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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축구 좋아하시죠? 저도 축구를 좋아하는데 축구 경기를 하다 보면 경고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경고는 옐로우 카드와 레드 카드가 있어요. 옐로우 카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쫓겨날 수도 있다. 레드카드는 나가라. 경기장 밖으로 경기 끝났다. 너는 나가라 하는 그런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경고장을 보내실 때가 있어요. 오늘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이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경고장입니다. 옐로 카드가 2개 축구에서 옐로 카드 2개면 레드 카드가 오는데 오늘 이 아나니아 삽비라는 한 번에 레드카드가 온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아주 은혜로운 분위기였어요. 잘 되고 있었습니다. 큰 부흥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경고를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잘 될 때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잘 될 때 교회가 잘 되고 또 가정이 잘 되고 개인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이 착착 이루어질 때가 있어요. 이대로 가면 놀라운 일들이 우리 인생에 펼쳐질 것이다. 충분히 기대할 수 있을 때 하나님의 경고가 날아옵니다.
1998년에 제가 96년도에 파리에 왔는데 98년에 제 기억으로는 98년입니다. 프랑스 월드컵이 있었어요. 우리나라가 그때 니옹에서 첫 경기를 했는데 저는 니용까지는 가지 못했습니다. 텔레비전으로 보는데 그때 기억으로는 4대 0인가 5 대 0인가로 줬어요. 안 가기를 잘했다 하는 생각을 했어요. 4대 0이 아니고 4대 빵이죠. 정말 네덜란드한테 형편없이 졌습니다.
그리고 벨기에와의 경기가 파리에서 있어서 그것은 표를 구해서 가게 됐는데 전반전에 한 골을 넣은 거예요. 정말 그 월드컵에서 첫 골이었습니다. 이름은 말할 수 없지만 말하기가 좀 그렇지만 h 성을 가진 선수가 첫 골을 넣은 거예요. 환호 우리도 환호하고 한 경기만 이기면 되는 것 한 경기만 이겨도 되는 정도로 그런 상황이었는데 이게 이제 정말 이기게 생겼어요.
그런데 그 선수가 너무너무 자기 월드컵의 첫골이면서 우리 국가대표팀의 첫 골이면서 마치 이길 것 같은 그런 분위기에 너무너무 흥분해가지고 전혀 필요 없는 상황에서 반칙을 했습니다. 뒤에서 그냥 그냥 놔둬도 되는데 뒤에서 가서 상대방 선수의 다리를 차서 반칙이 됐는데 제가 볼 때는 좀 과도한 심판의 과도한 결정이지만 어쩔 수 없어요. 레드 카드가 나온 거예요. 그래가지고 그때부터 이제 경기가 기울기 시작해서 지지는 않고 겨우 1 대 1 무승부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잘 될 때 겸손해야 되거든요. 잘 될 때 더 정신을 차려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원하는 대로 기대했던 대로 인생이 잘 풀리고 있어요.하나님의 경고장이 혹시 날아올지도 몰라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어쩌면 경기장 밖으로 나가야 할 수도 있습니다. 겸손으로 허리를 동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축복 주실 때 하나님이 평안하게 하실 때,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밀어주실 때 사람들은 교만해지고 긴장을 풀고 경거망동합니다.
그러나 그때 겸손하게 끝까지 낮은 자세를 유지하고 가야 우리가 경고장을 받지 않고 끝까지 달려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아나니아 삽비라 사건은 초대교회 잘 되고 있는 은혜로운 예루살렘 교회에 하나님이 주신 경고장이에요. 무엇이 그들에게 경고장을 날리도록 하나님의 경고장이 날아오도록 했을까 하나는 허영심입니다. 허영심 오늘 1절에 보면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누가 팔라고 했습니까? 자기가 판 거예요. 하나님은 강요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자기가 팔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바로 그전에 바나바라고 하는 사람이 한 행동을 봤거든요. 바나바는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고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두고 사도들이 그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는 일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모든 사람들이 이 바나바의 선한 행위를 보고 그를 칭송하기 시작합니다.
이 종교 사회 이스라엘은 당시의 종교 사회입니다. 새로 탄생한 기독교도 종교입니다. 하나의 종교 그래서 종교적으로 높임을 받고 존경을 받는다고 하는 것이 당시에 최대로 출세하는 거예요.
사실은 그런데 바나바가 지금 이 새로 탄생한 종교인 이 기독교인들에게 크리스토인들에게 칭송을 받습니다. 아니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바나바의 선한 행동을 보고 칭송하기 시작했어요. 바나바는 본래 사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사도행전 11장 24절 이하에 보면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이렇게 기록하고 있어요.
예수님의 사도는 12명인데 후에 바울이 추가가 되고 바나바가 추가가 됐어요. 바나바도 사도의 반열에 옳은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굉장한 당시에 새로 떠오르는 이 기독교라고 하는 종교의 탁월한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그 상황 영적으로는 하나의 스타가 된 것과 같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이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마음속에 나도 절해보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가 예수 잘 믿고 하나님 앞에 헌신하면 나도 그렇게 해고 보고 싶다고 하는 그 마음은 좋은 마음이에요. 사실은 그런데 이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마음속에 들어간 그 마음은 그 속에 있는 허영심이 부추긴 마음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헌신보다는 나도 바나바처럼 저렇게 칭송받는 영적 스타가 한번 되고 싶다 저런 소리 한번 들어봤으면 좋겠다 하는 것입니다.
요즘 젊은이들 세계에서 가령 BTS라든가 이런 그룹들 있잖아요. 그런 그룹들이 옛날에는 뭐 저런 게 있나 그랬겠지만 요즘은 그게 굉장합니다. 누구나 그렇게 한번 돼보고 싶은 마음들이 있는 거죠. 제가 작년에 미국에 갔을 때 들은 얘기인데 그 라스베가스에 BTS가 오게 됐대요. 그런데 그 공연을 보기 위해서 정말 놀라운 것은 북미 대륙에서 젊은이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고 거기 날아와가지고 며칠 전부터 날아와서 거기를 채우고 장사진을 이뤘다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뭐 그 정도로 비유할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당시에 이 바나바의 인기는 굉장했던 것 같아요. 사도가 될 만큼. 그런데 이 아나니아 삽비라도 그런 우리가 볼 때는 바나바처럼 칭송받는 게 뭐 대단할까 하지만 그 사회 분위기에서는 충분히 허용심을 부추길 만큼 강렬한 것이었어요. 그래서 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지금 일을 낸 것입니다. 영적 허용심이 자극이 돼서 자기의 전 재산을 팔은 거예요.
여러분 봉사와 헌신은 믿음의 분량만큼 하는 겁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겁니다. 허영심으로 하면 금방 후회하게 됩니다. 넘어지게 되고 좌절하게 됩니다. 좋아 보이고 멋져 보인다고 아무 생각 없이 뛰어들면 뛰어든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면서 아이고 내가 미쳤구나 그 생각이 드는 거예요. 지금 전 재산을 다 팔아놨는데 그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믿음이 그만큼 안 돼. 그런데 전 재산을 다 팔아놓고 보니까 아이고 이거 큰일 났네 하는 생각이 든 것이죠. 그래서 이 허영심이 부추긴 그 봉사와 헌신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빌립보서 2장 3절에도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라.
영적 그 자기 분량이 있습니다. 그만큼 하고 더 우리가 헌신하고 싶으면 하나님께 내 영적인 그 불량을 또 늘려달라고 기도하셔야 돼요. 허영심을 경계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허용심을 가지고 봉사하는 사람은 또 남을 또 판단하기도 해요. 나는 하는데 왜 너는 안 하냐 우리가 마음에서 정말 우러나와서 성령 안에서 하는 봉사는 나만의 길을 갑니다. 남이 하든 안 하든 내가 십자가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 길을 가는 거예요. 아무 부작용이 없어요.
그런데 자꾸 나는 봉사하면서 남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면 내가 진정한 봉사를 하지 않는 거야. 왜 나만 죽도록 이 봉사를 하냐 너는 뭐냐 그 생각이 들면 잘못된 봉사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때는 빨리 기도하고 내 마음속에 허용심이 없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아무 봉사도 안 하는 나는 아무 봉사도 안 하는데 하나님이 내게 그런 믿음을 주시지 않았어 그리고 하나님께 공을 넘기면 안 돼요. 그것도 부끄러운 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살면서 세상을 살면서도 뭔가 남을 이롭게 하는 삶을 살아야 되듯이 우리가 신앙생활할 때도 와서 예배드리고 은혜 받고 다 받아만 가지고 가는 얌체의 교인이 되면 안 돼요. 나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또 이웃을 위해서 우리 예배를 위해서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게 있어야 합니다. 다만 허영심에서 하지 말고 내 믿음의 불량만큼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하면 되는 것입니다.
제가 개척을 하고 막 열정이 넘칠 때는 모든 사람을 다 헌신시키기를 원했어요. 그래서 막 데려다가 하고 이 푸시도 해보고 그래서 억지로 하면서 성장한 사람도 있는데 대체로 보니까 그게 꼭 그렇게 해서 되는 게 아니더라고. 그래서 지금은 제가 열정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이 오랜 경험 끝에 아 이게 강제로 되는 게 아니구나. 믿음이 자라야 되는구나. 물론 일을 하면서 믿음이 자라기도 하지만 믿음이 자라면서 봉사를 하면 훨씬 더 행복하고 부작용이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안 한다고 하면 요즘은 그냥 놔둡니다. 이 사람의 믿음의 불량은 그 정도구나. 제가 무관심해서도 아니고 내가 그냥 놔둘 때는 목사님이
참석자 1 13:27
내 믿음의 불량을 이 정도로 보시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돼요.
그러면 아이고 금년은 내가 봉사에서 빠져서 너무 좋네 그런 생각 하면 안 되고 내 믿음의 불량을 키워야 되겠구나.
금년 1년 동안 믿음의 불량을 키워서 내년도에는 더 많은 일을 감당해야 되겠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이 허영심에서 시작된 이 아나니아 사비라의 이 행동은 결국은 하나님의 경고장을 받는 단계까지 들어가게 된 거예요.
두 번째는 위선입니다. 위선을 멀리하라는 경고예요.
베드로 앞으로 이 아나니아가 자기들과 판 돈을 가지고 왔어요.
근데 처음에 전 재산 바나바처럼 전 재산을 팔아가지고 드리려고 했던 것은 그때 맞는 얘기입니다.
근데 허용심에서 시작이 됐기 때문에 믿음이 그만큼 안 되기 때문에 정신이 드는 순간 내가 이거 왜 이런 짓을 했지 하고 후회를 한 거예요.
그럼 그때 어떻게 하면 되느냐 빨리 그냥 솔직히 인정하면 됩니다.
참석자 1 14:36
하나님 앞에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제가 그땐 제정신이 아니었나 봅니다.
정신을 들고 보니 제가 이만큼은 진정으로 할 수 있겠습니다.
야 너 왜 처음에는 그렇게 하고 지금은 그러냐고 하나님이 벌을 주시는 분은 아니에요.
하나님은 그거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시는 분이에요.
우리 마음이 중요한 겁니다. 그럴 때는 빨리 솔직하게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가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아나니아 사피라는 그렇게 못하고 일부를 숨겼어요.
그리고 일부만 가지고 나가서 이것이 마치 전체인 양 행세를 한 겁니다.
그걸 뭐라고 하냐 위선이라고 하는 거예요. 겉과 속이 달라요.
숨겨놓고 전체 인양하는 것이 여러분 인색한 사람도 있습니다.
인색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저주를 받거나 심판을 받는 건 아니에요.
인색하면 복은 못 받아 어떤 사람이 복을 받냐? 자기 것을 나눠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인색한 사람은 인간적으로도 싫지 않아요. 인색한 사람 밥 같이 먹고 한 번도 밥값 안 내는 사람
참석자 1 15:52
밥맛 없는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들하고는 관계를 끊어버려야 됩니다.
세상에 얼마나 사람이 많습니까? 자기 것을 이웃에게 나누기를 기뻐하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십시오.
또 여러분 자신이 그렇게 돼야 돼요. 인색한 사람은 여러분 복도 못 받고 인기가 없어 한두 번 속지 안 속습니다.
그러니까 뭐 이제 만나자고 하면 사람들이 피해요.
점점 사람이 없어 외로워집니다. 불행해지는 거예요.
하나님께 인색한 사람도 있어요. 인간들끼리는 잘 나누다가도 하나님 앞에 헌금한다.
하나님 앞에 시간을 드린다. 내 재능을 드린다 그러면 막 무슨 뭐 엄청난 도둑이라도 맞는 것처럼 주머니를 닫고 자기 시간 관리를 하고 평소에 늘어져 자던 사람이 하나님 앞에 좀 헌신하자 그러면 갑자기 시간 관리 모드로 들어가고 하나님이 보실 때도 참 한심한 사람이죠.
그런 사람은 복을 못 받아요. 인색한 사람은 복을 못 받아 그렇다고 해서 심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위선은 심판을 받더라 이거예요.
참석자 1 17:13
오늘 사실 이 아나니아 사비라는 인색한 사람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거기 교인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런데 바나바가 그렇게 하는 걸 보고 이 정도 마음을 가졌다고 하는 것은 이 사람도 꽤 그런 어떤 면에서는 괜찮은 사람이 그런데 이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문제는 뭐냐 하면 위선입니다.
위선 아닌 것을 그런 척했다라는 거예요. 그것이 큰 죄입니다.
베드로가 이 아나니아의 마음을 딱 알아챘어요. 성령께서 가르쳐주신 거죠.
너 그게 다냐 이게 답입니다. 내 마음에 사탄이 가득해서 하나님을 속였구나.
참석자 1 18:06
니가 판거음차를 얼마를 감췄구나. 니가 가지고 있을 때도 팔을 때도 다 니 마음대로 할 수 있었는데 왜 그렇게 했느냐 그 말이 나왔을 때 그냥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이러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이런 변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근데 아마 이 사람은 끝까지 그 마음을 바꾸지 않았던 것 같아요.
결국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아나니아의 위선은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그에게 전부를 요구하시지 않았어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것도 내 믿음의 분량대로 하는 거예요.
그래서 천부를 바나바처럼 천부를 들이고 자기 전 인생을 헌신할 수도 있어요.
그건 정말 소중한 일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불량이 안 되면 내 분량만큼 하고 헌신할 수 있어요.
하나님은 그걸 가지고 심판하시지는 않으십니다.
그런데 이 위선 그렇지 않으면서도 그런 척하는 거 그것은 하나님이 미워하신다.
이거
참석자 1 19:23
허용심이 많은 사람은 위선자가 됩니다. 허용심은 두 가지 토끼를 함께 잡으려고 그래요.
칭찬도 받고 손해도 안 보고 둘 중에 하나를 선택했어야 돼요.
내가 칭찬을 받으려고 하나님과 사랑 앞에 칭찬을 받기로 마음먹었으면 손해를 볼 생각 자기 희생을 각오해야 됩니다.
그런데 희생도 일부만 하고 칭찬도 다 받고 싶고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하다가 위선자가 되는 것입니다.
허영심은 거짓을 낳고 거짓은 유선자를 만듭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위선자가 돼서 사도들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였어.
그리고 이 위선을 하나님은 심판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해서 갑자기 혼이 떠나가지고 이 사람을 이제 이 시신을 장례를 치르고 한 3시간쯤 됐는데 부인이 들어왔어요.
근데 이 부인이 그 소식을 듣고 들어왔는지 못 듣고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들어왔어요.
다시 물었어요. 이게 다냐 그러면 혹시 들었으면 아이고 이러면 안 되겠구나 하고
참석자 1 20:39
남편이 받은 경고장을 빨리 되새기고 거기서 돌이키면 돼요 이고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답입니다. 이렇게 말해버린 거예요.
그러자 이것뿐이라고 말하자 그에게도 동일한 심판이 임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저나 여러분이나 아나니아 사피라 같은 삶을 살 수도 있어요.
우리가 바나바 같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대개 아나니아 사피라 같은 사람들이 처음 은혜 받았을 때는 하나님께 내 인생 전부를 드리겠다고 어떤 사람은 목사가 되겠다고 선교사가 되겠다고 나중에 주일 성수도 안 하는 인간이 있습니다.
그게 우리 모습이에요. 바로 주일성수한다든가 그래도 살 수 있는 길.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것은 그때그때 엎드려서 솔직하게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자비로우고 은혜로우셔서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허락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러신 분이에요. 문제는 우리가 계속 위선의 모드를 유지하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안 그런 척 끝까지 우기는 것이 문제예요.
참석자 1 22:00
요한일서 1장 9절에도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 심지어는 이 위선에서도 우리가 하나님께 지적을 받았으면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그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
마음이 들었으면 즉시 마음으로 회개하세요.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내가 새롭게 출발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자비로우셔서 우리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위선자를 미워하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모든 사람을 포용했어요.
예수님이 포용한 사람은 유대라고 하는 종교 사회에서는 절대로 밥도 겸상할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었는데, 예수님은 그들을 다 너무 많으셨어요.
강도 살인자, 간음한 자, 예수님을 저주하는 자들까지도 예수님은 그들을 품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면서 끝까지 책망하신 사람들이 있는데 위선자들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이에요.
참석자 1 23:08
사람이 잘못할 수 있어요. 그러나 솔직해지면 최소한 하나님 앞에서는 솔직해야 되는 겁니다.
솔직해지면 하나님은 기회를 주십니다. 외식 이것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거예요.
가면을 쓰고 산다는 거예요. 내 속을 감추고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에요.
하나님까지 속이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하나님은 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의 최선의 방법은 솔직함입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하나님 새로운 기회를 주십시오 하시면 하나님은 100이면 100번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요.
그러나 자기를 속이고 끝까지 이 위선적인 삶을 살다 보면 하나님의 심판이 우리에게 오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2장 18절에도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외식하는 자 지금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어떻게 됐는지 이 부부가 똑같아졌어요. 이 살다 보면 부부가 외모도 닮지만 성격, 성격과 삶의 방식도 닿는 것 같아요. 대답이 똑같아요. 그리고 똑같은 운명에 처해졌습니다.
사는 사람은요. 똑같은 위기를 만났을 때 사는 길을 선택합니다. 망하는 사람은 꼭 망하는 길을 선택을 해. 사는 길이 뭔지 아세요?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나 자신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허락해 주시는 거예요.
오늘 여기 오신 분들 중에 지금 경고를 몇 장 받은 분도 있을 거예요. 자기도 알아요. 이거 옐로카드가 몇 번 왔네. 근데 나중에 경고를 하도 받다 보면 처음에는 경고가 무섭다가 나중에는 겁대가리를 상실하는 거예요. 우리가 겁이 없어져 경고 몇 장 와도 아무것도 없네. 아무 일도 안 일어나네. 그러다가 어느 날 레드카드 내 인생의 경기장에서 또는 이 세상에서 아웃되는 경우가 있다.
오늘 겁나는 얘기 많이 해서 죄송합니다만 오늘 이 본문이 그런 본문이에요. 예루살렘 교회를 향하신 경고 경고가 지금 여러분의 양심에 법정에 지금 하나님의 경고가 몇 장 날아들었으면 지금 정신 차려야 합니다. 정신 차리라고요.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지금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새로운 길을 열어주세요. 예루살렘 교회는 이 경고 앞에 겸손해져서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서 예루살렘 교회는 정화됐습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했다는 거예요. 온 교회와 온 교회가 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갑자기 야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하는 두려움이 그들에게 임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옷깃을 여미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자세를 바르게 했어요 정도로 돌아갔다 이런 말씀이에요.
그렇다고 매번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은혜의 시대입니다. 구약 같으면 이런 일이 아주 비일비재합니다. 가령 하나님의 법귀 한 번 잘못 맞춰도 만져도 그냥 그 자리에서 즉사해요. 왜 그때는 율법의 시대니까 율법으로 다 다스리시니까.
그런데 지금은 은혜의 시대 예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 만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어지간한 일은 다 덮어주신 아무 일이 내게 안 일어난다고 아무 일이 없는 건 아니에요. 구약 같으면 벌써 벌써 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을 상황입니다. 아마 구약으로 말하면 우리처럼 신앙생활을 하면 살아남을 사람이 없을 거예요.
근데 지금은 신약 시대 은혜의 시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 지금 덮고 가시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아무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그것을 기억하셔야 됩니다. 이 신약 시대의 문제는 뭐냐 하면 하나님이 모든 걸 은혜로 다 덮어주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영적으로 해이해지거나 아니면은 경거망동하게 돼 있어요.
우리 말에도 잘 해주면 기어오른다고 그러잖아요. 잘 해주면 손주한테 잘해주면 뭐 상투를 잡고 수염을 뜯는다. 하여튼 그런 얘기가 있어요. 할아버지가 잘해주니까 아빠 엄마는 좀 무서워서 좀 조심하지만 할아버지들은 잘해주시니까 할아버지 할머니 잘해주시니까 나중에는 이 버르장머리가 없어지는 거예요.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만 경험하다 보면요. 하나님이 두려운 분이라는 걸 몰라요. 그러나 구약의 하나님이 신약의 하나님이십니다. 다만 예수 십자가라고 하는 그 사건을 두고 우리를 만나기 때문에 다 용서하시는 거지 하나님이 바뀐 것은 아니에요.
경건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경외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과 두려움으로 대해야 돼요. 사랑의 하나님 여러분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면 우리가 자유를 얻습니다.
사랑의 아버지 우리가 아이들도 아빠가 자기를 막 사랑해 준다는 사실을 알면 애들이 아빠 앞에서 자유를 얻어요. 아버지 앞에 가서 팍 주눅 들어가지고 오늘 이 밥을 먹어야 되겠사옵니까? 이렇게 하면서 벌벌 떠는 그러지 않지 않습니까? 아이들은 그 아버지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사실 때문에 얼마나 그 앞에서 마음껏 때로는 응석도 부리고 고집도 펴보고 이게 자유예요.
사랑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는 그런 영적 자유를 얻습니다. 그 앞에 편안한 마음으로 가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경외하는 마음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분은 사랑의 아버지시지만 만왕의 왕이시고 하늘 법정의 재판장이시고 두려운 분입니다.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잘 이루어야 된다. 그래서 진정한 경건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경외심이라고 장깔뱅이 말한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아마 그 놀라운 십자가 은혜를 경험하면서 잠시 두려운 하나님을 잊은 거예요. 특히 아나니아와 삽비라 그냥 막 이렇게 해도 될 것처럼 생각했지만 그는 그만 그 하나님을 잊고 행동을 하다가 오늘 레드카드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시범 케이스 그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우리에게 발생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겠어요?
그런데 초대교회를 위해서 한번 시범 케이스가 딱 된 거예요. 저희가 어렸을 때 저희 고향 교회에 큰 부흥이 일어났어요. 저희는 아주 시골 정말 시골 교회입니다. 옛날 피난민들이 전쟁 때 6.25 때 피난을 왔다고 할 정도로 충청남도 서천군 시천면 신흥리 아주 제가 중학교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버스가 들어왔어요. 별로 감이 없으신 것 같은데 굉장히 시골이었어요.
근데 그 교회에 교회 부흥이 일어났어요. 그래가지고 사람들이 막 변화되기 시작하는데 제가 놀라운 것은 이제 최근에 들어보니까 저희 동네를 비롯해서 그 일대에 한국교회 부흥이 일어날 때 그 신령한 어떤 은혜로운 그런 게 있었대요.
그런 지역이 있나 봐요. 그래서 저희 작은 교회에서 목회자 선교사 사모 이런 사람들이 제가 계산을 해보니까 한 20명 정도가 나온 것 같아요. 조그만 시골교회에서 그리고 그 일대에서 이름을 대면 알 만한 목사님들이 많이 목회자들이 많이 나와서 근데 그 교회가 팍 부흥이 일어나는데 어느 심지어는 어떤 경우가 있었냐면 어떤 h 성을 가진 막 힘도 세고 흉악한 어떤 그 남자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매일 싸워가지고 싸우면 막 다른 사람 귀를 물어뜯고 막 이래가지고 감옥 가고 그런 사람인데 그 사람이 예수 믿고 변화가 되 하루는 목사님을 찾아왔어요. 왜 찾아왔냐면 하도 교회가 이제 새벽마다 종치고 저희 아버님이 장로님인데 그때는 집사님이었죠. 매일 그 지부에 전도 가고 목사님이 또 전도하고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잠만 자려고 하면 종소리가 들리고 교회를 안 가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그 감동이 일어나가지고 너무너무 괴로워서 그날 소주 한 병과 쥐초 하나를 사가지고 목사님을 찾아온 거예요.
그 사람 주먹은 우리 두 배 정도 됩니다. 그런데 딱 거기다 놓고 여기 내가 오늘 이 문제를 당신이 해결하지 않으면 오늘 끝장 내겠다. 일단 이 소주와 지프를 한 잔씩 하자 그래 이제 위협을 한 거예요. 목사님이 얼마나 겁이 많았어 겁났겠어요. 근데 하나님께서 딱 지혜를 주셨는데 그러면 내가 그거 마실 테니까 저기 안수 기도만 한번 하자고 그러니까 하라고.
근데 안수 기도를 하는 순간 이 사람이 뒤집어지기 시작한 거 막 깊은 영적 세계로 들어가면서 몇 시간 동안 막 그 엄청난 영적 경험을 하면서 이 사람이 변화가 됐어요. 그래서 그 사람이 이제 그다음부터 전도하러 다니는 거예요.
하여튼 그 사람 보려고 교회를 오는 거예요. 사람들이 어떻게 그 인간이 변화가 돼가지고 교회를 다니냐 그래가지고 막 교회가 그 몇십 명 모이던 교회가 150명 200명 막 불어나고요. 교회를 짓고 그런 일이 일어나는데 그렇게 온 동네 거의 교회를 안 나온 사람이 없을 정도로 부흥이 되는데 우리 거기에 집사님 한 분이 계셨어요. 여자 집사님이 그렇게 기도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데 그 자녀들은 다 목회자가 됐습니다.
근데 그 남편이 완전히 알코올 중독에 가정 폭력에 아주 흉악한 남편이었어요. 근데 그 남편을 위해서 그렇게 기도하는데 이 남편이 그 교회는 커녕 너무너무 박해를 하는데 늘 두들겨 패는 거죠.
근데 하루는 어느 날 그 상갓집이 생겼는데 그 집에 갔다가 이 사람이 거기서 옛날에 상갓집에서 놀음도 하고 술도 먹고 그러거든요. 밤새 그러다가 그만 거기서 싸움이 벌어져가지고 거기 있는 사람들한테 얻어맞은 거예요. 뇌 뭐라고 그러나 이거 뇌가 금이 가버렸어요. 그래서 병원으로 갔는데 죽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가족들이 가고 교인들이 가서 보니까 의식이 있는 거예요.
근데 그때 마지막에 자기 부인 마지막 순간에 그 의식이 있는 동안 하나님 앞에 회개를 하고 그 자식과 부모 그 아내가 기도한 덕에 회개하고 천국이라도 간 거예요. 그렇게 하고 자기 부인 마지막으로 허벅지를 어루만지면서 왜냐하면 교회 다닌다고 저기 떡 하는 거 이거 뭐래요?
이거 절구로 부인의 허벅지를 찍은 거예요. 그걸 마지막 회개하고 죽었어요. 그 자식들이 사실은 이 사람 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이 자기 아버지 때려서 죽인 그 사람은 감옥 갔지만 그래도 이 자식들은 목회자들인데 이 사람들은 그래도 그 감옥 간 사람의 아들들을 용서하고 거뒀어요.
그렇게 해서 이제 잘 마무리가 됐는데 저는 그거 보면서 야 정말 교회가 잘 부응할 때 특히 부응할 때 꼭 이런 이런 짓을 하다가 경고를 맞는 사람이 있구나 그리고 그 도가 있어요. 도 하나님께서 기다리시고 참고 기회를 주시다가 어느 저울이 기울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레드카드가 오는 거예요. 교회가 그때 다시 한 번 기도하기 시작했고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어요. 그게 시골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야 잘 될 때 그리고 도를 넘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구나
오늘 어려운 얘기를 해서 죄송합니다만 각자 압니다. 내가 지금 신앙생활 이 정도 해가지고는 안 되겠구나. 지금 내가 게을러져 있구나. 하나님께서 지금 마지막 레드 카드를 꺼내기 직전이시구나. 지금 옐로 카드가 두 장 날아왔구나 그걸 누구나 다 압니다. 그러면 그때 하나님 앞에 빨리 자신을 점검하고 허용심으로 신앙생활하지 말고 또 위선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마지막 레트 카드가 오면 끝나요. 기회가 없어요. 회개하고 돌이키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힘으로 출발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