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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앰 댓 상권 54. 몸과 마음은 무지의 징후들이다.
문: 전날 선생님과 인간-관조자-절대자에 관해 말씀을 나눈 일이 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바로는 선생님께서는 오직 절대자만이 참된 것이고 관조자라는 것은 오직 하나의 주어진 시공에서만 절대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관조자의 현존에 의해 비춰지고 있는 거칠고 미묘한 유기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문제가 뚜렷하지는 못합니다. 그 문제를 다시 좀 말씀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마하다키쉬, 치다키쉬. 파라마키쉬라는 용어도 쓰셨는데요. 그 용어들이 인간, 관조자, 절대자의 삼자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습니까?
M: 마하다카쉬는 자연으로서 존재물들의 대양이라 감각을 통하여 접촉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닌 물리적 공간이고, 치타카쉬는 자각의 공간으로서 시간과 지각 그리고 인식을 위한 정신적 공간일세.
그리고, 파라마카쉬는 실재로서 물질과 의식 모두의 근원이고 기원이며 그 본질이 핵심인데 그러면서도 그 둘을 모두 넘어서 있다네. 그것은 지각될 수 없지만 언제나 관조자를 관조하고 지각하는 자를 지각하는 모든 현현들의 기원이며 종국인 것으로서, 체험될 수가 있으며 시간과 공간의 뿌리이며 모든 인과의 사슬에 있어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네.
문: 관조자와 절대자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M: 차이가 없어. 그것은 빛과 일광의 차이와 비슷해. 우주는 빛으로 가득 차 있는데 자네는 그걸 보지 못하지. 그러나 같은 빛을 자넨 일광으로 보고 있다네. 그리고 일광이 인간을 드러내고 있는 거야. 인간이라는 것은 언제나 대상이고, 관조자는 주체이며 이 둘 간의 상호의존 관계는 그들의 절대적 동일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네.
자넨 그 둘이 다르고 분리된 두 상태라고 상상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아. 그들은 휴식 상태와 운동상태의 같은 의식으로서 각각의 상태가 다른 쪽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야. 우주의식 속에서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은 사람을 알지. 그 속에서는 사람이 세계를 만들고 세계가 사람을 만든다네.
그것은 모든 체험을 균형 잡고 통일시키는 요소로서 두 극단을 잇는 다리와 같은 것이야. 지각되는 것 전체가 바로 자네가 물질이라 부르는 것이며, 지각하는 자 모두를 우리가 우주심 이라고 하지.
지각 가능성과 지각, 조화와 지성, 사랑스러움과 사랑함으로 나타나는 이 둘의 동일성은 영구히 그 자신을 되주장하고 있는 것이야.
문: 사트바(조화) 와 라자스(활동성), 그리고 타마스(불활성)라는 세가지 속성은 물질에만 있습니까?
M: 물론, 그 둘 모두에 있지. 왜냐하면 물질과 마음은 둘이 아니기 때문이야. 그 속성들을 넘어서 있는 것은 오직 절대자뿐이야. 사실 세 가지 속성이라는 것은 관점, 시각일 뿐이야. 그런 것은 오직 마음속에만 있는 것이야. 마음을 넘어서면 모든 분별이 멈추지.
문: 우주는 감각의 산물입니까?
M: 자네가 잠에서 깨어날 적에 다시 세계를 창조하듯이 우주도 그렇게 펼쳐지는 것이야. 마음이 다섯 가지 감각기관과 다섯 가지 행동기관, 그리고 다섯가지 의식의 수레를 가지고 기억으로, 생각으로, 이성으로, 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네.
문: 과학이 많은 진보를 했습니다. 우리는 선조들보다 몸과 마음에 대해 훨씬 더 잘 압니다. 지금 선생님께서 마음과 물질을 묘사하는 전통적인 방식은 더 이상 타당하지 않습니다.
M: 그러나 과학을 한다는 그 과학자가 어디에 있나? 그들 역시 자네 마음속의 상들이 아닌가?
문: 거기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제게는 그들이 제가 투영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제가 태어나기 전에 있었고 제가 죽고 나서도 있을 겁니다.
M: 물론이지. 일단 자네가 시간과 공간을 실재하는 것으로 인정하고 나면 자넨 자기 자신을 왜소하고 곧 죽을 것으로 여기지만. 과연 그들이 실재하나? 그들이 자네에게 의존하나, 아니면 자네가 그들에게 의존하고 있나?
육신으로서 자넨 공간 속에 있고 마음으로서 자넨 시간 속에 있네. 그러나 정말 자네가 마음을 속에 지닌 육신에 불과한가? 정말 잘 검토해 보았나?
문: 저는 검토해 볼 동기도 방법도 없습니다.
M: 난 지금 그 둘 모두를 제시하고 있네. 하지만 잘 꿰뚫어 보고 집착을 벗는 실제적인 작업은 자네가 해야지.
문: 제가 지각할 수 있는 유일한 동기는 원인도 없고 시간도 없는 저 자신의 행복입니다. 그 방법은 어떤 것입니까?
M: 행복은 우연한 것일세. 참되고 효율적인 동기는 바로 사랑이지. 자넨 사람들이 고통에 처한 것을 보고 그들을 도와줄 최선의 길을 구하고 있네만 그 해답은 명백한 것이야. 먼저 자네 자신을 도움의 필요를 넘어선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야.
반드시 자네의 태도가 순수한 호의의 태도여야 하며 어떤 종류의 기대로부터 자유롭게 되어야 하는 것이네. 단순히 행복을 구하는 것은 비천한 무관심으로 끝나 버릴 수도 있지만 사랑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네.
그리고 방법에 관해서라면 한 가지 뿐이야. 반드시 자기 자신을 알게 되어야지. 자신이 어때 보이는지, 그리고 또 과연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를 모두 알아야 해. 맑음과 자비심은 함께 가는 것이야. 각각이 서로를 필요로 하고 강화시켜 주는 것이야.
문: 동정심이란 객관적 세계의 존재를 전재로 합니다. 그런데 객관 세계는 피할 수 없는 고통으로 가득합니다.
M: 세계는 객관이 아닐세. 세계를 그처럼 실재의 것으로 보면 세계의 고뇌 역시 피할 수 없는 것일세. 동정이라는 것은 가상의 이유 때문에 고통받기를 거절한다는 데에 대한 또 다른 말일세.
문: 만약 이유라는 것이 가상이라면, 왜 고통이 불가피합니까?
M: 언제나 고통을 낳는 것은 허위의 것이야. 허위의 욕망과 두려움, 잘못된 가치와 상념들, 사람들 사이의 잘못된 관계들이지. 그러한 허위를 포기하라구. 그러면 자넨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있어. 진리가 사람을 행복케 하고, 진리가 사람을 해탈케 하지.
문: 진실로 말하자면 죄는 육신 속에 갇힌 마음이며 이것은 매우 불행한 진실입니다.
M: 자넨 몸도 아니고 몸속에 있지도 않아. 사실이지 몸 같은 것은 있지도 않아. 자넨 자기 자신에 대해 몹시 오해를 하고 있어. 바른 이해를 갖추려면 탐구를 해야지.
문: 그러나 전 육신으로 태어났고 몸속에 있으며 육신을 지닌 채 육신으로서 죽을 것입니다.
M: 그건 자네의 오해야. 잘 탐구해서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하여 의문을 갖도록 하게. 진리를 발견하려면 자신의 고착된 믿음을 버려야 돼. 만약 자기 나름대로 그저 생각한 것들에 대해 믿음을 지니면 결코 궁극에 이를 수가 없어. 자신이 태어났고 또 죽으리라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것이야. 논리와 경험 양자 모두가 그것을 부인해주지 않나?
문: 좋습니다. 제가 육신이라고 고집하지 않겠습니다. 선생님 말씀이 옳다고 하지요. 하지만 제가 말을 하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 저는 제 몸속에 있습니다. 그건 명백합니다. 육신이 저 자신이 아닐 수는 있지만 제 것이라는 건 옳지 않습니까?
M: 전 우주가 쉬지 않고 자네의 존재에 기여하고 있으니 전 우주가 자네의 몸인 것은 옳아. 그 점에서 난 자네 말에 동의하네.
문: 저의 육신은 제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여러 면에서 보아도 저의 육신은 저의 운명입니다. 저의 성격, 저의 분위기, 제가 반응하는 기질, 저의 선천적 후천적 욕망과 두려움, 모두가 육신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몸에 약간의 술이나 마약이 들어가면 모든 것이 바뀝니다. 약 기운이 가실 때까진 전 전혀 다른 인간입니다.
M: 그 모든 일은 자네가 육신을 자기 자신으로 여기기 때문이야. 참 자아를 깨닫고 나면 마약이라도 자네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해.
문 선생님께서는 담배를 피십니까?
M: 내 몸은 몇 가지 습관이 있었고, 그것은 아마 육신이 쓰러질 때까지 계속될 걸세. 그건 아무런 해도 되지 않아.
문: 고기를 드십니까?
M: 나는 고기를 먹는 사람들 사이에서 태어났고 나의 어린 시절에 난 고기를 먹었어. 지금도 조금 먹지만 아무런 문제 거리가 아니야.
문: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살생을 한다는 뜻이 됩니다.
M: 맞아. 난 절조를 지킨다고 주장하진 않아. 자넨 절대적인 일관성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자네가 본보기로 그걸 증명해야지. 자신이 실행하지 못하는 것을 설교하지 말게.
사람이 태어났다는 생각으로 돌아가세나. 자넨 지금 부모들이 자네에게 한 말에 묶여 있네. 임신을 해서 출생이 있고 갓난애가 꼬마가 되고 어린 시절, 10대 등등의 스토리가 그것인데. 이제 자신이 육신이 아니라는 반대의 생각의 도움으로 자신이 육신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보게.
물론 육신이 아니라는 것 역시 하나의 상념임에는 틀림없어. 그리고 그 생각도 마치 일이 끝나고 나면 버려질 뭔가인 것처럼 다루게. 사실 내가 육신이 아니라는 생각은 육신이 실재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부여하긴 해.
그러나 실제로 육신 같은 것은 없어. 그것 역시 마음의 한 상태일 뿐이야. 그러나 처음에 잘되지 않으면 그렇게라도 시작해야지. 자신이 바라는 것을 끊임없이 기억하고, 그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을 거부하도록 하게.
문: 저는 상자 안의 상자와 비슷해서 바깥의 상자는 육신으로 작용하고 그 속의 상자는 내재하는 영혼으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바깥의 상자를 치우면 그 안의 것이 육신이 되고 그 속의 것이 다시 영혼이 되는 식으로 말입니다. 무한한 연속이어서 여러 상자들의 끝없는 개봉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것이 궁극적 영혼입니까?
M: 만약 육신이 있다면 반드시 영혼이 있겠지. 만약 그렇다면 자네의 비유가 적용될 수 있어.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 자네의 모든 육신과 영혼들을 관통해서 자각, 즉 우주 의식의 순수한 빛이 빛나고 있네. 한순간도 벗어나지 말고 거기에 머무르게. 자각이 없으면 육신은 한순간도 지속되지 못하지.
육체 속에는 에너지와 애정, 그리고 지성의 한 흐름이 있어서 그것이 육신을 인도하고 유지하며 에너지를 부여하고 있으니. 그 흐름을 발견하고 그것과 함께 머무르도록 하게.
물론 이 모든 것이 말을 하느라고 하는 것이야. 말이란 건 다리의 역할도 하지만 동시에 장애이기도 해. 자네 육신의 조직들을 짜고 있는 생명의 불꽃을 발견해서 그것과 함께 머무르도록 하게나. 그것이 육신이 지닌 유일한 진실이니 말이야.
문: 죽고 나면 그 생명의 불꽃은 어떻게 됩니까?
M: 그것은 시간을 넘어선 것이야. 삶과 죽음은 시간 속의 점들일 뿐이지. 삶은 끝없이 많은 피륙을 짜고 있어. 짜는 행위는 시간 속에 있는데 삶 자체는 시간을 넘어선 거야. 삶이 표현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어떤 이름과 형상을 부여하더라도 삶 자체는 바다와 같아서 결코, 변하지 않으며 또 항상 변하고 있다네.
문: 그 말은 모두가 아름답고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 해롭고 불리하더라도 제가 세상 안에 낯설고 소외된 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멈추지 않습니다. 시공 속에 제한된 개인인 제가 어떻게 저 자신을 그 반대라고 여길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특별한 그 무엇도 아닌 탈 개인적이고 보편화된 자각이라고 여길 수 있겠습니까?
M: 자넨 지금 자신의 참모습이 아닌 것을 자신이라고 주장하면서 참모습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네. 자넨 모든 인간적 왜곡으로부터 자유로운 순수한 인식, 즉 자각이라는 요소를 빠뜨리고 있는 것이야. 만약 자네가 우주 의식을,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결코 자신을 알지 못할 것이야.
문: 그럼 제가 어떻게 합니까? 제 눈엔 제가 선생님께서 보시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 선생님께서 옳으시고 저는 틀렸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제가 저라고 느끼는 것을 멈출 수 있습니까?
M: 자신을 거지라고 믿고 있는 왕자가 바른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어. 왕자로 살아봐야 해. 그러면서 무슨 일이 생기는지 봐야지. 내가 하는 말이 사실인 것처럼 행동해 봐. 그리고 나서 실제로 일이 되어가는 것을 보고서 판단해야지. 내가 요구하는 것은 첫걸음을 내딛기 위해 필요한 작은 믿음 뿐이야.
경험해 나가노라면 확신이 생길 것이고 그리되면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겠지. 난 자네가 누군지 알고서 하는 말이야. 잠시만이라도 나를 믿게.
문: 지금 여기에 존재하기 위해서. 저는 몸과 감각이 필요합니다. 이해를 하려면 마음이 필요합니다.
M: 육신과 마음은 무지와 오해의 증후에 불과해. 육신도 없고 마음도 없고 공간도 시간도 없는 "어디"와 "언제" 그리고 "어떻게"를 넘어선 순수한 자각인 것처럼 살아 봐. 거기에 머무르고 그것을 생각하고 그 말의 진리를 받아 들이라구. 거기에 반대하지 말고 거부하지 말아.
열린 마음을 가져 보라구. 요가는 바깥쪽을 안쪽으로 돌리는 것이야. 자네의 마음과 몸이 모든 것이면서 모든 것을 넘어선 상태를 표현하도록 해 봐. 실행에 의해 성공하는 것이지 논쟁에 의해 이룰 수는 없어.
문: 죄송하지만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개인이라고 하는 오류는 어떻게 생겨납니까?
M: 절대자는 시간 이전에 있는데 자각이 처음 나타난다네. 한 다발의 기억과 정신적인 습관들이 관심을 한쪽으로 모으면 자각이 초점을 갖게 되고 거기서 개인이 나타나지. 자각의 빛을 없애 버리든가 잠이 들거나 기절을 하면 개인(인간) 이 사라져. 인간은 있다가 없지만, 자각은 모든 시공을 담고 있고, 절대자는 그냥 존재할 뿐일세.
간단하게 글 하나 덧붙이자면 답을 하는 니사르가다타 마하라지는 질문자를 의식으로 보고.. 의식으로써 답을 하고 있고, 질문자는 자기 자신을 육신과 마음을 자기자신으로 아는 동일시된 상태에서 질문을 하고 답을 듣고 있습니다. 이 차이를 명확하게 알기 전에는 '아이 앰 댓'의 내용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글을 읽는 사람이 글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신 자신을 형체 없는 깨달은 사람이라고 치고(당신이 깨달음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고 해도) 읽어야 이해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깨달음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고 해도 계속해서 글을 읽어나간다면 개념은 조금씩 수정될 것이고 결국에는 정확한 개념을 갖게 될 겁니다. 그리고 깨달음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갖게 되었을 때 책의 내용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런 순간이 오면 세상 모든 경전의 내용을 궁리하지 않고도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될 것이고 그런 것을 일러서 해오解悟했다고 하며 이 상태에 이르면 남는 것은 수행을 해서 진짜 깨달은 사람이 되는 일만 남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