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9장 떨어지는 별 (2)
"오랑캐는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지 못할까!"
세자 홀(忽)의 외침 소리가 그들의 귀에는 노성벽력처럼 들렸다.
재빨리 도망갈 방향을 찾았다.
그러나 뒤편에서는 이미 공자 원(元)과 공손대중이 바싹 쫓아오고 있었다.
설상가상(雪上加霜).
앞뒤로 적을 맞은 북융군은 어쩔 바를 모르고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칼에 맞아 죽는 자, 화살에 맞아 고꾸라지는 자, 창에 찔려 비명을 지르는 자,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는 자들이 그 수효를 헤아릴 수 없었다.
대량(大良)은 겨우 포위를 벗어나 혼자 달아나던 중 호랑이 수염을 한 정나라 맹장 고거미와 마주쳤다. 그를 피해 옆길로 빠지려 했으나 한 발 늦어 고거미의 칼을 맞았다. 대량(大良)은 두 동강이 나 땅에 고꾸라졌다.
제(齊), 정(鄭) 두 나라 군사들에겐 이미 싸움이 아니었다.
그들은 마치 사냥놀이를 하는 듯했다.
사로 잡은 갑사(甲士)들만 해도 3백이 넘었다.
세자 홀(忽)은 대량, 소량의 목과 사로잡은 북융 병사들을 모조리 제희공에게 바쳤다. 제희공의 기쁨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정나라 세자는 참으로 영웅이로다. 세자가 아니었던들 어찌 오랑캐를 이처럼 손쉽게 무찌를 수 있었으리오. 오늘 우리 제(齊)나라가 무사한 것은 모두 정나라 세자의 공이다."
과분한 찬사에 세자 홀(忽)은 오히려 몸둘 바를 몰라했다.
"우연히 이루어낸 공입니다. 군후의 칭찬을 듣기가 부끄럽습니다."
세자 홀(忽)의 겸양에 제희공은 더욱 마음이 즐거웠다.
그들이 한창 즐거워하고 있을 때 노나라와 위나라 구원군이 역성에 도착했다.
그들은 이미, 정. 제 연합군이 북융군을 쳐부순 것을 알고 부끄러움에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했다.
그러나 제희공은 그에 괘념치 않고 그들을 맞아들인 후 소와 돼지 등 가축을 잡아 승전 잔치를 베풀었다.
"오늘 우리가 오랑캐를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여러 나라가 도와준 덕분입니다. 우리 제(齊)나라는 영원이 이 일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각 나라에서 온 장수들에게 자리에 앉을 것을 권했다.
제희공은 이때의 자리 배치를 노(魯)나라 사람에게 부탁했다.
이것이 실수라면 실수였다.
노나라는 본시 고루하다 싶을 정도로 예(禮)를 중시하는 나라였다.
제희공의 부탁을 받은 노나라 사람은 관례대로 오작(五爵)의 등급에 따라 각 나라 장수들의 서열을 정했다.
오작(五爵)이란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을 가리키는 것으로, 주왕실에서 각 나라 제후들에게 내린 작위를 말한다.
공작이 가장 높고, 다음으로 후작, 백작 순으로 해서 오작중 가장 낮은 작위는 남작이다.
제희공은 후작의 나라이기도 하였거니와 주인인 관계로 가장 상석인 중앙에 앉았다. 이어 후작의 나라인 노나라 장수, 그 다음으로 위나라에 파견한 장수가 앉았으며, 정나라 세자 홀(忽)은 백작의 나라였기 때문에 가장 말석에 앉게 되었다.
이것은 세자 홀(忽)에게는 여간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었다.
'이번 싸움에 노와 위나라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반면에 우리 정(鄭)나라는 가장 먼저 달려와 큰 공을 세웠다. 그런데도 두 나라 장수들은 상석에 앉고 나는 말석에 앉게 되었으니, 이처럼 불공평한 처사가 어디 있는가.'
세자 홀(忽)은 마음속으로 제희공과 노나라 장수에 대해 불만을 품게 되었다. 그런데 제희공은 세자 홀(忽)의 이러한 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술이 서너 순배 돌았다.
잔치 자리는 화기애애한 기운이 가득했다.
술이 어느정도 오른 제희공은 보면 볼수록 세자 홀(忽)이 마음에 들었다.
슬며시 다가가 잔을 건넸다.
"정나라 세자는 영웅의 기품을 타고났소. 마침 내게 혼기에 찬 딸이 있는데, 세자가 거두어주었으면 하오."
청혼이었다.
여느 때 같았으면 농담 삼아서라도 "좋습니다."하고 흔쾌히 대답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때는 도저히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세자 홀(忽)은 고개를 저으며 퉁명스런 어조로 말했다.
"백작의 나라에 불과한 정나라가 어찌 후작의 나라와 혼사에 대해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승낙의 말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던 제희공은 뜻밖이라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세자 홀(忽)을 바라보았다. 누가 들어도 비꼬는 말이었다.
제희공은 그제야 세자 홀(忽)이 자리 배치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음을 눈치챘다. 하지만 이미 자리 배열을 끝난 뒤였다.
다시 거론해보았자 노나라 입장만 곤란해 질 것이다. 제희공은 슬며시 세자 홀(忽)의 곁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그렇게 잔치가 끝났다.
모두들 자기 숙소로 돌아갔다.
하지만 제희공은 여전히 정나라 세자 홀(忽)을 사위로 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동생 이중년을 불렀다.
"그대는 정나라 장수 고거미를 찾아가 이번 혼사가 성사되도록 힘을 써달라고 부탁하여라."
이중년은 제희공의 마음을 짐작하고 고거미의 숙소로 갔다.
"우리 주공께서는 귀국 세자를 영웅으로 여기고 계시오이다. 이번 기회에 제(齊)나라와 정나라가 혼인하여 우의를 돈독히 하였으면 하는데, 어쩐 일인지 세자께서 사양을 하시는구려."
"대부께서 이번 일이 잘되도록 힘을 써주십사 부탁하려고 이렇듯 결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소이다. 구슬 두 쌍과 황금 1백일(鎰)을 정표로 드리겠습니다."
고거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힘은 써보겠습니다만, 세자의 고집이 워낙 세서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고거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자 홀(忽)을 찾아갔다.
"제희공께서는 세자를 존경하고 있습니다. 두 나라 사이에 혼사가 맺어지면 훗날 세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제나라의 청혼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세자 홀(忽)은 한 번 마음속에 담아둔 일을 잘 잊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는 그때까지도 잔치 자리에서의 불쾌한 감정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속시원하게 자신의 불만을 드러내는 성격도 아니었다.
"나는 군명(君命)을 받고 제나라를 구원하러 왔소이다. 다행히 성공하여 제나라에게 도움을 주었는데, 만일 장가들어 아내를 얻어가지고 돌아가면 모든 세상 사람들은 나를 가리켜 공로를 미끼로 아내를 얻은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할 것이외다. 나는 결코 제나라 공녀와 혼인하지 않겠소."
애매모호한 이유를 들어 혼담을 거절하였다.
다음날 이중년은 또 제희공의 분부를 받고 세자 홀(忽)을 찾아갔으나, 세자 홀은 끝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모께 아뢰지 않고 내 마음대로 혼사를 얘기하는 것은 예가 아닙니다. 저는 오늘 본국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이쯤되면 제희공도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여식이 아무 허물도 없거니와, 세상에 어찌 신랑감이 저 하나뿐이겠는가."
이렇게 외치며 크게 화를 내었다.
결국 세자 홀(忽)은 큰 공을 세우고도 작은 일 하나 때문에 제희공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그로 인해 그 뒤로 정나라와 제나라의 관계는 소원하게 되었다.
제희공의 청혼을 거절하고 정나라로 돌아간 세자 홀(忽)은 귀국하여 제나라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정장공에게 아뢰었다. 정장공은 제나라와의 혼사가 깨진 것이 아쉽긴 하였으나 크게 마음쓰지는 않았다.
"이 넓은 천지에 제(齊)나라 말고 어찌 좋은 혼처가 없겠는가."
대범하게 이 일을 넘겼으나, 상경 제족(祭足)만은 이 일을 심상치 여기지 않았다.
'아, 안타깝구나.'
그리고는 고거미를 불러 책망하였다.
"지금 주공에게는 기라성 같은 아들들이 줄줄이 있소. 그 중 특히 공자 돌(突)과 공자 의(儀), 공자 미는 세자가 계심에도 불구하고 다음 군후 자리를 노리고 있는 판이오."
"이럴 때 세자가 제나라와 같이 큰 나라와 결혼하면 다음날에 많은 원조를 받을 수 있소. 제나라가 싫다 하더라도 오히려 이편에서 매달려 청혼해야 할 판이거늘, 어째서 굴러들어온 복을 차버렸는지 알 수 없구려. 그대는 이번에 세자를 수행했거늘, 어찌하여 간하지 않았소?"
제족(祭足)의 타박에 고거미는 억울하다는 듯 변명했다.
"저도 여러 차례 권했습니다. 하지만 세자께서 듣지 않는 걸 난들 어떻게 하란 말씀입니까?"
"아아, 이제 우리 정나라의 앞날은 큰 어지러움에 빠지겠구나."
제족(祭足)은 길게 탄식했다.
한편, 고거미는 제족(祭足)의 탄식을 듣고 오히려 속으로 기뻐했다.
그는 정장공의 부하 장수이기도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장공의 아들 공자 미의 측근이기도 했다. 그가 다음 후계자인 세자 홀(忽)을 추종하지 않고 공자 미를 따르게 된 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예전에 병권을 담당한 공자 여(呂)가 죽었을 때 정장공은 그 후임자로 고거미를 올리려 했었다. 그때 세자 홀(忽)이 정장공에게 간했다.
- 고거미는 성격이 간특한 자입니다. 그는 병권을 책임질 만한 그릇이 아닙니다.
이 말에 정장공은 공자 원(元)에게 군사 지휘권을 위임하고 고거미는 아경(亞卿)에 머물게 했다.
그 뒤로 고거미는 세자 홀(忽)을 원망하며 무예를 좋아하는 공자 미에게 접근했던 것이다.
- 정나라 앞날이 큰 어지러움에 빠지겠구나.
제족(祭足)의 이 예언 섞인 탄식은 고거미에게는 커다란 희망이 되었다.
어지러움이 무엇인가.
군위 계승 다툼을 의미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세자 홀(忽)의 지위는 위태롭게 되고, 자신이 섬기는 공자 미에게도 기회가 올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자중하여 때가 오기를 기다립시다."
고거미는 공자 미에게 더욱 가까이 접근하여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곤 했다.
이러한 고거미와 공자 미의 밀착은 세자 홀(忽)의 귀에도 들어갔다.
세자 홀(忽)은 천성적이다 싶을 정도로 고거미를 싫어했다. 흰자위가 유난히 많은 고거미의 번득거리는 눈에서 그는 반골(叛骨)기질을 엿보았는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이 유난히 가깝게 지낸다는 소문을 듣고 그는 마음속에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은밀히 정장공을 찾아가 말했다.
"요즘 들어 고거미와 공자 미의 행동이 수상쩍습니다. 사람 눈을 피하여 서로 찾아가고 찾아오는 것이 몹시 마음에 걸립니다."
세자 홀(忽)의 말에 정장공은 고거미를 불러 꾸짖었다.
"남에게 의심을 사는 행동은 지각없는 짓이다. 행동거지에 각별히 조심하도록 하라."
고거미는 아무말 없이 고개만 숙였다.
대뜸 세자 홀(忽)이 자신들의 일을 얘기했음을 알았다.
그날 저녁, 고거미는 공자 미를 찾아가 정장공으로부터 들은 말을 전해주었다.
"앞으로는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겠습니다."
"아버님께서 그대를 중용하려 했을 때도 세자가 방해하더니, 이제는 우리 두 사람 사이까지 끊으며 하는구려. 아버님이 살아 있는데도 이러하니, 세상을 떠나시면 어찌 우리가 무사하겠는가."
공자 미는 어두운 표정으로 탄식했다.
그런 공자 미를 향해 고거미가 한마디 덧붙였다.
"세자는 우유부단한 성격이라 사람을 해치지는 못합니다. 저는 오히려 공자 돌(突)이 마음에 걸립니다."
두 사람은 틈난 나면 만나 앞날을 걱정하였다.
이런 중에 제족(祭足)은 나름대로 정장공 사후에 대비한 세자 홀(忽)의 탄탄한 기반 구축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각 공자들의 성향으로 볼 때 내부 단합은 이미 기대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외부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믿음직한 의치처는 제(齊)나라였으나, 그것은 이미 세자 홀(忽)의 거절로 물건너갔다.
다른 나라를 찾아야 했다. 이렇게 해서 생각해낸 것이 진(陳)나라였다. 진나라는 강대국은 아니었지만, 정나라와 이웃해 있었기 때문에 여차하면 도움을 요청하기가 수월했다.
제족(祭足)은 정장공에게 말하여 진나라 제후에게 청혼했다.
이 무렵, 진(陳)나라는 조카를 죽이고 군위에 올랐던 진후(陳侯) 타(陀)가 1년 반 만에 살해당해 죽고, 진환공의 또 다른 아들인 공자 약(躍)이 군위를 물려받은 상태였다. 그가 진여공이다. 진여공으로서는 정나라와의 혼사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흔쾌히 승낙했다.
세자 홀(忽)은 얼마 후 진나라 공녀인 규씨와 결혼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어딘지 부족했다.
제족(祭足)은 다시 정장공에게 간하여 친선 사절단을 위나라로 보내 화친을 맺었다. 주변국과 가까이 지냄으로써 세자 홀(忽)의 위치를 굳건히 하자는 의도에서였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