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께서 어떤 자들은 은혜로 선택하시고 나머지는 그들의 죄악에 의한 진노의 그릇으로 제외(除外)하시는지에 대한 이유는 오직 하나님 자신의 뜻 안에만 있다.
왜
하나님은 이 사람들에게만 은혜(恩惠)를 부여(附與)하시고
다른 사람들은 제외(除外)시키시는가?
전자에 관해,
누가는 그들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作定)된"(행 13:48)자들이라는 점을 든다.
후자에 관해서,
우리는 그들이 능욕(凌辱)을 받게 될
“진노(震怒)의 그릇"(롬 9:21-22)이라는 사실 외에
무슨 다른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도 아우구스티누스와 함께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자.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뜻하기만 하신다면 악한 사람들의 뜻을
선하게 바꾸실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그렇게 하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는 그렇게 하시지 않는가?
이는 그가 다른 것을 뜻하시기 때문이다.
왜 그가 다른 것을 뜻하시는지는 그 자신에게 달려 있다.”
무엇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러한 점을 더욱 강력하게 촉구한다.
그를 보내시면서 주님이 말씀하신다.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사 6:9-10; 참조. 마 13:14-15; 막 4:12; 눅 8:10; 요 12:40; 행 28:26-27; 롬 11:8).
보라!
그는
자기의 음성(音聲)이 그들을 향하게 하시되
그들의 귀를 더 멀게 하시고,
빛을 밝히시되 그들의 눈이 더 멀게 하시며,
가르침을 드러내시나 그들을 더 어리석게 만드키며,
처방을 취하시나 그들이 치료될 수 없게 하시지 않는가!
요한은 이 예언을 인용하면서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믿을 수 없었던 것은
하나님의 이러한 저주가 그들 위에 드리워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요 12:39).
우리는
하나님이 조명(照明)하기를 원치 않으시는 자들에게는,
자기의 가르침을 수수께끼들로 포장하여 보내심으로써
그들이 그것에 의해서 유익을 얻지 못하고
단지 더 큰 어리석음에 빠지게끔 하신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스도는 자기가 무리에게 말씀하신 비유(譬喩)들을
오직 사도들에게만 설명하고 계시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알려 주신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마 13:11).
사람들에게 가르치기는 하시되
그 가르침이 그들에 의해 이해되도록 돌보지는 않으시는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당신은 물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잘못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염두에 두고 더 이상 묻지 말라.
왜냐하면
말씀 속에 아무리 큰 모호함이 있다고 할지라도,
사악한 사람들의 양심(良心)을 정죄(定罪)하기에
충분할 만큼의 빛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 칼빈의 예정론(기독교강요(3권 24장 13)-라틴어 최종판 직역, 생명의 말씀사, 문병호 옮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