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8fmOcqtCzvs
백제(百濟)의,
흔적이 남아있는 부소산성 숲길에서 역사를 담아본다.부소산성 남문터 밑의
삼충사는 백제(百濟) 의 세 충신 성충, 흥수, 계백(階伯)을 모신 사당이다.
사당,
우측에는 떠나간 벗을 그리워한다는 붉은 배롱나무 꽃이 화사하게 피어있다.
꽃이 한번 피기 시작하면 꽃다발 아래부터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오래도록 핀
다.
백제(百濟)의,
3충신을 기리기 위한 사당 좌측으로부터 성충, 흥수, 계백(階伯)의 순서대로
모셔져 있다 성충과 흥수는 백제 최고 관직인 좌평을 지냈으며 계백장군(階
伯將軍)은 2등 관직인 달솔에 이르렀다.
위대한,
장수를 꼽으라면 계백 (階伯) 을 최고로 꼽을 것이다.신라(新羅)를 통일한
김유신은 월래 계백(階伯)의 적수가 되지못했다.
계백 (階伯) 은,
당나라와 신라의 대군을 상대해야 하니 국가의 존망을 알 수 없다.처자식이
포로로 잡혀 노예가 될지도 모른다.살아서 모욕을 당하느니 죽는 것이 낫다
며 스스로 가족들을 죽이고 전투에 임한다.
계백(階伯)은
5천의 정예 결사대를 조직하여 황산벌 전투에서 5만여 신라(新羅)군을 맞아
싸웠다.명장이 지휘하는 백제(百濟)군은 신라(新羅)군과 네 번 싸워 네번 격
파하였다.화랑출신 거진, 반굴은 힘껏 싸웠으나 전사하고 만다.
관창 (官昌) 이,
선봉에 서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계백 (階伯)에게 사로잡혔다.관창(官昌) 을
붙잡은 계백(階伯)은 관창(官昌)의 나이가 어린 것을 보고 살려서 돌려보냈
다.
신라군으로,
돌려보내진 관창(官昌) 은 또다시 백제 (百濟) 군에 쳐들어간다.결국 계백(階伯)은
관창을 잡아 목을 베었다.관창(官昌)의 죽음에 신라군은 죽을 각오로 덤비니 결국
백제(百濟) 군은 패하고 계백(階伯)은 전사한다.
다 아시는 사실이지만 백제 (百濟)는 막을 내렸으나 계백(階伯)의 충절은 오늘날
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부소산 입구 들어가는 길, 이잰 요란한 매미소리 대신 은은한 풀벌레 소리 들리는
단풍나무와 떡갈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진 길에 널찍한 돌을 깔아놓았다.
외삼문 의열문을 지나면 내삼문 삼충사가 나타난다 우측에 떠나간 벗을 그리워
한다는 붉은배롱나무 꽃이 피었다.
백제말기 의자왕 때 삼충신인 성충, 흥수, 계백의 영정과 위패가 좌측으로부터
모셔진 사당이다.성충과 흥수는 백제 최고 관직인 좌평을 지냈으며 계백장군은
2등 관직인 달솔에 이르렀다.
가까이 자라는 두 나무가 맞닿은 채로 오랜 세월을 지나면 서로 합쳐져 한 나무가
되는 연리지 두 몸이 한 몸이 된다하여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을 비유하는 사랑
나무가 부소산 올라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
영일루,
백제시대 왕과 귀족들이 연천봉에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며 하루의 일과를 계획했던
곳으로 이 건물은 1964년 5월 홍선관아의 문루를 옮긴 것이다.
영(迎)과 루(樓)자를 크게 하고 일(日)을 작게 썼는데 이것은 산봉우리 사이에
해가 떠있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고 누각 안에는 삼가 공경하면서 뜨는 해를 맞이
한다는 뜻의 寅賓出日 (인빈출일)라고 쓴 현판이 걸려있다
첫댓글 충신 성충은 향락에 빠져 국사를 돌보지 않는
의자왕(義慈王)에게 바른 소리 한다는 죄로 옥에 갇혔
국운을 생각하며 신라의 공격은 탄현을 넘지 못하게 하고
당나라군사는 백강에서 저지토록 하라는 말을 남기고
금식으로 옥사하였지요
역시 같은 시대 충신인 흥수도 귀양살이하던 중 다급한
의자왕(義慈王)이 사신을 보내왔으나 성충과 같은 말만 되풀이
할 뿐 아무 말을 안 했답니다.그래서 소똥있는 곳에 말똥이 있고
말똥이 있는 곳에 개똥이 있다는 웃지못할 말이 있지 않습니까?푸하하하
화랑관창과 계백장군의 이야기 참 오랜만에 리바이벌해서 듣게 되는군요
제가 우선 궁금한 건 낙화암(落花巖)과 삼천궁녀 이야기 이걸랑요.^^*
진짜 삼천궁녀(三千宮女)는 있었습니까? ㅋㅋ
1,400년 전 대백제의 부활을 알리는 세계대백제전이 오래전 한 달간
부여와 공주에서 개최되었지요 3,000궁녀 거느린 의자왕이 부러울 뿐입니다.
그중에서 성은(聖恩)을 입은 궁녀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리고 그들의 3천 궁녀(宮女)의
숙소도 과연 있었을까 무지한 싸나이 마초 킴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것은 잘못된 역사의 기록이라 사료됩니다
푸하하하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