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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산 신씨(靈山 辛氏)는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집단이다. 범롯데가의 가문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원래 본관은 영주(寧州)였으나 이후 영산(靈山)으로 환관(換貫)되었다. 여기서 영주(寧州)는 평안남도 안주시를 가리키는 옛 지명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본래 고려의 팽원군(彭原郡)인데, (중략) 성종(成宗) 2년 계미에 영주 안북 대도호부(寧州安北大都護府)로 고쳤으며, 현종(顯宗) 9년 무오에 안북 대도호부(安北大都護府)로 고쳤다.
세종실록 154권, 지리지 평안도 안주목
2. 시조
조선 후기 문헌인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따르면 신씨(辛氏)의 연원은 중국 하(夏)나라의 왕 계(啓)가 서자(支子)를 신(莘) 땅에 봉하였는데, 훗날 그 후손들이 초두머리(艹)를 떼어내고 신(辛)을 성씨로 삼은 것에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영산·영월신씨대종회의 공식 전승에 따르면, 시조 신경(辛鏡)은 중국 송나라 출신으로 고려 시대에 귀화하여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지낸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 아들 신작(辛綽)을 거쳐 손자 신몽삼(辛夢森)에 이르는 계보가 가문 내에 전한다. 영산·영월 신씨 종중 소재의 신몽삼 묘비(太師寧州辛公夢森之墓)에는 그 본관이 '영주(寧州)'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 조선 후기에 족보 편찬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영월 신씨 등 전국의 여러 신씨 가문들이 영산 신씨를 중심으로 합보(合譜)하여 신경(辛鏡)을 단일 시조로 모시게 되었다. 단, 영월 신씨 측에는 현존 최고(最古)의 족보인 1628년(인조 6) 《세보요략(世譜要略)》 등에 고려 왕조의 경상(卿相)을 지낸 신군재(辛君才)를 독자적 1세조로 기록하는 전승이 따로 존재하며, 합보 이전의 독자적인 계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영월 신씨 문서를 참고하기 바란다.
3. 역사 및 본관
3.1. 나말려초
영산 신씨와 영월 신씨의 실제 기원은 나말려초(신라 말 고려 초)에 형성된 재지 호족 세력으로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조선 초기 상황을 기록한 《세종실록지리지》를 살펴보면, 신(辛)씨는 영산(靈山)과 영월(寧越)을 비롯한 전국 여러 지역의 토성(土姓)으로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
토성(土姓)은 본래 군현의 구획 초기부터 해당 지역에 뿌리내려 읍락을 지배하던 토착 세력, 즉 호족을 의미한다. 이들이 토성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해당 지역에 세거해 온 강력한 토착 집단이었음을 방증한다. 따라서 영산 및 영월 일대를 지배하던 토착 세력이 고려 건국 과정에서 중국식 한자 성씨를 도입하는 한성화(漢姓化)를 거치며 신(辛)씨 성을 획득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조선 중후기에 양반 가문의 족보 편찬이 유행하면서 가문의 격을 높이기 위해 귀화 전승이 정립된 것으로 보인다.
3.2. 고려 시대
영산 신씨가 고려 중앙 정계에서 두각을 드러낸 것은 9세 신천(辛蕆)에서 비롯된다. 신천은 충렬왕 20년(1294) 문과에 급제하여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에 오른 인물로, 고려 후기 학덕과 절의를 겸비한 명신(名臣) 여섯을 일컫는 '6군자(六君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혔다.
이후 11세에 이르러 가문은 권문세족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다진다. 신천의 손자 대에 해당하는 이 시기에는 신예(辛裔)가 판도첨의사사(判都僉議司事)에 올라 취성부원군(鷲城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신부(辛富)는 취산군(鷲山君)으로서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를 역임하며 고려 최고위 실력자 집단의 반열에 올랐다. 특히 신예의 동생 신귀(辛貴)는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의 형부가 됨으로써 새로운 왕조의 실력자와 일찍이 혼맥을 형성하였다.
3.3. 조선 초기
고려 말부터 이성계 세력과 인척 관계를 맺어온 영산 신씨는 조선 건국에도 깊숙이 관여하였다. 신귀의 아들 신극례(辛克禮)는 조선 건국 직후 개국공신 3등에 책록된 것을 시작으로, 정사공신(2등)과 좌명공신(1등)까지 차례로 받아 사실상 조선 초기 최고 공신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관직은 참찬의정부사에 이르렀으며 취산군(鷲山君)에 봉해졌다. 태종 7년(1407) 양주에서 별세한 후에는 태조의 묘정(廟庭)에 배향되는 최고의 영예를 누렸다.
조선 초기 왕실과 맺은 또 다른 인연으로는 태종의 후궁 신빈 신씨가 있다. 그는 영월 신씨 부원군파 신영귀의 딸로, 태종의 후궁이 됨으로써 가문의 왕실 연결을 굳혔다.
조선 초기 15세기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를 기준으로, 신(辛)씨가 전국 각지에 분포했던 현황은 다음과 같다. 당시에는 각 고을이 곧 사실상의 본관 역할을 했으며, 토착 호족 기원론을 뒷받침하듯 토성 외에도 망성, 차성, 입진성 등으로 다양하게 기록되었다.
3.4. 조선 중후기 합보(合譜) 및 대종회 통합
전국 각지에 다양한 본관으로 산재해 있던 토착 신씨 가문들은 조선 중후기를 거치며 전환점을 맞이한다. 양반 가문으로서의 위상을 높이고 결속을 다지기 위한 족보 편찬이 대대적으로 유행하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세력이 약했던 지방의 소규모 신씨 가문들은 물론이고, 유력한 토성 세력이었던 영월 신씨 등도 중앙 정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영산 신씨를 중심으로 합보(合譜)를 진행하였다.
결과적으로 세종 시기까지 20여 곳이 넘는 고을에 존재했던 '지역 신씨'들은 역사적 흐름 속에서 대부분 영산과 영월, 두 개의 거대 본관 계통으로 흡수 통합되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신(辛)씨 가문이 사실상 영산과 영월 두 곳으로 귀결되고, 이들이 함께 영산·영월신씨대종회라는 단일 종친회를 구성하여 신경(辛鏡)을 시조로 모시게 된 것은 이러한 조선 후기의 족보 통합 과정에 기인한다.
다만, 이 합보 과정에서 기존에 독자적인 계보(시조 신군재)를 가지고 있던 영월 신씨의 세보를 영산 신씨의 세수(世數)에 맞추어 끼워 넣다 보니, 영월 신씨 측 인물들의 세수 번호가 실제 연대보다 크게 압축되는 등 세대 간 연대기적 불일치 현상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와 관련된 상세한 내력과 영월 신씨의 독자 계보에 대한 서술은 영월 신씨 문서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3.5. 근현대
근현대에 이르러 영산 신씨(초당공파)는 한국 경제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다. 27세 신격호(辛格浩, 1921~2020)는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가 1948년 롯데(LOTTE)를 창업하고, 한국과 일본 양국에 걸친 거대 유통·식품·화학·건설·관광 복합 그룹으로 키워내 본인의 평생 숙원 사업이자 그룹 내 신사옥 격이자 한국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인 롯데월드타워까지 건설했다. 롯데그룹은 현재 대한민국 5대 재벌 그룹의 하나로 성장하였으며, 신격호는 2020년 노환으로 별세하기 전까지 그룹의 명예회장으로 재임하였다. 현재 롯데그룹은 신격호의 차남 신동빈(辛東彬, 1955~)이 제2대 회장으로 이끌고 있다.
신격호의 남동생 신춘호(辛春浩, 1930~2021)는 1965년 농심(農心)을 창업하고, 신라면과 너구리와 짜파게티 등 한국인에게 친숙한 라면 브랜드를 다수 출시하며 국내 라면 시장 1위 업체로 자리매김하였다. 현재 농심그룹은 신춘호의 장남 신동원(辛東原, 1958~)이 제2대 회장으로 이끌고 있다.
4. 분파
대종회에 통합된 영산·영월 신씨의 분파는 크게 영산 신씨 3파와 영월 신씨 2파로 나뉜다.
덕재공파(德齋公派) — 파조 신천(辛蕆). 충렬왕 20년(1294) 문과에 급제한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로, 고려의 6군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후손으로 배우 신애라, 야구선수 신주영, 독립유공자 신강면 등이 있다.
초당공파(草堂公派) — 파조 신혁(辛革). 파조의 손자 대에 신예·신부·신귀 등 고려 권문세족의 중심 인물들을 배출하였으며, 조선 개국공신 신극례로 이어진다. 이후 롯데그룹의 신격호·신동빈, 농심그룹의 신춘호·신동원 등 현대 한국 경제계의 중심 인물들을 다수 배출한 영산 신씨 최대 분파이다.
상장군공파(上將軍公派) — 파조 신주계(辛周繼). 조선 시대 무반(武班) 전통을 이어온 분파로, 신취(辛鷲)에서 비롯된 무과 급제의 흐름이 여러 대에 걸쳐 이어진다. 후손으로 국회의원 신학용, 신재기, 신영주, 독립유공자 신암우 등이 있다.
《증보문헌비고》 권155 씨족편에 따르면, 영산 신씨 내에는 이들 주요 파 외에도 고려 고종 때 형부원외랑을 지낸 신희(辛熹), 주부(注簿) 신란(辛蘭), 충렬왕 때 장흥부사를 지낸 신좌선(辛佐宣)을 각각 파조로 하는 독자적인 계보(분파)들도 존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영월 신씨(寧越 辛氏)
합보를 통해 대종회에 소속된 영월 신씨 계통의 주요 분파는 다음과 같으며, 상세 내력은 영월 신씨 문서에 기재되어 있다.
부원군파(府院君派) — 파조 신온(辛蕴). 정국공신 신윤무, 조선 중기 명신 신응시, 국로 신계영 등을 배출한 분파이다.
판서공파(判書公派) — 파조 신한(辛韓). 고려 전법판서 신당계, 조선 광주목사 신보안 등을 배출하였으며, 지파로 1628년 《세보요략》을 편찬한 학자 신응순을 배출한 영광파(靈光派)가 있다.
또한 《증보문헌비고》에 따르면 영월 신씨 내에는 부원군파와 판서공파 외에도 흥의위 호군 신보(辛保), 신서(辛恕)를 각각 파조로 삼아 세계를 이어온 파들이 있었다고 전한다.
4.1. 7세
신희(辛喜) - 선원계(先源系). 공식 기록을 통해 확인 가능한 최초의 영산 신씨. 1255년(고종 42) 12월 김련(金璉)과 함께 감찰 기관인 어사대의 종5품 관직인 시어사에 임명되었다.
5. 인물
신윤화 - 선원계(先源系). 부친은 신희(辛喜). 고려 원종 대의 대장군. 1260년(원종 1) 대부소경 장계열과 함께 몽골(원나라)의 새 수도인 개평부(開平府)에 하례 사절로 파견되어 쿠빌라이 칸의 즉위를 축하하였다. 당시 몽골 황제로부터 80여 개국 사절 중 가장 후한 대접을 받았음을 보고한 기록이 《고려사》에 전한다. 또한 충청남도 태안 앞바다에서 발굴된 마도 3호선 침몰선에서 "신윤화 시랑 댁에 올림(辛允和侍郞宅上)", "전복 젓갈 한 항아리(生鮑醢一缸)"라고 묵서된 목간(태안 마도3-107)이 출수되었다. 이를 통해 그가 4품 관직인 시랑(侍郞)을 역임했음이 유물로 교차 검증되었으며, 해당 목간은 마도 3호선의 침몰 연대를 사신 파견 시기인 1260년 전후로 비정하는 핵심 고고학 자료로 활용된다.
신천 - 덕재공파 파조. 시어사 신희의 손자. 고려 충렬왕 20년(1294) 문과 급제. 관직은 판밀직사사. 6군자.
신예 - 초당공파. 고려 판도첨의사사. 취성부원군(鷲城府院君)에 봉해졌다.
신부 - 초당공파. 신예의 동생이며 파조 신혁의 손자. 관직은 고려 취산군(鷲山君).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
신귀 - 초당공파. 신예의 동생.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형부이다. 조선 건국 초기 왕실과 인척 관계를 맺었으며, 정희계의 장인이자 신극례의 아버지이다.
신돈 - 초당공파. 고려 공민왕 대 최고 실권자. 관직은 영도첨의사사사(領都僉議司事使).
신렴 - 부원군파. 관직은 고려 밀직부사(密直副使). 공민왕 대 연저수종 3등 공신 및 수복경성 2등 공신에 녹훈되었다. 왜구 침입 시 한양윤(漢陽尹)으로서 방어에 실패해 천역인 봉졸(烽卒)로 강등되는 정치적 부침을 겪었다.
신영귀 - 부원군파. 검교공조참의. 신빈 신씨의 아버지.
신봉생 - 덕재공파. 고려 우왕 9년(1383) 문과 급제. 관직은 판관(判官), 대호군(大護軍). 신천의 증손자.
신정 - 덕재공파. 고려 우왕 6년(1380) 문과 급제. 관직은 밀직제학(密直提學). 신천의 증손자.
신극례 - 초당공파. 신귀의 아들. 조선 정사공신(2등), 좌명공신(1등). 관직은 참찬의정부사에 이르렀으며 취산부원군(鷲山府院君)에 봉해졌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다 1407년(태종 7년) 민무구 형제의 옥사에 연루되어 유배를 갔으며 양주에서 객사하였다. 사후 400여 년이 지난 정조 23년(1799)에 후손 신평이 직첩을 들고 현신하며 마침내 개국 및 좌명 공신으로서 완전히 복권되었다.
신희(辛喜) - 부원군파. 신렴의 아들이며, 조선 전기에 활동한 신이(辛頤), 신회(辛回), 신헌(辛憲) 형제의 아버지이다.
신빈 신씨 - 부원군파. 조선 태종의 후궁. 신영귀의 딸.
신인손 - 초당공파. 조선 대제학. 11세인 고려 판개성부사 신부의 손자.
신맹화 - 초당공파. 신극례의 장남. 관직은 사온승(司醞丞). 태종 대 외척 여흥 민씨 형제들의 옥사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었으나, 세종 즉위 후 "부친의 일은 실로 불충이라 할 수 없다"는 세종대왕의 특별한 배려로 복권되어 충의위(忠義衛)에 소속되었다.
신숙화 - 초당공파. 신극례의 삼남. 경승부 승, 군기 주부, 부사직 등을 역임했다. 태종 대에 세자전 규찰 태만으로 좌천되거나 여흥 민씨 가문과의 인척 관계로 유배되는 등 정치적 부침을 겪었다. 세종 대에는 처첩 갈등으로 다시 유배되었으나 매번 "공신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처벌이 감해졌으며, 과거 급제 당시 유력자의 도움으로 시권이 수정되어 합격했다는 비사가 실록에 전한다.
신이 - 부원군파. 신렴의 손자이자 신희의 장남. 태종 대 실무 관료로서 경기 경력(京畿經歷), 소윤(少尹) 등을 역임하였으나, 1418년(세종 즉위년) 국구 심온(沈溫) 사건에 연루되어 동생들과 함께 동반 파직되었다.
신회 - 부원군파. 신렴의 손자이자 신희의 차남. 사헌부 감찰 재임 중 '신귀(新鬼)' 놀이에 가담하여 파직되었고, 심온 사건에 연좌되기도 했으나 후일 연천 현감(漣川縣監)으로 복권되어 세종의 강무 행차를 수차례 보필했다.
신당계 - 판서공파. 고려 충정왕 대 전리판서(典理判書) 및 전법판서(典法判書)를 역임하였다. 시호는 문정공(文貞公)이다.
신석조(초명 신석견) - 초당공파. 조선 좌리공신, 집현전 학사. 신인손의 아들.
신영손 - 부원군파. 신이의 아들. 세종 대 당상관으로 특지 승진하였고 《용비어천가》 주해 작업에 참여했다. 세조 대에는 충청도 및 황해도 관찰사를 역임하며 임금으로부터 직접 밀부(密符)를 하사받은 핵심 실무 관료이다.
신원좌 - 판서공파. 신당계의 아들. 고려 공민왕 18년(1369)에 전라도 관찰사를 지냈으며, 이후 양광도 안렴사(楊廣道按廉使)와 판서(判書)를 역임하였다. 수원 부사 재직 중이던 변옥란의 공을 포장하여 발탁되게 하는 등 인사 행정에 밝았으며, 영월 신씨 예천파(醴泉派)의 기원이 된 인물이다.
신후담 - 초당공파. 신인손의 손자. 성종 대 결성 현감(結城縣監)을 역임했다.
신필주 - 상장군공파. 자는 희경(姬卿). 중종 2년(1507) 문과 급제. 관직은 예조참의(禮曹參議), 통례원 좌통례.
신중거 - 부원군파. 관찰사 신영손의 차남.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 영안도 경차관(永安道敬差官)을 역임했으며, 북방 야인 정벌 당시 서정 종사관(西征從事官)으로 만포(滿浦)에 출진하여 행정과 국방 실무를 수행했다.
신계거 - 부원군파. 관찰사 신영손의 넷째 아들. 1477년(성종 8) 식년 문과에 급제(방목상 전체 8위)하여 중앙 조정에 진출하였으며, 감찰 기구의 핵심 언관인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을 역임했다.
신보안 - 판서공파. 신당계의 손자. 조선 전기 무신 겸 관료. 한성 소윤, 판선공감사, 영광군수(靈光郡守), 광주 목사(光州牧使) 등을 역임했다. 영광군수 시절 현지 사족 부윤 한이(韓彛)와 교분을 맺어, 이후 광주목사로 영전하면서 차남 신사구(辛斯龜)를 한이의 딸과 혼인시켜 영광 도내리(道內里)에 정착하게 한 것이 영월 신씨 영광파(靈光派)의 기원이 되었다. 광주 목사 시절에는 관할 백성에게 구타당한 사건으로 인해, 사후 광주목이 연대 책임을 지고 무진군(茂珍郡)으로 강등당하는 파장을 일으켰다.
신세호 - 초당공파. 관직은 예조정랑. 신인손의 증손자.
신희정 - 초당공파. 관직은 평해군수. 신인손의 증손자. 신세호와 6촌 형제.
신취(辛鷲) - 초당공파. 조선 개국공신 신극례의 현손자(4대손). 진사(進士)에 합격하였으며, 이후 후손들이 연이어 무과에 급제하며 가문의 무반(武班) 계보를 열었다.
신륜 - 상장군공파. 신필주의 아들. 자는 경립(景立). 1504년생, 1565년졸. 명종 1년(1546) 문과 2등(을과) 6위로 급제. 관직은 광주 목사(光州牧使). 당대의 석학 남명 조식이 그의 묘갈명을 지었다.
신윤문 - 부원군파. 신숙거의 아들이자 신윤무의 형. 1506년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 3등에 녹훈되었다. 1513년 동생 신윤무의 옥사에 연좌되어 훈적이 삭제되고 유배되었으나, 이후 중종의 강력한 의지로 방면 및 신원(伸冤) 논의가 이루어졌다.
신윤무 - 부원군파. 신영손의 손자. 사헌부 장령을 역임한 신중거와 신계거는 각각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된다. 중종반정 정국공신 1등. 관직은 병조판서, 의정부 좌찬성을 역임하였으며 영천군(寧川君)에 봉해졌다. 1513년 역모죄로 몰려 처형당했다.
신사봉 - 판서공파. 신보안의 장남. 세조 3년(1457) 행 부사직(行副司直)으로서 원종공신(原從功臣) 3등에 녹훈되었다.
신사구 - 판서공파. 신보안의 차남. 관직은 어모장군(禦侮將軍)의 품계를 받았으나 병으로 실제 벼슬에 나아가지는 못했다. 아버지 신보안이 광주 목사 시절 맺어준 혼연으로 인해 전라도 영광(靈光)에 정착한 영광 입향조이다.
신서(辛黍) - 판서공파. 신운길의 손자이다. 세종 대 종사관(從事官)으로서 요동 사절단에 참여했다. 1430년 사절단 일행인 이징·이군실의 무허가 사냥과 역참에서 벌어진 현지인 폭행 사건에 연대책임으로 연좌되어 장영실 등과 함께 처벌 위기에 놓였으나, 세종의 배려로 직첩을 유지하고 속전을 내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신진(辛鎭) - 초당공파. 신후담의 손자. 선조 대 선공감 판관(繕工判官)을 거쳐 관직이 군수(郡守)에 이르렀다.
신광윤 - 초당공파. 신취의 아들. 무과에 급제하여 판관(判官)을 지냈다.
신보상 - 부원군파. 연천현감 신회의 현손. 신응시 5형제의 아버지. 관직은 은율현감, 괴산군수, 서흥도호부사(瑞興都護府使).
신우원 - 초당공파. 신진의 아들이자 신계영의 아버지. 관직은 좌랑(佐郞)을 지냈다.
신전(辛筌) - 초당공파. 신광윤의 아들. 무과에 급제하여 부사(府使)를 지냈다.
소원 신씨 - 초당공파. 조선 광해군의 후궁.
신응시 - 부원군파. 신보상의 장남. 자는 군망(君望), 호는 백록(白麓), 시호는 문장(文莊). 명종 14년(1559) 문과 장원, 명종 21년 중시 2등. 관직은 부제학(副提學), 호당(湖堂)에 이르렀다.
신응운 - 부원군파. 신보상의 아들, 신응시의 동생. 선조 3년(1570) 진사시 합격. 동생 신응회와 함께 합격(연벽)하였다.
신응회 - 부원군파. 신보상의 아들, 신응시의 동생. 선조 3년(1570) 형 신응운과 함께 진사시 합격. 자는 군형(君亨).
신응명 - 부원군파. 신보상의 막내 아들, 신응시의 막내 동생. 선조 16년(1583) 문과 급제. 관직은 홍문관 박사(博士), 판관(判官).
신계영 - 초당공파. 신우원의 아들. 인조 대 병자호란으로 끌려간 백성들을 구출한 속환사(贖還使) 및 강화 유수, 사헌부 장령 역임. 90세 장수로 현종 대 정1품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에 올랐으며, 영조 대 '정헌(靖憲)' 시호를 받았다.
신희량 - 초당공파. 신전의 아들. 1651년(효종 2) 형제인 신희원, 신희익과 함께 의금부 취재(시험)에 응시했던 기록이 있으며, 당시 울산 언양에 거주하며 영남 지역 무반 가문의 전통을 이어나갔다.
신경진 - 부원군파. 신응시의 아들. 임진왜란 당시 도체찰사 유성룡의 종사관 등으로 맹활약하였으며, 관직은 예조 참판(禮曹參判), 대사헌(大司憲), 경상도 관찰사 등에 이르렀다.
신경연 - 부원군파. 신응성의 아들. 광해군 5년(1613) 문과 급제. 관직은 평안도 평사(平安道評事).
신경원 - 부원군파. 신응성의 아들. 신경연의 동생. 인조 4년(1626) 별시 문과에 급제했으나 파방(罷榜, 합격 취소)되었다.
신엄(辛曮) - 초당공파. 신계영의 아들.
신성웅 - 초당공파. 신희량의 아들.
신희계 - 부원군파. 대사헌 신경진의 아들(서자). 인조 11년(1633) 문과 급제. 특히 인조 14년(1636) 관리들의 승진 시험인 중시(重試)에서 장원(1등)을 차지했다. 자는 사가(士佳), 호는 송서(松西). 관직은 통정대부, 군수(郡守).
신희손 - 부원군파. 신경진의 아들. 광해군 대에 공조 좌랑, 인조 대에 영월 군수를 역임했다.
신여화 - 판서공파. 원종공신 신사봉의 5대손. 선조 15년(1582) 식년시 생원(生員)에 합격하였다. 광해군 대에 하양 현감(河陽縣監)을 역임하였으나, 부역을 불공평하게 하고 백성을 가혹하게 수탈하여 원성을 샀으며 결국 비변사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신보벽 - 초당공파. 신엄의 아들. 관직은 봉사(奉事)를 지냈다.
신극번 - 초당공파. 신성웅의 아들.
신환(辛暅) - 부원군파. 신희손의 아들. 효종·현종 대에 동몽교관, 금화 현감, 금부 도사, 장악 주부 등을 두루 역임했다.
신수화 - 초당공파. 신보벽의 아들. 숙종 대 사헌부 감찰, 공조 정랑, 형조 좌랑 등 핵심 관직을 거쳐 안산 및 양근 군수(郡守)를 역임했다.
신백태 - 초당공파. 신극번의 아들. 1807년(순조 7) 영남 지역 유생으로서 송시열을 배향한 인산서원의 사액을 청원하는 대규모 연명 상소에 영산 신씨 문중 인사들과 함께 참여했다.
신성중 - 부원군파. 신환의 아들. 숙종 대에 은진 현감 등을 지내며 백성 구휼에 힘썼고 훗날 청백리(淸白吏)에 추천되었다.
신응순 - 판서공파. 전라도 영광(靈光) 입향조 신사구의 6대손. 성균관 생원(生員)을 지냈으며 호는 성재(省齋)이다. 정유재란(1597) 당시 향교의 위패와 제기를 배에 싣고 피란시킨 공로와 효행으로 사후 홍문관 부제학(弘文館副提學)에 증직되었다. 1628년 현존 최고(最古)의 영월 신씨 족보인 《세보요략(世譜要略)》을 편찬하였다.
신최언 - 초당공파. 신수화의 아들. 영조 대 사산감역을 시작으로 사복시 주부, 의금부 도사, 사재감 첨정, 첨지중추부사(정3품) 등 정통 행정 관료로 활약했다.
신최량 - 초당공파. 신수화의 아들. 신경유의 생조부. 진사 출신으로 당쟁기 연명 상소에 적극 참여했으며 영조 대 부호군, 첨지중추부사에 올랐다.
신규(辛葵) - 초당공파. 신백태의 아들.
신태동 - 부원군파. 신성중의 아들. 숙종~영조 대에 활동하였으며 선공감역, 용담 현령, 익위, 사직령, 감찰 등을 지냈다.
신응망 - 판서공파. 신응순의 조카. 수은 강항(姜沆)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1617년(광해군 9) 생원시에 합격한 뒤, 1624년(인조 2) 문과에 급제하였다. 인조 대에 승정원 주서(注書)를 지냈으며, 어가가 서울을 떠날 때 호종하지 않았다는 대간의 거센 탄핵을 받았으나 군량을 모집하기 위해 남하했다는 영의정 신흠(申欽)의 적극적인 변호로 무마되었다. 이후 도사(都事), 사헌부 장령(掌令) 등 중앙의 청요직을 역임하였다. 효종 대에는 장흥 현감(長興縣監)으로 재직 중, 노비가 주인을 살해한 강상(綱常)죄 사건을 축소·은폐하고 보고하지 않았다가 도신(道臣)에게 적발되어 파직 및 추고를 당하기도 했다.
신명상 - 초당공파. 신최언의 아들. 신경유의 양아버지.
신명성 - 초당공파. 신최량의 아들. 신경유의 생부. 영조 44년(1768) 노환인 아버지를 대신해 궐에 들었다가 왕의 눈에 띄어 특명으로 벼슬에 등용되었다.
신병곤 - 초당공파. 신규의 아들. 1820년(순조 20) 태어나 1860년(철종 11) 정시 무과에 급제하였다. 1866년(고종 3) 국경을 수비하는 욋괴권관(夞怪權管, 종9품)으로 임명되어 첫 관직에 나섰고, 1868년(고종 5) 중앙 군영인 오위(五衛)의 부사과(副司果, 종6품)로 승진하였다.
신치복 - 부원군파. 신태동의 아들. 숙종 31년(1705)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영조 대에 순창 군수, 파주 목사를 거쳐 노인 관료를 예우하는 종2품 동지돈녕부사에 이르렀다.
신경유 - 초당공파. 신명상의 양자(생부 신명성). 정조 대 어전 시험(응제)에 여러 차례 합격하였으며, 순조 대 군자감 판관, 광흥창 령 등 핵심 재무 부서를 총괄하다 80대에 첨지중추부사(정3품)에 올랐다.
신필령 - 부원군파. 신치복의 아들. 영조 대에 유생으로서 학술 관련 연명 상소에 적극 참여했으며, 관직은 현감에 이르렀다.
신석겸 - 부원군파. 신필령의 아들. 정조 1년(1777) 은언군 처벌을 촉구하는 대규모 전국 유생 상소에 참여하였다.
신시근 - 덕재공파. 조선 순조 대의 문신. 사직서 단사령, 사헌부 지평, 사간원 정언 등을 역임한 핵심 실무 관료이자 언관(言官)으로, 1826년(순조 26년) 권력 다툼을 피하기 위해 임금의 소환 명령까지 끝내 거부하며 지조를 지킨 '패불진(牌不進)' 사건으로 유명하다.
신격호 - 초당공파. 롯데그룹 초대 회장(1921~2020).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가 1948년 도쿄에서 롯데를 창업하였으며, 이후 한국과 일본 양국에 걸친 식품·유통·화학·건설·관광 복합 그룹으로 성장시켜 본인의 평생 숙원 사업이자 그룹 내 신사옥 격이자 한국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인 롯데월드타워까지 건설했다.
신준호 - 초당공파. 푸르밀 회장. 신격호의 동생
신철호 - 초당공파. (주) 마로 회장. 신격호의 동생
신춘호 - 초당공파. 농심그룹 초대 회장(1930~2021). 신격호의 동생. 1965년 롯데공업(현 농심)을 창업하여 신라면, 너구리 등 대한민국 대표 라면 브랜드를 출시하고 국내 라면 시장 1위 업체로 키워냈다.
신달수 - 초당공파. 전 국회의원
신은 - 부원군파. 신석겸의 아들. 순조 9년(1809)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선릉 직장, 금부 도사를 역임했다. 순조 16년(1816) 아들 신대집과 함께 상소에 참여했다.
신동주 - 초당공파. SDJ 코퍼레이션 회장. 신격호의 장남
신동빈 - 초당공파. 롯데그룹 제2대 회장. 신격호의 차남
신영자 - 초당공파. 前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신격호의 장녀
신동학 - 초당공파. 신준호의 장남
신동환 - 초당공파. 푸르밀 대표이사 사장. 신준호의 차남
신동원 - 초당공파. 농심그룹 제2대 회장. 신춘호의 장남
신동욱 - 초당공파. 독립유공자. 30세 신기하의 조부이다.
신동인 - 초당공파. 롯데케미칼 상근 고문
신상우 - 초당공파. 7선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역임
신암우 - 상장군공파. 독립유공자
신영주 - 상장군공파. 재선 국회의원 역임
신대집 - 부원군파. 신은의 아들. 순조 16년(1816) 충헌공 박준원 사액을 청하는 대규모 유생 상소에 부친 신은과 함께 참여하였다.
신유열 - 초당공파.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이자 롯데그룹 한국 및 일본 전무 역임
신병렬 - 초당공파. 전 국회의원
신상렬 - 초당공파. 농심그룹 재무담당 상무이사 역임
신장열 - 초당공파. 3선 울주군수 역임
신기하 - 초당공파. 4선 국회의원 역임
신용기 - 상장군공파. 독립유공자
신용훈 - 상장군공파. 제2대 국회의원
신기남 - 부원군파. 4선 국회의원 역임
신영선 - 부원군파. 제18대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신재동 - 부원군파. 전국노래자랑 악단장
신헌 - 부원군파. 독립운동가
신강면 - 덕재공파. 독립유공자
신정훈 - 초당공파. 재선 나주시장, 재선 국회의원 역임
신종길 - 초당공파. 前 롯데 자이언츠, 한화 이글스, KIA 타이거즈 외야수
신종령 - 초당공파. 전 코미디언
신본기 - 상장군공파. kt wiz 내야수
신순기 - 상장군공파. 전 정치인
신재기 - 상장군공파. 재선 국회의원 역임
신학용 - 상장군공파. 3선 국회의원 역임
신인선 - 부원군파. 뮤지컬 배우 겸 가수. 신기남의 차남
신문선 - 부원군파. 전 축구 선수, 축구 해설가
신석빈 - 부원군파. 제2대 국회의원
신석정 - 부원군파. 시인
신승호 - 부원군파. 前 강원대학교 총장
신애라 - 덕재공파. 배우
신상학 - 초당공파. 전 국회의원
신홍섭 - 초당공파. 전 전라남도의회 의원
신종대 - 상장군공파. 전 대구지방검찰청 검사장
신경림 - 부원군파. 제19대 국회의원
신봉승 - 부원군파. 조선왕조 500년을 집필한 소설가이자 극작가
신민선 - 판서공파. 제12대 국회의원
신건 - 부원군파. 제25대 국가정보원장
신경민 - 부원군파. 제19·20대 국회의원
신응석 - 부원군파. 제23대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검사장
신형원 - 부원군파. 가수
신승태 - 판서공파. 국악인이자 트로트 가수
신주영 - 덕재공파. 前 한화 이글스 투수
신경식 - 초당공파. 4선 국회의원 역임
신슬기 - 초당공파. 배우
신동근(프니엘) - 비투비 멤버
신몽검 - 고려 충렬왕 16년(1290) 문과 급제. 아버지는 신란(辛蘭)이다. 《증보문헌비고》에 따르면 부친 신란은 주부(注簿)를 지냈으며 영산 신씨 내에서 독자적인 한 파를 이룬 파조(派祖)로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 후손을 자처하는 계보가 끊어져 영산·영월 신씨 대동보에 수록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신석 - 전 농구선수
신선우 - 전 농구선수
신예찬 - 루시 멤버
신용곤 - 제11대 경상남도의회 의원
신재하 - 배우
신현주 - 가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