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중월 ( 詠井中月) 우물 속의 달을 노래함 / 이규보
산승탐월색 (山僧貪月色) 산속의 스님이 달빛에 반하여
병급일호중 (竝汲一壺中) 호리병에 물과 함께 담았지만
도사방응각 (到寺方應覺) 절에 도착하면 곧 깨닫게 되리
병경월적공 (甁傾月赤空) 병 기울여도 달이 없다는 것을
고려 시대 때의 문신 이규보(李奎報)의 詩 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영웅시 '동명왕편'을 지은 그는
무인정권 시절 당대의 명문장가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이 시를 통해볼 때 이규보는 가히 달관의 경지에
이르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물에 달이 빠져 있는데,
산속에 사는 스님은 그 달을 호리병으로 길러 올립니다.
절에 가져와 물을 쏟아보니 달은 그 자취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물리적으로 해석하면 당연한 이치인데,
그러나 이 시에는 결코 만만치 않은 깊이를
느끼게 해 주는 철학이 들어 있습니다.
즉 시인은 불교의 '색즉시공(色卽是空)'을
이 짧은 시를 통해 명쾌하게 풀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1구의 마지막 글자인 '색(色)'과 4구의 마직막 글자인
'공(空)'이 합일을 이루면서, 이 시는 절묘하게 '색즉시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물 속에 비친 달빛은 '색'인데, 그것을 호리병 속에 담아다 절에 와서 쏟아보니
어느새 그 존재는 달아나고 '공'만 남아 있습니다.
즉 형상이란 우물 속의 달빛처럼 달이 지고 나면
곧 사라지므로 공허하기 짝이 없는 일시적인 모습일 뿐입니다.
인생 또한 색인데, 그 형상도 죽고 나면
공으로 돌아가 형체가 없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부질 없는 인생살이가 이 시 한편 속에 녹아 있습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色卽是空 空卽是色)
색즉시공(色卽是空) : 현실의 물질적 존재는
모두 인연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서
불변하는 고유의 존재성이 없음을 이르는말.
공즉시색(空卽是色) : 본성인 공(空)이 바로 색(色), 즉
만물(萬物)이라는 말. 만물의 본성인 공이
연속적인 인연에 의하여 임시로
다양한 만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규보 李奎報 (1168~1241)
고려중기의 대표적 문장가로서,
본관은 여주, 자는 춘경, 호는 백운거사. 시호가 문순공이다.
고려 중기 그 암혹했던 무신집권시대를 산 대표적 문신으로,
여진, 거란, 몽고등 북방 이 민족의 계속되는 침탈에
우리민족 고유의 정신을 문학으로 정화시키고,
민족역사 정립에 힘 기울인 대 문장가이다.
그의 문집(동국이상국집)에 수록된 서사시
“동명왕편”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커다란 역사적 자부심과
문학작품으로 남아 우리 모두의 자긍심이 되고 있다.
[출처] 詠井中月(영정중월) 모셔온글