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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철학자들은 만물의 근원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탐구했는데,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 주장했고,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이 세상의 근본이라고 주장했다.
만약에 동양 음식의 근원은 과연 무엇일지 생각해본다면 가장 가까운 답은 식해가 아닐까? 식해는 고기나 생선으로 담근 젓갈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자미식해가 가장 유명한데 가자미식해는 함경도, 강원도 음식으로 좁쌀과 가자미를 삭혀서 주로 반찬으로 먹는다. 좁쌀로 밥을 지어 마늘, 생강, 고춧가루, 엿기름 등을 넣고 소금을 뿌려 항아리에 좁쌀밥과 가자미를 한 켜씩 담은 후 적당히 삭으면 그때 먹으면 된다.
이런 음식이 어째서 음식의 근원이 될 수 있겠냐고 반문하겠지만 식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양에서 저장 음식의 화석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역사가 오래된 음식이다. 식해(食醢)의 해(醢)는 콩으로 만든 된장, 여기에 고춧가루를 더한 고추장처럼 ‘고기나 생선으로 담근 장[肉醬]’이라는 뜻이다.
기원전 11세기에서 8세기 무렵의 중국 주나라 때의 예법을 적은 《주례》에서는 토끼와 생선, 기러기, 조개, 달팽이 등으로 담근 ‘장(醬)’을 해(醢)라고 했으니, 바로 식해에 대한 기록이다. 주석에 따르면 기장을 소금과 섞어 절인 후 항아리에 담아 100일이 지나면 익는다고 했다. 깨끗하게 닦은 생선에 소금을 뿌리고 밥과 함께 돌로 눌러놓으면 일정 시간이 지난 후 발효가 되면서 젖산이 나와 부패를 막을 수 있으니, 음식을 저장하는 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썩기 쉬운 생선이나 고기를 장기간 보관하는 데 가장 적격인 요리법이었을 것이다.
물론 오래됐다고 그 음식이 다른 음식의 기원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많은 음식들이 식해와 같은 저장 음식에서 비롯됐다. 예를 들어 함경도 가자미식해나 강원도의 북어식해와 같은 식해(食醢), 그리고 단술 또는 감주로도 불리는 식혜(食醯), 조미료로 빼놓을 수 없는 식초(食醋)와 곡식이 발효해 알코올로 변한 술[酒], 그리고 일본의 생선초밥인 스시(すし) 등은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음식이 발달해온 역사를 보면, 식혜와 식초, 그리고 술과 스시가 모두 고기나 생선으로 담근 젓갈인 식해에서 파생되어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기나 생선을 익힌 곡식과 함께 삭히면서 발효를 시키면 그 과정에서 물이 나온다. 식혜와 식초, 술이 모두 여기서 나온 음식이라는 것이 문헌에 나와 있다. 마시는 음료인 식혜의 혜(醯) 자는 ‘고기로 담근 장에서 국물이 많이 나온 것’이라고 풀이했다. 식혜가 식해에서 만들어졌다는 뜻인데, 안동식혜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설문해자》에서는 식혜의 혜(醯) 자를 ‘시다[酸也]’라고도 풀이했고 《옥편》에서는 ‘신맛이다’라고 풀이했는데 고대에는 식초 역시 식해라고 불렀다. 식초가 식해에서 비롯됐다는 증거다. 술 또한 마찬가지다. 술 역시 곡식을 발효시켜 만든 식혜인 감주에서 비롯됐으니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근본은 식해다.
정리하자면 먼 옛날 고기와 생선, 그리고 곡식을 섞어 발효시킬 때 만들어지는 국물 중에서 단맛을 극대화시킨 것은 식혜로 발전했고, 알코올이 생성된 것은 술이 되었으며, 발효 과정이 지나쳐 초산이 생긴 것은 식초로 발전했다.
식해와 식혜, 식초 그리고 술은 그렇다고 치고 한 가지 의외인 음식은 일본에서 발달한 생선초밥인 스시다. 일본말 스시는 ‘맛이 시다’라는 뜻에서 비롯된 단어로 젓갈을 나타내는 한자 지(鮨)에서 나온 말이다. 생선을 곡식에 삭힌 맛이 시큼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인데, 생선과 밥에 소금을 뿌리고 삭힌 식해에서 밥을 제거하고 생선을 중심으로 먹은 것이 오늘날 생선초밥으로 발전했다. 지금도 일본에는 붕어를 밥과 함께 발효시켜 먹는 전통 음식, 나레즈시가 있으니 바로 초밥의 원형이다.
그리스 철학자들이 만물의 근원에 대해 생각해본 것처럼 지금 우리가 즐겨 먹는 음식의 뿌리가 무엇일지 생각해보니 엉뚱하게 식해로 이어지는 부분이 있다. 세상살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근원을 찾는 일이 적지 않다.
#음식#역사일반
#음식으로읽는한국생활사
글 윤덕노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