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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어휘 연구] 57. 사랑의 형태와 종류: 아가페와 필리아 | 남대극 교수
안녕하십니까? 또다시 '에스라넷 나무 강단' 성경 어휘 연구를 계속하겠습니다. 성경의 의미를 연구하는 목적은 바르고 건전한 신학을 수립하기 위함입니다. 단어와 어휘 없이는 아무런 사상도 우리가 추천하거나 파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어휘를 올바르게 연구함으로써 우리는 성경적인 신학을 가지게 됩니다. 그것이 성경 연구의 목적입니다.
오늘은 57번째 시간으로 '사랑'이라고 하는 아주 좋은 단어를 연구해 보겠습니다. "사랑이면 다 사랑이지 무슨 종류가 있느냐?"라고 말씀하실 분이 있겠지만, 성경을 기록한 언어인 히브리어와 특히 신약을 기록한 헬라어에 보면 사랑의 종류가 조금 다릅니다. 그래서 이 사랑의 형태와 종류가 몇 가지가 있으며,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어떤 것인지 오늘 함께 공부하겠습니다.
인간이 손가락이나 손으로 하트(Heart) 모양을 만들어 사랑을 나타내는 것은 우리 인류 공통의 사인입니다. 사랑은 이 가슴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하트 모양을 사랑으로 표현하는 것은 아마 우리의 사랑의 보금자리가 바로 심장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약성경을 기록한 헬라어를 보면 사랑을 의미하는 단어가 크게 네 가지가 있습니다.
아가페(Agape): 최고의 신적인 사랑이자 박애를 뜻합니다.
스토르게(Storge):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즉 혈육의 천륜지애를 뜻합니다.
필리아(Philia): 친구들 사이의 우정과 상호 간의 인간적 사랑을 뜻합니다.
에로스(Eros): 남녀 간의 성적인 사랑, 이성애를 뜻합니다. 우리가 '에로틱하다'고 할 때의 에로스가 바로 여기서 온 영어 단어입니다.
이 네 개의 단어들 중 아래의 두 단어, 즉 '스토르게'와 '에로스'는 신약 성경에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이나 남녀 간의 성애는 성경 밖에 일반 문헌에는 많이 나오지만 성경 본문에는 기록되지 않았기에, 오늘 연구에서는 제외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경에 명시된 두 가지 사랑인 박애(아가페)와 우애(필리아), 즉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사랑과 성도 간의 사랑을 중심으로 공부하려고 합니다.
최고의 신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명사가 '아가페'이며, 이를 '사랑하다'라고 표현하는 동사가 '아가파오(Agapao)'입니다. 친구 사이의 인간적인 사랑이자 상호 간의 우정을 뜻하는 명사가 '필리아'이며, 이를 '사랑하다', '좋아하다'라고 하는 동사가 '필레오(Phileo)'입니다. 이 두 단어가 성경에 나오는 사랑에 관한 핵심 용어입니다.
신적인 박애를 뜻하는 명사 아가페는 신약 성경에 114번 나오며, 동사 아가파오는 130회로 더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사랑하는'이라는 뜻의 형용사인 '아가페토스(Agapetos)'도 62회(원고의 60회는 오기) 사용되었습니다. 이 세 단어의 사용 횟수를 모두 더하면 신약 성경에만 총 306회나 아가페 계통의 단어가 등장합니다.
이 아가페가 쓰인 실제적인 용례를 성경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구절들입니다. 요한복음 15장 9절과 10절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아가파오 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아가파오 하였으니) 나의 사랑(아가페)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아가페)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아가페) 안에 거하리라." 또한 요한복음 15장 13절의 유명한 말씀인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아가페)이 없나니"에서도 아가페가 쓰였습니다. 지극히 거룩하고 희생적인 사랑의 의미입니다.
로마서 8장 35절을 보면 바울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아가페)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라고 선포했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환난과 난관도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결코 끊어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완벽하고 무결하며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 위대한 아가페입니다.
또한 우리가 잘 아는 '사랑장'인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사랑은 전부 아가페입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아가페)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아가페)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아가페)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아가페)은 오래 참고 사랑(아가페)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아가페)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저는 중학교 3학년 때 성경 암송 대회에 나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암송 대회의 지정 성구가 바로 이 고린도전서 13장이었습니다. 그때 열심히 외웠던 기억이 납니다. 어릴 때 외운 말씀은 나이가 들어서도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지금도 눈을 감고 고린도전서 13장을 외우라고 하면 거의 다 외울 수 있습니다. 어릴 때 성경을 암송하는 것은 참 좋은 교육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의 결론인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하실 때의 사랑도 바로 아가페입니다. (참고로 믿음은 헬라어로 '피스티스', 소망은 '엘피스'입니다.)
요한일서 4장에도 이 아가페의 사랑이 가득 나타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가페토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아가파오 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아가파오 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아가파오 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아가페)이심이라."
하나님은 사랑의 일부를 가지신 분이 아니라, '하나님 존재 자체가 곧 아가페의 사랑'이십니다. 이어서 9절과 10절은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아가페)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아가페)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아가파오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아가파오 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전부 아가페입니다. 이는 인간의 조건에 따라 변하지 않는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이며, 결코 실패하지 않는 위대한 사랑입니다. 이러한 용례들을 보면 아가페가 얼마나 크고 깊은 하나님의 사랑인지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반면에 두 번째 사랑인 '필리아'는 친구 사이의 우정이나 사람 간의 상대적인 사랑을 뜻합니다. 동사형은 '필레오(Phileo)'로, 친구 간에 친밀하게 사랑하거나 인간적으로 무언가를 좋아하고 상호 호의를 나눈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이 명사 '필리아'는 신약 성경 전체를 통틀어 단 한 번밖에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우정의 순수한 의미로 쓰인 것입니다.
다소 좁게 쓰인 명사 필리아에 비해, 동사형인 '필레오'는 신약 성경에 25회 사용되었습니다. 무언가를 인간적으로 좋아하거나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친구'를 뜻하는 명사인 '필로스(Philos)'는 29회(원고의 28회는 오기)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형제를 사랑하는'이라는 뜻의 형용사인 '필라델포스(Philadelphos)'가 1회 쓰였습니다. 그리고 이 둘이 결합한 복합 명사이자 '형제 우애, 형제 사랑'을 뜻하는 '필라델피아(Philadelphia)'라는 단어가 성경에 총 5번 나옵니다.
이 필라델피아는 성경 속 지명으로도 유명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여섯 번째 교회가 바로 '빌라델비아(필라델피아) 교회'입니다. 단어 뜻 그대로 '형제 사랑의 교회'라는 아름다운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날 현재도 미국에 가면 '필라델피아'라는 대도시가 있는데 역시 같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필리아와 같은 계통의 단어들을 모두 취합하면 신약 성경에 총 61회(원고의 60회는 대략적인 수치) 사용되었습니다. 아가페 계통의 306회에 비하면 횟수로는 적지만, 성경은 인간적인 관계와 우정을 표현할 때 이 필리아 계통의 단어를 뚜렷하게 구별하여 사용합니다.
이 필리아 계통의 단어가 쓰인 실제적인 성경 용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야고보서 4장 4절을 보면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필리아)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필로스)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세상과 짝하여 정욕을 나누는 세속적 친밀함을 뜻하므로, 여기에는 결코 거룩한 '아가페'라는 단어를 쓸 수 없습니다. 철저히 세상과의 인간적 우정을 뜻하는 '필리아'를 쓴 것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6장 5절에서 예수님은 외식하는 자들을 책망하시며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필레오 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종교적 과시를 좋아하는 인간적인 욕망을 표현한 것이기에 이 역시 아가페가 아닌 '필레오'를 씁니다. 마태복음 10장 37절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필레오 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필레오 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라는 말씀에서도 혈육 간의 인간적인 사랑을 가리키기에 '필레오'가 쓰였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적 아가페와 인간적인 필레오의 격 차이를 분명히 하신 대목입니다.
심지어 복음서에서 '입맞춤(Kiss)'을 표현할 때도 이 필레오가 쓰입니다. 헬라어 의학이나 일반 용례에서 '필레오'라는 동사에는 친밀함의 표시로 입을 맞춘다는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4장과 누가복음 22장에서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여 체포할 때 군호로 삼은 것이 바로 입맞춤이었습니다. "유다가 다가와서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필레오 하려고) 하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필레마)으로 인자를 파느냐" 하셨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끼리 나누는 친밀한 인사인 입맞춤(필레마)이 배반의 도구로 쓰인 안타까운 장면입니다. 여기에도 아가페는 결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디도서 3장 15절의 "믿음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는(필레오 하는) 자들에게 너도 문안하라"와 요한계시록 22장 15절의 "거짓말을 좋아하며(필레오 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에서도 인간적인 호의나 기호를 뜻하므로 아가페와 격이 다른 '필레오'가 정확히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이 아가페(아가파오)와 필리아(필레오)라는 두 단어가 아주 극적이고 신학적으로 대조되어 나타나는 최고의 문맥이 있습니다. 바로 요한복음 21장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예수님과 부활 후 베드로의 대화' 장면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체포되시던 밤, 수제자 베드로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고 뼈아프게 배반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낙심하여 고기 잡던 제자들을 찾아와 숯불을 피워놓으시고 아침 식사(조반)를 대접하셨습니다. 그리고 식사가 끝난 후, 베드로의 세 번의 실패를 상쇄하고 탕감해 주시듯 세 번에 걸쳐 아주 심각하고 중요한 대화를 건네십니다. 요한복음 21장 15절부터 17절입니다.
우리말 성경이나 영어 성경으로 이 본문을 읽으면 줄곧 "사랑하느냐, 사랑합니다"라는 똑같은 단어만 반복되기 때문에 원문이 지닌 절묘한 신학적 묘미와 긴장감이 다 사라지고 보이지 않습니다. 영어도 그저 'Love'로만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으로 읽으면 예수님이 쓰신 사랑 단어와 베드로가 답변한 사랑 단어가 완전히 다르게 교차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말로 읽으면 보이지 않던 대화의 역동성이 원어의 차이를 통해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베드로는 세 번 배반했던 자책감 때문에 차마 주님께 아가파오 한다는 말을 쓰지 못하고 끝까지 필레오만 고백했으나, 주님은 그의 낮아진 심경과 진실한 우정을 기쁘게 받아들이시고 베드로의 수준으로 내려와 주셨습니다. 참으로 눈물겨운 사랑의 대화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향해 조금 더 담대하게 "주님, 제가 주님을 진정으로 아가파오 합니다"라고 변함없는 고결한 사랑을 고백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의 상황에 따라 수시로 요동치고 배반하는 필레오의 수준을 넘어, 주님이 우리에게 먼저 보여주신 십자가의 아가페 사랑에 화답하는 견고한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까지 내어주시는 아가페의 사랑으로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비록 연약하여 "저는 기껏해야 필리아의 사랑밖에 못 합니다"라고 고백했지만, 훗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에는 주님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리는 아가페의 선교사로 거듭났습니다. 우리를 향해 압도적인 아가페의 사랑을 베푸시는 주님께 "우리도 주님을 아가파오 합니다"라고 삶으로 고백할 수 있는 견고한 신앙을 소유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사랑의 두 가지 어휘 연구를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