세종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백성들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는 새로운 글자가 만들어진다면 내 눈이 먼다 해도 괜찮소.”
1443년에 세종 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의 서문
세종 대왕은 훈민정음을 통해 모든 백성이 쉽게 글을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
그렇게 열심히 연구한 결과, 1443년에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의 ‘훈민정음’이 탄생했다. 세종은 3년 동안 궁궐에서 훈민정음을 사용한 뒤 1446년에 이 새로운 글자를 세상에 알렸다. 그리고 최초로 한글을 사용해 조선 왕조 창업을 노래한 〈용비 어천가〉를 펴냈다.
또한 세종은 과학에도 관심이 많아 날씨를 연구하는 ‘관상감’을 두었다. 그리고 장영실, 이천 등을 통해 측우기와 혼천의, 간의, 앙부일구 등을 만들게 했다.
특히 강수량을 측정하는 측우기는 세계 최초의 우량계다. 또 정초를 시켜 〈농사 직설〉이라는 책을 펴내 농업 기술 발전에도 힘썼다.
한편, 나라 밖으로는 국토 확장과 국방을 튼튼히 하는 데도 힘썼다. 대마도를 정벌하고 북방에 김종서를 보내 여진족을 무찌르게 한 뒤 6진을 세웠으며, 최윤덕과 이천을 압록강 쪽으로 보내 4군을 두었다.
조선의 황금 시대를 이룩한 세종은 32년 동안 정치와 문화 각 분야에 많은 업적을 남기고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경기도 여주 신륵사 가까이에 세종 대왕의 영릉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세종 대왕 (한 권으로 끝내는 교과서 위인, 2005. 12. 30., 조영경, 백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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