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 나는 아들 종찬이가 학교 공부하는
데 필요한 모든 지원을 할수있도록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나의 지나친 열성이 남
달랐던것 같았다. 1학년 김학년 담임선생
님께 종찬이를 잘 부탁 드린다며 정중히 인
사 드리고 조그만한 성의 표시를 하였다.
그당시만 해도 학부모님들의 치마바람이
대단 하였던 시절 이였었다. 종찬이는 나의
기대에 부응하여 1학년때 부터 학교 성적
이 뛰어 났다. 1학년말 생활기록부 특기사
항란에 선생님께서 이렇게 기록하여 주셨
다.1:두뇌가 명석하고 논리적이고 전교과
성적이 우수함, 2: 붙임성이 있고 행동이
민첩하나 가끔 장난 썩인 행동을 함 이라고,.....
종찬이는 2학년 2반에 진학하여 학급 반장
선거에서 학우들께 인기가 있어 학급 반장
이된다. 학급생활에 앞장서서 활동 하였으
며 반 우유급식 당번도 잘 하였단다.
방학과제 탐구생활에서 금상까지 받으며 타 학생의 모범된 행동을 하였다.
능력을 발휘하여 3학년,4학년, 5학년, 6학
년 전 학년 반장을 독 차지 하였다.
교내산수경시대회,방송청취최우수상,영어
등등 매사에 적극적 이였다.1994년 2월 18일 달산초등학교에서 우등상과 어머니
회장상도 받으면서 영광스럽게 9회로 졸업
하고,그해 3월3일 집에서 조금 떨어진 침
산중학교에 입학한다.나는 학교 수준이 많
이 떨어진 학교라 내심 걱정을 많이 하였다
내가 노원동 우리은행지점 부근에 자택이
있어 당장 이사 갈수도 없는 형편이였다.
이사를 가지 못하는 이유는 당시 은행에서
무이자로 전세 자금을 대출하여주는 혜택
이 있어 자택을 마음데로 옮길수 없는 형편
이였고 나의 아내가 의상실도 같이 경영하
고 있었기 때문에 쉽사리 자택을 옮기지 못
하였다. 궁리끝에 하는수 없이 침산중학교
에 다니면서 일반 학원에 보내어 보충 할수
있는 쪽으로 마음의 결정을 하였다.
용머리는 되지못해도 뱀의 머리가 되면 된
다는 우스광스러운 주장 이였다. 종찬이는
초등학교 5학년때 시내 경대병원 길건너에
위치한 라이크(lalk) 영어학원에 보내어 영
어 실력을 쌓고 있는 중이였다. 초등학교 6
학년때의 영어 실력은 중학교 1학년 과정
을 마스터(master) 한 상태였다.
지금도 생각이 난다. 라이크 학원에서 공부
하면서 수상한 벽시계를 쳐다보면서 그때
아들의 대견스러운 모습을 기억해 보곤 한
단다. 5,6학년 시절에 한문학원에 보내지 못 하였던 일이 지금 생각해 보아도 많이 후회 스러웠던 일이였었다. 한문공부를 하
게되면 국어문장 해석이 자연히 해결되기 때문에 꼭 필요하였는데 집 부근에 한문학
원이 없어서 보내지 못 하였다.주산학원은
어려서 부터 계속다녀 산수 암산 실력은 아
주 뛰어나게 잘 하였다.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아들에 대한 열의는 대단 하였다고 생
각 된다.
첫댓글 그렇군요!
부모님들이 열성으로 자식 교육을 시켰습니다.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