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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애 시인의 시적 진실
이기애 시인이 2010년 8월 5일에 오랜 투병 끝에 타계했다. 1947년 대구에서 출생하여 64년의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그는 1989년, 『심상』신인상에 당선하고 문단에 데뷔했다. 그동안 그는 심상시인회와 한국시인협회,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그리고 <90년대> 동인과 <大詩>동인으로 꾸준한 창작활동을 통해서 첫 시집『내 안 가득한 당신』을 비롯하여『흔들리는 것은 바람 탓이 아니다』,『해가 기우는 쪽으로 머리를 두다,』『오늘을 선물한다』,『나무나라』등 총 다섯 권을 상재하고 그의 정서와 사유를 형상화하여 그가 영위해온 인생과 존재의 문제를 나름대로 승화하는 작업을 끈질기게 탐색해 왔다.
우리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다. 생명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 항상 새롭게 진실과 행복을 창출하고 이의 실현을 위해서 전진한다. 그리고 생명은 신성하다. 그래서 사랑을 실천하고 창조적인 가치관을 정립하면서 살아가기를 여망한다.
어쩌면 이기애 시인도 이러한 가치관을 작품 속에 투영하려는 의욕이 바로 생명의 신성함에서 탐구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의 운명 속에는 현실적인 갈등과 고뇌의 요소들이 이미 내재되어 있어서 이를 극복하고 타개하려는 굳은 의지와 자아를 인식하는 투철한 의식이 그를 지탱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1989년 겨울 어느 날, 대학로에서 열린 어떤 시낭송모임에서 만나 지금까지『심상』선후배로 20여년의 세월을 문학적으로 동고동락할 수 있었고 <대시동인>을 결성해서 함께 시를 교감했던 것도 그의 문학적 열정과 강인한 의지로 작품을 창작하는 열혈 시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축축한 삶의 언저리 뿌리 디밀며 / 부러질듯 부러질듯 위태로운 / 길목이 되어 서 있다
그는 작품「봉익동 수채화」일부에서 읽을 수 있는 바와 같이 항상 여린 풀잎처럼 삶에 대한 연민이 고뇌로 차 있었으나 자아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확고한 인생관을 정립하는 의식의 흐름을 작품에 다양하게 투영시키고 있다. 이러한 어조와 같이 ‘위태로운 / 길목’이 그의 시적 공간이며 작품의 설정구도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삶에 관한 사유(思惟)나 지향적인 정서의 향방은 ‘흔들리는 것은 바람 탓이 아니다 /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 그대 때문입니다(「억새의 노래」중에서)’라는 자성의 어조로 그의 삶을 화해하는 시적 조화를 통해서 진실을 탐색하고 있었다.
그는 심상시인회 회원으로서 한해도 빠지지 않고 심상해변시인학교에 참가하여 독자들과의 교감을 통해서 그의 시세계는 더욱 내실 있게 충만되었으며 펜클럽과 문학진흥재단 사무국장을 역임하고 여성문인회, 목월문학포럼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동시에 <시, 아름다운 세상>을 스스로 결성하여 시 독자들에게 창작 지도를 해왔다.
이 험난한 현실적인 난관을 극복하면서 올곧은 시인으로 정착하려던 그 신성한 꿈은 못다 이룬 채 모든 고통과 아쉬움을 ‘죽음에 닿아 있어 살아 있는 목숨보다 내일이 먼저 추억에 닿아, 그대 중심을 향하여 단 한 번인 삶, 그 순간을 확 열었으나-중략-그대로 묻혀 있었습니다’는 그의 시처럼 영원히 묻어두고 말았다.
이기애 시인은 이 세상의 현실적 갈등과 병고(病苦)의 아픔을 모두 거둔 채 저승의 어느 조용한 ‘나무나라’에서 영혼의 안락한 영면을 기원하면서 그의 시 세계를 간략하게 조망해 본다.
이기애 시인의 시적구도는 대체로 사소한 일상적 자아의 성찰에서부터 존재의 원대한 가치관의 탐색을 그의 사유(思惟) 중심축에 두고 있다는 점을 간과(看過)할 수 없다.
첫 시집 출판기념회에서 필자가 사회를 맡아 진행하고 두 번째 시집『흔들리는 것은 바람 탓이 아니다』에서는 ‘자아성찰과 서정시학’이라는 시집 해설을 곁들여서 축하를 한 바가 있다.
이기애 시인의 또 다른 시의 특징은 지금까지 자아의 범주에서 탐색되고 자신의 철학으로 포용한 내적 진실에 비중을 두었다면 이제 그의 시야는 좀더 넓어진 공간에서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펴려한다. 그러나 시인의 잔잔한 사유의 나래는 역시 공허하거나 환상에 머물지 않고 시대의 위기극복, 그 중에서도 서민들의 삶에 대한 의지에 머물면서 그들의 애환을 절실하게 교감하고 있다. 이러한 비약적 현상들은 그의 충만된 시정신이 자아의 인식과 성찰에서 근거한 심도 높은 교감이다.
이처럼 그가 추구하고 탐구하려는 인식의 감도(感度)는 자아에서 포괄하는 자신의 철학이며 가치관의 형성구도라고 할 수 있다. ‘자아에 대한 끝없는 긍정과 부정 그리고 수용과 회피 등의 지속적인 반복으로 연결되고 그 지혜의 축적은 곧 자아의 수용을 전제로 하는 성찰이 큰 맥을 이루고 있다’고 그의 작품의 주제를 살펴본 바가 있다.
살아서 차마 못 볼/ 봉두난발 미친 바람이여 / 살은 살대로 피는 피대로 / 천지사방 흩어버리고/ 벼르고 벼른 세월의 뼈/ 죽어서 꽝, 꽝 못박혀 있는/ 허공의 창.
그가 특히 작품 「거울-스모그의 노래.5」전문에서 보는 바와 같은 단정적인 언표는 삶이나 생명(혹은 존재)의 소중한 정서의 중심축이 그의 작품에서 상당한 위의(威儀)를 차지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는 이 ‘스모그의 노래’를 연작으로 6편을 보여주고 있는데 ‘스모그’가 갖는 임지가 심상치 않다. 이는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가 하늘에 가득차서 안개같이 된 상태는 곧 이 세상의 불투명하거나 불명확한 상태의 현실이 짙게 무르녹아 있다.
이러한 시적 사유의 원류에는 그가 지향하는 투명한 현실적 감응(感應)을 염원하거나 기원하는 내면의식을 이해하게 되는데 이는 그가 정립하려는 인생과 존재에 관한 근원적인 조화를 획득하려는 시적욕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적화자의 어조가 어쩐지 나약하고 불길한 예감을 상생시키는 상황을 감지할 수 있는데 이것이 그가 자아에 순응하는 진실이다. 그는 ‘이파리땅에묻으며묻힌이파리파내며파낸이파리다시파묻으며일생끌고더녀야할무덤하나(「이파리 땅에 묻으며-스모그의 노래.1」전문)’라는 척박한 현실적 사유가 절박한 언술로 현현되고 있다.
이 ‘일생끌고다녀야할무덤하나’가 적시하는 언술은 우리 인간(특히 시인들이)들이 진정한 존재의 의미에서 갈망하는 궁극적인 인생관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일러주고 있다. 이러한 결론은「깡통-스모그의 노래.6」에서도 범상치 않은 변별력을 감지할 수 있겠는데 ‘지찬 나를 쏟아버리고 그대 울음 속으로 잦아들고 싶었습니다’라는 화자의 지각이 기원으로 출발해서 ‘꿈꾸던 곳에서 멈추는 저 검은 수평선, 가뭇없이 감기는 내 외로움의 테두리가 보입니다’라고 토로함으로써 상황과 의식을 동시에 변환시키고 있다.
한편, ‘죽음에 닿아있어 살아있는 목숨보다 내일이 먼저 추억에 닿아, 그대 중심을 향하여 단 한번인 삶, 그 순간을 확 열었습니다’ 혹은 ‘빛살처럼 번뜩이는 눈을 뜨고 스스로를 넘어서던 그대, 그대로 묻혔습니다’라는 언술은 이와 같이 존재에서 추출한 생명성이 절실하면서도 긴장된 어조로 나타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기애 시인의 시편들은 그의 삶의 지향이나 불교(‘아가다’)에서 일체의 번뇌를 없애는 영묘한 힘을 가지고 무병, 불사의 영약을 소재로 한 그의 고집스러우면서도 청순한 시정신이 결집된 작품들을 창작했다고 할 수 있다.
이기애 시인의 작품에 대한 해설이나 담론은 그렇게 많이 발표된 것이 없다. 필자가 첫 시집에 해설을 붙이고 허금주가 시집『나무나라』에 대한 해설을 하고 김성조가 『오늘을 선물한다』에 대한 서평을 발표한 것 외에는 잘 알 수가 없다.
그의 사후에는 애도의 글이 문학까페를 통해서 회자되기도 했으나 필자가 『심상』에 「이기애 시인을 애도함」을 게재했고 태백에 정연수가 「성불처럼 폭포처럼, 깃털보다 가볍게 날아오른 이기애 시인」이라는 애도의 글을 자신의 까페에 내보내서 그를 애도한 바가 있고 몇몇 문학지에서 그의 애도특집을 마련한다는 담론만 들린다.
해탈문 들어선다 // 마음을 헐어 길을 내었나 / 반야굴 지나 온 / 몸이 환하다 / 지키지 못한 약속 어쩌지 못해 구름 밀어내며 / 배를 띄워 보내며 / 안부를 물어오는 수평선 / 괭이갈매기도 제 울음 속에 가라앉아 득도를 하는 / 하늘 가까이 / 자잘한 가지마다 염주알 같은 열매 올려놓고 / 천 년 해로한 뿌리 사리처럼 빛나는 / 나무가 있고 / 묵상에 잠겨있는 절벽 서늘한 기운으로 / 원효의 그림자 밟아 오르는 / 지극한 보폭으로 / 선뜻 등을 내어주는 / 거북바위가 있다 / 바라보면 문득 승천하는 바다 / 계단마다 서려 있는 / 안개를 지운다
--「오늘을 선물한다」 부분
이기애 시인은『오늘을 선물한다』의 표제시에서 불가적인 메시지를 투영하고 있다. 시적대상으로 ‘해탈문’이나 ‘반야굴’, ‘득도’, ‘염주알’, ‘묵상’, ‘원효’, 등을 등원해서 그가 바라보는 불교적 시각이 현현되고 있다.
김성조는 다음과 같이 이 작품을 말하고 있다.
여수 ‘항일암’에서 ‘괭이갈매기도 제 울음 속에 가라앉아 득도’를 하고, ‘천 년 해로한 뿌리 사리처럼 빛나는’ ‘나무’를 본다. 또 ‘지극한 보폭으로/선뜻 등을 내어주는’ 거북바위도 본다. 이는 시인이 이미 ‘항일암’이라는 ‘해탈문’을 지나오고 ‘반야굴을 지나’ ‘몸이 환’해졌기 때문이다. ‘원효의 그림자 밟아’ 오르며 ‘문득 승천하는 바다’도 본다. 지금까지 지나온 길은 안개길이다. 계단을 하나하나 오르며 그 계단에 서려있는 안개, 미궁의 삶의 흔적을 지운다. 시인은 이제 득도한 갈매기, 사리처럼 빛나는 나무, 등을 내어주는 거북바위, 승천하는 바다가 되어있다. 해서 ‘사람아, 무엇을 망설이느냐’라는 물음을 던진다.
이러한 물음은 시인 스스로에게 던지는 화두이다. 삶이 고행의 길이라 한다면 우리는 구도자가 되어 떠도는 구름같은 존재이다. 어느 한 길 모퉁이에서, 혹은 고갯길에서 문득 깨달음을 얻는다면 우리는 발밑에 깔려있는 아득한 안개밭을 지울 수 있으리라. 시인이 항일암에서 느끼는 순간적 ‘밝음의 세계’는 아마도 우리가 늘 찾고자 하는 그러한 이상적 세계일 것이다.
한편, 허금주는『나무나라』해설에서 ‘이 생명의 나무를 아담의 시야에 감추어 놓고 그가 선과 악이라는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게 될 때 알 수 있게 하려는 의도였을까. 생명의 나무는 불멸성을 상징한다.’라고 ‘나무나라’에 대한 논점을 적시하고 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이 긴 갈증의 날들 다 넘어설 수 있을까 // 세상 불바람 삼키며 캄캄한
천둥 소리 / 천 년 채찍이 되어 감기느니 // 새는 /아직 움츠리는 내 황사의 가지마다 / 울음 한 방울 떨구어 / 시간의 옹이 하나 / 새겨 넣는다 // 오랫동안 견뎌 온 / 가슴을 가르면 / 나이테 안에 살고 있는 저 붉고 / 향기로운 숨결 // 뿌려다오 순식간에 져버린 / 삭신을 묻으며 / 흩어지는 목숨 껴안고 / 뿌리가 되는 나무 // 그대가 보낸 최후의 메시지이다
--「선주목–나무 나라․52」전문
이기애 시인에게서 ‘보낸 최후의 메시지’는 ‘긴 갈증의 날들 다 넘어설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상존하고 있다. 이러한 어조는 그가 ‘새겨’둔 ‘시간의 옹이’이거나 ‘향기로운 숨결’임을 갈구하고 있다. 허금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연작시 「나무 나라」에서 나무는 사물의 근성인 토착성을 내장하고 있다. 그 토착성이야말로 단순히 나무가 뿌리를 내린다는 사실을 넘어서서 전통이나 오래 해묵은 삶을 지향하도록 만든다. 곧 오늘의 고도소비사회에서 뷰티클럽을 찾아 다니며 아름다움을 가꾸는 일회성 미의 조건 앞에서 흩어지고 사라지려는 우리 옛 삶의 가치들을 나무를 통해 값있게 지켜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녀의 시에서 ‘나무’는 견인주의자로서 모습을 지닌 시인의 동질화의 대상으로 우리들은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4. 운명의 예언적 교감
이기애 시인의 작품을 일별해보면 대체로 가녀린 여인의 호소가 한 사물과 연관이 되면 바로 연약한 심성이 투영되어 아파하거나 흐느끼고 나아가서는 저승이나 죽음까지도 형상화하는 경향을 자주 대할 수가 있다.
꿈꾸던 곳에서 꿈처럼, 사라져야 하리 / (다시는 태어나지 앟으리라) / 온전한 죽음을 위하여 / 죽어서는 폭팔하는 슬픔 속으로 하얗게 / 뛰어내려야 하리
- -「거품-금호강 . 3」전문
당신이 점지한 숨길마다 그렁그렁 맺히는 하늘 / 두 눈 가득 담고 있어 / 어느 저승인들 환하지 않겠는지요
--「수석, 아름다운 再生 3-소」부분
밤마다 달을 훔친 느릅나무 한 그루 바짝 움켜쥔 제 심장 파고드느니, 용서하라 저 진땀나는 허공에 꽂혀 하얗게 죽어나는 시간이여
--「능소화」부분
이렇게 그는 예언처럼 죽음에 대한 이미지를 추출해내고 있다. 이러한 그의 시전사유는 명민(明敏)한 예지력을 통해서 ‘저승’이나 ‘영혼’과의 교감이 이루어지고 있어다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그는 ‘다시 태어나지 않으리라’라거나 ‘온전한 죽음’ 혹은 ‘저승인들 환하지 않겠’느냐. 그리고 ‘죽어나가는 시간’ 등의 어조가 내포하는 이미지나 의미는 죽음에 대한 승화를 위해서 상당한 시적 가소성(可塑性)을 체질화하고 있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기애 시인은 운명하기 직전, 병상에서도 작품을 썼다고 한다. 그가 유작으로 남긴 작품은 죽음 앞에서 호소하는 간절한 기도의 일단을 엿보게 한다. 간병을 하고 임종(臨終)까지 했다는 그의 측근에 의하면 기독교에 귀의하여 충실하게 ‘하나님’ 말씀에 귀기울이고 기도에도 열정을 쏟았다는 전언이다.
그는 ‘하나님께’라는 부제를 달아서 연작시 5편을 남겼다. 그가 예감한 죽음에 대한 정리처럼 신앙에 의지하려는 우리 인간들의 진솔한 심성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유고를 모두 소개한다.
하나님,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 신앙하는 마음 사가사각 수박 먹듯 삼켜도 / 시험에 든 하루
서녘에 걸려있습니다
--「아름다운 영혼을 위하여-하나님께 . 1」전문
나는 옛집 싸리문 곁에 앉아 있습니다 / 어디로 갈까 / 침 탁! 치던 손가락 / 지루한 오후의 나무 그림자 흘러듭니다 / 한 소쿠리 가득 하늘을 인 젊은 어머니 / 흰 목단 저고리가 빠르게 지나갑니다 // 뒤란에서 모이를 쪼던 닭들, 길게 / 제 울음 풀어 냅니다 / 그 울음 받아 / 작은 손 터지도록 꾹 쥐곤 하던 / 볼이 발갛게 자란 단발머리 / 금호강 푸른 눈빛으로 출렁입니다// 손을 펴는 순간 / 병실 창 아리도록 풀어내는 / 햇살 맑은 물빛 / 아, 하나님 // 당신은 아직 강변의 나무처럼 서 계십니다
--「금호강-하나님께 . 2」전문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 먼 별빛 당기는 / 기도 소리 // 기억을 잃어버린 이방인들 / 하나 둘 돌아와 / 불을 켜드는 / 저 강구의 역사를 보세요 // 앞서 간 인자의 뚜렷한 발자국마다 / 무슨 슬픔 찍혀 있어/ 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가 / 나뉘어 살겠는지요 // 두려워 마세요 / 궁핍했던 그 많은 시간들에게 더 이상 / 끌려다니지 않아요 // 오직 눈빛 하나로 서로를 서원하는 / 당신의 순한 성도들 /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 한없이 벙그는 꽃향 됩시다 // 그 향기에 싸인 / 만촌동 1번지 / 아이들 그림 속에 잠시 / 쉬었다 갑시다 // 가벼운 터치 한 번에도 /‘ 그네가 흔들리고 / 스치듯 일어서는 / 마른 풀잎 / 바람에 몰려 거꾸로 흐른다 / 나직나직 겸손한 물살 / 받아들입니다 // 천국은 분명 있어요 // 하나님 / 사랑하는 하나님 // 남루란 남루 다 벗어 놓은 환한 높이에서 / 저 긴긴 요령 소리가 되어 우리에게 / 한없이 벙그는 꽃향 됩시다
--「그 날이 오면--하나님께 . 4」전문
보고 계십니까 / 하나님 // 움직일 수 없어 제 몸 질러가듯 / 일용할 속도 // 게 / 워 / 내 / 고 / 있 / 습 / 니 / 다
--「투병-하나님께 . 5」전문
일찍이 인명은 재천(在天)이라고 했다. 인생적으로 시적으로 결실을 맺어야 할 중대한 시기에 애석하게도 운명의 신은 지고한 영혼을 위한 결별로 막을 장식했다. ‘아름다운 영혼’을 위해서 ‘하나님’을 찾는 애절한 호소가 ‘투병’ 중에도 그의 내면의식을 풍요롭게 흡인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시인은 무엇인가. 키르케고르의 말을 빌리면 시인의 마음은 남모르는 고뇌에 괴로움을 당하면서도 그 탄식과 비명이 아름다운 음악으로 바뀌게 하는 입술을 가진 불행한 인간이라고 했다.
이기애 시인이 평생을 두고 탐색한 시적 주제나 그 진실은 자아의 성찰을 통해서 존재의 의미를 밝히는 일이었다. 그가 다섯 권의 시집을 통해서 그의 시정신과 시인의 진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다양한 사물과 접맥하면서 진정한 의미를 추출해낸 근원은 바로 그의 가치관이 확립된 현실적인 사유에서 지향하는 인생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순영
전지명
정성수
전덕기
한승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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