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아쓰는 골난 휴지
영댕은 휴지를 자주 사용한다. 코를 풀 때 사용하고, 화장실에서 사용하고, 밥 먹을 때 사용한다. 영댕은 휴지가 없으면, 학교에 못간다. 영댕은 학교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다. 영댕은 학교에서도 자주 휴지를 사용해야만 한다. 학생들 중에 가끔, 배설을 하는 아아들이 있어도, 그걸 또 닦아주어야 한다. 영댕은 지금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을 맡았다. 학생들이 너무 어린 탓에, 선생님의 말을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아서, 영댕은 언제나 목이 쉬어 있었고, 항상 크게 말해야 해서, 물을 정말 많이 마시게 되었다. 영댕이 물을 마시다 보면, 물에 젖은 입도 자주 닦아주어야 했다.
그래서 영댕의 가방에는 아예 두루마리 화장지를 몇 개씩 넣고 다닌다. 휴대용 화장지로는 영댕이 감당해야 날 휴지의 수요를 감당 못해내기 때문이다. 두루마리 화장지도 아주 싸구려로 집에 몇 세트씩 있다. 24개 1세트짜리가 아마 10개는 넘는 것 같다. 이렇게 해야 영댕의 휴지를 감당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영댕의 집은 그다지 크지 않다. 초등교사 월급으로는 집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아 이제 겨우 24평짜리, 조그마한 집을 마련했다. 영댕의 아내도 돈을 벌어서, 같이 마련한 집이고, 자식은 아직 없다. 영댕이 결혼한 지는 지금 한 5년 정도 되었는데, 아직까지 자식을 가질 생각을 못했다.
아내도 선생님인데, 아내는 여자중학교의 수학선생님이다. 아내는 학교생활이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듯이 보이는데, 영댕은 학교생활이 너무 힘들다. 남자로서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을 한다는 게 쉬운 일도 아니었다. 언제나 학부모의 의심어린 눈초리에 시달려야 한다. 하지만 교장은 담임을 맡을 반이 없다면서, 영댕보고 담임을 하라고 밀어붙였다.
이유는 이랬다. 초등학교 1학년 남학생만 모이는 반인데, 이 반에는 여자애들을 괴롭히는 남자애들만 모아놓은 반이라고 한다. 그래서, 남자들끼리만 모아 놓은 반이라는데, 이 반에는 여자선생님이 담임을 맡을 수가 없단다. 그래서, 남자가 담임을 맡게 되었고, 교장선생님은 남자 중에서 막내인 영댕을 이 반에 밀어넣은 것이다. 선배 선생님들은 모두 기피했기 때문에, 영댕이 결국 맡게 된 것이다.
아내는 여자중학교에서 여학생들과 애기하는 게 무척 재밌다고 하였다. 아내는 매일매일 집에 와서는 신나게 자신이 학교에서 했던 일들을 자꾸만 떠들었다. 그걸 듣는 영댕은 몹시도 괴로웠다.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자애들하고 얘기하는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는데, 영댕은 하나도 의미없는 말 같았다. 그걸 안 들어주면, 또 삐질 거 같아서, 그냥 억지로 얘기를 들어주었다. 영댕은 힘들었다.
반 아이들은 생각보다 착했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토하는 애들도 많았고, 또 생리현상을 해결 못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하루 일과 중의 3분의 1은 그것들들 치우느라 영댕은 하루를 보내야 했다. 학교에서 내주는 휴지로는 모자랐다. 학교에서 내주는 휴지는 한 선생님에게 너무 많이 줘서는 안 된다면서,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고 했다. 영댕은 비참했다.
영댕은 어느 날 아내에게 물었다. 그렇게 얘기하는 게 재밌냐고. 영댕은 나는 학교생활 하나도 재미없다고 너무 힘들다고 했다. 아내는 말했다. 당신이 아직 인생의 참맛을 몰라서 그래, 인생의 참맛은 그런 걸 극복해 나가는 데에서 오는 거야. 영댕은 참, 팔자 좋은 소리 하네, 하고 속으로 아내를 팔매질했다. 표정이 안 좋은 걸 보았는지, 아내는, 내 말이 좀 그렇지? 하면서 살짝 웃음을 지어 보였다.
영댕은 교장선생님에게 이 반은 도저히 못 맡겠다고 했다. 휴지값도 너무 많이 들고 하루종일 하는 일이 뒷치닥꺼리만 하는 일이라니, 너무 싫다고 했다. 그러자, 교장성생님께서 그러셨다. 자네가 정 그렇다면, 그렇게 해. 그 대신 자네가 교장을 하고, 내가 그 반을 맡을께. 나, 진심이다. 영댕은 당황해서, 아닙니다, 계속 하겠습니다. 하고 얼떨떨하게 말했다. 교장선생님이, 자넨 참 훌륭한 선생님이야, 라고 말도 안 되는 칭찬을 해댔다.
우울해져서 아내한테 말했더니, 그 교장선생님 참 멋지시네, 라고 말하는 거였다. 영댕은 점점 더 우울해졌다. 아내는 영댕이 우울한 것도 모르고 그냥, 계속 웃기만 하였다. 그러면서, 아내가 말했다. 고민 있으면, 교장선생님이나 나한테 말하지 말고 그 애들한테 말해 봐.
그래서 뭐해?
어차피, 힘들잖아. 그냥, 한번 애들한테 말해 봐.
영댕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아침 조회 시간에 애들한테 말했다.
얘들아, 선생님이 힘들다.
아이들이 말똥말똥한 모습으로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너희들이 토하는 것 치우는 거 힘들고
너희들이 똥 싸는 거 치우는 거 힘들고
너희들이 오줌 싸우는 거 치우는 거 힘들다
너희들이 너무 많이 싸우는 거 달래주는 것도 힘들다
너희들이 선생님을 너무 나를 힘들게 한다
그래도 나는 너희들을 계속 맡아야 한다
내가 안 한다고 하면 교장선생님께서 반을 맡겠다고 하셔서다
그냥, 내가 힘들다
아이들이 말똥말똥한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박장대소를 하였다.
아니, 왜, 왜 웃나?
선생님, 정말 힘들어요?
그, 그래!
선생님, 그럼, 제가 할께요.
뭐, 뭘?
선생님 치우는 거 재밌어 보여요.
제가 할께요.
저도요.
저도 할께요.
알려 줘요. 치우는 방법.
그거 어떻게 치우는 거에요?
그, 그, 그러냐?
네, 재밌는 거 왜 선생님 혼자 해요?
그, 그럼, 그렇게 하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퍼졌다.
세상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다.
그리고, 세상엔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의뢰고 쉽게 해결되는 일이 많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영댕의 마음 속에 쪼르르 달려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